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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가 '팔아먹는' 자국민의 개인정보

[권혁태의 일본 읽기] <20> 주민번호 모자라 생체정보까지…

일본에서 외국인은 '잠재적인 테러리스트'

직업상, 1년에 몇 번씩이나 일본을 드나들어야 하는 필자가 피부로 느끼게 되는 일본 사회의 변화가 있다. 그중 하나는 일본 입국시 지문 제공과 사진 촬영을 요구받는 것이다. 작년 11월부터 시작된 이 제도는 일본을 방문하는 모든 외국인을 대상으로 실시되고 있다. 2006년 5월 24일 공포된 '출입국 관리 및 난민 인정법의 일부를 개정하는 법률'에 따라 11월 20일부터 실시된 제도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마치 범죄자 취급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영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러나 문제는 이 제도 자체보다도 이 제도에 대한 일본 사회의 반발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있을지도 모른다. 반발이 예상보다 적은 것에는 이유가 있다. 일본 정부가 '인권 침해' 논란에 따른 여론 악화가 이 제도 실시에 대한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보고 재일조선인 등의 특별영주권자를 대상에서 제외했다. 일본 국내 인권 단체의 반발을 사전에 봉쇄한 셈이다. 결국은 특별영주권자 자격이 없는 외국인(따라서 일반 영주권자도 포함된다)의 '인권침해' 는 일본 국내의 인권단체에게는 '강 건너 불'이 된 셈이다. 일본 법무성은 홈페이지에서 지문 및 사진 채취의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일본 공항에서의 개인 정보 수집 절차 ⓒ권혁태

"지문, 얼굴 사진의 개인식별정보를 이용해서 가짜 여권을 사용하는 사람이나 테러리스트 등의 요주의인물을 발견할 수 있게 되어 테러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습니다."

즉 '테러리스트'의 일본 입국 저지가 이 제도 실시의 목적인 것이다. 9.11 이후 미국에서 실시된 제도의 '일본판'인 셈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일본에서 발생한 각종 테러 사건 중에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이 일으킨 사건은 한 건도 없다. 1995년에 오움 진리교가 일으킨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 사건'도 외국과는 무관하다. 일본을 방문하는 연 700만명 이상에 달하는 외국인은 일본 정부 입장에서 보면 '잠재적인 테러리스트'가 되는 셈이다.

일본 호텔에 제공되는 한국의 주민번호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아니 이 문제 이상으로 필자를 황당하게 만드는 제도가 또 하나 있다.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일본의 호텔에 숙박하게 되면, 호텔 측이 여권 제시와 복사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이때마다 왜 여권을 제시해야 하는지, 그리고 더구나 복사까지 하는 것은 좀 지나친 것은 아닌지, 숙박담당자에게 묻거나 하는데, 그 때마다 호텔 관계자는 2005년 4월부터 모든 외국인 숙박자는 여권을 제시하고 이의 복사를 제출하도록 의무화되었다고 말한다.

결국 숙박계에 필요 사항을 기입하고 인적 사항이 틀림없는지, 여권과 대조하되, 여권의 복사본은 개인 정부의 유출 우려 때문에 제출하지 않는 것으로 '타협 아닌 타협'을 보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여권 복사 요구에 응하게 되는데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그런데 이 과정이 꽤 피곤한 일이어서 언제까지나 '개인적 저항'을 계속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외국 여행을 자주 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일본 이외의 외국에서도 이와 같은 요구가 보통이라니 결국 일본에 가서 호텔에 숙박하는 이상, 언젠가는 '개인적 저항'을 그만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여권 제시 및 복사본 제출 의무가 근거로 삼고 있는 조항은 무엇일까? 일본의 후생 노동성은 홈페이지에 일본어, 영어, 중국어, 한글로 된 다음과 같은 공지사항을 게시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법령에 의거하여 2005년 4월 1일부터 '일본국내에 주소를 갖지 않는 외국인'이 숙박할 때는 이름, 주소, 직업 등의 기재에 추가적으로 국적 및 여권번호 기재와 여권 제시 및 복사(카피)를 의무화하였음으로 이해와 협력을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반드시 강제조항인가에 대해 찾아보았더니 분명치는 않다. 숙박정관의 작성을 의무화한 국제관광호텔 정비법 제11조에 따라 국제관광여관연맹이 작성한 표준 숙박약관에도 외국인의 경우는 씨명 및 여권번호를 기재하도록 하고 있을 뿐이지, 복사본의 제출을 의무화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권 제시 및 복사본 제출 의무화의 근거로 삼고 있는 것은 '여행업법 시행 규칙'인데, 이 규정도 '일본 국내에 주소를 가지고 있지 않은 외국인'에게 국적 및 여권번호를 기재하도록 요구하고, 여권 복사본을 숙박자 명부와 함께 보존하여야 하며, 이를 숙박자가 거부할 경우 당해 경찰서에 연락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숙박업자에게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경찰관으로부터 직무상 숙박자 명부(외국인의 경우는 여권 복사본)의 열람청구가 있을 때는 이에 협력하도록 하고 있다. 반드시 숙박자에게 여권 복사본의 제출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숙박업자에게 여권 복사본의 보존의무와 경찰에의 협력 의무를 담고 있는 이상, 숙박업자가 이를 거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결국 숙박업소가 숙박예정자에게 여권 복사본의 제출을 요구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순리'인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이를 하나하나 따져 묻는 것은 '따지기 좋아하는 ○○인'의 이미지를 다시 상대방에게 각인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따져 묻는 일'이 결코 개인적인 호사가의 성격 탓만으로 돌릴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왜 이런 제도를 갑자기 실시하게 되었는지 때문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2004년 9월 8일자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외국인 숙박객에 대한 여권 복사 의무화는 '국제조직범죄 등 국제 테러 대책 추진 본부의 간사회'에서 내놓은 대책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여행업법 개정은 일본 정부에 설치된 '국제조직 범죄 등 국제 테러 대책 추진 본부'가 결정한 '테러의 미연 방지에 관한 행동계획'(04년 12월)에 담겨 있는 대응책의 하나로 이루어진 것이다. 위에서 말한 방일 외국인(특별영주권자, 16세 미만자, 외교관 등은 제외)에 대한 지문 및 사진 촬영 의무화도 개정 '출입국 관리법'에 의거하고 있는데, 이것도 이 '행동계획'에 따른 것이다. 채취 지문의 보존 기간도 '테러리스트'를 이롭게 할 수 있다는 이유로 비밀 취급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무기한'인 셈이다.

일본 정부는 연간 700만명 이상에 달하는 외국인에 대한 신체정보를 무기한 가지게 되는 것이다. 장래에는 지문뿐만 아니라 정맥이나 홍채 채취로 이어질 수도 있다. 결국 방일 외국인은 '잠재적 테러 용의자'인 셈이다. 국가란 효율적인 개인 정보 관리시스템을 일단 확보하게 되면 이를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더구나 일본은 방일 외국인의 개인정보를 출입국관리를 통해서뿐만 아니라 숙박업소를 통해서도 확보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주민번호 폐지, 혹은 여권에서 주민번호를 없애어야

그런데 나를 더욱 답답하게 만드는 것은 한국 여권에는 다른 나라의 여권과 달리 가장 '중요한 개인 정보'인 주민등록번호가 담겨져 있다는 점이다. 주민등록번호 유출이 국경을 넘어서 이루어지고 있고, 이에 대한 여러 가지 대책이 강구되고 있는 판에 한국 정부가 앞서서 외국에 가장 중요한 개인정보를 유출하고 있는 셈이다. 한 해에 일본을 방문하는 한국인이 100만 명이라면, 일본의 출입국관리를 통해, 혹은 숙박을 통해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건수가 100만개가 되는 것이다. 결국 개인정보의 국외 유출에 한국 정부가 한 몫 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여권에 기재되어 있는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한국인의 입국 여부를 결정하는 나라가 있다. 새터민(탈북자)의 여권에 기재되어 있는 주민번호를 보고 중국이 입국 제한을 하는 사례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주민번호를 이용한 보이스 피싱 등의 사기 사건은 이미 '국경'을 넘어서 이루어지고 있다. 결국은 '순수하게 국내 정보'인 주민번호를 한국 정부가 해외로 유출함으로써 여권에 담겨져 있는 국제 기준의 정보를 '무력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책은 뻔하다. 주민등록번호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본질적인 대책이다. 주민등록번호 제도의 폐해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유출 사고가 국경을 넘어서 일어나고 있다면 이 제도는 마땅히 폐지되어야 한다.

이것이 '과격한' 주장이라면 여권에서 주민등록번호 기재를 없애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옛 여권을 찾아보니, 1989년에 발행된 필자의 여권에는 주민등록번호가 없었다. 원래 기재되어 있지 않았던 여권에 언제부터 어떤 이유에서 주민등록번호가 기재되었는지도 '과거사 점검' 차원에서 조사해야겠지만, 여권 주민번호 기재 제도가 국내적인 이유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따라서 이를 폐지하는 것이 국제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음은 말할 것도 없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여권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통해 주민등록번호가 불필요하고 따라서 인권침해이며, 법안에서 삭제되어야 된다는 의견을 발표한 바 있다. 또 38개 인권단체로 구성된 인권단체 연석회의도 여권법 개정안에 반대하면서 여권에 기재되어 있는 주민번호를 삭제하도록 요구한 바 있다.

나를 항상 피곤하게 만드는 '따지기 좋아하는 개인적인 성향'이 일본의 숙박업소에서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런데 상황은 반대로 가는 듯하다. 한술 더 떠 지난 여권법 개정안은 주민번호뿐만 아니라 지문까지도(2년 유예) 여권 기재를 의무화한다고 한다. 기가 막힌 일이다. 한국 정부가 솔선해서 기존의 주민번호로도 모자라 국민의 생체정보까지 외국에 제공하는 꼴이 되는 셈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더구나 미국과의 비자 면제 협상 때문이라면 더욱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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