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KBS 조합원 동지 여러분,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지난 목요일(7.31) 제6차 <비상대책위원회>를 열고 KBS임원 3명에 대한 중징계를 결의하였습니다.
KBS에 대한 검찰 표적수사와 감사원 특별감사 그리고 불법적 이사 교체로 사장 강제해임이 눈앞에 다가온 시점입니다. 이런 위중한 시기에 내려진 이번 징계로 조합원들께서 적잖이 당황하셨으리라 짐작합니다. '징계시점이 적절치 않다', '징계수위가 너무 높다'라는 의견이 있는 줄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 언론노조 비대위가 만장일치로 KBS본부 임원들을 징계 한 이유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명박 정권의 방송장악 음모가 전 방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공권력에 국회까지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어 힘으로 밀어 붙일 때, 현실적으로 이를 저지할 방법이 없습니다. KBS 전 조합원이, 언론노조 전 조합원이 총파업으로 맞선다 해도 버거운 싸움이 될 것입니다.
언론노조는 이를 저지하거나 늦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KBS를, 방송을 지키겠다고 나선 시민들의 자발적인 투쟁에 KBS 조합원들이 결합하고 더 많은 시민들을 KBS로 모이게 하는 것뿐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 즉시, 여러분들이 민주광장으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KBS본부 임원들은 이런 결합을 오히려 가로막아 왔습니다. 징계 후에 발표한 KBS본부의 성명과 노보는 이번 징계를 '박승규를 제물로 정연주 지키기'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태까지 해왔던 대로 또다시 친정과 반정의 잣대로 모든 것을 가름하고 있습니다. 또다시 KBS 조합원 동지들의 눈과 귀를 외부와 차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숭고한 공영방송 사수 투쟁을 정쟁의 도구로 삼지 말라'는 KBS본부의 주장은 민주광장 앞의 몇몇 인사들을 핑계 삼아 KBS앞에 모이는 전체를 '정빠'로 매도하며 KBS 조합원들이 결합하는 것을 차단하는 잘못된 주장입니다.
한나라당과 조중동, 뉴라이트를 제외한 모든 세력이 힘을 합쳐도 KBS를 지킬 수 있을지 모를 상황에서, 양비론으로 편 가르기 하는 것은 KBS의 뒷문을 열어주는 일입니다. 적들을 오판하게 만드는 이적행위일 뿐입니다.
조합원 동지들께 묻습니다.
공영방송 사수 투쟁을 하겠다면서, 낙하산 사장 저지 투쟁을 하겠다면서, 정치중립적인 사장선임제를 쟁취하겠다면서 KBS사장이, KBS이사가 정권에 짓밟히는 것은 방치하는 것이 얼마나 모순되는 일인지 정말 모른다는 말입니까?
'공영방송 사장을 권력의 힘을 수단 삼아 (지금) 교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정 사장은 자신의 무능을 책임지고 (지금) 사퇴할 것을 요구한다.'는 KBS본부의 논리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정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것은 이런저런 잘못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라고 하면, 시민들은 아마 바로 '어용노조'라고 공격할 겁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시민들이 정연주의 정체를 잘 몰라서? 아니면 '정빠'라서?
아닙니다. 시민들이 공격하는 이유는 KBS본부의 주장과 행동이 모순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이 진실을 덮는 유일한 방법은 '저 사람들은 정빠다'라고 매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KBS 본부는 그렇게 해왔습니다.
KBS본부는 또 이렇게 주장합니다.
"박승규 위원장이 그토록 어려운 상황에서도 차기 낙하산사장 반대 투쟁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중요한 시점에 박승규 위원장의 목을 친 것이다. 우리가 언론노조와의 갈등을 봉합하려 했던 것도 정권의 낙하산 저지투쟁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일념에서였다. 이제 그 역사적 투쟁의 시간이 코앞에 닥쳐오고 있는 상황에서 힘을 보태도 모자랄 언론노조가 결국 KBS 본부의 등에 칼을 꽂은 것이다."
이번 징계에 참여한 비대위원들은 대부분 1년 이상 박승규 본부장을 지켜봐 온 신문, 방송 지.본부장들입니다. 현재 KBS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KBS본부의 이런 주장을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중징계에 찬성한 것입니다.
KBS 본부가 이토록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면, 무려 1년 가까이 언론노조 정상화를 저해해 온 이유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KBS본부가 언론노조와 지속적으로 날을 세워 온 이유도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번 징계의 근인이 된 대의원 축소 문제에 대해 KBS본부는 마치 대단한 갈등이 있었던 것처럼 주장하지만 기실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지난 6월 4일 KBS 비대위결정을 서면으로 통보해주면 아무런 문제없이 끝날 일이었습니다. 'KBS비대위는 언론노조 규약규정 개정시 조합비를 납부하기로 결정했다'는 단 한 줄의 문장입니다.
그러나 KBS본부는 이 한 줄의 공문을 끝까지 보내지 않았습니다. '정 사장에 대한 입장차이가 조합비 납부의 전제조건은 아니다.'며 지난 6월에 징계를 피하더니, 언론노조가 정 사장 퇴진에 대해 KBS 본부와 다른 행동을 할 경우, 조합비로 또다시 언론노조의 발목을 잡으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지난 1년 간, 언론노조의 정상화를 위해 나름대로 치열하게 노력해 왔습니다. 때로 혼자, 때로 지.본부장들과 함께 박승규 본부장을 설득하기 위해 만난 것이 10여 차례 됩니다. 올해 만 해도 지난 1월 대의원회, 3월 중집 정상화 결의, 6월 정상화 합의 등등 KBS본부가 언론노조와 함께 갈 수 있는 기회는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KBS본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기껏 관계 회복을 약속해 놓으면, 말 바꾸기와 회의 결과 뒤집기 등, 참으로 산별조직의 근간을 흔드는 일을 무수히 저질러 왔습니다. 한편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일부 간부들의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근본적으로 노동조합에 대한 시각, 현 정권에 대한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판단합니다.
(* 지금까지 KBS본부가 산별노조를 어떻게 흔들어 왔고 어떤 식으로 언론공공성 사수 투쟁에 걸림돌이 되어 왔는지를 모두 밝히면 이해가 쉽겠지만, 길이도 길이려니와 지난 일을 놓고 누가 옳으냐 그르냐를 따질 상황이 아닌 만큼, 조만간 조합원 여러분에게 세세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존경하는 KBS본부 조합원 여러분
징계 결과가 발표되자 KBS 본부 임원들은 늘 이야기 해 왔던 것처럼 법적 대응을 결의했습니다. 저희의 생각은 임원들이 징계를 겸허히 받아들여 퇴진하고 새롭게 비대위를 구성해 언론노조, 시민사회단체, 촛불시민들과 적극 결합하는 것이 KBS를 보다 확실하게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법적 대응을 선택한다면 현실적으로는 남은 임기 동안 활동을 계속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언론노조도 KBS 본부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시민들과 함께 민주광장을 지키고 있을 것입니다. 당장 목요일 임시 이사회는 강력하게 저지할 것입니다. KBS가 무너지면 MBC와 민영방송 그리고 신문까지 다 무너질 것이라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조합원 여러분의 판단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어떤 길을 택하는 것이 KBS를 지키는데 가장 유리한지 정말 진지한 고민을 부탁드립니다. '4천 명 넘는 우리가 뽑은 임원을 불과 몇 십 명이 단죄를 해? 언제 언론노조가 우리를 도와준 적 있어?' 식의 감정적인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불과 몇 십 명이 아니라 1만이 넘는 언론노조 동지들의 판단으로 받아들여 주십시오. 이번 징계는 KBS를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 KBS를 잘못 이끈 임원들에게 책임을 물은 것입니다. KBS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결의입니다.
그동안 박승규 집행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해서 언론노조의 손을 드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언론노조의 상황 판단이 바른 것인지 아닌지 고민해 주십시오. 양비론이나 판단유보로 한 발 비켜서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상황이 그렇게 한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합원 동지들의 판단은 이 글 혹은 KBS본부의 주장만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KBS의 미래가 걸린 문제입니다. 조합원들께서 양쪽의 주장은 물론이고 직접 미디어 오늘, 미디어스, 시사인, 기자협회보, 프레시안, 한겨레, 경향에 조중동 까지 찾아보고 판단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진정으로 KBS를 사랑한다면 그 정도의 수고는 하셔야 한다고 믿습니다. 언론노조의 직접적인 설명이 필요하다면 백번이고 천 번이고 찾아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서 KBS본부 임원들이 옳다고 판단하신다면 KBS본부에 힘을 실어 주십시오. 그러나 언론노조 비대위원들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신다면 지금 즉시 민주광장으로 나와 주십시오.
지면을 빌려 징계를 받은 KBS 임원들에게도 부탁합니다.
언론노조는 여전히 여러분들이 미덥지 않습니다. 산별노조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일종의 KBS 고립주의로 조합을 잘못 이끌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보수정권과의 치열한 전쟁 시기에 조합간부로서의 정치적 성향도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퇴진하는 것이 KBS를 지키는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법적 대응이나 산별탈퇴를 통해서라도 끝까지 소임을 다하겠다고 결심한다면 그것까지 방해할 생각은 없습니다.
징계 다음날인 8월 1일, KBS비대위에서 낙하산 사장 저지를 위한 총파업 찬반 투표 결의를 하고 정 사장 해임 건의 시 총파업 절차를 밟기로 한 것은 잘한 결정이라 생각합니다.
언론노조의 징계가 부당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였건 원래 계획했던 결정이건 상관없이 치열하게 싸우기를 부탁합니다. 적당한 순간에 타협해서 사장 선임제 같은 형식적인 제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다면 지금 즉시 퇴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언론노조에도 '정 사장만 물러나게 한다면 제도적 개선책은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 김인규 같은 사람 대신 중립적인 인사를 사장으로 앉힐 수도 있다'는 제안이 흘러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일체의 협상을 거부했습니다. 최시중 씨가 방통위에 입성하기 위해 했던 거짓말을 똑똑히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에 맞서서라도 방송의 독립을 지키겠다'던 그의 말은 새빨간 거짓이었음이 입증되었습니다. 이명박 정권은 KBS노동조합, 언론노조를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총파업도 결의하고 민주노총 공투본도 결성하고 <범국민행동>도 조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턱 없이 부족하단 것을 뼈저리게 확인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데, 시민과 함께 하지 않으면 KBS를 지킬 수 없습니다. 박권상 사장 시절의 국가기간방송법 철회나 노무현 정부시절 서동구 사장 임명 철회 때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YTN에 경찰이 투입됐습니다. 정권은 KBS 낙하산 사장 저지 투쟁을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자비한 폭력으로 진압할 것입니다. 정 사장 해임을 관철시키고 나면 최시중 씨가 방통위에 입성한 이후처럼 협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집니다. KBS본부도 이미 그것을 확인했을 거라고 봅니다. 7월 30일 청운동 기자회견도 그런 생각 때문 아닙니까?
진정으로 '국민참여형 사장선임제'를 얻고 싶으면 지금 당장 싸워야 합니다. 정 사장이 쫓겨나면 지금 정부와 협상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단언합니다. 언론노조 징계 때문에 이 중요한 시기에 힘을 잃어 버렸다고 주장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법적 대응을 선택했다면 몇 달 남지 않은 임기 동안 징계 때문에 하지 못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어차피 언론노조, 시민단체, 제 정당, 촛불 시민들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던 만큼, 징계로 인해 KBS 본부가 특별히 약해질 이유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낙하산 사장 저지 투쟁이건, 다른 제도 투쟁이건 죽기 살기로 싸운다면 그동안 어용노조라고 비난했던 사람들까지 모두 지지해 줄 것입니다. 촛불은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지금 누가 이명박과 싸우는지를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언론노조의 징계가 부당하다는 것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길 바랍니다. 박승규 본부장과는 이명박 정권의 감옥에서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존경하는 KBS 조합원 동지 여러분.
조합원들 중에는 언론노조가 지금까지 KBS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묻는 분이 많이 계신 것 같습니다. 저는 바로 지금과 같은 시기를 위해 KBS의 선배들이 산별노조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큰 조직들이 묵묵히 희생해 온 것은 바로 지금, 크고 작은 지부가 하나가 되어 방송을, 언론을 지키는 싸움을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금요일부터 <범국민 행동>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언론노조는 시민들과 함께 KBS 앞에서 옥쇄를 각오하고 싸울 것입니다. 투쟁의 현장에서 만나기를 희망합니다.
2008년 8월 4일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최상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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