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일본교(日本橋)'라 하는 곳이 있다. 도쿄의 중심에 자리한 이 다리를 도쿄에서는 '니혼바시'라고 읽지만, 오사카 중심에 자리한 같은 한자 이름의 다리를 오사카에선 '닛뽄바시'라 읽는다. 일본대학, 일본여자대학, 일본복지대학은 '니혼'으로 읽지만, 일본공업대학, 일본체육대학, 일본의과대학, 일본치과대학은 '닛뽄'으로 읽는다. 일본의 지폐에는, 발행기관인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ank of Japan) 이름에 따라 '닛뽄 긴코(NIPPON GINKO)'로 표기하고 있지만, 실제로 전화를 하면 '니혼 긴코'라 대답한다고 한다.
2002년 게단렌(經團連)과 닛케렌(日經連)이 통합하여 '일본경제단체연합회'가 탄생하였는데, 이때도 일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하였고, 결국은 당시의 오쿠다(奥田碩) 총재가 독단으로 '닛뽄'으로 읽는 것으로 결정하였다는 후문이다.
닛뽄(일본)방송협회(NHK) 조사에 따르면, 1963년에는 '니혼'이 45%, '닛뽄'이 42%이었지만, 1993년에는 '니혼'이 58%, '닛뽄'이 39%이니, 전체적인 흐름으로는 일단 1993년까지는 '니혼'으로 읽는 경향이 강해진 것 같다. 또 1995년에 발표된 <NHK> 방송문화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나이가 높을수록 '닛뽄'을, 나이가 젊을수록 '니혼'을 사용하는 빈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즉 시간이 지날수록 적어도 1990년대 중반까지는 '니혼'을 사용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의 국립국어연구원 조사에 따르더라도, 약 80%가 '니혼'을 사용하고 있으며 스포츠 중계 등에서만 '닛뽄'을 선호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을 대표하는 '일본어 사전'인 고지엔(広辞苑)에는 "나라(奈良) 시대 이래 니혼, 닛뽄으로 음독하게 되었다. 지금도 읽는 방식에 대해선 법적인 근거는 없다. 하지만 본 사전에서는 특히 닛뽄으로 습관적으로 오래 동안 사용해온 경우를 제외하고는 니혼이라 읽는다"고 되어 있다. 고지엔도 '니혼'을 우선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고지엔에는 '닛뽄'이라는 항목에는 14줄 정도의 설명이 붙어 있을 뿐이지만, '니혼'이라는 항목에는 무려 2쪽 분량의 설명을 하고 있다.
'니혼'인가, '닛뽄'인가? 사실 본질적으로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일수도 있다. 일본이라는 한자를 가나로 읽을 경우에 생기는 일반적인 문제=혼란으로 치부해버리면 결론은 간단해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언어가 탄생과정과 쓰임새에서 사회와 무관하지 않았음을 고려해보면, '니혼'과 '닛뽄' 이라는 소리가 각각 사회적 쓰임새에서 적지 않은 차이가 있음을 상상해볼 수 있다.
특히 통계적으로는 확인 불가능하지만, 개인의 경험을 말하자면, 최근 일본사회에서 공식석상에서 '니혼(NIHON)'보다 '닛뽄(NIPPON)'을 사용하는 빈도가 많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처음에는 그 변화를 눈치 채지 못했다. 아나운서나 버라이어티, 그리고 스포츠 프로그램 등에서 소비되는 수없이 많은 발언 중에서 일본의 호칭이 어느 덧 '니혼'에서 '닛뽄'으로 변했다는 것을 실제로 통계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사히(朝日)TV>에서 저녁 10시부터 시작되는 '뉴스 스테이션'이라는 시사 뉴스 프로그램은 필자가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후반까지 일본에서 생활할 때, 아주 잘 보던 프로그램이었다. 당시의 앵커였던 구메 히로시(久米弘)는 사실을 담담한 어조로 원고를 교과서 읽듯이 전해주던 기존의 <NHK> 형식의 건조한 뉴스 프로그램과는 달리, 각종의 그림과 간결한 설명으로 어려운 국제정세나 복잡한 시사 문제들을 아주 알기 쉽게 전해주었고, 이 영향으로 다른 텔레비전의 뉴스 프로그램이 뉴스 쇼 형식으로 바뀌었을 정도로 그 영향력이 만만치 않았었다. 내 기억이 틀림없다면 구메 히로시는 일본을 '니혼'으로 읽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최근에 구메 히로시를 대신해 스포츠 중계, 특히 레슬링 중계에서 이름을 떨치던 새로운 앵커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문제는 이 아나운서가 연발하는 '닛뽄'이라는 호칭이었다. 이 아나운서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스포츠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각종 오락 프로그램에서도, 그리고 정치가의 발언 속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고이즈미 전 수상도, 아베 신조 전 수상도 기자회견이나 국회발언 등에서 기존의 수상들과는 달리, '닛뽄'이라는 호칭을 다용한다. '닛뽄'이라는 호칭이 최근 '일본의 국호'로 아주 빠른 속도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셈이다.
원래 스포츠 중계의 특징상, 자국을 강조하는 호칭이 선호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한국 사회에서 정착된 '대~한민국'이라는 호칭도 이런 경향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니혼'이 '닛뽄'으로, '한국'이 '대한민국'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이를 내셔날리즘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것은 다소 과장이 섞여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닛뽄'이라는 호칭은 일본의 근현대 속에서 결코 내셔날리즘과 무관하지 않았음을 확인해둘 필요가 있다.
'닛뽄'이라는 호칭은 1934년에 문부성 산하 임시국어조사회가 호칭통일안으로 결정한 것이 공식적인 결정의 효시를 이룬다. 물론 이전에도 교과서 등에서 '닛뽄'이라는 호칭이 사용되기는 했지만, 1934년의 결정이 공식적 호칭으로는 최초의 것이다.
사실 1930년대 초반부터 일본 사회 내부에선 국호를 둘러싼 논쟁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었다. 처음에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영어로 표기할 때, 자팬(Japan)이나 자퐁(Japon)이라는 외래어 명칭을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닛뽄(NIPPON)이나 니혼(NIHON)을 정식 국호로 사용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는데, 저팬이나 자퐁이라는 외래어를 대신해서 일본어 음으로 일본의 국호를 표기하자는 쪽으로 결론이 모아졌다. 즉 외국에 대해서 사용하는 공식 국호로 저팬이나 자퐁을 버리고 일본이라는 한자를 일본 음으로 읽고 이를 다시 알파벳으로 표기하기로 1934년에 임시국어조사회가 결정한 것이다. 저간의 사정을 지금의 <마이니치신문>의 전신인 <도쿄일일신문(東京日日新聞)> 1934년 3월 23일자(석간)에서는 "국호 호칭을 닛뽄으로 통일, 문부성 국어조사회에서 결정"이라는 머리글 아래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문부성 내의 국어조사회에서는 내각과 외무성 요청에 자문하기 위해 조사를 계속해왔는데, 니혼으로 발음하는 것이 문헌적으로 많고 또 (발음하기에도) 부드럽다는 이유로 (니혼으로 읽기를 주장하는) 반대론을 깨부수고 단연코 우리나라를 힘차게 인식하게 할 수 있는 '닛뽄'을 채용하기로 하고, 앞으로는 국호를 '닛뽄'으로 통일하기로 하였음을 내각과 외무성에도 보고했다. 따라서 앞으로는 외국에 발송하는 서류에는 국호를 '닛뽄'을 사용하고 '저팬'은 폐지하기로"
기사 내용에 따르면, 적어도 당시의 일본 사회에서도 '닛뽄'보다는 '니혼'이 보다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혼'을 사용하자는 주장을 "깨부수고" '닛뽄'을 채용한 것은 다름 아니라 '닛뽄'이 일본을 "힘차게 인식"하는 데 적절한 호칭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결정에 따라 외국에 발송하는 서류는 Japan을 폐지하고 '닛뽄(NIPPON)'을 사용하게 된다. 이것이 체신성 고시 928호이다. 외국에 발송하는 우편물이나 공식 문서에 JAPAN이라는 호칭을 대신해서 NIPPON이라는 호칭이 공식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한국을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KOREA 대신에 HANGOOK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물론 체신성이 관할하는 우편물만이 아니라 외국 발송 공식 서류에 국명을 NIPPON으로 통일하게 된 것이다. 또 비슷한 시기에 NHK도 현재의 방송용어위원회 전신인 방송용어 및 발음조사개선 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공식국호로는 '닛뽄'을, 그 밖의 경우에는 '니혼'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1930년대라는 시기가 천황제 파시즘으로 돌입하던 시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호칭상의 변화가 갖는 사회적인 의미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님을 쉽게 추론해볼 수 있다. 실제로 '닛뽄'에 대해서 1935년에 오쿠마 도쿠이치(奥間徳一)는 『대일본국호의 연구』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영원히 쉼 없이 발전하는 위대한 힘으로 가득 찬 황국(皇國)의 국호를 힘차게 '닛뽄'으로 읽는 것이 지당하다. 닛(ニッ)이라는 촉음은 내부에 힘을 가득 채은 다음 밖으로 대 발전을 촉개(促開)하려는 움직임을 나타내는 것이며, 또 '뽄'은 충실한 힘을 강렬하게 방사하여 앞에 있는 장애물을 돌파 매진하려는 가장 위대한 힘을 보여주는 것으로, 실로 '닛뽄'이라는 이름이야말로 태양과 함께 영원무궁, 아니 번영에 번영을 거듭해가는 '태양의 나라(히노구니, 日の国)' 황국(皇國)의 국시에 가장 적합한 호칭이다."
일본을 대표하던 유물론 철학자로 1945년 패전 직전에 형무소에서 옥사한 도자카 준(戸坂潤, 1900-1945)도 1935년에 그의 저서 <일본 이데올로기론>에서 "일본주의, 동양주의 내지 아시아주의 등등의 '닛뽄' 이데올르기가 대량으로 생산되어 언론계 문학 과학 세계에 침투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 2~3년 사이의 일"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닛뽄'이라는 호칭은 단순한 발음상의 문제가 아니라, 내셔날리즘의 기운을 담은 극히 정치적인 호칭인 것이다.
1943년 1월, 내각정보국에서 펴낸 <주보>에도 '닛뽄'은 "힘찬 일본, 바람직한 일본"을 뜻하며, '니혼'은 "힘이 약하니" "반드시 힘차게 호칭"해야 한다고 쓰고 있다.
이 같은 '닛뽄' 호칭은 전후에도 이어진다. 세계우편조약 개정에 따라 우표에 반드시 국명을 기재할 의무가 발생하자, 1965년, 국무회의 결정에 따라 우정성은 새 우표에 'NIPPON'을 기재하기로 결정하였고 실제로 1966년부터 이를 실행에 옮긴다. 또 1970년에는 당시 수상이었던 사토 에사쿠(佐藤栄作)는 "일본 국민을 하나로 하기 위해서는 닛뽄이 좋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최근의 '닛뽄' 호칭 선호를 바로 1930년대의 일본 사회의 파시즘화와 연결시켜 생각하는 것은 다소 몰역사적이긴 하지만, 적어도 '니혼'에서 '닛뽄'으로의 변화가 단순히 편의적인 호칭상의 변화가 아니라, 그 저변에 일본 사회 내부의 마그마 같은 변화를 상징하는 것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마그마 같은 변화가 일본이라는 나라를 "보다 힘차게 강건하게 팽창적으로 부를 수 있는" '닛뽄'으로 수렴되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宮本克美、「「日本」の読み方の現在」『放送研究と調査』2004.4
권혁태, 「2006년 일본 우경화 기행」, 황해문화, 2007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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