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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은 왜 오바마에 열광하는가

[스포트라이트 美대선] <3> 오바마의 '정체성의 정치'

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해 미국 젊은 세대들이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비단 버락 오바마에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은 아니었다. 멀게는 존 F. 케네디에서부터 1990년대 빌 클린턴을 거쳐, 최근에는 현재 민주당 전국위원장을 맡고 있고 2004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 젊은 세대의 지지에 기반해 돌풍을 일으켰던 하워드 딘에 이르기까지 특정 후보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쏠림 현상은 시대의 변화를 읽는 하나의 중요한 정치적 지표로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좀 더 중요한 사실은 20세기 후반부터 세계 각국에서 '세대'라는 용어가 정치적 균열을 구성하는 중요한 범주로서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전통적으로 정치적 균열을 주도했던 계급이나 종교, 성(gender), 지역, 인종, 이데올로기 등이 여전히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소위 '세대간의 차이'(generation gap)로 표현되는 정치적 균열 역시 빠르게 성장해왔다.
▲ '우리 엄마도 오바마 찍는대요.'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워싱턴대학 구내에서 한 학생이 오바마를 응원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새로운 세대적 정체성

그렇다면 미국의 젊은이들은 지금 왜 오바마에 열광하는가? 그가 공화당 후보인 존 매케인 보다 상대적으로 젊기 때문에? 그래서 그가 젊은이들의 감수성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혹은 매케인 보다 더 '쿨'하게 생겼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변화'라는 단어를 좀 더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이런 의미에서 그가 젊은이들의 가치를 좀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혹은 그가 유튜브나 온라인 플랫폼, 채팅 룸, 또는 블로그 등을 통해 이른바 '넷 제네레이션'(net-generation)의 광범위한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주로 주류 언론들에 의해 제공되는 이러한 설명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미국의 젊은 세대들이 이전 세대와는 달리 자신들만의 정치적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해 왔는가에 대해 많은 답을 제공해주지 않는다. 이러한 설명들은 마치 젊은이들의 정치적 정체성이 시대나 공간과는 상관없이 고정되어 있고, 그러한 고정된 정체성에 좀 더 부합하는 후보자가 젊은이들의 지지를 더 많이 받을 것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전달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현대의 미국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 세대와는 다른) 세대적 가치나 감수성, 또는 정치적 정체성을 이해하는 것은 젊은 세대에서의 오바마에 대한 열정적 지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떠한 세대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을까? 미국 예일대의 정치학자인 로버트 달(Robert A. Dahl)은 이 점과 관련해 크게 두 가지 점에 주목한다. 첫째, 현대의 미국 젊은이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다양한 차이를 경험할 기회를 좀 더 많이 가지고 있고, 이러한 경험을 통해 다양성에 좀 더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예로 든 것은 현대의 미국 젊은이들이 이전 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해외여행을 자주 하고 있다는 것이었지만, 비단 해외여행이 아니더라도 20세기 후반부터 다시금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한 전 세계로부터 미국으로의 이주의 물결은 새로운 세대에게 다양한 차이를 경험할 풍부한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둘째, 달은 젊은 세대에서 급격하게 증대해온 공동체 참여 현상에 주목한다. 이전 세대들과는 달리 현대의 미국 젊은이들은 그들이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공동체에 활발하게 참여해왔다. 이러한 공동체 참여는 현대의 미국 젊은이들에게 그들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해왔다.

특히 후자의 측면, 즉 미국의 젊은이들이 공동체에 활발하게 참여를 확대해 왔다는 사실은 공적 서비스와 삶에 대한 가치나 감수성, 혹은 정치적 정체성이 기존 세대의 그것들과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다. 기실 미국 내의 많은 학자들과 시민 활동가들이 지적해 온 바와 같이 1970년대 이래로 시민들의 자발적인 결사로 대표되는 공적 서비스와 삶에 대한 시민들의 직접적인 참여는 극적으로 감소해 왔다.
▲ 위스콘신주 유세에 나온 오바마에 열광하는 미국의 젊은이들 ⓒ로이터=뉴시스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 젊은 세대의 자발성

이러한 '직접적인 참여의 위기', '시민적 자발성의 위기', 혹은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위기'는 종종 자본에 의한 자선행사나, 편지보내기, 전화걸기, 기부하기와 같은 간접적인 참여에 의해 대체되어 왔지만, 공동체 내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결사에 의한 직접적 참여를 바탕으로 전개되어왔던 미국식 민주주의의 이상 및 실천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현대 미국 젊은이들의 공동체 참여에 의해 만들어진 정치적 정체성은 기성세대에 의하여 위기에 내몰린 '직접적 참여'와 '시민적 자발성'을 복원하고자하는 실천적인 보수적 균형추로서, 혹은 새로운 시민적 자발주의를 향한 실천적, 진보적 도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공동체에 대한 참여에 기반한 젊은 세대의 자발성 역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왔다. 미국 사회에서 갈수록 치열해지기 시작한 대학입시 경쟁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공동체에 대한 참여보다는 성적과 개인의 특기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교육체계를 변화시켜왔다. 기하급수적으로 증대하는 대학 등록금과 교육비는 시민적 자발성을 함양하고 그것을 실천할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더군다나 새롭게 성장하고 있는 '인턴사원제도'는 자본주의적 사적 경쟁의 메커니즘을 대학 내로 이식하면서 공적 참여와 삶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정치적 정체성을 빠르게 해체하고 있다. 이미 학부 2학년 여름방학부터 미국의 대학생들은 이 인턴사원제도에 노출되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ROTC 논쟁으로 본 오바마와 매케인의 차이

젊은 세대의 자발성에 대한 이러한 도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젊은이들의 공동체에 대한 참여를 개인의 국가에 대한 충성도에 따른 선택으로 환원하여 이해하는 매케인과는 달리, 오바마의 정치적 프로젝트는 젊은이들의 공동체 참여에 대한 자발성을 보존하고 함양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위해 오바마는 주립 및 시립 대학생이 한 학기에 100시간 공동체를 위한 활동에 참여할 경우 전체 학비의 3분의 2를, 커뮤니티 컬리지 학생의 경우 학비의 전액을 연방정부가 지원하는 방안을 공식적인 공약으로 채택했다. 또한 중산층 및 저소득층, 그리고 노동계급의 자녀들이 이러한 공적 활동에 원활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연방정부의 재정적 지원 절차를 간소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에서 그는 젊은 세대의 공동체 활동에 대한 참여의 중요성을 다양한 연설을 통해 강조하고 그것을 보장할 정치적 프로그램들을 공약해 왔다. 예를 들어, 전국적으로 부족한 과학 및 수학 교사를 양성하기 위해 과학·수학 교사가 되어 공동체에 기여할 학생들을 위해 학비 전액을 연방정부가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공동체에 참여를 촉진할 프로그램들을 중고등학교까지 확대할 것과 대학입학시 그러한 활동들에 대한 '특혜'를 강화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해왔다.

이러한 오바마의 프로젝트는 ROTC에 대한 매케인과의 논쟁에서 보다 분명히 살펴볼 수 있다. 기실 ROTC 제도는 군국적 애국주의와 젊은이들의 시민적 자발주의를 교묘하게 결합해 젊은이들의 공적 참여의 최고 형태로 보수주의자들로부터 찬양되어왔다. 매케인 역시 이러한 점을 십분 활용해 ROTC를 오바마의 프로젝트를 비판하기 위한 강력한 도구로서 사용해왔다.

그러나 오바마는 왜 ROTC가 오직 엘리트 군인만을 양성하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만 애국심을 고취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오히려 그는 공동체의 안전(security)을 염려하고, 그러한 활동들-예컨대 경찰, 소방관, 해양구조대, 산림 보호 요원, 병원의 응급 요원 등-에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많은 젊은이들이 오직 엘리트 군인만을 양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인 ROTC 덕택에 연방정부의 지원에서 소외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한다. 요지는 ROTC 역시 군국적 애국주의 보다는 광범위한 의미에서의 공동체에 대한 참여의 한 형태로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바쁜 선거 일정에서도 결혼기념일에 아내에게 줄 꽃다발을 사 들고 나오는 오바마 ⓒ로이터=뉴시스

과두정에서 민주정으로? 정상적인 과두정으로?

그렇다면 젊은이들의 시민적 자발성을 보존하고 확대하려는 오바마의 정치적 프로젝트는 실현 가능한가? 혹은 사회적으로 광범위한 동의를 얻을 수 있을까?

그가 졸업한 하버드 법대에서 최근에 발표한 한 프로그램은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힌트를 제공한다. 살인적인 학비와 엘리트주의로 악명 높은 하버드 법대는 지난 3월 오마바와 유사한 문제의식 속에서 졸업 후 5년 동안 비영리단체나 공동체에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단체, 혹은 연방정부의 공무원으로 근무할 의사가 있는 학생들에 대해 3학년과 4학년의 학비를 면제해주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학비 면제 프로그램을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하버드의 사례는 '유명한' 법률 기업이나 월스트리트에 자신들의 졸업생을 보내는데 혈안이 되어왔던 다른 '저명한' 사립대학들에게 하나의 실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가 보자. 왜 미국의 젊은 세대는 오바마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가? 그 이유는 주류 언론이 강조하는 것처럼 그가 매케인보다 잘 생겼기 때문도 아니고, 보다 젊기 때문도 아니며, 새로운 매체를 잘 이용하고 있기 때문도 아니고, 이러한 의미에서 '쿨'하기 때문도 아니다.

좀 더 중요한 이유는 그가 미국의 새로운 세대의 정치적 정체성을 보다 분명히 이해하고, 그것을 그의 정치적 프로젝트로 담아내고, 더 나아가 그러한 정치적 프로젝트가 단지 젊은 세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 사회 전체가 진보적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일종의 엔진으로 보이게끔 하는데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오바마의 당선이 확실시 되는 상황에서 그의 이러한 정치적 프로젝트가 실현될 가능성 역시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두 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하나는 시민적 자발성에 기반한 정치적 프로젝트를 통해 (앞에서 언급했던 달의 표현을 다시 빌리면) 그 동안 미국 사회를 지배해왔던 '과두정'(polyarchy)으로부터 '민주정'으로의 본격적인 이행을 촉진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동안 신보수주의와 네오콘에 의해 2보 후퇴한 미국식 '과두정'을 '정상적인' 과두정 만큼까지만 복원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오바마가 당선된다 할지라도 그의 정치적 프로젝트와 실험에 주목해야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스포트라이트 美대선' 다른 기사 보기>

1. 영혼을 판 매케인, 팔 것도 없는 한국 보수 -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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