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 프로그램을 통해 인기를 얻는 아나운서가 늘면서 아나운서와 연예인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미인대회 출전, 화보 촬영, 재벌가와의 결혼 등의 이슈와 맞물리면서 아나운서의 '연예인화'는 가속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KBS 아나운서협회장을 거친 후 숙명여대에서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강성곤 KBS 아나운서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급속하게 '연성화'되고 있는 최근 아나운서계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나섰다.
그는 1985년 공채 11기로 KBS에 입사했으며, '문화탐험 오늘' 'KBS 음악실' '문화 한마당' 등을 진행한 중견 아나운서. 2004~2005년에는 독일 베를린자유대학 정치사회언론연구소에서 연구원을 역임했다.
강 아나운서는 '아나운서 정체성 논란'의 근본 원인에 대해 "아나운서를 통제할 수 있는 조직의 데스크권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프로그램 제작진의 의도대로 끌려가다 보니 능력과 경력에 맞춰 필요한 곳에 아나운서를 투입해야 하는 아나운서실 조직의 목소리가 갈수록 작아지고 있다는 것.
그는 "연예 오락프로그램이 젊은 여자 아나운서만을 원하게 되면서, 아나운서의 출연이 연예인 캐스팅처럼 일회성으로 돼버렸다"면서 "결국 노련하고 신뢰감 있는 아나운서가 프로그램을 맡지 못하게 돼 궁극적으로 아나운서의 직업적 전문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렇게 신참 아나운서가 2~3년 만에 갑자기 스타가 되면 광고 등의 유혹에 노출될 수밖에 없고, 아나운서 조직도 이를 통제하기 어렵게 된다"고 설명했다.
아나운서들이 프로그램 제작진의 의사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이유와 관련해서는 "우리가 신참 아나운서는 곤란하다고 하면 제작진은 '그렇다면 프리랜서나 연예인을 쓸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제작비가 올라간다'고 말하고 또 시청률 등의 이유를 내세우기도 한다"고 말했다. 아나운서들이 '조직의 논리'를 내세워 제작진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
아나운서 출신 프리랜서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아나운서 출신이라고 해서 프리랜서를 '아나운서'라고 부르면 안된다"며 "그들은 아나운서라는 이름을 통해서 얻는 신뢰도를 이용해 보험회사 CF 등에서 엄청난 출연료를 챙기고 있다"고 꼬집었다.
강 아나운서는 프리랜서들의 KBS 1TV 출연도 문제라고 주장했다.
"공영방송의 이념을 지키는 차원에서 1TV는 광고를 받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정작 일부 프로그램에서는 상업적 광고 이미지로 도배된 이들이 '아나운서'라는 이름 하에 출연하고 있다. CF를 통해 큰 금액을 받는 이들이 어떻게 공영방송 이미지와 어울릴 수 있나. 그들이 프로그램에서 서민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어 아나운서 직종 자체가 젊은 여자가 하는 일로만 여겨진다는 점도 지적했다. 실력 있는 남자 아나운서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남자 아나운서를 지원하는 이도 줄어들고 있다는 것.
그는 "프로그램 연성화로 인해 남자 아나운서들이 반대로 성차별을 당하는 셈"이라며 "프로그램 제작진은 젊은 여자 아나운서를 설정에 의한 보조 연출자 또는 눈요기감으로만 프로그램에 출연시키고 있어 이런 이미지가 심화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그는 "방송사 CEO가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고, 진정으로 건강한 공영방송을 만들겠다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미디어 관련 시민단체의 도움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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