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공사(KBS)가 지난 13일 이명박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을 방송한 것을 두고 PD와 기자 등 KBS 내부에서 책임자 문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적잖다. KBS PD협회와 기자협회는 13일과 14일 각각 성명을 내 편성 책임자인 라디오본부장의 공식 사과와 라디오편성제작팀장의 사퇴 등을 촉구했다.
"주례 연설 방송은 '공영방송' 아닌 '관영방송'의 몫"
KBS PD협회는 13일 긴급 총회 이후 낸 성명에서 "애당초 대통령 주례 연설은 방송사와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된 '할 테면 하고 말 테면 말라'는 막가파식의 기획이었다"면서 "제대로된 판단을 하는 방송사라면 청와대의 이런 장단에 춤을 출 리 없었다. 그러나 KBS는 달랐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방송의 편성권과 자율성을 반납하면서 대통령 주례 연설 편성을 강행한 이유는 무엇인가"라며 "청와대가 모처럼 한 기획이 모든 방송사에 거부당하면서 발생할 정치적 타격을 줄여주기 위함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맹공했다.
이들은 "KBS라디오를 통해 대통령의 주례연설이 방송될 수는 없다"면서 "그 일은 정치 권력과는 별도로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공영방송이 할 일이 아니라 관영방송의 일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청와대에서는 벌써 격주로 정례화 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하고 있다"면서 "라디오본부장은 청와대의 일방적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지, 분명하고도 확고한 입장을 조속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편성책임자인 라디오본부장은 이번 사태에 공식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할 것 △공영방송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조차 없는 라디오 편성제작팀장은 책임을 지고 사퇴할 것 등을 촉구했다.
"KBS는 청와대의 입이 아니다"
한편, KBS 기자협회도 14일 낸 성명에서 "공영방송의 편성권도, 제작자율성도, 독립성도 철저히 무시하는 대통령의 말이 전파를 타고 나갔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며 "편성책임자인 라디오 본부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공식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우리는 대통령의 라디오 주례 연설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청와대가 주는 대로 대통령 녹취 테이프를 받아 이를 전파로 내보내고, 야당 인사 전화 연결해서 적당히 시간 때우는 방식으로 대통령 주례 방송을 생각하고 있다면, 이는 KBS가 청와대의 입으로 전락하는 길에 다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라디오 주례 방송이 필요하다고 진정으로 판단하고 있다면, 공정하고 객관적인 방식으로, 무엇보다 일의 과정을 열어놓고 진행해야 한다"며 "연설의 구성과 시간, 방법 등 구체적인 틀을 청와대가 아닌 KBS가 정해서 주도적으로 연설의 장을 마련한다면, 이는 적극 검토해 볼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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