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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총회 결의안 무시한 '문제국가'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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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총회 결의안 무시한 '문제국가' 되려나

[기고] 이명박 정부의 10.4선언 무시와 외교적 고립

10.4선언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태도가 주로 남북한 간에만 논쟁의 대상이 되어오다가 지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부터 국제무대에서 남북한간 외교전의 주요 소재가 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지난 7월 24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의장국인 싱가포르는 의장성명을 통해 "참가국 장관들은 금강산 피살 사건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고 이 사건이 조속히 해결되기를 기대했다"고 밝혔다. 성명은 또 "장관들은 회담에서 작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과 그 결과물인 10.4선언을 주목한다"면서 "10.4선언에 기초한 남북대화의 지속적인 발전에 강한 지지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ARF 폐막 다음날인 25일 10.4공동선언에 대한 언급뿐만 아니라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에 대한 언급까지 삭제된 의장성명 '수정본'이 발표되었다. 의장성명 수정본이 나오게 된 데에는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북한 당국의 거부감과 "10.4선언에 기초한 남북대화의 지속적인 발전"이라는 표현에 대한 남한 당국의 거부감 그리고 이에 따른 양측의 '이의 제기' 또는 수정 요구가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북한으로서는 의장성명에서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이 북한의 대외적 이미지에 손상을 가져오기 때문에 반대할 수 있지만, "10.4선언에 기초한 남북대화의 지속적인 발전"이라는 표현이 남한의 대외적 이미지 실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반대한 이유는 무엇일까?
▲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비동맹운동(NAM) 장관급 회의에 참석한 박의춘 북한 외상. NAM 정식 회원국이 아닌 한국은 외교관을 파견해 10.4정상선언에 관한 문구가 회담 결과 문서에 들어가지 않도록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행동은 유엔 총회에서 10.4선언에 대한 지지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던 것에 반하는 것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이명박 정부, 국민에게 솔직해져라

이명박 정부는 표면적으로 "정부 입장은 10.4 선언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그간 남북이 합의했던 7.4 남북 공동성명, 남북 기본합의서, 6.15 정상선언, 9.19 공동성명 등이 모두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옥임 한나라당 제2정조부위원장도 지난 27일 "아무리 구속력 없는 성명이라지만 10.4선언에만 기초한다는 것은 정부에 상당히 부담되지 않겠느냐는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정부 입장을 두둔한 바 있다.

그렇다면 모든 국제회의 문건에 10.4선언뿐만 아니라 7.4 남북공동성명, 남북 기본합의서, 6.15 정상선언, 9.19 공동성명이 모두 언급되어야 하는가? 지난해 10월 31일 유엔총회는 "10.4 선언을 환영, 지지하고 이의 충실한 이행을 권고하며 남북 간 대화, 화해에 대한 회원국들의 지원을 요청한다"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바 있다. 이 같은 유엔총회의 지지 결의안에도 7.4 남북공동성명, 기본합의서, 6.15 정상선언, 9.19 공동성명에 대한 언급이 들어가도록 수정 요구를 해야 하는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국민과 북한 그리고 국제사회 앞에 보다 더 솔직할 필요가 있다.

만약 정부 입장이 진정으로 "10.4 선언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그간 남북이 합의했던 7.4 남북 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정상선언, 9.19 공동성명 등이 모두 중요하다는 것"이라면 남북한 간에 지금과 같은 관계 경색이 발생할 이유가 전혀 없다. 현재 남북한 관계가 악화일로의 길로 치닫고 있는 것은 이명박 정부가 표면적으로는 7.4 공동성명, 기본합의서, 6.15 정상선언, 9.19 공동성명, 10.4정상선언이 모두 중요하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10.4선언을 무시하는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다.

7.4공동성명, 기본합의서, 6.15정상선언, 9.19공동성명, 10.4정상선언이 모두 다 중요하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모든 합의가 현재의 시점에서 다 똑같은 중요성을 가지는 것일까? 그렇게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9.19공동성명이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북핵 문제가 이미 국제화되었고, 북한이 핵실험까지 한 상황에서 비핵화 공동선언에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를 구성해 북핵 문제를 남북한 간에 해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북한 관계에 있어서는 7.4 남북 공동성명과 남북 기본합의서도 중요하지만 6.15 정상선언과 10.4정상선언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2000년 정상회담 이후 남북한 간에는 장관급회담과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등의 새로운 정부간 협의기구가 구성되어 많은 성과를 도출했다. 7.4공동성명에서는 남한의 정보부장과 북한의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장을 공동운영위원장으로 하는 '남북조절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기로 하였는데, 이 같은 합의를 되살려 '남북조절위원회'를 재가동할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 북한에서는 현재 김정일 총비서가 조직지도부장을 겸임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7.4공동성명에서 언급된 것과 같은 방식으로 '남북조절위원회'를 구성할 수 없다. 그리고 남한의 국정원장이 1970년대처럼 남북대화의 전면에서 나서는 것에 대해 남한 사회 내부에서도 동의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3월 26일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남북정상이 새로 합의한 합의문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지키는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김정일 총비서가 직접 서명한 10.4공동선언을 상대적으로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은 이명박 정부가 지난 10년간의 남북한 간 합의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북한에 보냈고, 그 결과 남북한 관계는 10년 전의 대결과 반목의 관계로 돌아가게 되었다.

기본합의서가 남북한 모두 지켜야 할 훌륭한 합의 문건이라는 점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기본합의서는 '선(先) 정치군사 현안의 일괄타결, 후(後) 화해협력'의 입장에 기초한 정치중심적 접근을 취하고 있었고 점진적 접근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이 문건의 채택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간에는 이를 바탕으로 한 단 한 건의 이산가족 상봉이나 의미 있는 경제협력도 이루어지지 않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반면 6.15공동선언은 비록 형식적으로는 '통일'이라는 민감한 문제까지 언급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남북한 모두에게 이익이 되고 상대적으로 쉬운 문제부터 실천에 착수한다는 점진적이고 실용주의적 정신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전에는 이산가족 상봉이 1985년의 단 한 차례, 157명에 불과했으나, 2000년 이후부터 2007년 10월까지 16,212명이 대면상봉에 참가함으로써 상봉인원이 정상회담 이후 100배 이상 증가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남한 기업이 중국의 경제특구에서처럼 개성공단에서 북한 근로자를 고용해 공장을 직접 운영하는 방식으로 남북경협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남북기본합의서가 정상회담이 아니라 총리를 수석대표로 하는 고위급회담에서 채택된 문건이라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유럽의 통합과정에서 중요한 조약들이 모두(또는 대부분) 정상회담(유럽이사회)에서 채택되었다는 점은 정상회담에서의 합의가 그만큼 강한 구속력을 가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남북한의 경우 최고지도자(대통령과 당 총비서)에게 권력이 고도로 집중되어 있는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남북한 간 적대관계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남북정상회담에서의 평화공존에의 합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정상간의 평화공존에 대한 합의에 기초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반면 6.15선언과 10.4선언은 기본합의서가 가지고 있던 이 같은 한계를 넘어서서 대안을 제시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코 두 차례의 남북정상선언이 기본합의서보다 덜 중요하다고 볼 수 없다.

남북한 정치체제에서 대통령 및 조선로동당 총비서가 가지고 있는 위상과 양국의 총리가 가지고 있는 위상은 결코 비교할 것이 되지 못한다. 특히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수령 또는 '수령의 후계자')의 지시는 곧 법이다. 김정일 총비서가 남북회담에 직접 나서서 김대중 대통령과 남북한 간의 평화공존 및 화해협력에 합의하였기 때문에 이후 북한의 대남 일군들은 남한 당국과 교류협력의 확대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마련하고 이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0.4선언 무시의 몰역사성

이명박 대통령과 핵심 측근들은 마치 6.15공동선언 및 10.4공동선언이 기본합의서의 이행과 무관한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기본합의서에 들어 있는 합의 사항들을 면밀히 분석해보면 그것이 두 정상선언과 후속대화를 통해 구체화되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남북한은 고위급회담을 통해 1992년 9월 17일 "남북화해공동위원회 구성, 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해 남북화해공동위원회 위원장을 "장관(부장) 또는 차관(부부장)급"으로 하며 화해공동위원회 회의를 "분기에 1회 개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의했다. 이 같은 합의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개최 이후 "장관급회담"이라는 형식으로 이행에 옮겨졌다.

남북한은 또한 1992년 5월 7일 "남북교류-협력공동위원회 구성, 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해 교류-협력공동위원회 위원장을 "장관(부장) 또는 차관(부부장)급"으로 하며, 회의는 "분기에 1회 개최"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이 같은 합의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개최 이후 차관급을 위원장으로 하는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회의 개최를 통해, 그리고 2007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부총리급을 위원장으로 하는 "경제협력공동위원회" 구성 합의를 통해 이행되고 발전해 왔다.

이외에도 남북기본합의서에 명시된 내용들이 어떻게 6.15공동선언과 10.4공동선언을 통해 구체적으로 이행되어 왔는가를 지적하자면 그것만으로도 한 편의 논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남북한은 2007년 정상회담에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도 협력하기로 합의함으로써 북한은 군사 분야에서 과거의 '통미배남(通美排南)' 입장에서 '통미통남(通美通南)' 입장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남북한 당국간 협의 수준을 격상시키고 이산가족의 상시 상봉을 진행하기로 하는 등 중요한 합의를 도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북핵 진전', '재정부담 능력' 등 새로운 기준을 가지고 10.4공동선언을 자의적으로 이행하려고 한다면 남북한 간의 정치적 신뢰가 기저에서부터 붕괴되고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해 남북한 간 협력을 기대할 수 없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2000년 정상회담 이후 남북한은 6.15와 10.4공동선언 이행 과정에서 기본합의서에 담겨있는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겨 왔다. 그러므로 이명박 정부가 6.15와 10.4공동선언을 무시하게 되면 기본합의서의 실질적인 이행을 거부하는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 결국 이명박 정부의 6.15와 10.4공동선언 무시 정책은 2000년 정상회담 이후 가동되어온 남북 당국간 대화 채널의 마비로 이어졌다.

이명박 정부는 기본합의서가 6.15와 10.4선언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하다가 이 같은 주장이 비판에 직면하자 현재 "정부 입장은 10.4 선언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그간 남북이 합의했던 7.4 남북 공동성명, 남북 기본합의서, 6.15 정상선언, 9.19 공동성명 등이 모두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말을 바꿔 실질적으로는 10.4선언에 대한 존중과 이행을 거부하고 있다.

정녕 '실천의 시대'로 가고자 한다면

이명박 정부가 진정으로 7.4 남북 공동성명, 기본합의서, 6.15 정상선언, 9.19 공동성명과 마찬가지로 10.4선언을 존중한다면, 2007년 정상회담과 제1차 총리회담에서 합의한 것처럼 제2차 총리회담을 조만간 개최해 10.4선언과 다른 합의의 이행 방안에 대해 협의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후 지금까지 북측과 기존의 남북한 간 합의에 대해 협의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만을 밝혔을 뿐 단 한 번도 합의 이행을 위한 제2차 총리회담 개최를 제안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국회개원연설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언급한 것처럼 "남북당국의 전면적인 대화가 재개"되기를 바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남북한 관계가 '선언의 시대'를 넘어 '실천의 시대'로 나아가는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개원연설에서 천명한 것처럼 "특정 정권 차원이 아니라 민족 장래의 관점에서 남북관계를 만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노무현 정부와의 준비 안 된 차별화에 집착해 10.4선언 이행을 계속 거부할 것이 아니라 6.15와 10.4선언이라는 남북한 정상간 기존 합의를 조건 없이 존중하고 이행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남북한 정상간 기존 합의를 존중할 때 북한도 이명박 정부를 대화상대로 인정하고 "남북당국의 전면적인 대화"에 협조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10.4선언에 기초한 남북대화 발전"에 대해 국제무대에서 계속 부정적 입장을 보인다면, 작년 UN총회에서 10.4선언 지지 결의안에 대해 동의했던 국가들은 이명박 정부에 대해 새로운 '문제 국가'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10.4선언에 기초한 남북대화 발전"을 주장하는 북한측 주장이 더욱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10.4선언에 기초한 남북대화 발전"을 계속 부정함으로써 외교적 고립을 자초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남북한 당국 간에 정치적 신뢰를 회복하고, 당국간 대화를 복원하며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에 대한 합동조사가 실현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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