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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주고 약주는 미국이 고맙다고?

[분석]통화 스왑, '달러 패권'을 위한 '핵우산'?

보수 논객 조갑제 월간조선 전 대표는 30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6.25 남침 때 미군 파견, 외환위기 때 IMF 지원, 이번엔 한미(韓美)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미국은 좋은 짓을 한 게 너무 많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는 "조직이나 인간이나 고마움을 모르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고마움을 모르는 인간은 반드시 재앙을 부른다. 세상은 대체로 공평하고 이 세상엔 공짜가 없기 때문이다"며 "'고맙다'는 표현을 당당하게 할 줄 아는 국민이 一流이다"고 덧붙였다. 청와대가 "부시 대통령의 네번째 선물"이라고 평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날 한미 통화스왑 체결 소식에 코스피 지수가 사상 최대폭으로 오르고, 환율은 급락하는 등 시장은 '고맙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작금의 '외환위기'와 '통화스왑 체결' 과정이 만일 미국이 "병 주고 약 주는" 사태일 뿐이라면 순순히 '고맙다'고 할 수 있을까?
▲ 전세계 금융시장에 '달러 기근' 사태를 몰고온 리먼브라더스 파산. ⓒ로이터=뉴시스

미국발 금융위기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지면서 세계 곳곳에 달러 기근이 벌어진 결정적 계기는 '리먼브라더스 파산'이었다. 영국· 캐나다·일본이 서둘러 미국과 통화스왑을 체결한 9월 18일(현지시간)이 바로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급속하게 시장에서 달러가 유동성 함정에 빠진 직후였다.(하단 박스 기사 참조)

같은달 24일에는 호주·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 등 4개국이 미국과 통화스왑 계약을 맺었으며, 10월28일 뉴질랜드에 이어 29일 한국, 브라질, 멕시코, 싱가포르 등 4개국이 협정 체결에 동참했다.

한미통화스왑 협상 최대 무기로 활용한 '미국 국채 매각 카드'

'가능성 제로'라는 미국과의 통화스왑을 체결한 것에 대해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등 경제팀이 자축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지만, 정부가 "우리도 시도해 볼만 하다"며 나선 것은 바로 호주,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등 4개국이 미국과 통화스왑을 체결한 것을 보고 나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협상에서 정부의 최대 협상 무기는 '미국 국채 매각 카드'인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 6위의 외환보유액이라고 하지만 실제 달러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미국 국채를 매각할 수밖에 없으며, 그렇게 될 경우 미국의 달러 가치가 추락할 것이라는 '협박'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통화스왑 동맹'을 무려 14개국으로 확대하게 된 과정을 '달러 패권'을 회복하기 위한 의도적인 흐름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전에 미국과 통화스왑을 체결한 나라는 지난해 12월 유럽중앙은행(ECB)과 스위스뿐이었기 때문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를 2년 전에 '12단계'로 진행될 것이라고 정확히 예상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등 많은 전문가들은 천문학적인 미국의 재정적자와 무역수지가 계속될 경우 달러는 '기축통화'의 지위를 잃고 장기적으로 '휴지조각'으로 변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실제로 최근 중국과 러시아는 달러를 배제한 통화스왑을 체결했으며, 라틴아메리카에서도 '탈 달러 동맹'을 구축해 왔다. 또한 3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미국 측이 한국과의 통화스왑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5일 정부가 중국, 일본,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 공동으로 금융위기에 대비한 800억달러 규모의 공동기금(펀드) 조성을 서두르겠다고 발표한 직후였다고 한다.

한중일 중심의 아시아 다자간 통화스왑 체제가 구축될 경우 위안화, 엔화의 역내 지위가 강화되면서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가 위협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때문에 미국의 통화스왑 동맹이 급격하게 14개국으로 불어난 것은 세계 금융시장에서 현실적으로 최대의 달러 보유국이자 수요국들을 마치 핵우산처럼 '달러 우산'에 끌어들인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미국이 한국 등 여러 나라에게 특별히 은혜를 베풀어준 것이 아니라 미국의 속셈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우선 '달러 우산'에 포함된 나라들은 금리 정책을 비롯한 일련의 금융시장 대응 조치에서 미국을 따라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실제로 이번 금융 위기에서 미국을 포함한 7개국 중앙은행은 금리 인하에 공조를 취하면서 이미 공동 운명체임을 보여준 바 있다.

미국이 '달러 우산'을 확 편 이유

또한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강화할 수 있다. 통상 어떤 통화를 마구 찍어내면 가치가 떨어져야 정상이다. 하지만 기축통화의 경우 주요 경제국들에 달러가 확산될 수록 오히려 '강한 통화'가 되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

달러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 속에 최근 미국으로 유입되는 달러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미국 국채가 매각되는 사태가 빚어지면 걷잡을 수 없다.

미국은 '빈곤대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외부에서 달러가 유입되지 않으면 지탱하기 힘든 기형적인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경향이 지속되는 것을 절대로 방치할 수 없다.이런 위기를 오히려 미국은 '달러 우산 동맹'을 확대해 달러가 부메랑처럼 되돌아오는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ECB, 영국, 일본, 스위스에 대해서는 무제한으로 달러를 공급키로 했으며, 나머지 국가에 대해서는 150억~300억 달러의 한도를 설정했지만 필요하면 언제든 늘려준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다른 나라에 공급하는 달러의 80% 가량은 미국 국채 등 달러 표시 자산 매입이나 금융 회사에 대한 자본 투입 등의 형태로 미국에 환류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물론 이번 통화스왑 체결 배경에는 외교적 고려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통화스왑 협정 체결의 주역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신제윤 재정부 차관보는 "경제 펀더멘털와 함께 지리적 요인도 함께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며 "G20(선진 7개국+신흥 13개국) 나라 중 지역별 거점이 되는 나라들이 선정됐다"고 설명했다.
달러 기근 초래한 리먼브라더스 사태란?

지난 9월15일 미국 정부는 세계 4위의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를 "시장 파괴력이 별로 크지 않다"는 이유로 구제금융을 거절했다. 바로 이틀 뒤 세계 최대의 보험업체 AIG에 대해서는 "시장 파괴력이 크다"는 이유로 85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제공했다.(☞관련 기사:AIG와 리먼브라더스는 다르다? )

하지만 리먼브라더스의 구제금융을 받지 못하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전세계 금융시장은 순식간에 패닉 상태로 빠졌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가 즉각 경고한 대로 시장은 '러시안 룰렛 게임'에 들어간 것처럼 반응한 것이다. 금융업체들은 나부터 살고보자는 심리와 달러를 밖에 내돌렸다가는 되돌려 받을 보장이 없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달러를 꼭 쥐고 내놓지 않게 된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Struggling to Keep Up as the Crisis Raced On'이라는 장문의 기사에서 미국 정부가 158년 역사를 자랑하는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을 선택한 전말을 소개하면서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이 신문은 리먼브라더스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 "헨리 폴슨 재무장관이 리먼브라더스에 대한 구제금융을 거절한 이유로 담보가 부실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실시간으로 리먼브라더스의 유동성, 자본, 위험관리체제 등을 낱낱이 들여다보고 있을 때는 한 번도 담보나 재무제표에 대한 우려를 표시한 적이 없었다"고 전했다.

게다가 리먼브라더스는 기업어음 시장의 세계 최대 발행기관이기 때문에 이 업체를 파산시키면 곧바로 시장에 엄청난 충격이 올 것이라는 점은 폴슨 장관이 모를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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