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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지뢰밭'…MB 대북정책, 운신 폭 '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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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지뢰밭'…MB 대북정책, 운신 폭 '제로'

'중대 결단' 경고 北, '내달릴' 일만 남아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와 6자회담 프로세스 정상화, 테러지원국 해제에 대한 한국 보수층의 불만, 미국 민주당 정권의 탄생 가능성. 그리고 16일 북한의 '남북관계 전면 차단' 엄포.

북한을 둘러싼 대내외 정세가 얽히고설키면서 이명박 정부의 운신 폭이 더욱 옹색해지고 있다. 애초부터 남북관계에 별 철학도 지식도 의지도 없는 정부이긴 하지만, 함부로 뱉어 놓은 수많은 말들이 제 발목을 잡게 됐다. 뭘 좀 해보려고 해도 사방이 지뢰밭이다. (☞관련 기사 : 북미관계 발판 마련한 北, 대남 공세 '신호탄')

김정일이 '완승'을 포기한 까닭

지난 11일 북핵 신고서 검증 방법에 대한 북미 합의가 공개되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의 8년 싸움에서 이긴 것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은 판정승은 거뒀을지언정 완승을 하진 못했다. 미신고 핵시설 방문은 상호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합의해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켰지만, 그간 완강히 거부해 온 시료 채취를 미국에 내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일 위원장이 검증의정서에 사인을 한 것은 그와 맞바꿀 테러지원국 해제라는 열매가 너무나 달콤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후보가 승기를 잡는 걸 보고 미국의 차기 행정부를 민주당이 맡으면 핵문제와 대미관계에서 빠른 진전을 볼 수 있다는 판단도 깔려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2차 핵실험 등 벼랑끝 전술을 통해 차기 미 행정부에 겁을 주며 협상테이블로 불러들이는 우회로를 버리고 직진을 택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건강 문제 때문에 '위기 조장 후 협상' 패턴을 포기하거나 그 주기를 짧게 가져갈 수밖에 없다.

<노동신문> 논평의 의미

그러나 남측하고는 얘기가 다르다. 북한은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이명박 정부와 어중간하게 타협해 콩고물이나 챙기는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이 정부에 '굴복'하기보다 강한 대남 압박으로 적대적 대북정책을 바꾸게 하는 게 장기적으로 더 낫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설령 이명박 정부가 끝까지 바뀌지 않아도, 심지어 5년 내내 남북관계를 닫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의 관계만 순풍을 타면 남북관계를 하지 않아도 아쉬울 게 없기 때문이다.

식량 지원과 금강산 관광 중단 상태가 장기화되면 배고픈 북한이 남북관계를 '구걸'할 것이라는 시각이 많지만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그건 북한의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개성관광과 개성공단까지 중단하겠다며 남측을 압박할 가능성이 있고, 별 응답이 없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노동신문> 논평원이 16일 "북남관계의 전면 차단을 포함해 중대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건 그 신호탄이다.

이명박 정부의 곤란한 처지

그렇다고 북한이 남측과의 창구를 딱 닫아두고 비방만 해대는 '정적인' 대남전략을 구사할 것 같진 않다. 북한은 대내외 정세를 적극 활용해 이명박 정부를 지속적으로 흔들 공산이 크다.

북한은 우선 미국과의 핵 협상을 진전시키고 양국의 관계정상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논의까지 진도를 나가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측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때문에 한반도 정세에서 한국이 소외된다는 '통미봉남' 논란이 거세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북한이 일본 카드를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북일관계는 자체의 논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남측을 고립시키기 위한 하나의 목적으로만 쓰기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일본이 어느 정도 호응만 해준다면, 납치 문제 재조사위원회 같은 걸 만들어 일본과 협력할 가능성은 언제든 있다. 최근 새로 들어선 일본의 아소 다로 정권에 대해 북한이 일절 비방을 하지 않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에 대한 반응에서 드러난 남측 보수세력의 모순과 분열, 이명박 정부의 낮은 지지율도 북한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제공한다.

제 발목을 잡은 이명박 정부

이렇게 입체적으로 치고 들어오는 북한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구사할 정책의 범위는 지극히 좁다.

북한에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옥수수 5만 톤 지원 같이, 대북정책의 전면적인 변화도 완전한 대결도 아닌 어중간한 수준의 관계 유지가 가능하다면 이명박 정부로선 다각도의 불만들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속셈이 뻔 한 제의를 북한이 받을 리는 만무하다.

한 가지 옵션은 북미관계가 너무 빠르게 진전되지 않도록 미국에 매달리는 것이다. 테러지원국 해제가 일본의 반대 때문에 늦어졌고, 1990년대 중반 북미대화가 김영삼 정부의 '비토'로 더뎌졌던 것처럼 한국은 미국의 행동을 어느 정도는 제약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역시도 오바마가 잡을 것이 확실시 되는 차기 미 행정부의 동아시아 전략을 본질적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

이런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서는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이행하겠다고 나서는 방법 밖에 없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그렇게 나가는 그림은 상상하기 어렵다. 북핵 문제에 작은 진전이 있다고 해서 보수적인 지지층의 뜻을 거스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일부와 자유선진당 등 극우세력이 테러지원국 해제를 환영한다는 정부의 논평에 크게 반발하고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적극 해명하는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다. 북한의 대남 공세가 시작된 지금은 더욱 그러하다. 과거 정부의 대북정책을 전면 부정하고 혼란스런 대북 메시지만 남발하며 스스로 자초한 상황이다.

"중대 결단을 내리겠다"는 북한의 경고는 이명박 정부의 태도 변화를 압박하는 동시에 변하지 않으면 강경 조치를 취하겠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러나 북한도 이 정부가 처한 안팎의 상황을 알기 때문에 후자의 의미가 클 수밖에 없다.

북한은 오히려 '휘파람'을 불며 대남 공세를 퍼부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명박 정부의 옵션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남북관계를 5년간 안 하는 한이 있더라도 버릇을 고쳐놓겠다'는 청와대 한 관계자의 말의 방향이 180도 바뀐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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