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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 핸드볼의 '우생순'은 이제부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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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 핸드볼의 '우생순'은 이제부터 시작"

눈물바다 된 핸드볼 동메달 결정전

오성옥은 끝까지 맏언니의 모습을 보였다. 감정을 절제해 때론 차가워 보이기까지 하는 한국 여자 핸드볼의 장녀는 '아쉽지만 귀한' 올림픽 동메달을 따고도 눈물을 참으려 애썼다.

"지난 2004 아테네 올림픽 때는 너무 아쉬웠는데 지금은 하나도 안 아쉽다. 너무 너무 기쁘다."

23일 베이징 올림픽 3-4위전에서 승리를 거둔 뒤 오성옥은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왜 안 아쉽냐고 묻자 "최선을 다했으니까"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도 <MBC>에서 중계를 했던 임오경 해설위원이 다가오자 웃음과 울음이 뒤엉킨 얼굴로 "애들이 나에게 너무 큰 선물을 줬다"라고 간신히 말했다. 21일 노르웨이전에서 석연찮은 판정으로 패한 뒤 임오경 위원을 만나자 눈물을 와락 쏟았던 그다.

이날 주로 벤치에 앉아 후배들을 독려하는 역할을 했던 오성옥은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 바로 지금이다"라며 "살면서 이렇게 기쁜 날이 없었다. 오늘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이 마지막 올림픽이라 그런지 정말 무엇이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든다"며 "이번에 금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괜찮다. 우리 사랑스러운 후배들이 다음에 꼭 금메달을 따 줄 거다"라며 '우생순'을 응원했던 팬들을 위로했다.

(☞관련 기사 : 오성옥 "후배들에게 큰절 하고 싶다")

울음바다 된 베이징 국가실내체육관

수문장 오영란(36.벽산건설)은 서 있지도 못할 정도로 소리 내어 울며 국가대표로서의 마지막 경기를 아쉬워했다. 오영란은 "금이 아니어서 아쉬운 게 아니다. 다들 잘 싸워줬고 감독님, 코치님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특히 마지막에 감독님이 '단 1분이라도 너희가 해야 한다'고 하신 말씀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21개월 된 딸 서희에게 한 마디를 해 달라고 기자들이 말하자 "서희야 사랑해. 엄마가 더 좋은 선물을 해주고 싶었는데 (동메달도) 값지게 딴 것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다. 내 딸 서희야 사랑해"라며 눈물을 흘렸다.

코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안고도 투혼을 펼친 '아줌마 3인방' 가운데 한 명인 허순영(33.오르후스)은 "코는 괜찮다. 그냥 기뻐야 되는데 왜 이렇게 슬픈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참지 못했다.

경기 직후 다른 선수와는 달리 임영철 감독과 꽉 끌어안고 기쁨의 포옹을 나눈 홍정호(34.오므론)는 제대로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끝나고 나니까 모든 게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감독님 얼굴을 보니 눈물이 쏟아졌다"고 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우승에 이어 4년 뒤 애틀랜타에서는 은메달을 따낸 홍정호는 이날 승리로 오성옥(36.히포방크)과 함께 올림픽에서 금메달과 은메달, 동메달을 모두 따낸 선수로 기록됐다.

그는 "올림픽에 딱 3번 나갔는데 처음에는 10대였고 두번째는 20대, 지금은 30대다. 출전할 때마다 모두 메달을 따내 너무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잊을 수 없는 마지막 작전타임

이날 임영철 감독은 경기 종료 1분을 남겨 두고 고참들을 투입해 국가대표로서의 마지막 경기를 장식케 했다.

임 감독은 작전타임을 불러 선수들을 모은 뒤 "마지막을 너희가 장식해라"라며, 다른 선수들에게는 "앞으로 계속 뛸 수 있으니 이해해라. 선배에게 맡겨라"고 말했다.

임 감독은 경기 직후 공동취재구역에서 기자들을 만나 "페어플레이를 지키는 편이다. 이미 결정난 경기에 타임아웃을 거는 것은 상대를 무시하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런 행동을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오늘은 이유가 있었다. 아줌마 선수들을 데리고 엄청난 훈련을 했는데 이들은 앞으로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한다. 그래서 타임아웃을 불렀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임 감독은 "선수들 몸이 상당히 안 좋았다. 좋은 선수가 하나도 없었다. 오성옥을 비롯해 최임정, 허순영, 오영란 등이 너무 컨디션이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어려운 경기를 했다. 전반 초반 4점을 뒤질 때 작전 시간을 불러 나도 모르게 안 좋은 말이 입에서 나왔다. 작전을 지시해서 될 일이 아니었고 정신무장을 시켜주는 일 밖에 없었다. 후반 중반까지 어렵게 갔는데 이후 살아났다"고 말했다.

그는 동메달의 의미를 묻자 "시드니대회에서도 메달을 못 따고 3-4위전에서 졌는데 이번 동메달은 금메달보다 더 하다. 열정과 혼을 담은 메달"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어 "이제 고참들이 은퇴하면 경기력 쪽에 더 고민을 하며 훈련을 해야 한다. 해외 전지훈련을 자주 나가 경험도 많이 쌓아야 한다. 밑에서 받쳐주는 선수가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한국 여자핸드볼은 누가 하더라도 투혼을 발휘할 것이다. 다만 그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올림픽을 마친 소감에 대해 "모든 대회가 끝나면 허무하다. 이것 하나 때문에 그렇게 혹독한 훈련을 시키고 혹독한 언어를 써가면서 했다. 끝나면 내가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이 들고 허무에 빠진다. 이제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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