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행세하는 한국 언론
'한국 언론은 죽었는가', '남북 정상회담을 비판하는 법'.
2005년과 2007년에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뽑은 '올해의 좋은 사설·칼럼'의 제목들이다. 그런데 이 칼럼들의 필자는 같은 이였다. <경향신문> 정치·국제 에디터 이대근이 바로 그 사람이다. 앞에 것은 '안기부 X파일 사건'을 대하는 언론의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뒤에 것은 남북 정상의 공동선언에 대한 논란을 명쾌하게 정리한 칼럼이었다.
이대근 에디터의 칼럼은 비판할 상대를 정중앙에 놓고 곧바로 날아가는 화살과 같다. 이쪽도, 저쪽도 모두 나쁘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과녁을 피하지 않는다. 이런 그의 태도와 우리 정치의 혼탁한 현실, 그리고 한정된 지면이라는 상황이 맞물린 탓일까? 다른 칼럼에 흔히 등장하는 소소한 개인적 에피소드를 이대근 칼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기껏해야 지난 8월에 실린 '전국노래자랑'이라는 제목의 칼럼 정도다. 그의 칼럼을 읽으며 잠시도 멈추지 않고 치열하게 칼을 부리며 합을 겨루는 무사가 떠오른 이유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의 저널리즘 특강 첫 번째 시간을 함께한 이대근 에디터의 강연은 그의 칼럼과도 같았다. '정치 실패는 누구의 책임인가'라는 주제로 세 시간 가까이 진행된 강의는 시종일관 정치 실패, 정부 실패라는 뼈아픈 현실을 정면에서 바라보면서 정당과 함께 언론의 책임을 신랄하게 따져보는 시간이었다.
이 에디터가 말하는 한국 언론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당파성'이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정당의 역할은 의제를 설정해 여론을 형성하고 공직의 후보자를 배출하는 것이다. 정권 장악을 목표로 하는 집단이기도 하다. 한국의 언론도 마찬가지다. 의제를 설정하고 자사의 이익을 위해 갈등을 확대 재생산하는 한편, 정권 장악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언론의 '정당'화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언론과 정당은 달라야 한다고 그는 지적한다. 정당의 영어 표현인 'Party'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정당은 부분(part)을 대표하지만 언론은 다양한 이해와 이익을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이 일정한 가치와 관점을 지닐 수는 있지만 그 관점이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어 신문을 지배하면 지향하는 목적에 맞게 사실을 왜곡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사실을 숭배해야 하는 언론이 사실을 이데올로기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특정 이익을 대변하며 언론의 필수 요건인 '균형'과 '공정성'을 잃어버린 대가는 신뢰 상실이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가 오바마 후보의 기고문을 실었습니다. 그러자 매케인 후보가 본인 것도 실어달라며 기고문을 보냈지만 그 신문은 매케인 후보의 기고문을 싣지 않았습니다. 지지율이 비등비등한 두 후보 중 어느 한 후보 글만 실어주는 건 불공정한 일입니다. 한국 언론이 만약 한 후보의 글만 실어 준다면 당장 편파 시비가 일어날 게 뻔하니 한국 언론은 두 후보의 글을 모두 실어줄 겁니다. 그렇다고 한국 언론이 <뉴욕타임스>보다 더 낫다는 평가를 받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 언론은 그동안 공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표면적인 공정성을 위장할 수밖에 없지만 <뉴욕타임스>는 지금까지 공정한 보도를 해왔고, 외부에서도 공정성을 인정해 주기 때문에 논란의 가능성을 의식하지 않고 '불공정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와 언론의 실패
그렇다면 언론에 대한 신뢰 부족, 즉 언론 실패와 정권 실패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 에디터는 참여정부 시절 언론과 정부의 관계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언론의 기능은 비판과 견제, 감시입니다. 노무현 정부를 감시하는 역할을 제일 열심히 한 매체는 (일명) 조중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한국 신문의 위기는 노무현 정부 이전부터 깔려 있었어요. 언론이 노무현 정부를 비판하면 이것을 정부가 당파적인 주장으로 인식하고 전혀 듣지 않은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의 실정은 실정대로 나오는데 이를 비판하면 정부는 언론을 탓했죠. 정부와 언론이 싸우면 국민들이 누굴 믿을까요? 둘 다 믿지 않게 된 겁니다."
당파적이라고 비난 받는 언론들은 '힘이 떨어지는' 비판을 계속했고, 정부는 비판에 귀를 닫은 결과 언론과 정부의 신뢰가 동반 하락하는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참여 정부와 비교적 사이가 좋았다고 평가받는 한 신문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고 이 에디터는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 직후 한 신문사를 찾아갔습니다. 그게 그 신문에 타격을 주었습니다. 권력에 대한 견제 비판이라는 언론의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한 거죠. (정부가) 우리 편이라는 당파적 인식이 있었던 겁니다. 그 결과 노무현 정부의 신뢰는 높아지지 않았고 그 신문의 영향력도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이명박 정부, 성공할 것인가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찬반이 첨예하게 갈리는 정책들을 발표해왔다. 영어 몰입교육 실시, 금산분리 규제 완화, 종합부동산세 완화 등이 그것이다. 급기야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의 결과에 반대하는 촛불 집회가 100여 일간 계속되면서 언론, 특히 신문들 사이의 대립 구도가 공고해졌다. 이른바 '조중동' 대 '경향·한겨레'의 대립 구도다.
"이명박 정권 들어 정부와 조중동은 협력적 관계로 변했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는 비판만 하는 언론만 있어서 망했다고 했는데 이명박 정부는 자신을 지지하는 언론이 다수인 상태이니 노무현 정부보다 성공할 가능성이 더 많아졌다고 할 수 있죠. 그러나 반년이 지난 시점에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조중동이 이명박 정부를 지지해도 힘이 없어졌다는 뜻입니다. 조중동이 온갖 것을 써도 시민들이 믿지 않죠. 이명박 정부와 조중동이 만들어낸 동맹이 고립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고립의 결과가 지지율 30%입니다. 뭉쳐서 고립되었기 때문에 30%는 되지만 실질적인 정치적 힘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에디터는 앞으로 남은 4년여 동안 보수 신문들이 어떤 길을 가느냐에 정부와 언론의 성공 여부가 달렸다고 말했다. 정부를 두둔만 하고 비판하지 않아 동반추락의 길로 갈 것인지, 혹은 비판과 견제라는 제 역할을 확실히 할 것인지, 어느 길을 택하느냐에 따라 언론의 위상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소위 '진보 신문'으로 분류되는 <경향>과 <한겨레>도 다르지 않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경향이나 한겨레를 보면 이 신문은 나를 비판하기 위해 비판하는 신문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정부를 견제하는 효과가 그리 크지 않은 거죠. 또, 보도를 할 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경향·한겨레와 조중동이 반대 방향으로 끌려갑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신문들이 두 방향으로 나뉘는 거죠. 이 딜레마로부터 벗어나려고 하지만 현실은 잘 안 되고 있습니다."
결국 문제는 '신뢰 회복'
이대근 에디터는 정권 실패와 언론 실패는 서로가 서로를 강화하는 관계라고 결론 내렸다. 그리고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언론의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언론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의제를 설정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언론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없고, 이는 정부 실패를 가속화한다.
"신문은 정당이 아닙니다. 세상을 정확하게 전달해주고 논평을 함으로써, '신문은 속이지 않는다, 읽어볼 가치가 있다' 이런 생각을 독자들이 하게끔 신뢰를 쌓아가야 합니다."
정치부 기자는 '의심'할 수 있어야
이대근 에디터는 정치학박사이기도 하다.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있다. 기자로서 경험뿐 아니라 학문적 토대까지 갖춘 것이다. 그에게 정치부 기자에 대해 물었다.
"어느 쪽도 100% 신뢰할 수 없는 곳이 정치의 세계입니다. 정당은 파당적인 논리를 내세우기 때문에, 기자로서 의심하는 훈련을 할 수 있는 대표적인 부서가 정치부입니다."
끊임없이 의심하는 자세, 그리고 출입처 제도 아래서 '자기구조의 틀'을 넓혀나가는 자세, 이것은 비단 정치부 기자뿐 아니라 모든 기자에게 필요한 자세라고 이 에디터는 덧붙였다. 충분히 의심하고 작성한 기사만이 독자에게 의심하지 않고 정보를 취득할 권리를 줄 수 있다. 기자의 의심이 독자의 신뢰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대근 칼럼을 읽을 때마다 눈여겨보는 대목이 있다. 바로 맨 마지막 문장이다. 칼럼의 마지막 문장으로 이 에디터는 비판의 대상, 독자 그리고 세상에 물음을 던진다. 문장이 멈춘 자리에서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된다. 이번 특강도 다르지 않았다. 강연 후, 식사를 하며 자유롭게 질문을 하는 시간도 끝날 때쯤, 이명박 집권 기간에 가장 우려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이 나왔다. 이 마지막 질문에 그는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이 경제 살리기 하나로 굳어져 다양성이 상실되는 것"이라고 조용히 답했다. 정부와 언론 그리고 독자 사이의 신뢰 회복 문제, 한쪽으로만 달려가려는 정부를 비판하고 견제하는 언론의 역할. 강연은 끝났지만 고민은 시작된다.
정리: 하주희/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학생
덧붙이는 글: 한국 언론의 새로운 표준과 가치를 모색해보려는 '저널리즘 특강'에 독자 여러분, 특히 언론인과 언론인이 되고자 하는 분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서울에서 진행되는 특강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분은 사전에 연락해주시면(043-649-1148) 제한적이나마 자리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특강일정표와 장소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홈페이지(http://journalism.semyung.ac.kr) 공지사항에 게시돼 있습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