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박근혜 후보의 당선에 너무 낙담할 필요가 없다고도 했다. 미국-중국 데탕트의 문을 연 당사자도, 소련과 총성 한 방 울리지 않고 냉전을 종식시킨 당사자도 모두 미국의 보수 정권이었던 것처럼, 박근혜 당선인이 확고한 철학과 신념을 바탕으로 대북정책을 설계하고 실천에 옮긴다면 한반도의 새로운 역사를 열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진징이 교수는 정전 60주년을 맞이해 한반도도 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내고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2012년 12월 11일 서울에서 평화네트워크의 정욱식 대표와 이제영 간사가, 올해 1월 7일 베이징에서는 정 대표가 만나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아래는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정욱식(왼쪽)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진징이(오른쪽) 북경대 교수 ⓒ평화네트워크 |
김정은 체제가 등장한 지 1년이 지났다. 다양한 평가들이 나오고 있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김정은 체제가 선군정치에서 경제를 우선시하는 선경(經)정치로의 노선 전환을 꾀하고 있는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진단하고 있다. 선생님께서는 이러한 진단이 정확하다고 보시는가?
북한 선군정치의 첫째 목적은 "미제의 침략책동에 주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것이고 둘째 목적은 사회주의강성대국을 건설하는 것이라고 한다. 선군시대 때 '경제건설로선'도 내놓았다. 선군시대 경제건설 노선은 국방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고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김정은 체제 출범 후 경공업과 농업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국방공업의 순위가 바뀐 것은 아니다. 이 순위가 바뀔 때에만 선군정치의 내용이 실질적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
선군정치는 역시 체제수호를 우선으로 한다. 북한이 처한 대내외환경을 보면 북한은 선군정치를 버릴 수 없다. 김정은 체제 출범 후 내각중심제, 내각책임제를 강조하는 것을 두고 제2경제가 내각에 이전한다는 평가가 있는데 사실 내각중심제는 그전에도 강조해왔던 것이다. 개혁과는 별개다. 내각은 계획경제를 총괄·제정하고 집행하는 기구다. 내각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어찌 보면 계획경제를 강화하겠다는 의미로도 보인다.
김정일의 2011년과 김정은의 2012년 시찰을 비교해 보면 김정일은 공장, 기업소, 농촌 등 경제 제1선의 시찰이 80여 번이나 되었다. 만년에 강한 변화의 의지를 보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김정은의 공장, 기업소, 농촌시찰은 4-5차례 밖에 되지 않았다. 군부대 시찰은 거의 30번이 넘는다. 역시 선군정치와 체제구축이 중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정은의 파격적인 행보에도 관심이 많은데 어떻게 보는가?
지난해 김정은의 행보를 세 측면에서 살펴보았는데, 첫째는 이른바 김정은의 노작이고, 둘째는 김정은의 시찰에서 보여준 시각이며, 셋째는 김정은 관련 북한의 풍문이다. 그중 김정은 관련 풍문이 개혁개방 쪽에 가장 가깝다. 시찰할 때 보여준 행보는 가히 파격적이다. 김정은의 노작을 보면 변화를 살펴보기 어렵다. 중국의 경우 개혁개방에 앞서 이념의 변화가 선행했다. 북한에는 그런 변화가 아직은 없다.
김정은의 파격적 행보가 변화의 의지를 보여준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의 개혁개방과 비교할 때 북한은 초기 조건이 너무 다르다. 흔히 중국 개혁개방의 일등공신은 덩샤오핑(鄧小平)이라고 하지만, 사실 일등공신은 문화대혁명이다. 문화대혁명이 없었으면 기득권 세력이 개혁개방에 강하게 저항했을 것이다. 지난 역사에 대한 일부 부정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김정은이 개혁개방의지가 강하다고 해도 이 두개의 산, 즉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기존 이념을 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1일 오전 조선중앙TV와 조선중앙방송 등 방송을 통해 육성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그렇지만 북한도 이제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왔다. 경제발전과 민생 챙기기를 강조하는데 그 자체가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북한은 북한식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계획경제를 근간으로 하면서 국가주도하에 중점 기업이나 첨단과학분야에 집중투자하면서 도약식발전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 기업과 농촌에서 어느 정도 자율화를 허용하면서 생산력을 향상하려 할 수도 있다. 농촌의 경우 1960년대 중반에 내놓은 분조관리제를 1996년, 2002년의 분조도급제로 하면서 분조의 단위를 최소한으로 줄여 사실상 중국의 가정도급제와 비슷하게 하는 것이다. 명목은 여전히 분조관리제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분배방식이다. 북한은 지난해부터 농촌에서의 분배방식을 시범적으로 바꾸고 있다. 거두어들이고 배급해 주던 방식에서 초과 부분까지 일차적으로 배분하고 자율적으로 처분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분배 방식의 변화들이 앞으로 전국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시는가?
분배방식의 변화를 통해 농민들의 생산의욕을 높이려 할 것이다. 북한 내부통계에 따르면 2011년 곡물생산량목표를 650만 톤으로 잡았는데 자연재해 때문에 513만 톤을 생산했다고 한다. 지난해 내부통계는 잘 모르겠지만 유엔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490만 톤을 생산했다고 한다. 그런데 북한내부통계로는 2012년 생산량이 2011년의 513만 톤을 초과했을 가능성이 있다. 차이는 있지만 증산한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그것을 바탕으로 분배방식이 변화하고 농민들에게 처분권이 주어진다면 시장을 통한 유통이 강화되면서 식량의 어려움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군부 실세 리영호 총참모장 숙청은 어떻게 해석하는가. 군부의 대표적 실세가 리영호였는데, 모든 지위에서 해임이 됐고, 최근에 나오는 얘기들에 의하면 사실상 북한도 숙청을 인정하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그런 것이 군 개혁의 신호탄으로 해석할 수 있는 건지, 선군정치 시대에서 경제는 내각이 맡고, 실질적으로 군보다 당을 우선시하는 북한체제의 정상화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는 건지, 일종의 권력투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인지, 어떻게 보시는가?
체제구축 단계에 걸림돌을 제거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전에도 그렇게 해왔다. 다른 신호는 아닐 것으로 본다. 북한체제 특성상 최고 권력을 둘러싼 권력투쟁은 있을 수 없다. 확대해석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리고 북한이 선군정치를 한다고 하여 군이 당을 지휘하는 것은 아니다. 군 안에 당이 있고 당이 총대를 지휘하는 데에는 변화가 있을 수 없다.
북한과 중국은 여러 가지 조건과 환경이 다르지만, 잘 아시다시피 중국같은 경우는 개혁개방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마오쩌둥(毛澤東)의 '양탄일성(兩彈一星)'을 많이 강조했다.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위성을 갖게 됨으로써 중국이 군사적으로 강대국의 반열에 올라서서 경제발전에 매진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식의 화법 들이 많이 동원됐다. 덩샤오핑도 그랬고, 장쩌민(江澤民)도 그랬던 걸로 기억한다. 북한의 김정은 체제도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북한식의 일종의 '양탄일성'을 통해서 핵 억제력은 유지하고 대신 병력감축을 포함해서 재래식 군사력은 좀 줄여가는 방향에 대한 전망이나 예상은 어떤가?
중국은 마오쩌둥 시대에 제국주의 침략전쟁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았다. 국력의 많은 부분을 전쟁준비에 돌렸다. 원자탄이나 수소탄을 전쟁을 억제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보았다. 그렇다고 원자탄, 수소탄을 성공시키고 곧바로 경제발전에 들어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문화대혁명을 일으켜 경제를 붕괴의 변두리에 빠뜨렸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할 수 있던 것은 핵 억제력의 요소보다도 미국 및 서방세계와 관계개선을 하면서 이룬 주변 환경의 요소와 평화와 발전이라는 시대적 환경이 더 중요한 것이다.
북한은 냉전이 종식되면서 한미일 대 북한이라는 새로운 냉전구도에 갇히게 되었다. 북핵 문제의 발단은 이 냉전구도를 탈피하려는 북한과 그것을 유지하려는 미국과의 충돌이었다. 핵 문제는 미국이 키운 면이 없지 않다. 북한은 '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안보문제를 해결했고 이제는 경제에 매진할 수 있다'는 논조를 펼치고 있다. 그렇지만 북핵문제가 철저히 해결되지 않으면 북한은 오히려 불안정 요소와 안보 문제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을 수 있다. 지난 역사가 그랬다. 북핵문제의 본질을 보면 병력감축이나 재래식 군사력 감축과는 큰 관련이 없을 것이다.
북한이 '핵 억제력'을 확보하게 되면 중국이 70, 80년대에 보여주었던 것처럼 재래식 군사비 부담을 좀 줄여나가는 선택을 할 가능성은 어떻게 보는가?
북한이 진정 경제를 발전시키겠다고 결심하면 그것이 계획경제든 시장경제든 관계없이 군수공업의 많은 부분을 민수공업으로 전환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이 그랬다. 북한 경제에서 군수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기에 더 그러한 것이다. 단순히 핵 억제력이 있기 때문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북한이 핵 억제력은 당분간 유지, 강화하는 노선을 취하되 군수산업은 비중을 줄여가면서 민간용으로 전환한다면, 이것이 한국이나 중국에 대북정책의 딜레마를 가져올 수 있지 않은가. 한국의 경우, 북핵 문제 해결을 굉장히 중요한 원칙으로 삼고 있는데 핵은 당분간 유지하면서 중국이나 한국이 요구해 온 것처럼 경제발전에 좀 더 신경을 쓰게 될 경우에 한국은 어디에 우선순위를 둬야 될지 고민해야 할 텐데 어떻게 보시는가?
결국 우선순위는 경제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접근법은 굉장히 지정학적이었다. 한반도문제 연구에서 사용빈도가 가장 높은 단어가 아마 지정학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지정학의 뜻에는 지리적 위치, 시대적 상황, 강대국들의 전략이 있다. 지리적 위치는 상수이지만 시대적 상황과 강대국들의 전략은 변수이다. 시대적 상황이란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와 지금의 시대는 다른 것과 같은 것이다. 강대국들의 전략이란 어느 나라나 지역에 대국들의 전략이 머물면 그 지역과 나라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 한반도가 지금까지 그래 왔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한국전쟁이 그 결과였다.
지금은 미국이 한반도를 기점으로 동아시아 전략을 펼치고 있다. 결국 지금도 지정학적 접근을 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전략적으로 접근하면 지난 시기의 패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제는 지경학적 접근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경제는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 중국의 모든 변화는 경제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북한문제도 결국 경제로 풀 수밖에 없다. 경제로 얻는 이익이 핵 개발로 얻는 이익보다 훨씬 크면 북핵 문제 해결도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목표는 지경학적 접근으로 한반도 경제블록화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북핵에만 집착해서는 문제 해결이 어려울 수 있다. 제재와 압력을 가하면 가할수록 북한은 핵 개발의 필요성을 더욱 느끼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한미일은 그렇게 해왔다. 세계 제1, 제2와 10위권의 세 나라가 가한 압력은 북한에는 엄청난 압력인 것이다.
문제는 미국이 실제로는 북한을 명분으로 삼아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과 미국의 관계가 아직 정립되지 않았고, 앞으로 정말 대결로 나가면, 북핵 문제, 한반도 문제 해결은 더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그런데 중·미 관계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사실 남북관계라고 할 수 있다. 남북관계가 잘 돌아가면 중국과 미국은 따라갈 수밖에 없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그랬다. 중국도 호응했고, 미국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중·미 관계 역시 한반도 문제에서 크게 마찰음을 내지 않았다. 결국 한반도 문제 해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라는 내적요소인 것이다. 남북관계가 풀리면 대국들이 개입할 틈새가 없어진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중·미 간에 균형자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은 지난 역사의 기억에서 피해의식이 강하다. 지금도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하는데 세계적으로 10위권의 새우가 어디 있는가. 한국은 이미 고래가 됐다. 고래 싸움을 말릴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명박 정부가 지혜롭지 못했던 것은 한쪽으로 치우쳐서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는 점이다. 오히려 중국과 한국과의 관계가 매우 껄끄러워졌다.
중요한 말씀이다. 지금까지는 한반도 문제를 지나치게 지정학의 관점에서 접근을 해왔다고 한다면, 이제는 좀 지경학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고, 지나치게 외적 요소를 강조하는 바람에 한국이 가진 내적 역량을 무시, 간과해왔던 측면이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런데 최근의 몇 년 상황을 보더라도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한국의 노무현 정부 경우에도 햇볕정책 추진과 동시에 한미관계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시도들이 상당 부분 좌절되었다. 일본의 경우에도 하토야마(鳩山由紀夫) 정권에서는 대등한 미·일 관계와 동아시아 공동체 등을 이야기했다가 천안함 침몰 등으로 미·일 동맹 강화론이 일본 내에서 득세하면서 사실상 쫓겨나다시피 하지 않았나. 그래서 한국보다 훨씬 더 국력이 강한 일본만 보더라도 미국이 가진 지정학과 전략적인 틀을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노무현의 부분적인 실패와 하토야마의 큰 실패를 보면서 한국의 차기 정부에게 지정학보다는 지경학을 우선하면서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큰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잘 풀어나갈 수 있는 전략적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떤 부분을 좀 강조하고 싶은가?
▲ 베이징대 진징이 교수 ⓒ평화네트워크 |
한국경제도 이제는 어느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본다. 세계경제가 내리막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더욱 그럴 것이다. 중국이 세계경제의 불황기에도 계속 성장세를 유지하는 데에는 중국이 가지고 있는 자원, 인구, 영토, 내수시장이 중요한 원인일 것이다. 한국도 크게 재도약하려면 그에 걸맞은 자원, 인구, 영토, 내수시장이 필수적일 것이다. 결국 한반도 경제블록화가 유일한 길이다. 그러자면 남북경제협력과 중국, 러시아, 일본과의 협력도 병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지경학적 요소가 강화되어야 지정학적 요소가 약화될 수 있을 것이다.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의도를 겉으로 드러내든 드러내지 않든, 남북 간의 힘의 차이 등을 볼 때, 통일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한국이 주도하게 될 텐데, 여전히 한국의 주류적인 성향을 보면 미국이 중요하고, 통일 이후에도 한미동맹을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굉장히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은 당연히 한반도의 통일을 반대하지 않겠느냐 이런 얘기들이 있다.
왜 통일된 이후에도 반드시 한미동맹을 유지해야 하는가. 중국을 위협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정말 중국이 한반도 통일 과정이나 통일 후에 패권주의, 대국주의로 나아간다면, 한국은 중국에서 가지 말라고 해도 한미동맹 쪽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고 중국이 책임감과 도덕성 있는 나라로 한반도와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거나 경제블록화를 이룬다면 한미동맹이 꼭 필요할지 묻고 싶다.
다른 한편으로 중·미 관계가 확실한 협력관계로 자리 잡는다면 미국이 꼭 중국을 겨냥한 한미동맹을 필요로 하겠는가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강대국들의 부흥은 모두 패권을 목표로 했다. 그러기에 중국도 패권을 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데 그 패권이 지금 가능한가 질문하고 싶다. 1950년대 중반에 마오쩌둥이 외국 손님들을 만나면서 '이제 50년이 지나면 중국이 강대국이 될 것인데, 그때에 가서 중국이 대국주의를 하면 당신들은 중국이 대국주의를 못하게 반대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마오쩌둥은 문화혁명 때에도 늘 중국이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했다. 전쟁준비도 방공터널을 파는 등 방어책을 강구하고, 쌀을 비축하는 것이었다. 덩샤오핑 역시 패권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늘 강조했다. 결코 빈말이 아닐 것이다. 물론 중국도 신흥대국인 만큼 패권에 대한 욕망이 있을 수는 있다. 패권을 하지 않는다는 자체가 그런 욕망을 억제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패권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다를 수 있다.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다른 나라에 대한 지배권, 간섭, 주권침해 등을 패권이라고 한다. 강압적으로 다른 나라를 자국의 의지대로 몰아가는 것을 패권이라고 한다. 중국문화의 특징상 중국은 중용을 강조하고 조화로움을 강조한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주변국과 국제사회와의 협력이 잘되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패권을 추구했다면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앞으로의 발전도 마찬가지이다. 윈-윈(win-win)할 수밖에 없다.
말씀하신 것처럼 19, 20세기 식의 패권주의는 아닐 것이고, 중국 역시 패권을 추구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고 하지만, 단순히 '중국위협론'을 강조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중국에 우호적인 사람들조차도 중국이 갈수록 공격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한다. 최근 2~3년 동안 중국을 바라보는 외부의 인식과 중국이 주장하는 바의 간극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많이 받았다. 이러한 간극을 해소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노력이 필요하겠는가? 또한 중국으로서는 외부의 오해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낼 수 있는 반면, 주변국들은 중국이 그들을 위한 충고를 너무 적대시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얘기하기도 한다. 특별히 한국인들 사이에서 만연해 있는 중국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위협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인식론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최근 수년간 중국이 대외관계에서 공격적으로 나아간다고 하는데, 하나씩 따지고 보면 대부분이 주권 문제와 연결된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중국이 이 문제를 주권 문제로 간주할 때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권문제에 한해서는 어느 나라나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주권문제에 한해서 중국은 문화혁명 때도 같은 태도였다. 그렇지만 지금의 중국에 더욱 신경을 쓰는 이유는 바로 중국이 강대국이 되어서일 것이다. 국력의 강약에 따라 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 있다. 지난 시기 중국은 주변국과 영토분계선을 확정할 때 양보가 더 많았다. 양보로 안정을 찾았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양보는 없다. 중국이 강경하다고 보는 다른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결국 중국과 주변국들이 겪고 있는 일부 갈등은 과도기에 필연적으로 겪어나가야 할 갈등일 것이다. 돌이켜 보면 중국은 1840년의 아편전쟁 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금처럼 강대해진 적이 없었다. 주변국들 역시 이렇게 강대한 중국을 상대해 본 적이 없다. 위협을 느끼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새로운 관계정립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중국 역시 이 과정에서 자신을 부단히 갱신해야 할 것이다.
한국에는 중국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있지만 현실에서 중국을 가장 많이 찾는다. 중국인들의 한국방문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제 양국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다. 결국 앞으로의 양국관계도 양국이 함께 오늘의 현실에서 만들어가는 것이다.
중국의 문제는 역시 국내문제가 급선무이다. 최근 들어선 시진핑(習近平) 체제도 국내문제에 주력하고 있다.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전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제2의 개혁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그런 개혁이 중국에 대한 주변국의 우려를 해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시진핑이 어떤 부분에서 중국 인민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가?
중국인들이 제일 증오하는 문제에 메스를 들이대고 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중앙뿐만 아니라 지방관료도 시찰을 나갈 때면 길을 봉쇄하고 경찰차가 앞뒤를 동행하면서 백성들에게 불편을 주었다. 그런데 얼마 전 시진핑은 광저우(广州) 방문에서 길도 봉쇄하지 않았고 보통 차량과 같이 가면서 차창의 커튼도 치지 않았다. 중국의 어느 경우에도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중국인들에게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온 것이다. 총서기가 솔선수범하면 다른 관료들도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관료사회에는 큰 지각변동이다.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정치 쇄신을 위한 8개 조항을 채택했는데, 백성들이 가장 바랐던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 물론 지켜봐야겠지만 현재로서는 매우 희망적이다.
그렇다면 시진핑 체제가 인민 위에 군림하려고 하지 않고, 권위를 지나치게 앞세우지 않는 부분들이 대외 관계에도 반영될 것이라고 보는가?
대외정책은 대내정책의 연장선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시진핑이 추진하는 개혁은 중국의 발전이 기회이지 위협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게 될 것이다.
대외적 정치는 좀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내부 통치에 있어서 스타일의 변화는 분명 존재하며, 중국 내에서 도덕, 정의, 안정, 조화 등의 요소들이 강화된다면 훨씬 더 평화로운 대외관계가 가능해진다는 말씀인 것 같다.
그렇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은 17대 당 대회부터 '문화강국'을 내세우며 문화를 강조하고 있다. 중국은 사실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강국이 되었지만 문화강국은 아직 거리가 있다. 중국은 문자 그대로 문화대혁명 때 문화를 혁명해 버렸다. 중국이 세계를 주도하며 대국의 역할을 하려면 무엇보다 문화강국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문화란 한마디로 한 나라의 국민이 어디를 가서도 존경받는 국민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문화건설은 경제건설과 달리 금방 효과를 보는 것이 아니다.
선생님께서 최근에 쓰신 글을 통해 '신형 대국관계'를 강조하셨다. 미국이 얘기하는 G2와 같은 개념으로 보면 되는가, 아니면 차이가 있는 것인가?
미국이 'G2' 개념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데는, 세계를 지배하는 그들의 방식에 중국이 합류하라는 의도도 깔려있다. 중국이 '신형대국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은 앞으로 중·미 관계를 과거의 신흥대국과 기존 강대국 간의 경쟁과 전복 관계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양국이 공존하면서 세계를 주도해 나아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니 미국이 계속 중국을 견제하려 해도 중국은 미국의 지위에 도전장을 내밀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미국과 중국이 세계문제에서 상호 책임을 가지고 협력할 수 있는 관계를 이룰 것을 바란다. 중국은 이 신형대국관계가 중국과 미국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나라와의 관계에서도 적용되기를 바란다. 범세계적으로 새로운 대국관계가 이루어질 것을 바라는 것이다. 어찌됐든 중국은 미국과 소련이 벌였던 '대결'로는 가지 않을 것이다.
말씀하신 대로 미국이 말하는 G2와 중국이 강조하는 신형대국론이 앞으로 조화를 이루면서 나아가야 하지 않겠나?
미국도 신흥대국관계에 대해서는 동감을 표시하고 있다. 앞으로 그렇게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도 사실 중국과의 관계에서 견제와 협력의 딜레마를 안고 있다. 지금 이 두 가지가 반반이라고 한다면 점차 협력이 증가되고, 견제의 측면은 감소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상당한 기간 갈등과 충돌로 과도기의 진통은 겪을 것이다.
▲ 버락 오바마(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공산당 주석 내정자 ⓒAP=연합뉴스 |
미·중 관계의 앞날을 낙관하시는 편인가?
낙관이라기보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세계는 늘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화, 지역경제 블록화를 이야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인류사회가 상당한 수준까지 발전한 것이다. 야만시대를 거치고 제국주의 시대를 벗어나 이 시대까지 왔다. 지금은 어떤 나라도 마음대로 세계를 요리할 수 없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왜 실패를 했는가. 시대에 역행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힘으로 이라크를 쉽게 휘두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주권의 문제를 많이 강조하셨다. 과거에는 중국이 영토 문제 등에 있어서 관대했다고 한다면, 시간이 지나고 국력이 성장하면서 주권 문제에서 사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한 원칙을 고수하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고 보는데, 어떤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주권과 자원 주권은 차이가 있다. 자원 문제는 이제 가장 중요한 세계적인 문제로 대두할 것이다. 모든 나라들이 자원 확보에 사활을 걸 것이다. 그러니 어느 나라나 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지역에서 물러서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난 시대처럼 전쟁으로 해결할 수도 없다. 가장 좋은 방안이 공동개발이다. 결국 남중국해나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명 센카쿠 열도) 등 문제도 그렇게 해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지역의 자원 분쟁, 도서 분쟁 등을 보면 항상 그 뒤에는 미국의 그림자가 있다. 문제 해결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미국이 아시아로 중심축을 이동(pivot to Asia)하고 영토 분쟁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과정에서 중국이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 아시아의 많은 친구들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서 중국의 이런 공격적 자세가 미국으로 하여금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아시아에서의 재균형(rebalance) 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는 지적들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그리고 중국 내에서 이와 관련해 자성론이 존재하는가?
중국 내에서는 오히려 '왜 영토 분쟁에서 더 강하게 나가지 못하는가' 라는 여론이 강하다. 여론대로 따르면 중국도 이런 민족주의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은 여론이 국수주의화하면서 우경화 움직임을 강하게 보이고 있다. 중국은 다르다. 중국이 주변국과 겪고 있는 일부 갈등은 중국이 공격적으로 나와서가 아니다. 오히려 중국이 피동적으로 당하면서 나온 면도 없지 않다. 일본과의 도서분쟁이 그렇다. 중·일 수교 당시 양측이 묵인한 룰을 깬 것은 중국이 아니라 일본이다. 일본이 중국에 도발한 것이다. 물론 큰 틀에서 보면 중국과 주변국들이 겪는 진통은 중국의 부상에 따른 새로운 관계정립에서 겪어야 할 진통이다.
한국전쟁과 관련해서 여쭙고자 한다. 2010년 시진핑이 '항미원조전쟁(한국전쟁)은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었다'고 발언한 것이 한국에서 크게 보도된 바 있다. 그 발언을 하기 전에는 일반인들이 시진핑이 어떤 인물인지 잘 몰랐는데, 그때 한국에서 이를 크게 보도하고 비판하기도 하면서 그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그러한 발언이 나온 맥락과 선생님의 평가는 어떠한가?
중국의 지도자들 중 시진핑과 같은 말을 안 하는 사람은 없다. 일반적 인식이다. 그리고 한국전참전기념일이나 정전기념일과 같은 때에 중국의 입장을 밝히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이는 시진핑의 입장이 아니라 중국의 입장이고, 중국은 침략전쟁에 대항하기 위해 나갔다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 6.25전쟁기념일이 되면, 한국도, 북한도, 미국도, 중국도 모두 자기들이 이겼다고 이야기한다. 한국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쟁이다. 그 전쟁의 기원은 복잡하게 엮어진 것이다. 한 두 마디로 규명되지 않는다. 중국의 참전 역시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얼마 전 연세대 박명림 교수가 G2의 거시적인 맹아는 한국전쟁에 있었다는 흥미로운 말씀을 하셨다. 즉,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중국이 먼 훗날 강대국화를 예약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중국에 있어 한국전쟁은 오늘날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는가?
일리가 있다. 한국전쟁을 겪고 중국이 대국으로 태어났다는 견해도 있다. 1840년 아편전쟁부터 한국전쟁 이전까지 사실 중국은 '동아병부(東亞病夫)'로까지 불리면서 위축돼 있었다. 한국전쟁에서 세계 제1의 미국에 대항했고 이겼다고 평가하며 세계에 중국의 자존심을 각인시켰다고 평가한다. 한국전쟁으로 중국은 반세기가 넘는 평화적 환경을 조성했고 국제적 지위도 부상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중국이 다원화로 나가는 현시점에서는 부정적인 견해도 많다. 한국전쟁으로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수십 년 늦어졌다는 것 등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멈춰진 상태에서 2013년은 정전협정 60주년이 되는 상황이다. 한국전쟁 연구의 권위자로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한반도나 중국 등 동북아 차원에서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는가?
세계 역사에서 이렇게 오래된 정전은 없다.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전환하지 않으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는 불안한 평화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평화체제란 단순히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만 전환시키는 것이 아니다. 복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핵심은 실질적인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평화체제가 구축되었다는 것은 거기에 걸맞은 국제관계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미, 북·일 간의 관계정상화도 필수적일 것이다. 결국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은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중국이 대국으로 부상하는 데 있어서 한반도 문제 해결에 중국이 적극적 역할을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부연 설명을 부탁드린다.
한반도 문제의 궁극적 해결은 평화통일이다. 한반도 통일이 중국에 미칠 영향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면 굉장히 고무적일 수 있다. 대륙과 해양이 한반도에서 접목되면서 이 지역이 세계경제의 중심으로 거듭날 수 있다.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동북진흥 목표의 성패가 남북경협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국과 중국 모두 재도약하는 기회를 맞이하게 될 수 있다. 중국은 자기 국가이익을 위해서라도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긍정적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 문제라는 것이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하나의 카드로 활용되는 측면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북한이 미국과 중국의 대결을 완충시키는 역할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예를 들면 미국이 미사일방어체제(MD)를 구축하려는 것도 북한 때문이라고 하는데, 만약 한반도의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그 명분은 줄어들겠지만, 그렇다고 미국이란 나라가 MD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평화체제를 구축했다고 해서 주한미군을 쉽게 철수하거나, 미·일 동맹을 쉽게 조정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어찌 됐든 미국의 패권전략에서 군사력은 굉장히 중요한 수단인데 지금은 북한이란 나라가 존재하므로 북한이 미국에 일종의 구실 역할을 하면서 미·중 간의 전면적 대결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고 보여진다. 그런데 한반도 문제의 해결 과정에 있어서 북한이라는 적이 없어지면 미·중 갈등이 자칫 전면화되는 우려도 있을 것 같은데, 이런 방향으로 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미 관계와 남북관계라고 생각한다. 중·미 관계나 남북관계가 적대적 관계이면 평화체제도 구축될 수 없을 것이다. 평화체제가 구축된다는 것은 중·미 관계, 남북관계가 새롭게 정립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미 갈등이 북·미 갈등을 대신한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중·미 관계는 이제 전 세계를 무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관계이다. 협력할 분야가 너무 많다. 한반도 평화체제가 이루어지면 미국의 MD체제구축도 명분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되고 남북관계가 순조롭게 발전하면 한미동맹, 미·일 동맹, 주한미군, 주일미군 등도 점차 성격이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평화체제를 이룬 한반도라면 중·미 간에 충분히 균형자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이 줄곧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려고 했으나, 잘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앞으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과거만큼 목을 매달지는 않을 것이고, 오히려 대외관계의 우선순위를 미국보다는 중국으로 옮기고 있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보시는가?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국제사회의 정상적 일원이 될 수 없다. 북한은 여전히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우선순위에 놓고 추진하려 할 것이다. 북한 외무성의 주요 책임자는 거의 다 미국통이다. 20년간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처절하게 노력했다.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흔히 북한과 중국이 만나면 우리는 혈맹이라고 했다가, 헤어지면 서로 욕한다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이전에 북한을 다녀온 중국인들은 거의 모두가 북한이 중국과 같은 개혁개방정책을 실시하면 중국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할 것이라고 하였다. 교육수준과 문화자질, 예의범절, 위생습관, 질서의식 같은 것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중국의 네티즌들이 대부분 북한을 비웃는다고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네티즌들은 젊은이들 위주고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는 다르다. 물론 지금은 만나도 혈맹이라고 하지 않는다. 양국관계는 정상적 국가관계로 나아가고 있다.
▲ 베이징대 진징이 교수 ⓒ평화네트워크 |
중국 군부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또한 현재 중국의 군사비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고, 이런 속도로 늘어나면 필연적으로 중국 군부의 영향력 강화를 가져와 미국 군산복합체처럼 군부와 군수산업, 관료들이 특수한 관계를 형성하여 미국과 같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있다. 지금도 중국 사람들은 그래 봤자 중국의 군사비는 미국의 7분의 1 수준밖에 안 된다고 하지만, 80년대에는 미국의 수십 분의 1밖에 안 되지 않았다. 한 마디로 중국의 군사비 증액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중국 군부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는데 어떻게 보시는가?
중국은 군부와 당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한국이나 미국과 다르다. 군부 안에도 당이 있고 당이 군을 절대적으로 통제한다. 군부가 당의 통제를 벗어나 독자적으로 군수산업과 관료들과 특수한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중국의 군사비 증가는 국력의 증강에 따른 것이다. 군사비가 증가한다고 군부의 영향력이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끝으로 박근혜 당선자에게 강조하시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말씀해달라.
한반도 문제를 푸는 열쇠는 한국이 쥐고 있다. 남북관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국의 새로운 도약은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는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남북관계는 거시적 시각에서 풀어야 할 것이다. 철학과 신념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박근혜가 당선된 것을 너무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박 당선자가 확고한 철학과 신념을 바탕으로 대북정책을 설계하고 실천한다면 남북관계에 새로운 문을 열 수 있다고 본다. 미·중 데탕트의 문을 연 사람은 미국 공화당의 닉슨 행정부였다. 소련과의 냉전을 종식시킨 당사자도 공화당의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였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보수 정권이기 때문에 국내외에 저항을 덜 받으면서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중국도 그랬던 것처럼 북한 역시 박정희식 개발 모델에 관심을 갖고 있다.
박 당선자가 거시적 시각에서 확고한 철학과 신념을 가지고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이루기 바란다. 흔들림 없기 바란다. 그 목표를 위해서는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유능한 사람들을 대담히 기용하기 바란다. 이는 대 탕평책을 실천하는 것이자 북한에도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기원한다. 그리고 그 성공의 열쇠는 남북관계에 있다는 점도 거듭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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