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세계인의 축제인 만큼이나 중국인들에게 큰 잔치이다. 2008년은 1978년 중국이 개혁개방을 선언한 지 30년이 되는 해다. 베이징 하늘을 수놓은 화려한 불꽃놀이는 30년 개혁개방의 '성공'을 자축하는 축포이기도 했다.
개혁개방이란 결국 시장화(개혁), 세계화(개방)이다. 중국은 2001년에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고 2006년 말 가입 당시 약속한 모든 개혁(시장화) 과제를 완료했다. 2008년을 기점으로 중국이 1949년 이후 다양한 형태의 계획경제를 실험했던 기간보다 1978년 이후 시장경제를 지향했던 시간이 더 길어진다. 이제 중국의 '시장'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가끔 그 시장의 공정성을 문제 삼을 뿐이다.
세계화에서도 마찬가지다. 2008년이면, 늦어도 2009년이면 중국은 세계 제1의 수출국이 된다. 장기 전망기관인 글로벌 인사이트에 따르면 2013년이면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1의 수입시장이 될 거라는 전망이다.
그 무역의 60% 가까이가 중국에 들어와 있는 외자기업에 의해 이루어진다. 2008년 상반기에만 500억 달러가 넘는 외자가 새로 중국에 들어왔다.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6월 말 1조 8088억 달러로 세계 1위이다. 세계화된 중국 경제의 현주소이다.
(☞ 올림픽 이후의 중국 ① 정치·사회 : "중국 애국주의는 폭발하지 않았다")
올림픽 이후의 중국경제?
올림픽 이후 중국 경제가 어려움과 곡절을 겪을 것이라는 관측이 유행하고 있다. 사실 최근의 중국 경제도 그러한 관측과 유사하게 흘러갔다.
우선 2008년에 중국의 경제성장은 2007년 11.4%에 비해서는 둔화될 전망이다. 상반기 성장률이 10.4%를 기록했다. 10년 동안 안정되었던 물가도 2007년 하반기부터 가파른 오름세를 보였다. 주가도 폭락했다. 상하이 A지수는 2007년 10월 6,200대를 기록한 이후 급전직하해 올림픽 기간 중에는 2200대까지 폭락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을 올림픽과 연결시키기는 어렵다. 인플레이션의 중요한 이유는 국제적인 자원 가격 급등과 일시적 식료품 가격 상승이다. 경기둔화는 무엇보다 '미국발' 세계경기 둔화의 영향이다. 그나마 경제성장률이 11% 대에서 10% 대로 떨어지는 수준의 이야기다.
주가폭락과 올림픽을 연결시킬 경제적 인과관계도 찾기 어렵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진데다, 묶여있던 비유통주의 유통 확대라는 중국의 특수한 수급 불안이 더해지면서 일어난 폭락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나아가 주가폭락이 실물경제에 큰 충격을 줄 것이라는 예상도 현실화되지 않았다. 원래부터 경제적 측면에서만 보면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의 올림픽이 아니라, 중국 GDP의 3.7%를 차지하는 한 도시(베이징)의 올림픽이었을 뿐이다. 중국이 치른 잔치는 따로 있다.
개혁개방 30년, 잔치는 끝났다.
베이징 올림픽과 함께 30년 동안의 '개혁개방'으로 대표되었던 중국의 한 시대도 축복 속에 막을 내렸다. 2007년 말부터 중국 경제는 중요한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개혁개방'에서 '과학적 발전'으로의 전환이다. 이른바 '올림픽 이후'의 중국을 그려보는 것도 결국 그 전환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과학적 발전관(科學發展觀)'이라는 개념은 2007년 10월 17차 공산당 대회에서 중국의 새로운 지도이념으로 공산당 당장(黨章)에 삽입되었다. 그 만큼 중요한 개념이란 얘기다. 보통 "인간중심(以人爲本)을 견지하면서, 전면, 협조(協調),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정의된다.
좋은 말만 다 모아놓은 공허한 구호로 보이기도 한다. 이를 후진타오 주석의 권력기반이 공고화되었음을 표시하는 징후 정도로 해석하기도 한다. 성장 위주의 정책을 균형과 분배를 강조하는 정책으로 전환하겠다는 신호라고도 한다.
그렇지만 과학적 발전관의 진짜 의미는 중국이 해결할 경제적 과제가 변화했다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권력의 공고화나 경제정책의 방향 전환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중요한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
중국이 달려온 개혁개방 30년은 시장화, 세계화의 과정이었다. 많은 곡절을 겪었지만 시장화와 세계화가 그 과정을 일관했다. 그건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정답과 표준이 이미 주어진 문제였다. 최소한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표방한 1992년 이후에는 중국이 고민했던 것은 그 목표에 이르는 경로와 속도였지 목표 자체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 시장화와 세계화는 완료되었다. 이제 '개혁개방'이라는 구호가 더 이상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 개혁개방이 어떤 한계에 봉착한 것이 아니라, 개혁개방에 성공했고 그 과제를 사실상 완료했기 때문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은 새로운 '역사적' 단계에 직면했다. 그 단계는 단순히 시장 경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시장 경제 시스템'를 만들 것인가를 선택하는 전혀 다른 자리이다.
주지하다시피 시장경제는 하나가 아니다. 미국, 서유럽, 북유럽, 일본에는 서로 다른 메커니즘을 갖고 있는 나름의 시장경제가 형성되어 있다. 각국은 기업의 구조, 금융의 역할, 성장과 분배의 균형점, 복지의 수준, 노사관계의 형태, 환경 의제의 수용 정도, 인적자원의 재생산 형태에 있어 모두 조금씩 다르다.
작다면 작은 차이들이다. 하지만 그 차이는 짧게는 백년 길게는 수백년의 역사를 통해서 형성된 결과이다. 나아가 여기에는 정답도 없고, 표준도 없고, 지도도 없다.
서른 해 동안, 중국은 다른 고민 없이 개혁개방의 길로 일로매진(一路邁進)해왔다. 때로 곡절이 있었고 힘도 들었겠지만 답이 분명한 시대였다. 그러나 올림픽이라는 잔치와 함께 그 시대도 끝났다.
과학적 발전관 : 역사를 대체
이제 중국 앞에는 훨씬 더 복잡한 과제가 놓여있다. 개혁개방을 통해 시장경제 일반(一般)이 형성되었다. 그렇지만 중국의 특수(特殊)한 체제를 구성하는 것은 이제 겨우 첫걸음이다. 두 과제는 성격과 해법이 아주 다르다. 일로매진은 더 이상 해법이 아니다. 오히려 좌고우면(左顧右眄)이 필요하다.
지금 세계를 이끄는 주요국들이 갖고 있는 독특한 경제 시스템들은 각기 나름의 '역사'를 통해 형성된 것이다. 그 속에서 각국은 혁명도 겪고 선거도 치르고 때로는 전쟁을 벌였다. 이를 통해 끊임없이 여러 이익집단 사이의 균형을 형성하고 그것을 경제적으로 제도화해왔다. 또한 그것은 일종의 진화적인 과정이었다. 지금 선진국이 누리고 있는 제도적 효율성은 백지에 경제학 교과서를 들고 구축한 것이 아니다. 오랜 진화의 결과이다.
그런데 중국 공산당이 원하는 것은 지난한 역사의 반복이 아니다. 다이나믹하고도 위험천만한 역사의 드라마에 공산당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 지루한 진화의 과정을 되짚을 생각도 없다. 권력도 시간도 잃지 않고 공산당의 온전한 통제 아래서 중국의 발전 모델을 만들고 싶다.
그렇지만 2008년 중국은 공산당이 독재하고 있는 나라다. 다양한 정치세력 사이의 대안 경쟁도 없고, 유의미한 선거도 없고, 발전한 시민운동도 없다. 중국에게 적절한 성장과 분배의 균형점이 어디인지, 노사관계를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지, 어느 수준까지 환경을 보호할 것인지 등 수많은 이슈에 대해 진정한 시그널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
중국 공산당은 중국의 과제가 변했다는 것도, 자신이 가진 정치적 한계도 잘 인식하고 있다.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첫 번째 노력이 바로 '과학적 발전관'이다. 과학적 발전관이 그 모호함 속에서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는 것은 균형과 종합이다.
즉 공산당의 과제는 더 이상 '종합'적일 수 없는 역사의 과정을 대신해, 새로운 경제 시스템이 구현할 '균형'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걸 공산당 혼자서 해야 한다. 그게 균형과 종합의 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적 발전'은 특정한 목표나 구체적인 내용을 지시하지 않는다. 다만 중국 경제가 직면할 새로운 과제를 공산당이 인식하고, 그 답을 모색하고, 제도로서 수용하는 틀, 그 전체가 과학적 발전관인 것이다.
개입정부, 시장과의 충돌, 정치의 등장
과학적 발전관은 이미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정책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고도성장 필요성에 대한 재확인, 분배 및 사회보장에 대한 강조, 에너지/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 등이 주된 방향이다. 그런데 과학적 발전관이 정책으로 구체화될수록 그것이 가진 한계도 함께 드러난다.
우선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정부의 성격이 개혁정부에서 개입정부로 변하게 될 전망이다. 정부의 목표가 더 복잡하고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계획과 통제를 없애고 시장을 도입했던 것이 과거의 개혁정부였다면, 이제 다시 규제와 개입을 통해 그 시장에 색깔을 입히는 것이 미래의 중국 정부이다. 그렇지만 효율적인 개입이란 언제나 매우 어렵다.
다른 한편 '과학적 발전'은 끊임없이 시장과 충돌하게 된다. 분배, 노동, 환경 등 시장에 맡겨서는 해결되지 않는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는 불가피하다. 충돌도 늘어난다.
수년간의 진통 끝에 2008년 도입된 새로운 노동계약법과 노동쟁의조정법은 노동자의 권리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기업계의 반발이 노골적이다. 시장에서 노사간의 역관계와 공산당이 의도하는 균형 사이에는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공산당 혼자서 각 분야의 균형을 찾아내느라 좌고우면 하겠지만 결과는 좌충우돌에 가까울 것이다.
나아가 과학적 발전관은 경제적 불균형을 정치적 리스크로 전환시킨다. 지금까지 중국인들은 날로 확대되는 경제적 불균형을 시장경제의 불가피한 결과로 인식했다. 그래서 개혁개방이 초래하는 불균형보다는 그것이 가져다주는 새로운 경제적 기회에 주목했다.
그러나 과학적 발전관은 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정부의 임무로서 자임하고 있다. 이제 불균형을 효과적으로 해소하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정치적 불만은 점점 커지고 공산당의 권위는 도전받게 된다.
다시, 잔치는 끝났다.
올림픽과 함께 중국의 잔치도 끝났다. 덩샤오핑이 문화혁명의 혼란과 비효율을 끝내고 개혁개방이라는 이름으로 시장화와 세계화를 추진하는 동안은 모두가 행복했다. 자본가가 환영하는 공산당이라는 참으로 희귀한 역사적 경험도 거기 있었다.
초고속 성장으로 더 많은 기회를 갖게 된 대중도 빈부격차 확대에 아랑곳없이 공산당을 지지했다. 중국을 30년 만에 경제 대국으로 이끌어낸 리더십은 모든 중국인에게 새로운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마침 올림픽에서도 미국을 제쳤다. 지난 30년이 통틀어 하나의 큰 잔치였다.
그 잔치가 끝나고 중국은 새로운 과제에 직면했다. 불행하게도 그것은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잔치가 아니다. 바로 그 개혁개방을 통해 형성된 새로운 이해관계과 이익집단이 각자 자기의 지갑을 챙기고 신발을 찾아 신는 자리다. 그 자리를 혼자 다 감당해야 하는 것이 중국 공산당이 자초한 숙명이다.
올림픽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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