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민 차관의 지난 29일 발언은 두 달 가까이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는 YTN 노조를 겨냥한 것으로 구 사장을 외곽 지원하기 위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정작 YTN 구성원은 신 차관의 발언을 계기로 구 사장을 '민영화도 막지 못하는 낙하산 사장', '민영화를 위한 낙하산 사장'으로 불신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낙하산이 정권의 뜻 거스를 수 있나"
취임 직후부터 구본홍 사장은 사내에 'YTN 민영화 위기론'을 줄곧 제기하면서 "YTN 민영화를 온몸으로 막겠다"고 공언해 왔다. 지난 4일 노조의 출근 저지 투쟁을 피해 '기습 출근' 했을 때도 "사장실에서 YTN 민영화 대책 간부 회의를 열겠다"는 명분을 댔다. 최근엔 "대주주 이사와 사적으로 만나 (YTN 주식을 팔 생각이 없다는) 긍정적 답변을 얻었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신 차관이 "이미 YTN 주식 매각을 시작했다"고 발언하면서 구 사장의 이러한 발언은 신뢰를 잃게 됐다. 노종면 언론노조 YTN 지부장은 "지분이 팔릴 것이라고 호들갑 떨면서 주주사 이사들 만나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다고 해놓고 결국 지분이 팔리는 것을 막지 못한 구 씨는 '온몸으로 막겠다'는 말의 허구를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구 사장은 신재민 차관 발언 이후 '민영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별다른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9일 구 사장이 주재한 실·국장 회의에서도 '민영화 반대' 의견이 주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고, 구 사장은 이날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려 "신재민 차관을 만나 설득하고 돌려놓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구 사장은 이 글에서도 "내가 나서서 마음놓고 사장 노릇을 해야 (민영화를) 막을 수 있는데 노조가 사장으로 인정하지 않아 (사장 노릇을) 못하고 있어서 이렇게 됐다"며 노조 책임론을 제기해 빈축을 샀다.
노종면 위원장은 "최소한 신재민 차관을 향해 사퇴 촉구 정도는 할 줄 알았는데 '설득하고 돌려놓겠다'고 했다"며 "구본홍 씨는 신재민 차관이 울린 변죽에 어깨춤을 출 것이 분명하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구 사장은 신재민 차관의 발언이 있기 직전 사내 게시판에 '비전'이라는 글을 올려 '민영화' 등 YTN 현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제시하면서 "민영화는 위기이자 기회"라며 "YTN이 민영화된다면 공중파에 진입시키도록 약속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YTN 노조는 "구 씨는 결코 민영화를 막을 수 없으며 오히려 민영화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YTN 노조 집행부 관계자는 "구 씨는 말로는 사장으로 들어가면 '뭐든지 다 해내겠다', '민영화도 막아내겠다'고 하지만 정작 현안에서는 정권의 뜻을 거스를 수 없는 '낙하산'으로서의 한계를 드러낸다"며 "이제는 '낙하산 투쟁', '민영화 반대 투쟁' 뿐 아니라 이러한 무능한 인사에게 YTN의 미래를 맡길 수 있겠는가 하는 위기의식이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불만을 감지한 YTN 사측은 1일 사장 직속으로 'YTN 민영화 반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최근의 공기업 지분 매각문제를 "회사의 존립기반을 흔들고 뉴스전문채널의 공정성과 공공성을 훼손하는 비상사태"로 규정하고 "정부 유관부처와 기관, 학계와 언론계 등을 중심으로 공기업 지분 매각의 부당성을 알려 공기업 지분 매각이 철회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YTN 노동조합과도 함께 대응하겠다고 밝혔지만 향후 구본홍 사장이 이명박 대선 캠프의 방송특보 출신 사장으로서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YTN 노조는 "비대위와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은 바 없다"며 "사장 직속의 비대위는 인정할 수 없다"고 거리를 두고 있는 상태다.
사내 소통도 실패…강경 발언으로 '진빼기'만 거듭
구본홍 사장은 YTN 노조를 비롯한 사내 구성원들과의 대화도 사실상 실패한 상태. 구 사장은 지난 19일 '끝장 투표'를 제안한 노조 집행부와의 대화가 결렬된 이후 강경 일변도로 나가고 있다.
노조가 한단계 수위를 낮춰 제안한 '열린 토론'도 거부한 채 '조합원 징계' 가능성만을 흘리며 지난 26일에는 부팀장 인사를 기습 단행했다. 또 지난 25일 출근 저지 투쟁에 참여한 조합원을 징계하기 위한 인사위원회가 노조의 항의로 무산된 이후에는 연이은 강경 발언으로 '사원 인사 및 징계' 가능성만 흘리며 '진빼기' 작전에 돌입했다.
구 사장은 지난 29일엔 사내 게시판에 '더 이상 인내할 수 없습니다'라는 글을 올려 "일부 강경 노조원들로 인해 악화되고 있는 사태를 더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며 "노조가 사장의 출근을 저지하고 보도국 회의를 막는 것은 분명한 업무 방해이자 불법"이라며 향후 벌어지는 사태에 대해서는 관련 법규와 사규에 따라 엄정히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조 역시 '사원 인사 시 총파업'이라는 배수의 진을 치고 있어 구 사장으로서도 노조와 정면 충돌해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 노종면 YTN 노조위원장은 1일 사내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노조는 파업도 불사하는 자세로 '구본홍의 조직 장악 기도'를 막고 '구본홍 구하기'에 나선 정권의 민영화 협박에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YTN 민영화하려면 그 전에 '낙하산'부터 걷어내는 게 상식"
구본홍 사장의 한계를 확인한 YTN 노조는 신재민 차관에게 초점을 맞춰 신 차관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YTN 노조는 25일 낸 성명에서 "신재민은 자신의 입을 통해 정부가 YTN 대주주인 공기업에 주식을 강매하도록 힘을 쓸 수 있는 위치임을 자인한 셈"이라며 "YTN 주식은 마음대로 팔 수 있다면서 YTN 사장 선임은 관여하지 않았다는 말을 누가 믿느냐"고 질타했다.
YTN 노조는 "그렇다면 YTN 주식보다 먼저 구 씨부터 정리하라"며 "YTN 민영화를 위해 공기업들을 압박해 주식을 내다팔 셈이라면 그보다 앞서 낙하산으로 내려보낸 구본홍부터 걷어내는 것이 상식 아니냐"고 따졌다.
YTN 노조는 또 'YTN은 원래 민영기업이었다'는 신 차관의 주장에 대해서도 "YTN은 애초 KBS와 MBC가 지분의 75%를 가지고 있는 구 연합통신(현 연합뉴스)이 대주주로 출발한 회사"라며 "KBS, MBC가 민영기업인가, YTN은 지분구조로 볼 때 단한번도 민영기업인 적이 없었다"고 반박했다.
이들은 "단지 외환위기를 거치며 한국의 유일한 보도채널을 살려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 속에 자금력이 풍부한 공기업들이 증자에 참여한 것"이라며 "아무리 구본홍 낙하산 구하기가 급하다고 해도 사실관계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막말을 늘어놓는 것을 보니 황당하고 안타깝다"고 했다.
이들은 "신 차관은 이제라도 궁색한 논리를 그만 접고 낙하산 구본홍과 함께 사퇴하는 것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일일 것"이라고 일침을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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