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이후에 입사한 KBS 기자 50여 명은 '방송의 날'인 3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2층 민주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BS 사태를 바라보는 젊은 기자들의 결의'이라는 성명서를 낭독했다.
이날 성명에 이름을 같이 올린 젊은 기자들은 170여명. 이들은 2000년 이후 입사자의 70% 수준이며 2004년 이후 입사자들 가운데서는 90% 이상이 동참하고 있다고 밝혔다.
"KBS 노조는 조합원의 총의를 수렴하라"
이들은 KBS 기자 출신인 이병순 사장을 '이병순 선배'라고 지칭하면서 "정치권에 몸을 담은 것도 아니고 도덕적으로 큰 하자가 있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며 "그럼에도 이병순 선배를 신임 사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성명에서 "독나무에서 열리는 과실은 그 자체가 하나의 독일 뿐"이라며 "이병순 선배는 지난 한달간 벌여졌던 일련의 과정이 현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 음모'의 소산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자신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KBS 선배로서 부끄럽지 않느냐"고 규탄했다. 또 친정부 성향 KBS 이사들에 대해서도 "유재천 이사장을 비롯한 6인의 어용 이사들은 하루 빨리 이사직에서 물러나 당신들의 인생에 있어 가장 수치스럽게 기록될 시기를 단축하기를 충고한다"고 했다.
이들은 '사전 게이트 키핑 강화', '규제 강화', '일부 프로그램 존폐 검토'등을 언급한 이병순 사장의 취임사를 두고 "사장의 이런 발언은 취재제작의 자율성이 보장돼야 할 보도본부 기자들에게는 치명적인 발언"이라며 "무엇보다 이런 발언은 신뢰도 1위, 영향력 1위의 KBS를 헐뜯기 위해 수구언론이 집요하게 설파해온 주장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병순 사장은 낙하산 사장이 아니다"라고 규정한 KBS 노동조합 집행부에 대해 "신임 사장 역시 그동안 노조 지도부가 반대해왔던 낙하산 사장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노동조합은 조합원의 뜻을 받아들여 하루 빨리 노조가 조합원의 총의를 수렴할 수 있는 논의의 장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또 보도본부 선배들에 대해서도 "오늘 우리는 어떤 정치적 견해나 목적을 위해 나선 것이 아니다"라며 "역사와 국민앞에 부끄럽지 않은 공영방송 KBS 기자로서 자존을 지키는 길에 동참해줄 것을 부탁드린다"고 촉구했다.
"보도본부의 패배주의, 받아들일 수 없다"
이날 기자회견은 젊은 기자들이 모인 자리 답게 웃음과 활기가 넘쳤다. 이날 기자회견과 성명은 입사 4~5년차 기자들이 중심이 되어 뜻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를 본 심인보 기자는 "선배들은 숟가락만 하나 얹었다"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끌어내기도 했다.
이날 기자회견 참석자 가운데 최고참 기자로 2001년에 입사한 정윤섭 기자는 "수습기자 딱지를 이제 막 뗀 기자도 나와서 이야기 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회한이 든다. 왜 선배들이 진작에 이런 사태를 막아주지 못했나 부끄럽고 죄스럽고 미안하다"고 토로하면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끝까지 투쟁하겠다. 선배들이 함께 해 다수가 되어 이끌어 가겠다"고 밝혔다. 또 이병도 기자도 "선배들이 숟가락만 하나 얹은 것이 맞다"며 "선배들은 후배들이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또 이날 후배기자들 사이에서는 KBS 선배들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이재석 기자는 "지금 보도본부 내에는 자조섞인 패배주의가 널리 퍼져있다. '이미 게임은 끝나지 않았느냐,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한다"며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백번 양보해서 설령 지금 단기간에 가시적인 효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오늘의 다짐과 결의는 앞으로의 투쟁에서 좋은 밑거름이자 선례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고라나 디씨인사이드를 보라. 외부에서는 'KBS인들이 바짝 엎드려있다', '준지식인들이 아무 소리 못하고 있다'고 본다"며 "오늘의 자리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보여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촬영기자인 신봉승 기자도 "촛불시위를 취재하다보니 5분 인터뷰를 따려면 30분을 설득해야 하더라"면서 "말로는 '국민의 방송'이라고 하지만 국민의 소리를 대변하지 못하면 다수 국민들은 등을 돌리겠구나하고 느꼈다"고 했다. 그는 지난 촛불시위을 취재하다 전경에게 폭행을 당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앞으로는 경찰이 아닌 국민들이 던지는 따가운 시선을 맞으려니 더욱 겁이났다"며 "그러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김연주 기자는 "우리가 입사할 때 <미디어포커스>나 <시사기획 쌈>과 같은 정권에 비판적이고 사실을 공정하게 보도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KBS 입사를 자랑스럽게 여겼었다"며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오게됐다. 우리의 자존심을 지켜낼 수 있는 투쟁을 했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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