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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인도에서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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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협동조합, 인도에서 배우자

[기고]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세계 최고

협동조합 바람이 불면서 한국에서는 서구의 사례들이 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협동조합이라면 인도 사례를 참조해야 합니다. 협동조합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가 바로 인도입니다. 역사도 오래되어서 인도에서 1904년에 최초로 협동조합 관계법(협동조합 신용회사법)이 제정되었고 이를 계기로 가난한 농민들에게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주는 역할을 하는 협동조합이 제도화 됩니다. 1947년 독립 이후 인도 경제 운영 전반을 포괄하는 5개년 계획 속에도 빠지지 않고 협동조합에 대한 정책을 포함시켰습니다. 독립 후 인도에서 협동조합이 중요한 의미를 부여 받은 것은 국가자본주의적 발전 모델에 유용한 수단이 될 것이라는 네루 쪽의 판단과 간디의 노선 둘 다에 부합했기 때문입니다. 간디 노선은 촌락 단위의 정치조직인 판차야트를 강조했는데 이와 짝을 이루는 경제적 조직으로 협동조합을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인도의 협동조합은 국가의 강력한 지원 속에 성장합니다. 협동조합 사업에 소요되는 재정을 조달하는 역할은 인도준비은행이 담당합니다. 1951년 인도준비은행법(Reserve bank of india act)이 협동조합신용기구를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개정되었습니다. 1960~70년대 녹색혁명이 본격화되면서 이 운동을 주도하는 기관으로 농업협동조합이 중요시됩니다. 녹색혁명은 개량된 품종, 화학비료, 농약, 농기계 투입을 통한 산출증대방식을 사용합니다. 따라서 많은 자금이 필요한데 자금조달 기관, 농약과 비료의 보급 역할을 협동조합이 수행했습니다. 또 산출된 곡물의 가공 처리도 협동조합이 상당 부분 담당했습니다. 고리대가 심각한 문제인 농민들에게 저리 자금을 공급하는 것은 지금까지도 협동조합의 지속적 역할이었습니다.

하지만 1990-91년의 외환위기 이후부터는 정부의 지원이 급감합니다. 8차 5개년 계획(1992-97)에서는 협동조합이 자기운영, 자기규제, 자조적 기관이어야 함을 강조하고 경제활동 향상과 취약계층 고용창출을 중요기능으로 설정하는 노선 변화가 나타납니다. 9차 5개년 계획(1997-2002)에는 최초로 협동조합에 대한 조항이 사라집니다. 협동조합의 자율성이 강조되면서 인도의 협동조합들은 점차 쇠퇴했습니다. 국가자본주의 시대에 국가 기능의 하위 파트너 역할을 하면서 성장한 협동조합들이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으로 전환되면서 설 자리를 잃게 된 것입니다.

쇠퇴해 가던 인도 협동조합이 다시 활기를 찾는 계기가 온 것은 2002년입니다. 인도 중앙정부는 이때부터 일련의 협동조합 관련법 개정과 정책전환을 본격화합니다. 1984년에 제정된 다주협동조합법(Multi state cooperatives society act)을 대체하는 개정 법안이 통과되고 협동조합의 전국적 발전을 촉진시키기 위한 국가협동조합정책(National Cooperative policy)이 발표됩니다. 이 정책은 협동조합이 자율적, 자조적이며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기관으로 기능하도록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협동조합의 자본조달 편의를 위해 회사법도 개정됩니다. 2004년에는 협동조합 고등위원회(High Powered Committee on Cooperatives(HPC))가 인도 정부에 의해 구성됩니다.

갑작스러운 협동조합의 부활에는 배경이 있습니다. 세계화와 경제자유화의 부정적 영향이 문제가 되면서 회의당 중심의 UPA정부는 보통사람을 위한 노선을 표방하며 집권했습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정책의 부작용을 완충하는 역할을 협동조합에게 기대한 것입니다. 국가 실패를 전제로 시장의 불완전성을 보완하기 위한 협동조합의 재활성화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협동조합 논의가 별안간 활성화된 것과 마찬가지의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인도 협동조합의 새로운 역할은 우선은 신자유주의적 시장개방으로 몰락하고 있는 인도 농촌에서 실업자들을 흡수하고 빈곤을 경감시키는 일에 집중됩니다.

새롭게 등장한 협동조합과 기존 협동조합과의 차이는 협동조합을 정부의 사업으로 보기 보다는 인민들의 운동으로 확산시키는 것을 지향한다는 점입니다. 즉 정부참여와 지원은 필요하나 간섭/지배하지 않고 정부는 협동조합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기능만 수행합니다. 또 협동조합은 사회적 역할 외에도 경제적 성장의 강력한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협동조합의 전망이 다양화되고 확장되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복수의 사업목적을 가진 협동조합기업들이 나타났습니다. 즉 협동조합은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동시에 시장에서의 경쟁력 강화를 추구하는 두 가지 지향점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는 인도만의 특징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시대 이후에 등장한 협동조합의 새로운 흐름이라는 세계적 경향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협동조합의 개념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국가주도 협동조합이 실패했다는 전제 하에 협동조합을 자조적 자립적 기관으로 규정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협동조합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긍정적 측면의 결과라고 봅니다. 즉 자유로운 경제정책, 국가간섭의 축소, 화폐자본에 대한 쉬운 접근(금융시장의 활성화), 경제적 참여의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 결과로 새로운 협동조합이 가능해졌다는 것입니다. 국가가 철수한 영역에서 발생한 공백을 메우는 것이 새로운 협동조합의 주된 사업영역이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의 한계도 인정합니다. 그런데 시장의 문제는 시장이나 자본주의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사적 기업의 독점이 공정경쟁을 저해하고 있고 협동조합은 경쟁을 공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한국의 경제민주화론자들의 주장이 바로 이것이지요. 또 세계화가 협동조합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통념과 달리, 세계화에 직면하기 위한 핵심적인 기관이 협동조합이라고 봅니다. 세계화의 과정을 덜 고통스럽게 하고 세계적 통합을 부드럽게 하는 유일한 방안이 협동조합의 네트워킹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도의 새로운 협동조합운동도 국가 실패와 시장의 불완전성을 보완하는 경제의 제 3섹터 를 중요 사업영역으로 설정합니다. 또 경제의 세계화와 자유화 정책이 협동조합을 위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적극적 전망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성장잠재력이 높은 부문으로 통신, 관광, 돌봄 등이 꼽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협동조합들이 무엇보다 기대하는 사업 영역은 정부가 지금까지 차지하고 있던 영역들로부터 철수하면서 생긴 공백지대입니다. 이들은 협동조합을 통한 서비스의 아웃소싱은 거래비용을 절감시키고, 고용을 창출하는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인도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공적 영역이 맡아 오던 부문들인 교육, 보건, 교통, 물 공급, 산림관리, 전기 부문에서의 사업기회를 기대합니다. 협동조합 옹호자들은 이 부문들에서 협동조합적 해결책이 공적/사적 영역에 의한 해결보다 우월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런 핵심적인 공적 영역에서 국가가 철수하는 것이 민중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신중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신자유주의 이후 자본가들이 끊임없이 눈독을 들여온 새로운 돈벌이가 바로 사회기반시설의 사영화임은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한국에서도 전기, 물, 보건, 교통의 민영화와 과도한 사교육이 사회적 문제가 되어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임기 말에 무더기 민영화를 밀어 붙이면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국가가 이 부문들에서 손을 떼고 협동조합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일이 공공 인프라의 전면적인 사영화로 이어지지 않을까 경계해야 합니다. 자본가적 논리가 사회를 지배하고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이 여전히 주도하는 상황에서 협동조합이 그 부문들의 공적 성격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까요?

이 문제는 협동조합의 새로운 모델이 사회적 가치 강화와 금융시장에의 순응이라는 상반된 두 지향점을 함께 추구하는 문제와도 관련됩니다. 쉽게 말해서 협동조합이 전기, 보건, 통신, 물 관리 등의 사업을 하려면 엄청난 규모의 자본을 조달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의 협동조합에는 그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국가로부터의 지원은 자율성의 고양이라는 명분으로 이미 배제해 놓은 상황입니다. 남은 길은 금융시장에서 조달하는 방법입니다. 협동조합이 금융 시장에 편입되는 새로운 경향은 바로 이런 움직임과 연결됩니다. 아무리 협동조합들이 사회적 가치를 지향한다하더라도 금융 시장에서 조달한 자금으로 공공 인프라를 운영하면서 금융자본의 이윤동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일이 가능할까요?

인도 협동조합의 실상은 위의 질문의 답에 대한 단서를 줍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인도 협동조합들의 많은 수는 실질적으로 생존이 어려운 상황이어서 출구전략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상당수 협동조합이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 성공사례가 한국에서도 선전되고 있는 마이크로 크레딧의 실상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릅니다. 실제로는 인도 농촌에서 협동조합은행의 역할은 매우 축소되고 있습니다. 농촌에 공급된 신용에서 협동조합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국가자본주의 시대의 최대 56%에서 현재는 19%까지 축소되었습니다. 원인은 협동조합이 자본조달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자본조달 방안이 모색되어야 했습니다. 협동조합의 장기 자본조달은 토지개발은행에서 담당합니다. 토지개발은행은 채권 발행을 통해 자금조달을 하는데 시장에서 채권을 매입하는 주체들은 상업은행, 협동조합은행, 국영은행입니다. 이 사례를 통해서도 협동조합의 새로운 대안은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의 확산과 밀접하게 연결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협동조합이 자율적이기 위해서는 경제적 생존을 위한 경쟁력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협동조합의 경제적 경쟁력 약화는 자본부족이 결정적 원인이고 고부가가치 영역일수록 자본이 많이 필요하므로 이런 영역으로 협동조합이 진출하기 위해서는 자본조달 방안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금융 시장이 이런 기능을 하게하는 것이 협동조합의 미래일 수 있는가라는 물음은 한국에서 협동조합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생각해야 할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인도의 협동조합은 정부와의 관계에 집중되었다는 특징을 가집니다. 그래서 협동조합의 정치화가 심각한 문제입니다. 인도에서 협동조합은 오랫동안 정치적 동원의 강력한 수단이었습니다. 한국에서도 협동조합을 준비하는 주체들 중 상당수가 뚜렷한 사업 전망도 없이 정부의 지원만을 기대하는 단체들이고 정부와 정치 세력들은 협동조합 지원이라는 명분으로 정치적지지 세력을 확장하려 한다는 의구심이 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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