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돌아가신 권정생 선생은 1937년 일본 도쿄 혼마치 빈민가 뒷골목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권선생은 전쟁을 두 번 겪었다고 말씀하십니다. 1944년부터 1945년까지 미군 폭격기의 공습에 시달리고 원자폭탄이 투하된 뒤의 참상까지를 첫 번째 전쟁이라고 하시고, 6.25전쟁을 두 번째 전쟁이라고 하십니다.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이 변하고 이웃이나 친척끼리도 외면화고 지내던 현실을 가슴아파하셨습니다.
학교선생님들 중에 국군으로 전장에 나간 분이 있고, 행방불명이 되신 분, 좌익 부역자로 학살 당한 분도 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공비로 붙잡혀가 소식이 없는데 아들은 학교에서 공비토벌가를 목이 터지도록 불러야 하는 현실, 자식 둘을 자수 시켰다가 오히려 변을 당한 어머니, 월북한 남편을 찾아 산을 헤매다가 미쳐버린 여인을 보면서 전쟁이 인간을 얼마나 황폐하게 하는가를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식민지와 분단과 전쟁과 굶주림 그 속에서 과연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 우리에게 물으셨습니다. 이 모두가 『우리들의 하느님』에 들어있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권정생 선생의 말씀이 어떤 이들에게는 불온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권선생은 이 책에서 과학은 만물의 기능을 찾아내는 학문이지만 종교는 만물의 뜻을 찾아 살아가는 정신이라고 하시면서 공산주의가 실패한 것은 만물의 기능만 알고 뜻을 거역한 탓이라고 하십니다. 지나치게 유물사관에 빠져 만물의 뜻까지 버린 것이 큰 실수였다고 지적하십니다.
이 책을 읽어보면 권선생이 평화주의자라는 걸 알게 됩니다. 물론 평화가 억눌린 사람의 해방, 주리고 목마른 사람에 대한 자기몫 찾아주기, 정의가 살아나고 평등이 실현되는 사회적 질서를 뜻하는 것이라면 분명히 정치권력과의 대결이 불가피하다는 말씀도 하십니다. 그게 불온하게 비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하느님』의 많은 글은 종교에 대한 걱정과 비판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성공한 교회를 보며 "교회는 성공했는데 왜 나라는 만신창이인 채 버림받고 있는가? 왜 살인강도는 늘어나고 집 없는 사람이 늘어나고 감옥이 늘어나고 있는가? 왜 인권은 유린당하고 모두가 이웃끼리 믿지 못하는가?" 하고 물으십니다. 고통 받는 이웃들 위에 군림하는 교회, 물질과 현실의 성공만이 있는 교회, 목자가 양들의 지배자인 교회, 양들을 팔아먹거나 백성들을 비참하게 만드는데 방조자의 역할을 한 교회, 맘모스 교회당에 수천 수만의 교인과 자가용과 푹신한 침대와 푸짐한 먹을 것이 있는 교회를 비판하십니다.
석유램프 불을 켜놓고 차가운 마룻바닥에 꿇어 앉아 조용히 기도하던 지난 시절 농촌교회의 모습을 떠올리며 새벽기도가 끝나 모두 돌아가고 나면 마룻바닥에 눈물자국이 얼룩져 있고 그 눈물은 얼어 있었지만 그때 교회는 따뜻한 정이 있었다고 하십니다. 가난하지만 소박하고 진심어린 기도가 있고 진정으로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의 교회, 사랑의 교회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까지 읽고도 불온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권정생 선생은 이 땅의 문학하는 사람, 어린이 문학을 하는 이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분, 무위진인(無位眞人)이셨던 분입니다. 문학정신이 살아 있고, 말과 삶과 글이 하나이셨던 분, 가장 높고 가장 외롭고 가장 많이 아프고 가장 가난하게 사셨던 분, 오늘도 우리는 그분의 불온한 정신, 그분이 만나고자 했던 진정한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우리들의 하느님』을 다시 꺼내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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