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올림픽 야구 금메달을 바라보는 주변국의 시선이 흥미롭다. 중국 언론들은 '아시아 야구의 금메달'을 강조하는 반면, 일본 언론들은 부러움과 질투, 놀라움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드러냈다.
일본 언론들은 특히 노메달에 그친 일본 대표팀과 호시노 센이치 감독에게 화살을 돌리며 분풀이를 하는 모습이다.
일본 언론 관심은 단연 '이승엽'
일본의 종합 일간지들은 한국의 금메달 소식을 비교적 짧게 처리했다. <요미우리신문>은 "한국이 결승에서 쿠바를 3대 2로 꺾고, 처음으로 올림픽 우승을 차지했다"며 "이승엽이 선제 2점 홈런을 때려 기선을 잡은 반면, 쿠바는 9회 말 1사 만루의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아사히신문>은 24일 "결승전에 선발 등판한 류현진은 직구는 시속 140㎞대 전반이었지만 낮게 깔리는 제구력이 뛰어났다"고 평가했다.
<마이니치신문>은 "결승에서 쿠바는 9회 1사 만루의 역전 기회를 만들었지만 병살타로 인해 대회 2연속 금메달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고 전했다.
스포츠 전문지들은 역시 일본에서 뛰고 있는 이승엽에 주목했다. <주니치스포츠>는 '한국 전승, 이틀 연속 이승엽 홈런, 평생 잊지 못하다'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첫 금메달을 국민들에게 안겨준 건 이승엽이었다"며 이승엽의 결승전 활약상을 상세히 전했다.
이 신문은 또 "이승엽은 준결승전에서 일본을 궁지로 몰아넣었던 8회말 투런에 이어 2타석 연속 홈런을 쳤다"면서 "주포의 방망이가 금메달의 길을 열었다"고 썼다.
신문은 "예선에서 18타수 2안타, 타율 1할1푼1리로 부진했던 이승엽"이었다며 "준결승전과 결승전에서 결정적인 순간 믿음을 보여준 김경문 감독에게 보답했다"고 평가했다. 신문은 "이승엽은 김 감독에게 헹가레를 선물하며 최고의 미소를 던졌다"라며 "한국 야구의 강인함은 충분히 금메달과 어울릴 만한 것"이었다고 찬사를 보냈다.
이승엽의 1회 홈런 속보가 '베스트 클릭' 기사로 오르기도 했던 <스포츠닛폰>은 "올림픽 딴사람, 이승엽 선제 투런포"로 뽑아 해결사 이승엽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닛칸스포츠>는 이날 경기의 수훈선수로 이승엽과 결승 2루타를 친 이용규를 꼽았다.
"情에 의지한 호시노 야구가 패인"
반면 '호시노 제팬'에 대한 눈초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요미우리신문>은 "어떻게든 메달을 따오겠다던 일본이 국제 대회의 험난함을 맛보고, 굴욕적인 결말을 봐야 했다"고 혹평했다.
<요미우리>는 "호시노 감독은 경기 후 '프로 선수들이 안됐다'며 구심의 스트라이크 존 적용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지만 그것이 국제 경기의 현실이다"라며 "역으로 변화구에 약했던 미국은 강점인 파워에 변화구 적응력을 키우는 등 각국 모두 성장한 느낌이지만 일본은 어떻게 된 것이냐"라고 추궁했다.
<아사히신문>은 "금메달을 목표로 했던 '호시노 제팬'은 실책과 단조로운 공격을 이어가면서 메달을 따지 못했다"며 "현지 일본인 응원단에서도 '일본 야구가 이런 것이냐'라는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고 전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한다던 호시노 감독이었지만 지휘 방식은 '정(情)'이었다"며 "호시노는 '승부에 철저한 타입'과 '선수를 기르는 타입' 중에서 후자에 해당한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1차 리그에서 2연패의 계기가 된 이와세 히토키를 한국과의 준결승전에서 8회에 등판시키고, 준결승전에서 2개의 실책을 범한 G.G. 사토를 3위 결정전에 재기용했고, 그는 다시 큰 실책을 저질렀다"고 조목조목 지적했다.
<산케이신문>도 "2일 연속 참패로 베이징 올림픽 4위에 그친 호시노 감독의 일본 야구팀에 대한 국내 야구팬과 관계자들 사이에 실망감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홍콩 언론, 김경문 용병술 상세 소개
반면 개최국 중국의 언론들은 한국의 우승에 대해 야구에 대한 미주 대륙의 독점을 종식한 것이라고 추켜세웠다.
베이징에서 발행되는 <신경보>(新京報)는 '한국이 쿠바와 미국의 올림픽 야구 금메달 독주시대에 막을 내렸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 야구가 아시아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고 극찬했다.
<신화통신>은 23일 결승전 직후 타전한 기사에서 '동방불패'란 제목 아래 "한국이 아시아에 올림픽 첫 야구 금메달을 안겼다"고 전했다.
<신화통신>은 또 차기 런던 올림픽에서 야구가 정식종목에서 제외될 예정이어서 어쩌면 이번 한국의 금메달은 올림픽 야구 최후의 금메달이 될지도 모른다고 전망했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24일 쿠바와의 결승전을 '드라마와 같은 경기'였다고 평가하며 결승전 9회 투수를 류현진에서 정대현으로 바꿔 승리를 차지한 김경문 감독의 용병술을 상세히 전했다.
김 감독은 "나는 필드에서 모험을 했다"면서 "수동적으로 끌려가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행동하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지난 23일자에서도 준결승에서 일본팀을 6-2로 꺾은 한국의 경기 내용을 소상하게 보도했다.
특히 이 신문은 투런홈런을 날려 한국의 승리에 쐐기를 박은 이승엽의 일본 프로야구 및 베이징 올림픽 활약상을 자세히 소개하고 이승엽이 경기 후 "일본 팬들과 선수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면서 "그러나 올림픽은 중요한 경기이며 우리 모두는 아시아인"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박찬호-마쓰자카, 내년 WBC에서 한 판 붙어?
한편, 미국 프로야구 LA 다저스의 박찬호는 후배들의 대활약에 환호했다. 박찬호는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 남긴 '믿어라'(Believe it!)라는 제목의 영문 게시글에서 "와우!"라고 감탄하며 "모든 사람들이 한국 야구를 이야기한다. 한국이 넘버원이다. 한국이 금메달을 땄다"고 말했다.
박찬호는 "정말로 행복하고 한국에서 국민이 느끼는 것 보다 더 행복하다. 축하하고 정말로 감사하다"며 "오늘 한국인인 게 정말로 너무나 대단하다"고 끝을 맺었다.
박찬호는 한국이 예선전에서 일본을 꺾었을 때도 "오늘 야구장에 가서 일본 선수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후배들에게 너무 고마워요. 세계는 한국야구를 알아갈 것입니다"라는 글을 남겼었다.
그러나 일본판 '괴물 투수' 보스턴 레드삭스의 마쓰자카 다이스케는 충격을 받았다.
<스포츠 닛폰>에 따르면 마쓰자카는 일본의 '노메달'이 확정된 뒤 가진 인터뷰에서 "실제 싸우는 선수들의 마음은 선수만이 알 수 있다. 다만 미국이나 한국에 몇 번씩 지는 것은 너무 분하다"고 말했다.
마쓰자카는 한국과 미국에 대한 '복수'를 다짐했다. 그는 "이번 대회를 통해 복수에 대한 감정을 높일 것이다.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2009년 개최)는 미국에서 결승리그가 치러지는 만큼 메이저리거들이 더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영웅 마쓰자카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 예선리그와 3-4위전에서 모두 이승엽의 방망이에 무릎을 꿇었었다. 그러나 그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에이스로 활약했고, 2006년 WBC에서는 일본의 우승을 이끌며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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