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이 아프가니스탄 파병에 관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을 정반대로 번역해 홈페이지에 게재하는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
더군다나 백악관은 오역 사실을 인지하고도 하루가 지나도록 수정하지 않고 있어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키우고 있다.
백악관, 고치겠다면서 버티는 이유는?
이명박 대통령은 6일 오전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마치고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아프간 파병에 대해 "그런 논의는 없었다는 것을 우선 말씀을 드린다"라고 공개적으로 확인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곧이어 "우리는 논의했다"라고 다른 말을 하고, "오로지 비전투 지원(non-combat help)에 관한 것만 이 대통령에게 이야기했다"라며 '파병'을 논의한 것은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두 정상의 발언이 명확히 일치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생중계되고 있는 기자회견에서 '한국어로' 파병 논의가 없었다고 부인한 마당에 부시 대통령과의 차이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인식됐었다.
문제는 그 뒤에 터졌다. 백악관이 양 정상의 대화록을 홈페이지에 게재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But I can tell you that we did discuss this issue"(그러나 우리는 그 문제를 분명히 논의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고 명시한 것이다.
이는 "논의는 없었다"를 "didn't discuss"로 써야 하는데 "did discuss"로 잘못 쓴(오타) 것이거나 "분명히 논의했다"(did discuss)라고 정반대로 해석한(오역) 것이다.
이에 대해 김은혜 청와대 부대변인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백악관 표기는 오타 혹은 잘못된 번역이고 미국 측도 백악관 홈페이지 자료의 명시가 잘못돼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며 "미국 측은 곧바로 이를 시정하겠다는 입장을 청와대에 밝혀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백악관은 7일 오후 4시 현재까지 이를 수정하지 않고 있다. 잘못된 대화록을 올린 지 하루 이상이 지난 시점이고, 청와대에 시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온 후로부터도 한참이 지났지만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이다. 일국 정상의 발언을 잘못 공개하는 외교적 결례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비전투 지원'이냐 '비군사 지원'이냐
한편 부시 대통령이 이 대통령에게 말했다는 "non-combat help"의 의미를 두고도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청와대는 이를 '비군사 지원'으로 동시통역했다. 그러나 'non-combat help'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비전투 지원'이 된다.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7일자 <한겨레> 칼럼에서 '비전투 분야'라고 번역했다.
'비전투 지원'은 '비전투 군병력'의 파견이 포함되는 개념이다. 전투를 하지는 않지만 이라크 평화재건의 명목으로 민사작전을 하고 있는 자이툰 부대가 대표적인 비전투 지원이다. 아프간에서 의료·공병 분야를 지원했던 동의·다산 부대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통역이 말한 '비군사 지원'은 통상 영어로 'non-military help'로 표현되는 것으로 말 그대로 군대가 아닌 다른 방법의 지원을 통칭한다. 아프간에 민간 재건지원팀(PRT)을 보낸다거나 재정·물자 등을 지원해 주는 것 등을 뜻한다.
이에 따라 부시 대통령이 이 대통령에게 'non-combat help'를 이야기했다는 것은 아프간에 병력을 파견해 달라는 뜻이 포함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그게 사실이라면 "(파병) 논의는 없었다"는 이 대통령의 말은 거짓이 된다.
부시 대통령이 파병을 요청했다는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사는 이같은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 신문은 6일자 서울발 기사에서 "부시 대통령은 이 대통령에게 한국군(Korean troops)을 '비전투 역할((a noncombat role)로 아프가니스탄에 다시 파견하는 것을 고려해 달라고 요청했다"라며 "그러나 이 대통령은 즉각 답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논란이 커지자 청와대 관계자는 "월스트리트저널이 잘못된 기사를 써서 조치를 취하는 중"이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한 부분이 있으니 오해하지 말고 인용하지도 말아 달라"고 말했다.
김은혜 부대변인도 "명백한 오보"라며 "부시 대통령이 언급한 'non-combat help'는 공병이나 의료부대 등 '비전투 군병력'을 의미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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