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입장에서 보면 마치 고대 이래로 내려져오던 자연적인 일상의 생활공간이 영토로 확정되어 국가의 틀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역사 속에서 영역과 인민에 대한 배타적 통치행위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그리 단순치 않다. 사람과 영역에 대한 '선 긋기'가 반드시 '자연적인 생활공간' 위에서 만들어지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선긋기'가 인민 혹은 국민, 그리고 영토로 각각 확정되는 과정은 지극히 인위적 혹은 인공적이며, 그런 의미에서 아주 '근대적'이다. 다소 극단적인 예를 들면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던 이웃들이 중간에 그어진 '선 긋기'에 의해 영토가 확정됨으로써 본의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갑자기 각각 다른 나라의 '국민'이 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일본의 영토문제와 영토인식도 이 같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지금 일본이 영토로 일본의 현재 영토를 몇 가지 범위로 나누어서 생각한다.
첫째는 '소(小)일본'으로 도쿄에서 오사카, 교토까지를 포괄하는 혼슈(本州), 시코쿠(四国), 규슈(九州)와 몇 개의 섬을 포괄하는 범위이다. 이 '소일본'의 지역적 범위는 일반적으로 일본의 고전 등에서 '야시마(八島, 八洲)'로 불리는 곳으로, 현 일본 영토의 기반을 이룬다.
물론 엄밀하게 말하자면, 혼슈에 포함되어 있는 도호쿠(東北)지방이나 규슈 지방은 '소일본' 내에서도 일종의 내부 식민지 같은 위치에 있고, 근대 이후에도 도호쿠 지역과 규슈지역에 대한 배제와 동화의 정치적 역학이 끊임없이 작동되지만, 여기서는 일단 '소(小)일본' 지역에 포함되는 것으로 한다.
두 번째는 '중(中)일본'으로 메이지 유신 후 일본 땅에 강제로 편입된 오키나와와 홋카이도 지방까지를 포괄한다.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고 약 10년이 지난 1879년 소위 '류큐처분(琉球処分)'으로 류큐왕국이 멸망하였고 1869년에는 아이누 민족의 선주지를 일본 정부가 홋카이도로 개명함으로써 일본 영토가 되었다. 오키나와와 홋카이도의 '창설'(일본영토화)은 '중일본'의 완성을 의미한다.
'소일본'에서 시작해 '중일본'으로 확장된 일본 영토는 그 후에도 멈출 줄 모른다. 청일 전쟁 후에는 타이완을 손에 넣었으며, 러일전쟁 후에는 조선을 일본 영토로 편입하였다. 이는 '대일본제국'의 출발을 의미한다.
'대일본'은 더욱 확장되어, 괴뢰국가 '만주국'을 성립하고 아시아 태평양 전쟁을 통해 동남아시아 지역까지 확장되었다. 역사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대동아 공영권'이 바로 그 것이다. 전쟁에서 진 다음, 일본 영토는 '대일본'에서 '중일본'으로 축소되었다(오키나와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간 것은 1973년이었다). 청일전쟁(1894년) 이전으로 돌아간 것이다.
'올드랭사인'과 '반딧불의 빛'
일본 사회의 영토관의 변천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반딧불의 빛(蛍の光)'이라는 창가가 있다. 일종의 '국민가요'라 할 수 있는 노래이다. 지금도 여전히 졸업식의 단골 노래로 등장한다. 연말에 NHK에서 방영되는 노래 '홍백전'(紅白戰)에서는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기도 한다. 또 철도노선이 폐지될 때 마지막으로 흘러나오기도 하고, 유명한 프로야구 선수의 은퇴식에서도, 또 한신타이거즈 야구단의 응원가로도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 노래는 스코틀랜드 민요인 <올드랭사인(Auld Lang Syne)>에 노랫말을 붙인 것으로 일본에서는 1881년 소학교 음악교과서(창가집)에 실린 이후, 일본에서 가장 많이 애창되는 노래가 되었다. 한국에서도 <올르랭사인>은 지금의 애국가가 만들어지기 전에 애국가의 음률로 사용되었고, 또한 졸업식 등에서 <석별의 정>으로 즐겨 불려졌다. 세계적으로는 1940년에 만들어진 영화 <애수>의 삽입곡으로도 잘 알려진 노래이다.
그런데 <올드랭사인>의 일본판인 <반딧불의 빛>의 4절 가사의 변천을 보면, 위에서 말한 일본 사회의 영토관의 변천이 잘 드러난다. 처음에 만들어진 노랫말에는 일본 영토의 경계를 "치시마(千島, 쿠릴열도)에서 오키나와"까지를 담고 있었으나, 청일전쟁 후에는 노랫말이 "치시마에서 타이완"까지로, 그리고 러일전쟁 이후에는 "타이완에서 카라후토(樺太, 사할린)"까지로 바뀐다.
물론 지금은 4절을 거의 부르지 않는 듯하다. 부르더라도 "치시마에서 오키나와"라는 초기의 노랫말로 불린다. 치시마는 일본에서 소위 북방영토로 불리는 쿠릴 열도 4개 섬을 말한다. 러시아가 실효지배하고 있는 쿠릴열도 4개 섬은 <반딧불의 빛>에서는 일본 영토인 셈이다.
<일본 침몰>에 나타나는 영토관
일본 사회의 영토관을 드러내주는 작품에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일본침몰>이라는 작품이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SF작가로 알려져 있는 고마쯔 사쿄(小松左京, 1931∼ )가 1964년에 집필을 시작해 9년 만에 작품을 완성해 1973년에 상하 2권으로 출판하였다. 상하권 합쳐서 약 400만부나 팔려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 작품은 이후 1973년에 구로사와 아키라(黒沢明)의 단골 조감독이었던 모리타니 시로(森谷司郎, 1931∼1984)의 감독 하에 영화로 만들어져 약 9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등 큰 인기를 얻었고 일본 재난 영화 붐의 효시를 이루었다. 1974년부터는 TBS가 26회에 걸쳐 TV 연속드라마로도 방영하였다. 1970년대에는 사이토 다카오(斎藤隆夫, 1936∼ )에 의해 만화로 연재되어 그 후 단행본으로도 출간되었다. 또 2006년에는 히구치 신지(樋口真嗣, 1965∼ )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되어 큰 인기를 얻었고 일본의 대표적인 아이돌 그룹인 스마프의 '초난강'(쿠사나기 쯔요시, 草彅剛, 1974∼ )이 주연을 맡음으로써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다.
일본 영토가 자연재해(지진)에 의해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겨우 살아남은 일본인들이 난민이 되어 세계 각지로 흩어져 살게 된다는 줄거리는 당시로서는 기상천외의 발상이었다. 원작자 고마쯔 사쿄는 집필 동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원래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한 것은 도쿄 올림픽이 열린 1964년부터이다. 전쟁에서 비참하게 패전하고 겨우 20년이 지났을 뿐인데도 고도성장으로 들떠 있었던 일본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 국토를 잃고 모두가 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던 일본인이 (겨우 20년 지난 지금) 마치 전쟁조차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게 세계로부터 어떻게 비추어질 것인가를 생각했다. 그래서 '픽션'을 통해 '나라'를 잃어버릴 수도 있었던 위기를 일본인에게 다시 체험시키고 싶었다."
이렇게 보면 <일본 침몰>은 단순한 재난영화 혹은 재난 문학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재난(대지진)은 국토 상실의 '메타포'로 등장하고 있을 뿐이다. 고마쯔에게 국토는 곧 국가이니 국토 상실은 곧 국가 멸망인 셈이다. 그는 전쟁→국가 멸망의 위기라는 역사적 경험을 대지진→국토 위기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고마쯔가 상정하고 있는 일본 영토=국토는 구체적으로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일까? 고마쯔의 영토관을 잘 알 수 있는 것은 <일본침몰 제2부>이다. 2006년 영화 개봉 이후에 출간된 <일본 침몰 2부>는 일본 침몰 후에 세계 각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일본 민족'의 국가로서의 생존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동해 바다 위에 인공섬을 만들어 그 곳에 일본 국가의 '영토'를 재건하려는 과정과 좌절을 그린다. 중국이 북한을 무장 점령하고 독도를 탈취한 다음, 동해 주변에 진출하다는 가정도 등장한다. 여전히 한반도는 남쪽도 북쪽도 모두 역사의 대상물로만 등장한다. 1894년의 청일전쟁의 '재판'인 셈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바다로 '침몰된 지역'의 범위이다. 홋카이도, 혼슈, 시코쿠, 규슈, 그리고 오키나와까지가 모두 바다로 가라앉는다. 위에서 말한 '중일본' 모두가 바다로 '침몰'하는 것이다. 고마쯔에게 '침몰'은 곧 일본 영토이다. 지진이 자연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인공적인 힘이 가해진 것처럼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가라앉는다. 고마쯔에게는 자연재해조차도 영토단위로만 일어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일까?
지진은 분명히 자연현상이다. 영토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인공적이고 근대적이다. 그런데 자연현상으로 마치 '핀 포인트' 폭격처럼 일본 영토만이 '침몰'한다는 가정은 영토가 인공적이고 근대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자연적인 것이라는 전제 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는 일본 국가를 생명체=유기체로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영토란 국가라는 생명체의 신체에 해당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상정하고 있는 일본국가의 영토는 부분적으로 훼손될 수 있는 것인 아닌 것이다.
인상적인 것은 독도에 관한 기술이다. 독도는 전부가 아니라 일부만 '침몰'된다는 가정을 하고 있다. 이는 한국과의 '영유권 분쟁'을 의식한 결과는 아닌 듯하다. 일부 가라앉지 않은 독도는 일본의 인공섬 국가 구상의 기반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의 동해진출로 그려지고도 있기 때문이다. 독도는 '침몰된 일본 영토' 중에 유일한 '희망'이며,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동북아 정세의 핵심 고리로 그려진다.
<일본 침몰>의 성공에 자극을 받아서, 영화 <일본 침몰>을 패러디한 영화 <일본 이외 전부 침몰>이라는 영화가 있다. 말 그대로 전 세계가 모두 '침몰'했는데, 오직 일본 영토만이 '침몰'하지 않는다는 줄거리이다. 쯔쯔이 야스타카(筒井康隆, 1935∼ )가 1973년에 발표한 작품을 원작으로 해서 2006년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영화 평론가들로부터의 평가는 아주 낮다. 이 작품의 감독 가와사키 미노루(河崎実, 1958- )는 기자회견에서 "다케시마(竹島), 센카쿠쇼토(尖閣諸島, 야오위다오), 홋포료토(北方領土=쿠릴열도 4개 섬)는 일본의 영토이기 때문에 영화에서는 침몰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일본침몰>의 '침몰'지역과 <일본 이외 전부 침몰>의 '침몰되지 않는 지역'이 일치하는 셈이다. 두 작품에 공통된 것은 일본 영토를 '침몰'이라는 메타포를 통해 유기체로 보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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