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장에 하객으로 가서 신랑신부가 주례 앞에서 하나의 부부로 탄생하는 장면을 지켜보노라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저 커플은 잘 살까, 신혼여행 도중에 판을 깨고 돌아오지나 않을까 하는 아슬아슬한 마음 때문이다.
제법 나이가 먹었기에 그런 老婆心(노파심)이 드는 것이리라.
남녀가 만나 부부가 되면 그 역시 하나의 '조직'을 이룬다. 둘 사이에 자녀가 생기면 조직의 결속력은 대단히 강해진다. 그 조직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일방의 의사만으로는 임의탈퇴가 어렵고 쌍방 합의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두 남녀 모두 조직의 쓴맛과 단맛을 골고루 맛보게 된다.
남편 입장에서 아내로부터 얻는 것은 무엇이고 아내 입장에서 남편으로부터 얻는 것은 무엇일까? 반대로 말하면 상대에게 주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명리학에서는 음양오행의 여러 코드들의 관계를 十神(십신)이라는 이름으로 설정한 다음 그것들 간의 이해갈등, 협력과 투쟁을 통해 운명을 읽어낸다. 그 명칭은 비견과 겁재, 식신과 상관, 정재와 편재, 정관과 편인, 정인과 편인으로 모두 열 개가 되어 십신이라 한다.
이를 부부 사이의 관계에 대입해보면 비견과 겁재는 뜻이 같은 것이니 좋을 때나 힘들 때나 서로 의지가 되고 생각을 기탄없이 나눌 수 있는 친구와 같은 것이다. 부부는 서로에게 있어 가장 든든한 편이고 동지인 것이다.
운세상 이 기운이 약해지면 부부 사이에 있어서도 동지애가 약해지는 것이다.
식신과 상관은 흥 내지는 신바람을 내는 것이니, 두 사람 사이에 함께 놀고 즐기면서 교감하는 것인데 운세상 어느 한 쪽에 이 기운이 약해지면 시들해져서 권태감 내지는 무미건조함을 느끼게 되니 그 또한 결혼 생활의 고비가 된다.
다음으로 정재와 편재인데, 이는 물질적 기초를 이룬다. 결혼 생활 역시 경제적으로 궁핍하면 부부간의 애정도 시들기 쉽다. 삶에 찌들다보면 당연히 부부간의 애정은 회색빛으로 바래기 마련이다.
정관과 편관은 서로에 대한 약속이고 자녀에 대한 책임감이다.
이 기운이 약해지면 다른 이성에게 마음이 가서 부부 사이가 나빠지거나 자녀에 대한 마음보다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고자 하는 일이 일어난다. 결혼이란 남녀간의 성적 독점만이 아니라 전인적 독점 계약이기에 어려운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인과 편인은 상호 존중이고 아낌이다. 조직이 나를 보호하고 있다는 느낌, 귀속감 같은 것이다. 이 기운이 약해지면 공허함을 느끼고 동떨어진 마음을 가지게 되니 정서적 불안정을 가져온다.
지금까지 명리학적 관점에서 부부 사이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줄여 말하면 부부가 잘 살아가려면 생각도 희망도 어느 정도 부합하고, 서로 놀 때 놀아주어야 하며, 경제적 물질적, 또 감각적인 사항 특히 성적으로 충족시켜 줄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서 서로에게 충성해야 하고 책임감이 있어야 하며 언제나 서로가 귀속감을 주어야만 정서적으로 안정된 부부로 지낼 수 있다는 얘기이다.
이 얼마나 어려운 주문인가.
세상에 이 모두를 십분 충족시키는 부부 사이는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크게 보아 다섯 개의 항목 중에서 세 가지만 있어도 부부로 살아갈 수 있다. 물론 그 세 가지도 대단한 수준이 아니라 그럭저럭 남에 비해 크게 뒤처지지 않는 선에서의 얘기이다.
하지만 신혼부부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먼저 남녀가 다르다는 사실에 대해 모르고 더하여 부부라는 조직의 특성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
연애는 연애일 뿐 부부가 아니다. 연애는 서로가 좋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남녀간의 유희이다.
부부는 생활이기에 상대방에게만 최선을 다 할 수는 없다. 최선을 다하려면 늘 긴장하고 있어야 하기에 여간 불편하지가 않다. 그 결과 결혼 생활은 서로가 편한 위치를 점유하려는 투쟁이 따르기 마련이다.
여기에서 부부간의 정치적 긴장관계가 생겨난다. 이 관계는 상당 부분 부부간의 권력 투쟁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남녀는 정치적 투쟁을 전개할 때의 언어와 문법이 다르다. 처음에는 서로의 언어와 문법을 모르는 바람에 상대가 공격을 하는 것인지 방어를 하는 것인지, 수용을 하는 것인지 거부를 하는 것인지조차 모를 때가 많다.
그러면서 연애로부터 이어져온 신혼의 단꿈이 서서히 퇴조하면, 부부간의 투쟁은 상당히 치열하게 때로는 냉랭하게 전개가 되면서 극한 상황으로 연결될 때도 있다.
남자는 대개의 경우 외상거래 후 청산을 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이어간다. 반면 여자는 대부분 즉각 현금 결제형이다.
그 바람에 아내가 신경을 쓰고 정성을 쏟은 일에 대해 남편이 바로 그 일을 치하하고 인정하거나 보상을 하지 않으면 아내는 속을 다친다. 자신의 노고에 대해 보상을 얻지 못했다고 느끼고 기분이 상하는 것이다.
물론 남편은 아내의 노고를 다 알고 있지만 장부에 기록해놓고 어느 시점에 가서 그 보상을 잘 하겠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실수라 할 수 있다.
반면 아내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남편이 별 추궁이 없으니 그것으로서 권력적 우위를 점했다고 판단하는 실수를 범한다. 남편은 그 잘못을 충분히 알고 있고 치부했다가 어느 시점에서 한꺼번에 결산을 하려는 심산인 줄 모르고 방심을 했다가 나중에 강렬한 반격을 받고 당황하게 된다.
연애 시에는 상대방의 정치적 투쟁 능력이나 역량을 알기 어렵다. 게다가 남녀 간의 행동 양식에서 오는 차이도 모른다.
결혼 생활은 온통 지뢰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결혼식장에서 부부가 탄생하는 모습을 축하하면서도 마음 한 켠에는 걱정이 도사리는 것이다.
부부는 결혼식장에서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본다. 결혼신고를 했다해서 부부가 된 것은 아니라 본다.
부부는 살아가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필자의 경험으로 부부는 결혼으로부터 12 년간은 투쟁을 하는 것 같다. 물론 조직을 반석 위에 올려놓기 위한 투쟁이다. 하나가 되기 위한 상호작용이라 하겠다.
그 다음 6 년간은 투쟁의 조정과 마무리 조율에 들어가는 것이라 본다.
그리하여 18 년이 지나면 부부의 나이는 대략 40대 중반을 넘게 된다. 이 무렵이 되면 서로를 알고 서로의 못된 성질도 알고 아름다운 성품도 알게 되며,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살릴 것은 살려나가게 된다.
이 시점 정도에서 원만한 관계를 가지는데 성공을 하면 좋은 커플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겠다.
이에 앞서 말한 다섯 가지 요소들 중에서 적당히 세 개 이상이 부부 사이에 존재하면 행복한 부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살면서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세상을 살면서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다는 점이다.
용모와 재력, 학력과 지식, 건강, 수명, 출세와 명예, 건강하고 좋은 자녀 등등 우리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요소들이 전부해서 여섯 개라 가정하자. 실은 여섯 개만 되리오만은.
이 모두 10 % 안에 들고자 한다면 그 사람은 백만 명에 한 명이 되고자 한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확률적으로 50 명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모두를 얻고자 하는 이는 그 사나운 욕심으로 인하여 자칫 모두를 잃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나만이 아니라 배우자마저 그렇기를 요구한다는 것은 결혼정보회사에서나 가능하다고 할 뿐, 가당치 않은 일이다.
좋은 부부는 결혼 한 번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좋은 부부는 서로의 노력을 통해 오랜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었다.
마치 그것은 무수한 담금질을 통해 벼려지는 名劍(명검)과도 같은 것이라 여긴다.
휴가철이라 먹과 붓, 종이를 가지고 며칠간 사무실에서 실컷 즐겼다. 정말이지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애초부터 그림 그리는 일로 인생을 시작했으면 싶다. 그 탓에 도끼자루도 썩었던지 글도 올리지 않았다. 사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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