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홍 생중계 위해 뉴스는 '걸레'로 만드나"
2일 일산 킨텍스에서는 YTN가 서울시가 공동 주최하는 환경조경박람회 '랜덱스 2008'이 열렸다. 이 박람회는 구본홍 사장이 지난 7월 주주총회에서 선임된 이후 열린 첫 공식행사로 구 사장은 축사와 YTN 친환경 주거문화 대상 시상 등 개막식 행사에 참석했다.
YTN '블랙코미디'는 사측이 이날 개막식 전체를 YTN 뉴스에 생중계하려고 들면서부터 시작됐다. YTN은 이 '환경조경박람회'를 개최한 지 올해로 3회 째를 맞지만 개막식 전체를 생중계한 적은 없었고 기자 중계 정도로 다뤄왔다. 그러나 YTN 사측은 이날 10시부터 시작되는 <뉴스 오늘> 4부에 구 사장의 얼굴 밑에 '구본홍 YTN 사장'이라는 자막을 달아 개막식 전체를 생중계를 해야한다고 밀어붙였다.
이에 <뉴스 오늘>을 맡고 있는 뉴스 2팀 임승환 PD 등 PD 3명은 "랜덱스 개막식이 생중계 되더라도 구본홍 씨가 YTN 사장으로 인사말을 하는 것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며 '구본홍 YTN 사장'이라는 직책과 인사말이 담긴 자막은 제작하지 않았고 이러한 입장을 이귀영 뉴스 2팀장에게 전달했다.
그러자 이홍렬 보도국장 대행과 정영근 편집부국장은 <뉴스 오늘> 4부 담당인 권모 PD를 이 모 팀장으로 강제로 교체하고 이 팀장이 직접 랜덱스 개막식 생중계를 진행할 것을 지시했다. 이 팀장은 생중계에 필요한 자막 등을 제작했으며 이에 YTN 사옥 1층에서 단식 투쟁을 하던 조합원 30여 명은 20층 조종실로 올라와 침묵시위를 벌이며 항의했고 한 조합원은 "양심이 있으면 구본홍 자막을 넣지 말아달라"고 요청했으나 거부됐다.
하지만 '구본홍 생중계'는 사측이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축사를 해야할 오세훈 서울시장이 교통체증으로 행사장에 제 때 도착하지 못하는 돌발상황이 벌어진 것. 20층에 와있던 이홍렬 보도국장 대행과 정영근 부국장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현장에 있던 PD는 "이홍렬 대행과 정영근 부국장은 당초 28분으로 편성된 <뉴스 오늘> 4부를 즉석에서 55분으로 늘리라고 했다가 32분으로 줄이라는 등 '고무줄 편성' 지시를 수시로 내렸다"면서 "예정시각보다 20분이 넘도록 오세훈 시장이 나타나지 않자 정영근 부장은 '생중계 포기'를 선언하기도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러나 예정시각을 20분 가량 넘기고 오 시장이 개막식 현장에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어왔고 1~2분 뒤 YTN에서는 '랜덱스2008' 개막식이 생중계 됐다. 오세훈 시장의 축사에 이어 구 사장이 단상에 올랐고 '구본홍 YTN 사장'이라는 자막도 방영됐다. 그러나 이로 인해 당초 28분으로 예정됐던 YTN 뉴스는 50분 가까이 늘어났다.
<뉴스 오늘> 4부를 담당하는 임승환 PD는 "'구본홍 사장' 인사말은 반드시 생방송 돼야 한다는 일부 간부들의 일념으로 뉴스 자체는 한마디로 '걸레'가 되어 버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상당수 간부들에게는 릴레이 단식에 들어간 200여 명의 후배보다 '구본홍, YTN 사장'이라는 자막이 더 중요하고, 제대로된 뉴스보다 '구본홍 인사말 생중계'가 더 가치있다는 사실을 목도했다"며 "오늘은 YTN 역사에서 가장 치욕스런 날 중 하나"라고 비판했다.
이 와중엔 거짓보고 논란도 불거졌다. 이홍렬 보도국장 직무대행은 '왜 생중계까지 하느냐'는 노조의 항의에 "매년 그렇게 해왔다"고 답했고 노조의 사실 추궁이 이어지자 "대외협력국에서 매년 중계해 왔다고 알려와 그런줄 알았다"고 해명했다.
노조는 "이번 행사 책임자는 유희림 대외협력국장으로 보도국에 매년 생중계를 했다고 거짓 보고를 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안건을 공정방송추진위원회에 정식으로 상정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보도국 간부들 '구본홍 충성경쟁' 하나"
이에 한국기자협회 YTN 지회는 '무리한 생중계 책임져야 한다'는 성명을 내 "편성 변경은 긴급한 경우에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도 편성을 긴급히 바꿔가면서까지 무리하게 생중계를 강행한 것은 뉴스 가치를 기준으로 한 판단이 아닌 다른 의도가 있었다고 본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이번 생중계는 구본홍 씨에 대한 충성 경쟁의 하나로 YTN이 구 씨의 통제 가능한 범주 안에 있다는 것을 청와대와 여권에 보여주기 위한 사악한 의도에서 비롯됐다"며 "보도국 간부들이 벌써부터 이런 행태를 보이는데 앞으로 어떻게 공정하고 객관적인 방송을 할 수 있겠느냐"고 규탄했다.
이들은 "특히 무리한 생중계의 근거로 거론된 과거 관례가 허위 보고를 통해 만들어졌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라며 "YTN과 YTN 기자들의 명예를 떨어뜨린 무리한 생중계에 간여한 인사들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규탄했다.
한편 이날 '랜덱스 2008' 현장에선 '방송장악·네티즌 탄압 저지 범국민행동' 회원 30여 명이 '구본홍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피켓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전투경찰과 사복경찰을 투입해 조합원들의 행사장 진입을 원천 봉쇄했고 구 사장도 행사장 뒤쪽 비상구를 통해 출입해 물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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