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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생각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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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생각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

스티글리츠 "보이지 않는 손, 없어서 안 보인 것"

금융위기의 한파가 몰아치면서 구시대의 종언과 새시대의 도래에 대한 전망이 넘쳐나고 있다. 30년 가까이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주도해 왔던 시카고학파가 몰락하는 반면 케인즈주의가 부활하고 있다. 국제적인 자본 흐름을 통제하는 브레튼우즈 체제를 다시 구축해야 한다는 논의는 이미 구체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독일에서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매출고를 올리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승기를 잡은 것도 단순히 금융위기 때문이 아니라 정부의 역할을 제고해야 한다는 민주당식 사고방식이 힘을 받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진보주의 경제학자로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맹신이 현재의 위기를 불러 왔다며 국가와 시장 간에 새로운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지난 16일 영국의 주간지 <뉴 스테이츠맨> 기고문 '보이지 않는 손'(Guided by An Invisible Hand)에서 "경제뿐만 아니라 경제를 생각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며 "시장 참여자들에게 완벽한 정보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모두가 행복해 질 것이라는 애덤 스미스의 결론은 들어맞지 않는다는 25년이 지나면서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보이지 않는 손이 보이지 않는 것은 거기에 그게 없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 근대 경제 체제는 없다"며 정부의 개입과 역할을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과 세계 경제에 대한 스티글리츠의 단기 전망은 어둡다. 세계 경제를 지탱해 와썬 미국의 소비가 금융위기 때문에 위축되어 세계 경제가 침체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수출 감소와 달러 강세 상황도 문제를 심각하게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다음은 스티글리츠 기고문 전문이다.

보이지 않는 손(Guided by An Invisible Hand)

실수하지 마라. 지금 우리는 대공황 이후 최대의 위기를 보고 있다. 아니 그 때보다 더 안 좋은 점이 있다. 대공황 때는 워렌 버핏이 금융의 대량살상무기라고 부르는 이 복잡한 파생상품들이 없었다. 국경을 넘나드는 금융의 규모도 비교가 안 된다.
▲ 경제위기로 미국의 소매상들이 점원 채용까지 줄이면서 매출이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지고 있다. 사진은 텍사스주 댈러스의 한 수입 매장 ⓒ로이터=뉴시스

최근 몇 주간 일어나는 일들을 보는 시장 근본주의자들의 심정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바라보던 공산주의자들의 심정과 같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지난 달 16만개 정도의 일자리가 없어졌다. 올해만 벌써 75만 개 이상이 사라졌다. 그리고 상황은 더 심각해질 것이다. 나는 과거 이같은 상황을 예측해 왔는데, 불행히도 현재까지 맞아 떨어졌다.

내가 비관적인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이처럼 극단적인 신용 경색 상황이 온 것은 은행들이 자본을 손실했기 때문이다. 은행의 모기지, 그리고 다른 복잡한 금융상품들의 가치는 지금도 불확실하다. 미국 경제에 힘을 불어넣어 왔던 것은 소비의 향연이었다. 많은 미국인들은 자산 규모 보다 훨씬 많은 돈을 빌려 썼고, 평균 저축률은 제로였다.

대출을 줄이면 소비를 줄여야 한다. 그렇게 되면 세계 경제의 성장을 지탱해왔던 미국의 경제는 숨이 막히게 될 것이다. 미국의 소비자들은 미국의 경제만이 아니라 세계 경제를 지탱해왔다. 가장 부유한 나라인 미국은 분에 넘치는 생활을 해오면서 세계를 향해서는 미국이 세계의 경제 성장을 이끌고 있다며 감사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미국과 유럽의 경제를 단기적으로 전망함에 있어 비관적인 이유는 또 있다. 올 2/4분기에 수출이 증가하지 않았더라면 미국의 경제 성장은 마이너스를 기록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럽의 경기 경기후퇴와 아시아 경제의 문제점들이 있기 때문에 수출 증가세가 유지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달러 강세는 문제를 더 심각하게 할 것이다. 에너지 가격의 하락이 그나마 위안이지만, 충분한 도움은 못 될 것이다.

헨리 폴슨 재무장관은 새로운 구제금융 계획을 들고 나왔다. 부실자산을 매입한다는 애초의 계획은 잘못된 구상이었고 문제투성이였다. 그 부실자산의 값을 어떻게 매길 것인가? 지금의 이 혼란을 초래한 월스트리트 전문가들에게 전화해서 물어볼 것인가? 그건 동전의 앞면이 나오면 내가 이기고 뒷면이 나와도 내가 이기는 게임이다. 이래저래 납세자만 봉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영국식 해법은 훨씬 낫다. 손실을 막기 위해 우선주를 매입하고 상승 잠재력이 있는 지분을 보증하는 식으로 은행에 자본을 직접 투입하는 것이다. 폴슨도 영국식을 따르려 하는 것 같다. 나를 포함한 미국 경제학자들 대부분, 그리고 조지 소로스 같이 현장 감각이 있는 사람들은 미국도 그같은 방법을 택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폴슨은 우리의 말은 듣지 않더니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의 말은 듣는 것 같다.

우리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은 경제 모델을 잘못 사용했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너무나 많은 이들이 지나치게 단순한 경제 모델(시장 참여자들 모두에게 완벽한 정보가 주어진다는)을 받아들였고, 그걸 경제 정책의 기본으로 삼을 수 있다고 여겼다. 많은 중앙은행들은 오직 인플레이션에만 관심을 둬야 한다는 물가안정목표제(Inflation Targeting)를 적용하고 있다. 인플레가 올라가면 이자율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중앙은행은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내 주장이다. 중앙은행은 한 나라 경제의 안정을 지켜야 한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의 통화 당국이 가격 안정에만 신경을 쓰면서 금융계가 리스크를 떠안게 됐고, 그것이 결국 경제를 위태롭게 했던 것이다.

위기는 전환점이다. 경제뿐만 아니라 경제를 생각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는 각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모두가 행복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 25년을 지나오면서 우리는 시장 참여자들에 완벽한 정보가 주어지지 않는 경우라면, 애덤 스미스의 결론은 들어맞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정보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 것은 모든 시장, 특히 금융시장의 속성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보이지 않는 것은 거기에 그게 없기 때문이다. 엔론과 월드콤의 사적 이익 추구는 사회의 행복을 가져오지 않았다. 금융계의 사적 이익 추구는 우리 경제를 벼랑끝으로 몰고 왔다.

정부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 근대 경제 체제는 없다. 지금은 자유시장주의자들까지도 정부를 바라본다. 그러나 지금의 붕괴를 막는 조치를 미리 취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금융 부문은 이익을 챙겨가고 대중들이 손실을 떠안는 것은 공공 부문과 사적 부문 간에 맺어진 새로운 관계다. 우리는 시장과 정부의 새로운 균형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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