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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핵무장, 한일관계 파탄'? 동북아 평화 열쇠 쥔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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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日 핵무장, 한일관계 파탄'? 동북아 평화 열쇠 쥔 자는…

[새 정부에 권함] <일본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는가?> 문정인에게 듣다

지난해 12월 16일 치러진 일본 총선에서 자민당이 3년 만에 정권을 탈환했다. 자민당은 중의원 480석 중 294석을 차지, 여당인 민주당에 압승을 거뒀다. 자민당의 승리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2007년 이후 6년 만에 총리직에 복귀했다.

그런데 재등장한 아베 정권에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아베와 그를 둘러싼 일본의 새로운 지도부가 연일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며 동북아를 긴장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아베는 일본의 재무장화를 막고 있는 이른바 '평화헌법'을 개정하여 일본을 '정상국가'로 만들겠다고 여러 번 공언한 바 있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과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비롯해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에 대해서도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아베 정권의 이러한 모습을 보며 일본 전체가 우경화가 되어가고 있다는 걱정이 많지만 일각에서는 섣부른 추측이라는 관측도 있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문정인 교수와 고려대학교 일어일문학과 서승원 교수는 일본의 대표적 지식인, 전략가 14명과의 연쇄 인터뷰를 엮은 <일본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는가?> 라는 저서를 통해 일본 우경화라는 판단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면서 보다 냉정하게 일본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특히 저자들은 1990년대 거품경제가 꺼지고 난 이후 일본의 현재 무기력한 모습이 동북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진단하면서 중국의 부상에 따른 "G2시대의 개막으로 동북아에 드리워진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최대의 도전"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지역에서 미중이 충돌해서도 안 되고, 반면 미중의 담합으로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어서도 안 된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은 과거사, 영토 문제 등을 이유로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며 국내정치의 이득을 취하는 적대적 제휴에만 골몰할 것이 아니라, G2 시대에 한일 양국의 활로를 찾기 위해 대승적 협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동북아 질서를 마련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프레시안>은 책의 공동 저자인 문정인 교수와 인터뷰를 마련했다. 문 교수는 과거의 역사를 일본의 반성과 우리의 대승적인 관대함으로 극복하고, 향후 펼쳐질 동북아의 정세 변화에 양국이 적절히 대응할 필요가 있음을 주문했다. 해묵은 양국 간 갈등을 없앨 수는 없지만 최소화한 상태에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 교수는 이는 무엇보다 일본이 원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이다. 인터뷰는 박인규 <프레시안>대표가 진행했다. <편집자>

▲ <일본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는가?>의 저자 문정인 교수(왼쪽)와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오른쪽) ⓒ프레시안(최형락)

MB의 독도 방문, 한일관계 역대 최악으로

프레시안 : 지난 2010년 8월, 중국의 전략가들과의 인터뷰를 엮은 <중국의 내일을 묻다>를 놓고 <프레시안>과 인터뷰를 한 바 있다. 당시 '중국인의 눈으로 중국의 오늘과 내일을 말하게 한다'는 발상이 대단히 참신하고 야심 찬 기획이라는 평가가 많았었는데 2년 4개월 만에 일본 최고의 전략가 14명과의 대화를 담은 <일본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는가?>가 나왔다. 당초 예상보다는 출판이 좀 늦어진 것 같은데?

문정인 : 작년 여름에 사건이 좀 있지 않았나. 원래 2011년에 인터뷰를 시작해서 작년 3월쯤 거의 작업을 끝냈고 6월에 원고가 마무리됐다. 그런데 8월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면서 한일관계가 악화됐었다. 그래서 9월에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이즈미 하지메(伊豆見元), 다나카 히토시(田中均),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 등에게 추가 서면 인터뷰하느라고 늦어졌다.

프레시안 :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한일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줬다는 것인가?

문정인 : 그렇다. 커다란 영향을 줬다고 본다.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도 문제지만 "일본의 국제사회 리더십이 예전 같지 않다"든가, 특히 "일왕이 한국을 방문하려면 먼저 독립투사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등의 발언을 일본에서는 상당히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오코노기 교수같이 친(親)한적인 인사도 작년 8월 이 대통령의 행보와 발언 결과, 한일 관계가 1965년 수교(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으로 치달았다고 평가하더라.

오코노기 교수는 한일관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한국과 일본의 이른바 '민족파들' 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들 간의 적대적 제휴가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독도 문제 해결이 더 어려워졌다고도 평가하기도 했다. 한국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일본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과거 독도에 대해 모르거나 신경을 쓰지 않았던 일본 국민들이 독도 문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이제 조용한 외교로는 이 문제를 풀 수 없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프레시안 :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대해 <프레시안>도 비판적 기사를 쓰는 등 국내에서도 논란이 많았는데, 일본에서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듯하다.

문정인 : 독도 방문과 더불어 일왕에 대한 발언이 큰 파장을 가져온 것 같다. 일본은 여전히 천황을 받드는 사회 아닌가. 일왕이 방한 의사를 밝히지도 않았는데 사과 운운한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강상중 교수 같은 이는 이 발언 때문에 한국에 우호적인 일본의 진보 학자들까지도 한국에 등을 돌렸다고 한다.

이번 사건이 친(親)한적인 일본인들에게 더 큰 충격을 준 것 같더라. 이들은 이명박 정부를 친일적인 정부로 이해하고 6월까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11월에는 한일군수지원협정을 맺어 한일동맹을 준 동맹관계로 격상시킬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나. 그런데 이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고, 일본의 국제적 지도력을 폄하하는 동시에 일왕에 대해 그런 발언을 한 것에 대해 배신감까지 느끼는 것 같았다.

이는 오코노기 교수의 평가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에 따르면 65년 체제 이후 가장 긍정적인 시기는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渕恵三) 총리가 미래 파트너십 선언을 했을 때이고 가장 최악은 작년 8월 이후라는 것이다.

프레시안 : 2010년 출간된 <중국의 내일을 묻다>에 대한 중국의 반응은 어떤가?

문정인 : 최근 중국 절강(浙江)대학교에 갔더니 현지 학생 3명이 이 책의 중국어 번역판을 갖고 와서 서명을 해달라고 하더라. 좀 놀랐다. 중국 학계도 학파 간 교류가 별로 없는데 내 책이 경합 관계에 있는 칭화대 옌쉐퉁(閻學通)교수와 북경대 왕지쓰(王緝思) 교수는 물론 '천하세계론'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사회과학원의 자오팅양(趙汀陽) 교수와 같은 젊은 학자 등을 총망라하여 이들의 시각을 가감 없이 그리고 비교적 균형 잡힌 입장에서 소개해서 그런 것 아닌가 한다. 그래서인지 작년 7월 5일 북경에서 이 책의 중국어판 출판 기념회를 가졌는데 일부 언론에서도 보도되었지만 옌쉐통 교수가 "중국학자도 해내지 못하는 일을 문 교수가 해냈다"는 과분한 평을 하기도 했다. 북경대, 칭화대, 절강대 등 중국 여러 대학에서 교재로 쓰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출판협회는 이 책을 2012년 우수 번역도서로 선정하기도 했다.

프레시안 : 중국인들의 자기 인식에 이 책이 도움이 됐나 보다.

문정인 : 한국학자가 중국 대전략의 그림을 잘 그려줘서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하더라.

행동은 못하고 생각만 하는, 무기력한 일본

프레시안 : <일본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는가?>를 보고 제목이 참 시사적이라고 느꼈다. 지금 일본인들은 생각만 하고 행동을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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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는가> (문정인·서승원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펴냄) ⓒ삼성경제연구소
문정인
: 100퍼센트 동의한다. 일본이 무기력해진 데 대한 원인 분석은 잘하는데 처방과 행동에는 인색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또 하나 느낀 것은 일본의 석학들이 정치 지도자만 탓한다는 거다. 이게 일본의 한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레시안 : 이른바 '잃어버린 20년' 이후 일본이 무기력하다는 느낌이 있지 않나? 서문을 보면 그 20년을 반전시킬 동력이 없어 보였고 이유는 '정치리더십 부재'라고 했다. 왜 그러나?

문정인 : 정치체제의 균열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Japan as Number One" 이라는 일본의 기적을 가능케 한 것은 '55년 체제,' 즉 자민당 1당 지배구조라 할 수 있다. 이 체제 하에서 일본은 자민당을 중심으로 한 당과 국회, 관료, 그리고 재계, 이렇게 견고한 철의 삼각형을 구축해 일본 사회를 움직여나갔다. 여기서 기본 룰은 '점진적 조정'이었고 이를 통해 컨센서스(합의)를 만드는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합의를 구해서 나가는 것이다. '상호협의→점진적 조정→합의'라는 프로세스로 정책을 구축한다는 것이 일종의 관성이 되어 왔다. 이 과정에서 자민당 주요 계파의 보스들이 중추적 역할을 했다. 계파 정치가 파행을 최소화하고 정치적 안정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부터 커다란 변화가 왔다. 자민당 독주가 끝났고 계파 정치도 한계에 도달했다. 거품경제로 경제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관료에 대한 불신도 심화됐다. 게다가 정권 교체도 잦아졌다. 리더가 나올 수 있는 정치적 토양이 와해됐다고 보면 될 것이다. 여기에 시민들은 정치와 정치인들을 불신하기에 이르렀다. 서서히 침몰해가는 일본을 정치적 결단력으로 반전시키는 지도자가 없었던 것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그런 가능성을 보였는데 계속되지는 못했다.

프레시안 : 문제가 있긴 했지만 정치인-관료-재계로 이어지는 일본을 끌어가는 확실한 힘이 없어져서 그랬다는 것인가?

문정인 : 구심점이 없어진 것이다. 고이즈미가 총리를 했을 때 이른바 '고이즈미의 아이들(children)'이 움직였고 민주당이 처음으로 집권했을 때만 해도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를 중심으로 한 세력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구심점이 없어 보인다. 아베 신조 새 총리가 그런 세력을 이끌고 새로운 정치력을 보일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프레시안 : 근본적 변화를 꾀할 수 있는 힘도, 사람도 없다는 말인가?

문정인 : 과거 일본의 기적을 이끌어왔던 3개의 축, 즉 정계·관료·재계 모두 와해된 느낌이다. 여기에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상황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이오키베 마코토(五百旗頭真)가 이야기한 것이 생각난다. "일본은 신토사상이 저변에 있다. 이것의 핵심은 '윤회'다. 윤회 과정에서 세상이 어려워지고 힘들어지는 것이 '말법(末法)'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힘든 과정을 다 겪어서 또다시 새롭게 태어난다는 '묘법(妙法)사상'이라는 것이 있다. 묘법사상은 '말법의 진흙 구덩이 속에서 밝은 연꽃이 핀다'는 건데 현재 일본은 말법의 끝이고 곧 묘법의 시작이 곧 올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하기도 했다. 이는 현재의 위기 국면에서 새로운 리더십이 나타날 수 있다는 걸 시사한다.

프레시안 : 2009년 일본 민주당 정권이 출범하면서 새로운 노선을 추구할 것으로 기대됐는데.

문정인 : 4년 이상은 갈 것이라고 했는데 그 전에 무너졌다. 민주당 자체의 동질성이 약하지 않았나 본다. 민주당에는 오자와,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같은 사람도 있지만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같은 우파도 있다. 어떤 점에서 민주당은 '반 자민당' 슬로건 하에 뭉친 '망라형 정당'이라 하겠다. '반 자민당 친 오자와'의 정치적 프레임으로 만든 정당이라서 내적 응집력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전 총리가 소비세(부가세) 인상한다고 하니 하토야마가 탈당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하토야마가 정치적 기반이 확실한 가운데 요시다 독트린에서 벗어나 균형외교를 통해서 중국과 관계 개선을 하고 소위 동아시아 공동체 외교를 한다고 하면 좋았을 텐데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비전을 내놓았다. 그것이 결국 일본 주류사회의 배척을 받았고 그러면서 지지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후텐마(普天間) 기지 이전 문제만 해도 그렇다. 원래는 오키나와(沖繩) 주민들 의견을 수용해서 미군기지 철수시키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나 미국에서 강력하게 반대하니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노다가 집권하고 나서는 입장을 바꿨다. 민주당이 중심을 못 잡고 갈팡질팡했던 거다. 이런 상태에서 리더십이 생길 수가 없다. 리더십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탈원전 바람

프레시안 :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다. 직접 일본에 가보니 이 지진이 일본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였나?

▲ 문정인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문정인
: 치명적 자연재해였다. 이오키베 마코토 같은 이는 이 대지진을 633년 나당연합군에 의한 백강전투 패배, 페리 제독의 흑선 내항, 그리고 태평양 전쟁에서의 패배와 견줄 정도의 대사건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 정도 충격이 컸다. '안전 일본'의 신화를 깨고 일본 사회를 더욱 암울하게 했다. 일본 특유의 숙명론(fatalism)이 심화되는 것 같다. 그래서 반(反) 핵발전소와 대체에너지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핵발전소와 관련된 기득권 세력을 이길 수 있느냐는 체념주의도 있다. 기득권의 저항이 강하기 때문에 반 핵발전소와 대체에너지로 전환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 일본 황실도 원자력과 관련한 이권이 있다는데?

문정인 :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아사히신문>을 필두로 '반 핵발전소' 분위기를 이끌어 나갔지만 사정은 그리 녹록지 않은 것 같다. 핵발전소 유지론자 세력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핵발전소 안전성을 확보해서 계속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도쿄전력 편을 들어주는 입장이다. 탈 핵발전소 혁명이 쉽게 안 될 듯하다.

프레시안 : 대중들도 체념주의에 젖어 있나?

문정인 : 이중적인 것 같다. 한편으로는 탈 핵발전소를 찬성하는데 막상 전력이 충분하지 않아서 불편해지니까 핵발전소의 안전성 확보해서 원전 존속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반 핵발전소가 대세인 듯하다. 우파 정치인 하시모토 도오루(橋下徹)와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가 연합했는데 하시모토는 탈 핵발전소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정상국가=재무장=군국주의화 등식 깨야

프레시안 : 외부에서 보는 일본은 우경화로 가고 있다. 그러나 이번 책을 보면 일본 내부의 전략가들은 '우경화는 아니다, 평화헌법을 안 고칠 것이다'라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일본이 우경화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일본 지식인의 반응은 어떤가?

문정인 : 지난 12월 총선에서 자민당이 집권했다. 자민당 당선인 90퍼센트가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집단 자위권 행사에 찬성한다고 보도됐다. 또 아베 총리는 매년 2월 22일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전국 수준의 행사로 격상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내가 인터뷰한 14명의 지식인들 대부분은, 심지어 보수적 지식인들까지도 평화헌법 개정이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선거 이후인 12월 28일 <마이니치신문>이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 조사에서 평화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비율이 36퍼센트로 집계됐다. 반대가 51퍼센트였다.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는 압도적으로 반대가 많은 것이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 경우에도 반대하는 국민들이 더 많다. 자민당 의원들이 보수 성향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일본의 저변에는 평화헌법과 요시다 독트린에 대한 선호도 강하게 깔려 있는 것 같았다. <아사히신문>을 비롯해서 다른 곳의 여론조사를 봐도 그렇다. 이는 아베 총리가 국내정치적 이유 때문에 우경화를 진행하고 그 핵심이 평화헌법 개정과 집단자위권 행사, 군사력 강화 등의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반대 세력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이번 총선에서 외교, 안보 정책을 이유로 자민당을 지지했다는 유권자는 6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다.

더구나 아베가 공약을 지켜 개헌을 하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한다고 하자. 한국, 중국의 열화 같은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은가. 심지어는 미국까지도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이런 외압을 무시하고 아베 내각이 일방주의 노선을 취할 수 있을까. 두고 볼일이다. 국내 정치적 계산 때문에 엄청난 국제적 고립을 감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프레시안 : 이 책의 서문을 보면 일본이 가야 할 길로 '동아시아공동체', '미들파워'보다는 미일동맹에 기초한 정상국가로의 지향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보시는 것 같은데?

문정인 : 정상국가 개념은 제도주의적 시각과 기능적 시각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제도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평화헌법 9조 2항을 바꿔서 자위대를 정규군으로 재편하는 것을 정상국가라 할 수 있다. 패전국 일본이 포기했던 주권적 권한의 일부를 제도적으로 정상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반면 평화헌법 개정 없이도 정상국가가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일본이 평화헌법을 유지하는 가운데 국제사회에서 정상적인 국가로서의 지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소프트파워 능력을 함양시키면서 유엔 평화유지군(PKO) 파병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 국제사회에 기능적으로 공헌하는 국가가 바로 이것이다. 1990~91년 걸프전 당시 일본이 150~200억 달러의 엄청난 자금을 내고도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자 당시 자민당 부간사장이었던 오자와 이치로 의원이 그러한 국제공헌을 통해 일본이 '보통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기능적 정상국가론은 바로 이 시각에 기초한다.

아베를 포함해서 보수적인 인사들은 평화헌법을 바꿔서 정규군을 보유하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해야 정상국가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소에야 요시히데(添谷芳秀) 교수는 평화헌법을 유지하면서 일본이 중간 국가(미들파워)의 포지션으로 국제사회 및 지역질서에 기여하여 존경을 받는 것이 정상국가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한 가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일본의 '정상국가=일본의 재무장화=군국주의화' 라는 등식이 있는데 이는 현재 일본의 현실과 다르다는 점이다. 보통국가가 재무장을 의미하지만 재무장이 곧 군국주의화는 아니라는 점을 일본 지식인들은 대단히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 민주화된 일본에서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본의 군국주의는 1930년대 이른바 '소와 유신'을 거치면서 군부가 정치권력을 거머쥐고 만주사변과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천황의 미명 하에 군부가 전체주의 독재를 감행하던 것이 일본의 군국주의다. 현재 일본 사회에서 이런 군국주의의 부활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고쿠분(國分良成) 교수가 지적하고 있듯이 오히려 중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정상 국가와 재무장, 군국주의화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 외교의 중심은 아시아? 미국 없는 일본은 상상할 수 없다

프레시안 : 북한이 핵무장을 하면 한국, 대만, 일본 등 핵무장이 도미노처럼 이어질 것이라는 가설을 많이 이야기한다. 물론 일본 지식인들은 일본이 핵무장 하지는 않을 거라고 한다. 실제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 문정인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문정인
: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물어봤다. 야마구치 노보루(山口昇) 장군이 말하기를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본인도 군인이지만 찬성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왜냐하면 일본이 자체 핵무장을 한다는 것은 미일 동맹의 해체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일 동맹 없는 일본을 국민들이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을지가 문제라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양국이 미일원자력협정을 맺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미국 양해 하에 사용 후 핵을 재처리하고 있다. 보유 플루토늄도 40톤 이상이다. 미국이 일본을 믿었기 때문에 재처리를 허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일본이 독자적으로 핵무장 하겠다는 건 미일관계의 종결은 물론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자처하는 행위다. 일본이 자금 능력도 있고 기술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제약들 때문에 어렵지 않겠냐는 것이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한국의 핵무장도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만약 한국이 핵무장을 하면 한미동맹을 깨고 일본의 핵무장을 불러올 가능성이 큰데 한미동맹 파탄을 감당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야마구치 장군은 핵 무장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프레시안 : 일본에서 북핵 문제를 어느 정도의 위상으로 바라보고 있나?

문정인 : 이즈미 하지메, 다나카 히토시와의 인터뷰 핵심이 북핵 문제였다. 두 사람 모두 일본이 이제는 북한 문제를 전략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의미다. 일본의 외교 및 국가 안보 정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핵 문제이기 때문에 납치 일본인 문제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납치 일본인의 문제가 최우선이고 북핵 문제는 뒷전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바꿔야 하는데 정치인들은 그렇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결국 북핵 문제가 납치 문제의 포로가 됐다는 것이 이 두 사람의 공통적인 지적이었다.

프레시안 : 납치 문제에 갇혀서 북핵에 대한 이니셔티브를 취할 수가 없는 상태라는, 교착상태를 풀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인가?

문정인 : 그렇게 본다. 일본은 6자회담에서조차 북핵 문제보다는 납치 일본인 문제에 더 역점을 두지 않았나.

프레시안 : 미일 동맹은 어떻게 될 것이라고 보나?

문정인 : 미 CIA에서 5년마다 주기적으로 세계 정세에 대한 미래 예측 평가서를 발간하는데 동아시아 자문역으로 2007년 봄 워싱턴 회의에 참석했다. 자문역들에게 주어진 질문은 "미국 없는 동북아가 가능한가"라는 것이었다. 이 질문에 중국 참석자는 "가능하다"고 대답했고, 나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답한 바 있다. 당시 일본인 자문역은 참석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질문을 도쿄 방문 시 당시 후쿠다 내각에서 방위청 장관을 하던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에게 물어봤더니 "미국 없는 일본은 생각할 수 없다" 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질문을 소에야 요시히데, 후나바시 요이치에게도 물어봤는데 그들도 같은 답변을 했다.

후나바시 요이치는 포르투갈과 영국은 600년간 동맹을 유지했고 미국과 영국은 100년 동맹했다면서 미국과의 동맹이 최소 50년은 더 가지 않겠냐고 대답하더라. 그만큼 미국에 거는 기대가 많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 민주당의 전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일본 외교의 중심을 동북아로 옮기겠다고 말하지 않았나?

문정인 : 당시 하토야마 전 총리의 동아시아 공동체론은 실체가 없었다.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당시 외상이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대담하면서 후텐마 기지 반환을 요청했지만 미국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처음에는 아주 강하게 보였지만 결국 용두사미로 끝났다.

프레시안 : 책 내용 중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균형자론'에 대한 일본 측의 불만이 나왔다. 중국과 일본이 대립할 경우 한국이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는 우리 측 구상에 대해 일본이 '어떻게 한국이 일중간 중재를 하냐, 일본 편을 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내용이었다. 한일 관계에 대한 양측의 인식의 격차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또 하나는 노무현-김대중의 대북정책에 대해 일본 전략가들은 '유화정책'이라는 표현을 쓰던데 표현이 좀 새롭게 보였다.

문정인 : 유화정책이란 통상 약한 나라가 전쟁을 피하기 위해 강한 나라에 굴복함으로써 평화를 구걸하는 것을 말하는데 일본이 그 용어를 쓴 건 노 대통령의 정책을 잘못 이해한 데서 온 것 같다. 노 대통령의 균형자론을 정확하게 본 이는 이즈미 하지메였다. 동북아 균형자론이 나왔을 당시, <조선일보>를 비롯한 국내 보수 언론들은 미중간 대립에서 균형자 역할을 하는 것으로 몰아갔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노 대통령은 중장기적으로 미국은 언젠가 동북아에서 떠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남은 강대국이 중국과 일본인데 양자의 갈등을 우리가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말리려면 우리가 힘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균형자론을 이야기 한 것이다. 그런데 노 대통령도 이 '균형자'라는 용어를 더는 사용하지 않았다.

중국과 일본이 대립할 때, 한국이 일본 편을 들어야 한다는 것은 일본의 정서가 그렇다. 일본 사람들은 우리를 상당히 가깝게 생각한다. 그들 논리에 따르면 민주주의-시장경제 체제라는 공동의 가치 시각에서 볼 때 한국이 일본과 같이 가는 것이 맞지 않느냐는 것이다. 일본 학자들은 한국이 중국 쪽으로 가려는 움직임에 대해 생각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고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한국, 당연히 우리 편 아니야?

프레시안 : 중국과 일본의 문제가 생기면 한국이 일본 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보편적인가?

문정인 : 일본에서 제일 중요한 건 미·일 동맹이고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 때문에 미일 동맹이 더 견고해지고 있다고 본다. 전략적 이해관계, 공동의 보편적 가치와 더불어 일본 사람들은 한국과 인적 교류를 통해 많은 네트워크를 쌓았지 않느냐. 여기에 한류와 90년대 후반 일본 문화 수입까지 이 모든 정황으로 보아 한국은 자연히 일본과 같이 가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일본인들은 중국이 공산 독재국가, 핵무기를 갖고 있는 비(非)민주주의 국가라고 인식하고 있다. 시장경제가 완전하지 않고 인권도 안 지키고 북한을 두둔하는 국가다. 따라서 당연히 한국은 일본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이는 일본 지식인들의 공통적인 인식이었다.

프레시안 : 그런데 한국에서는 중국이 여러 문제가 있지만 미국 패권의 균형추로서 중국에 대한 기대가 있지 않나?

문정인 : 우리가 일본과 가까워지기 힘든 이유는 과거 역사에 대한 집단적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지배와 굴종의 관계에 대한 기억이다. 독도를 둘러싼 영유권 문제도 있고. 그래서 한일간 군사적 충돌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인식도 많이 깔려 있다. 정체성, 과거사, 영토 등의 문제들이 일본이 강조하는 전략적 이해, 공동의 보편 가치 등의 것보다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프레시안 : 일본 지식인들은 경우에 따라 일본이 중국과 무력 충돌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문정인 : 그건 아닌 것 같다. 야마구치 노보루, 후나바시 요이치, 고쿠분 료세이 이 세 전문가들에게 이 점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어보았다.

우선 야마구치 노보루는 군 장성 출신인데도 중국 위협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최근 훗카이도(北海道)에 배치되어 있던 자위대 병력들을 남쪽으로 재배치하는 것에 대해 중국을 겨냥한 것 아니냐고 물어봤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대신 그는 현대전에서 신속하게 움직이는 것이 필요한데 이를 훈련하기 위해서는 오키나와 인근 남쪽이 더 나은 환경이라고 말했다. 또 소련의 위협이 없어졌는데 굳이 훗카이도에 대규모 군사력을 배치할 이유가 뭐가 있냐는 입장이었다.

▲ 문정인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고쿠분 료세이는 중국의 군사적·경제적 부상이 일본의 미래를 위협한다고 보지 않고 오히려 중국 공산당이 실패해서 중국에 엄청난 혼란이 오고 그 과정에서 예측하지 못한 대외 행태가 나왔을 때 지역 정세를 불안하게 만들고 일본을 위협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중국의 성공적 부상이 아니라 중국의 실패가 일본에 위협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프레시안 : 중국 전문가 고쿠분 방위대학교 총장은 지금의 중국이 1930년대 일본과 비슷하다는 지적을 하던데, 이 말은 중국의 군국주의화를 우려한다는 것인가?

문정인 : 그렇다. 당이 군부를 장악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할 경우 중국 인민해방군이 공격적 대외 행태를 벌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발적 전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후나바시 요이치는 통일된 한반도가 민족주의로 무장했을 때 걱정이 된다고 하더라. 일본의 최대 안보 위협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그는 일본이 한국을 적대시하면 중국보다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더라. 이것은 최근 한국의 경제적 부상, 정치 사회적 역동성, 그리고 강력한 민족주의 정서 등에 대한 보이지 않는 위기의식에서 오는 것 같다. 물론 그의 논지는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한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프레시안 : 고쿠분 총장은 '2000년에는 일본의 GDP가 중국의 4배였는데 지금은 역전됐다'고 중국의 눈부신 경제 성장을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국과 일본 기업이 중국에 세금을 가장 많이 납부하고 있다. 즉 중국 기업, 중국인의 탈세가 심하다. 중국의 국방비 지출보다 공안 지출이 더 많다. 다시 말해 경찰력으로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이 당면한 최대 과제는 국가적 비전이 없다는 것이다'라는 식으로 중국에 대해 어두운 면을 많이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민주화, 또는 정치 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반면 마틴 자크 같은 사람은 중국이 나름 중국식 민주주의를 하고 있다며 긍정적 평가를 한다. 중국에 대한 엇갈리는 평가, 어떻게 봐야 하나?

문정인 : 고쿠분은 80년대 중반부터 중국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는 공산당 일당 독재가 지속되는 중국의 대외 행태는 예측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주변 국가에 위협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 입장에서는 시민들 요구를 받아들이면 1당 체제가 금방 무너지고, 안 받으면 저항이 많아지는 문제가 있다.

중국 공산당이 정치 개혁을 표방하고 있지만 아직 미진하다는 것이다. 더 과감하게 정치 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진핑(習近平)에게 필요한 것은 지속 가능한 성장과 양극화의 극복 그리고 부정부패 척결이지만 부정부패 근절하려고 하다가 잘못하면 중국 공산당을 뿌리째 뽑아버릴 수도 있다. 공산당 간부 중에 부패에 연루된 자가 상당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내부의 위협이다. 농민공이 3억 명 이상이 되는 상황이다. 농민공이란 도시에도 안주할 수 없고 그렇다고 농촌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들이 사회 불안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여기에 치안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티베트, 위구르 등의 분리 독립 운동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국내 치안에 들어가는 예산이 국방 예산보다 더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쿠분은 시진핑이 정치 개혁을 어영부영 진행하면 오히려 공산당 체제의 침몰을 앞당길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중국 공산당 당원의 구성 분포를 보면 노동자는 채 9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공산당은 명색이 노동자의 당인데 이 모양이다. 반면 당원의 다수가 관료와 자영업자 및 자본가들이다. 중국 공산당이 '자본주의 관료당'이 되어버린 것이다. 정통성의 위기를 피하기 어렵다고 본다.

프레시안 : 중국의 장래에 대해서는 고쿠분과 같은 냉철한 시각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일본의 장래에 대해 일본 내에서는 어떻게 보나?

문정인 : 다분히 비관적이다. 혁신정신, 도전정신이 없어진 동시에 저출산, 고령화의 악령에 시달리는 일본 사회에서 희망찬 미래를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고이즈미 전 총리 밑에서 개혁작업을 담당했던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蔵)는 현재 일본에 존재하고 있는 기득권 구조를 혁파해서 경제를 새롭게 개혁해야만 활로를 찾을 수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다케나카는 '그래도 아직 일본이 세계 3위 경제 아니냐. 일본에 축적된 지식도 많고 기업인, 과학자 기술자도 많다. 이것을 국가가 잘 조합해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주면 된다'고 처방하기도 한다. 이를 위한 필수적 요건을 고이즈미 같은 정치 리더십이 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오키베는 앞서 지적한 대로 말법, 묘법사상을 근거로 과거에도 그랬듯이 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다.

박근혜와 아베, 국내 정치의 포로에서 벗어나 대승적 결단 내려야

프레시안 : 이 책을 출간한 밑바탕에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겠다는 문제의식이 있을 것이다. 서문에 G2시대의 개막으로 동북아에 드리워진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최대의 도전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지역에서 미중이 충돌해서도 안 되고, 반면 미중의 담합으로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서도 안 된다고 경고했다.

문정인 : 2차 세계대전 당시 유행했던 지정학적 결정 요인이 요즘 다시 되돌아온 것 같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동북아가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의 장이 되고 있는 듯하다. 지금은 동북아를 제패하면 세계를 제패하는 형국이 됐다는 말이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 속에 한국과 일본이 협력하지 않으면 새롭게 전개되는 지정학적인 격량에 휩쓸릴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양국 간 협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한일 간에는 갈등이 상존 할 수밖에 없다. 또 한일 양국에서 배타적 민족주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결국 한일관계를 정치화하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현명한 정치인이라면 '거시적으로 한일은 협력해야 한다, 한일 간에는 갈등과 협력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갈등을 최소화하고 협력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 박근혜 대통령당선인(왼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오른쪽) ⓒ연합뉴스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일본은 과거의 역사적 과오를 겸허히 수용하고 그에 따른 응분의 조치를 취하고 한국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가해자에 대해 관대함을 보여주는 대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이 과정과 함께 젊은이들 간의 교류, 협력을 극대화해야 한다. 동북아를 평화의 공간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또 한일이 협력하면 미국이나 중국도 함부로 하지 못하게 된다. 과거 문제를 잊지는 말되 포로가 되어서도 안 된다는 말이다. 이를 딛고 일어나 미래로 가야 한다.

박근혜 당선인과 아베 신조 신임 총리 모두 김대중-오부치 한일 미래 파트너십 선언문을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걸 읽어 보면 왜 한국과 일본이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과거는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알 수 있다.

프레시안 : 박근혜 당선인과 아베 신조 총리, 잘할 것으로 보나?

문정인 : 쉽지는 않을 거다. 둘 다 국내 정치의 포로가 될 확률이 높다. 둘 중 누구든 먼저 총대 메고 '우리 잘해봅시다' 하고 나서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민족주의, 과거사, 영토 문제를 국내 정치용으로 오·남용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언론도 한일관계를 선정적으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시민사회도 언론과 더불어 민족주의 정서로 한일관계를 정치화시키는 것을 감시해야 할 필요도 있다.

프레시안 : 오코노기 마사오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 중에 한일 경제가 대등해지면서 10~15년 후에 경제가 통합될 것이라고 말하던데 이것이 한일관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까?

문정인 : 우선 한일 경제는 상당히 통합되어 있다. FTA가 없더라도 생산 네트워크를 통해 통합되어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의 부상이다. 만약 현재 중국의 성장 속도가 이대로 유지된다면 2030년에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블랙홀에 다 휩쓸려 들어갈 것이다. 그렇지 않으려면 한일이 기술 협력을 포함해 다방면의 협력을 해야 한다. 한일은 중국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큰 틀에서 한일협력에 대한 진지한 사고가 필요할 것 같다.

문정인 : 와다 하루키가 '원교근공'(遠交近攻) 이라며 일본이 주변 국가와는 잘 못 지내고 먼 나라랑 잘 지내는데 이런 바보 같은 짓이 없다고 비난했다. 우리도 주변 국가와 잘 지내야 한다. 왜 우리가 각을 세워야 하나? 과거사 문제가 있지만 가깝게 더불어 지내야 우리의 평화와 번영이 담보된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존, 번영, 위상을 위해서는 감정을 자제하고 주변국들과 좋은 선린 관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그럼 남북관계부터 먼저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문정인 : 물론 시작은 남북관계다. 남북관계 풀리면 현재와 같은 기형적인 한미 동맹이 정상적인 동맹으로 변할 수 있다. 모든 것을 미국에 의존하는 기형적 동맹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도 우리에게 많은 요구를 못하게 되고 중국과도 사이가 좋아질 수 있다.

중국 입장에서는 우리와 관계가 좋아지면 북한과 전략적 유대를 심화할 이유가 없다. 우리 입장에서는 북한과 중국으로부터의 위협이 없어지고 일본, 미국과 잘 지낼 수 있다. 이게 외교이고 국민이 원하는 것 아닌가? 이것을 이루기 위한 시발점은 바로 남북관계다.

그런데 북한을 단순히 불량 국가,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면 남북 간 긴장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러면 미국에 대한 군사적 의존은 강화된다. 미국이 공짜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지는 않는다. 미국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는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서해가 새로운 긴장의 바다가 된다. 그래서 우리가 얻은 것이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하면서 일본의 우경화를 섣불리 이야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아베 정권이 출범했다고 해서 일본 전체가 우경화된 것은 아니다. 평화헌법 개정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여론 조사 결과를 봐도 우경화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은 상황주의 나라다. 상황에 따라 몰려간다. 일본은 안에서 혁명이나 개혁을 하기 힘들다. 이른바 '외압'으로 변하는 곳이다. 따라서 일본의 외부에서 일본이 우경화됐다고 규정하면 일본 전체는 상황논리에 따라서 더 우경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언론이 좀 더 냉정하게 일본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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