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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학습 효과? 당신들은 속고 있다

[민들레 교육 칼럼] 사교육 시장은 선행을 좋아해!

오늘날 사교육 시장의 대세는 '선행학습형 사교육'이다. 선행학습 정도도 상식적인 예습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다.

선행학습 상품은 철저하게 공급자(학원)의 의도로 만들어졌다. 당연히 선행학습 열풍을 가장 반기는 곳은 바로 학원이다. 아무것도 책임질 필요 없이 그저 효과 없는 진도 경쟁을 부추기기만 하면 되는, 땅 짚고 헤엄치기 장사다. 시험 대비 내신반은 성적이 떨어지면 다른 학원으로 이동하는 학생층이 많아 학생의 성적을 최대한 책임져야 하지만 선행학습반은 그런 부담이 전혀 없다. 검증할 수 있는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학생을 장기간 묶어두기도 좋다. 진도를 더 앞서 뺄수록 실력 있는 학원이라 소문이 나니, 한 학기 혹은 일 년 이상 아이들을 묶어둘 수 있다. 학원 입장에선 선행학습 상품이야말로 손쉽게 돈 버는 '효자 상품'이다.

지난해 8-9월 두 달 동안 선행학습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지, '학원 선행 정도'를 살펴보았다. 조사 대상 학원은 인지도 있는 온·오프라인 학원으로 총 22곳이었다. 이들이 제공하는 사교육 상품은 모두 100퍼센트 선행교육 상품이었다. 선행 기간 정도는, 오프라인 학원은 평균 3.9년이었고 온라인 학원은 1.2년이었다. 온라인 학원이 오프라인 학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행교육 기간이 짧은 이유는 가능한 많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상품을 판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오프라인 학원은 특목고나 영재학교 진학을 준비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도 많아 선행 정도가 더 심했다. 내용상으로는 학제가 넘어가는 단계인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생들을 대상으로 한 예비 중1, 예비 고1 과정의 선행학습 프로그램이 가장 많았다. 그중에서도 상품을 차별화·다양화하여 한 학기 선행부터 몇 년 앞선 프로그램까지 개설해 두고 있었다.

▲ 2011년 한국 수학교육 현안 조사 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실태 조사 결과, 선행이 가장 심하게 진행되는 곳은 민성원연구소였다. 이 연구소는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지능검사와 상담을 통해 지능에 따라 선행 과정을 달리하고 있다. 지능이 높으면 선행학습을 많이 해도 된다는 논리다. 1회 지능검사와 상담비만 60만 원 이상을 받고 있다. 방학 기간에는 '12시간 선행학습 프로그램'이라고 홍보하며 '9 to 9 인텐시브 코스'라는 과정을 개설하고 있다. 4주간 480만 원이라는 고액을 받고 학생들에게 강도 높은 수업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또 이 학원은 초등학교 1학년이 고등학교 2학년 수준의 영어를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내놓아 최대 11년 선행학습까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홍보 전략이다. 민성원 씨는 학원 설명회에서 당사의 학원 설립 취지는 '서울대 입학'이라고 말한다. 또한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사회에서 인정받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서울대에 가야 한다고 거침없이 말한다. 몇 년 전부터 민성원 씨는 공영방송사인 EBS와 연계하여 자기 주도 학습 설명회를 하며 자신의 학원을 홍보하고 있다.

사교육 시장의 선행 상품에 먼저 노출되는 시기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다. 영어교육이 대표적이다. 모국어가 완성되지 않은 영아들에게 타 언어를 밀어 넣어 언어 발달을 오히려 지체시키는 문제가 생긴다. 어려서 배운 영어 발음을 한국어에도 적용해 '선생님'을 'th선생님'으로 발음하는 식의 발음 왜곡 현상부터 말더듬이나 심하면 틱 현상, 사회성 장애까지 올 수도 있다. 영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선행학습에 익숙해진 아이가 학교에 가면, 수업을 지루해하고 잠자는 시간으로 여기곤 한다.

학부모와 학생들이 속고 있는 사실은, 학원 선행 상품은 학생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학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고도의 상술이라는 점이다. 학원에서 선행 상품으로 가장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과목은 수학과 영어이며, 그렇기에 거의 모든 학원이 영수 선행 과목을 개설해 놓고 있다. 학부모가 선행학습을 시키는 이유는 자기 아이가 뒤처질까봐 불안한 마음 때문이다. 사교육 시장의 선행학습 상품은 옆집 애가 1년 선행하면 우리 애도 1년 선행해야 하고 2년 선행하면 2년을 앞서 가야 하는, 그렇지 않으면 낙오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자극하는 대표적인 '불안 마케팅'이다. 하지만 어제 했던 내용조차 기억나지 않는 대부분 아이들에게 1년 먼저 진도 나가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 위의 글은 <민들레> 84호 "교육, 시장에서 길을 잃다"에 실린 글입니다. (☞ <민들레>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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