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TV 중심의 미디어선거는 TV가 이성적인 매체가 아니라 감성매체라는 점에서 정책은 실종되고 이미지만 난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간접민주주의가 갖는 현실적인 한계를 고려할 때, 미디어선거는 분명 효용성을 가지고 있다. 미디어가 후보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공론장의 역할을 수행하며 언론의 후보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미디어선거의 한계는 극복될 수 있다.
그 한계를 극복함에 있어 TV 토론의 역할은 중요하다. 선거 기간 동안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후보와 선거에 관한 정보를 제공받는다. 그러나 선거 보도에서 후보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선거 기사는 언론사의 관점에서 작성되고 보도된다. 그러나 TV 토론은 미디어의 개입 없이 후보들이 자신의 정책과 비전을 유권자에게 직접 전달할 수 있게 해 준다.
또한 수많은 유권자(지난달 26일 1차 토론의 경우 약 5200만 가구가 시청한 것으로 조사되었음)를 동시에 만날 수 있게 해 줄 뿐만 아니라, 후보 간 직접비교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 따라서 TV 토론은 유권자 선거학습과 숙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를 가능하게 해준다.
결국 TV 토론의 운영은 부정적인 측면을 최소화 하고 긍정적인 기능을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1960년 케네디와 닉슨의 TV 토론 이후 대통령 선거에서 TV 토론을 개최하고 있는 미국은 그 긍정적인 기능을 활용하기 위해 토론 형식을 바꾸어 왔다. 이번 2008년 대선에서도 보다 진전된 새로운 형식이 도입되었다.
미국서도 진짜 토론은 이번 대선부터
미국의 대선 토론은 민간기구인 대통령토론위원회(CPD. Commission on Presidential Debate)에 의해 개최된다. 선거법에 의해 만들어진 우리의 선거방송토론위원회와 다르며, 선거 제도의 하나로써 대선 토론이 개최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1960년 이후 3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TV 토론이 개최되지 못했지만 1976년 선거 이후부터는 법적 제도화가 아니라 사회적 제도화가 이루어졌다. 유권자들은 대선 토론이 당연히 개최 될 것으로 믿고 있으며, 후보와 CPD간의 합의를 통해 지속되고 있다.
이 같은 사회적 제도화에 힘입어 CPD는 TV 토론의 긍정적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토론 형식을 도입해 왔다. CPD는 먼저 1992년 대선 이후 대표적 토론 형식인 패널이 후보들에게 질문하는 형식을 없애고, 대신 사회자 1인이 후보에게 질문하고 후보 간 토론을 중재하는 형식을 도입했다. 또한 시민들이 후보에게 직접 질문하는 시민포럼(혹은 타운홀 미팅) 형식도 도입했다. 이를 통해 유권자의 관심사항이 토론에 반영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사회자 1인의 형식은 사회자가 가운데서 중재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후보 간 직접 토론은 아니었다. CPD는 이 문제를 인식하고 2008년 대선에서 진일보한 형식을 도입했다.
주어진 주제에 후보별로 2분씩 답변한 후 5분간 제약 없이 후보 간 자유토론을 허용한 것이다. 이전의 토론처럼 제한된 시간에서 '질문-답변-반론-재반론'을 하는 형식에서 벗어나 진정한 토론(real debate)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동안 시간의 공정성과 균형성이라는 틀을 벗어던진 획기적인 진전인 셈이다.
진정한 토론을 기대했던 CPD의 바램과 같이 1차 토론에서 매케인과 오바마는 시간적 균형성에 집착하지 않고 토론을 펼쳤다. 질문-답변-반론-재반론이라는 도식화된 기존의 틀을 벗어나 후보별로 2차례 이상의 반론 기회를 가짐으로써 심도 있는 토론이 이루어졌다.
사실 후보 간 직접토론은 우리가 먼저 도입한 형식이지만 한국에서는 자유로운 토론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처럼 한국의 대선 토론이 재미없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기계적인 균형성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대선 토론이 선거제도의 하나이기 때문에 공정성이 우선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결국 진정한 토론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미국의 형식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게 한다.
또한 눈에 띄는 것은 사회자의 역할이다. 1차 토론 진행자였던 짐 레러(PBS 뉴스 앵커)는 양당 후보들이 선호하는 단골 진행자였다. 레러는 후보들에게 적절히 시간을 배분해 주면서 반론하게 하고, 후보 간의 직접질문을 유도하고, 입장 차이를 확인하고 정리해 주는 등 제한된 범위 내에서 사회자의 역할을 잘 수행했다. 기계적 균형의 틀에서 주어진 원고만 읽는 우리나라 진행자의 역할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부시가 고어를 토론에서 이긴 까닭은
1차 토론에서 매케인은 자신은 준비된 대통령 후보인데 반해 오바마는 준비되지 않은 경험 부족의 후보라는 이미지전략을 사용했다. 매케인은 토론 도중 자신의 의정 경력을 내세우고, 오바마의 안보관이 순진하다고 표현하는 등이 그것이다.
반면 오바마는 젊은 정치인의 이미지를 내세우며 고령의 매케인과 차별화하고 부시 행정부 8년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매케인을 연결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결론적으로 매케인은 공격적이었고 오바마는 공세적이었다. 매케인은 발언 서두에 "오바마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데 반해, 오바마는 질문과 추가 발언에서 매케인 보다 먼저 말하는 횟수가 많았으며, 매케인의 발언에 대해 "확실하게 정리하고 넘어가겠다"와 같은 표현을 통해 토론을 주도해 나갔다.
사실 TV 토론은 오바마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변화를 주장하는 젊고 패기에 찬, 그리고 뛰어난 연설 능력을 지닌 오바마는 TV에 적합하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토론에서 매케인이 오바마를 이길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같은 예상이 반드시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2000년 대선에서 눌변인 부시가 달변인 고어와의 토론에서 밀리지 않고 오히려 앞설 수 있었던 것은 구체적인 쟁점에서 논리적인 대응을 했기 때문이다. 또한 고어가 토론을 잘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부시가 선방하는 것은 기대 밖이라는 이미지도 작용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매케인은 앞으로 보다 공세적인 토론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 1차 토론 직후 많은 미국 언론들이 오바마의 승리를 보도하고 있지만 이제 겨우 한 번이 끝났을 뿐이다. 1차례의 부통령 후보 토론과 2차례의 대통령 후보 토론이 남아있다. 두 후보 간의 지지율 차이는 크지 않다. 마지막까지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않은 유권자들이 10~20%정도 있다고 볼 때 남아있는 토론이 선거 결과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미국 대선 토론은 남의 나라일이지만 현재의 구도대로 된다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선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유권자에게 도움이 되는 토론 형식이라면 과감하게 수용하는 대통령토론위원회와, 이것을 받아들이는 후보들의 결단이다.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권자가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후보에 대한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정치인, 미디어, 그리고 선거방송토론위원회는 모두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스포트라이트 美대선] 1. 영혼을 판 매케인, 팔 것도 없는 한국 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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