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외교의 현주소
이명박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복원(?)하려 했던 한미관계는 쇠고기 졸속 협상과 추가협상의 파고를 맞더니 양국 간 신뢰에 상당히 문제가 생긴 듯하다. 그 와중에 미국의 지명위원회(BGN)에서 독도를 주권미확정(undesignated sovereignty) 상태로 수정함으로써 MB 외교는 큰 충격을 받았다. 허둥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다.
한일관계도 꼬여 있기는 마찬가지다. 양국관계의 아킬레스건에 해당되는 영토(독도)문제를 후쿠다 정부에서 중학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수록하기로 전격 결정함으로써 MB 외교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속된 표현으로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격이다. 속 시원히 풀 재간도, 여력도 없어 보인다.
그런가 하면 MB의 방중 외교 기간 중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공식성명을 통해 "한미동맹은 지나간 역사의 산물"이라는 비아냥 섞인 훈수를 들었다. 우리 정부로서는 한중 관계가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격상되었다고 자화자찬 했지만, 중국의 의중은 미국만 쳐다보지 말고 변화하는 시대를 제대로 읽으라는 뼈아픈 충고였던 셈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남북관계다. 남북관계를 국제정치-민족의 복합적 틀의 관점에서 접근할 것을 거부하고, 오로지 국제정치의 축으로만 접근함으로써 남북관계가 현저히 경색되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의장성명을 둘러싸고 문구 삭제 등의 촌극을 빚었다. 국제적 망신도 망신이려니와 국제무대에서 남북 외교대결의 부활이라는 냉전의 망령을 되살리는 것 같아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위기의 원인
요컨대, 한국 외교는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자칫 한국 외교는 고립무원의 외교적 고립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도 결코 배제하지 못한다. MB 외교가 안고 있는 위기의 본질은 다음의 몇 가지로부터 나왔다.
첫째, 소위 MB 독트린에는 한국 외교 전략의 큰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용외교는 외교정책의 전술적 기법일 뿐, 실용외교 자체로는 국가전략의 중추가 될 수 없다. 지구상 어떤 국가인들 국익 중심, 실리 중심 외교를 마다하는 국가가 어디 있는가. 국제무대에서 한국이 가야할 길에 대한 시대적 철학과 원칙이 확고히 만들어진 이후라야 실용외교는 유연성을 가지며 성공할 수 있다. 큰 그림(grand design)의 부재는 전략가적 사고의 부재로부터 기인한 듯 보인다.
둘째, 국가간 관계, 국제정치 본질에 대한 최고정책결정자의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국가간 관계는 기업간의 상행위와 당연히 다른 차원이다. 화끈하게 밀어주기나 의리 보여주기 같은 행동들이 다른 영역의 국익을 쉽게 보장하기 못한다. 사안마다 관련 행위자, 이익쟁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CEO형 리더십의 한계로 보인다. 더욱이 이런 유형의 리더십 틀 속에서 정책 결정과정의 구조가 지나치게 대통령 1인에게 집중되어 있어 토론을 통한 의견수렴보다는 장관이건 청와대 참모건 대통령 눈치 보기에 바쁜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원인은, 정부가 한미관계 복원 혹은 강화라는 인식적 틀에 지나치게 압도당해 있다는 점이다. 한미관계는 한국 외교에서 중요한 축의 하나다. 그러나 한미동맹 올인 정책을 너무 노골적으로 공론화하는 것에 치중함으로써 전략적 사고가 위축되어 버렸다. 한미관계의 지속적 강화의 필요성을 '동맹의 복원'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공공연하게 천명함으로써 우선 대미관계에서부터 협상적·구조적 열위를 자처하고 시작한 것이 패착이었다. '정상적' 관계로의 '복원'은 '복원'을 원하는 측에서 뭔가 양보할 수밖에 없는 구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은 지난 10년간 한미관계가 비정상적·일탈적 관계였고 동맹이 심각한 수준으로 훼손되었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의 국제정치 변화양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10년 전 구도가 마치 정상적 관계였던 것처럼 믿는' 과거지향의 자폐적 논리처럼 보인다.
또는 'ABR'(Anything But Roh, 노무현 정부와 반대로)이면 만사형통이라고 생각한 안이한 판단의 결과였다. 이에 따라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한미관계가 보였던 지형 변화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생각은 아예 고려대상도 아니었을 것이다. 설사 MB 정부가 노무현 정부의 외교 정책에 반대하는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외교적으로는 성과와 변화를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했다.
환상 여섯 가지
MB 정부의 한미동맹 올인 정책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잘못된 확신 내지 환상에 기반하고 있다고 보인다.
첫째, 한미관계 강화를 외치고 그 진정성이 미국에게 제대로 전달되면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한국 입장과 이익을 존중해 줄 것이고 MB 정부의 국내정치적 어려움도 이해할 것이라는 믿는 환상이다. 국가간 동맹을 안보이익을 공유하게 하는 수단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동맹관계 자체의 무오류성을 믿고자 하는 정서적 인식이다. 희망적 관측(wishful thinking)이라고 불리는 전형적 오인(misperception)의 하나다.
둘째, 중국이 한국을 그나마 대접해주는 이유는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환상이다. 2003년 이래 6자회담을 진행하는 동안 중국과 한국은 북한을 설득하고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전략적 공유점을 모색해 왔다. 중국이 한국의 외교적 입장을 존중해 줬던 이유는 한미동맹만이 유일한 이유가 아니라, 한국이 가졌던 전략적 자율성과 레버리지에 있었다는 점도 인정되어야 한다. 그 공간을 스스로 협소화하고 미국에 올인하겠다는 태도는 중국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셋째, 동북아에서 한-미-일 3각 구도가 강화되면 일본은 한국이 원하는 방향대로 공조할 수 있을 것이란 환상이었다. 그 인식 위에서 일본의 약점인 과거사 문제를 일단 덮어두고 미래지향적 협력을 용감하게 외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이완된 긴장을 오히려 역이용, 한국의 의표를 찔렀다. 한일관계에는 과거사 청산 문제라는 긴장국면과 미래지향적 당위가 늘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다. 그러나 너무나 긴장의 고리를 쉽게 놓아 버렸다. MB정부의 소위 '통 큰 제안'은 일본 정부에게 허술하기 짝이 없는 외교로 보였을 것이다.
넷째,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북한을 압박하면 북한이 마침내 손을 들고 순순히 국제사회에 걸어 나오게 될 것이라는 환상이 있었다. 이른바 강압적 수단에 대한 환상이다. 이같은 신념 내지 환상은 '좌파 정권' 10년의 대북 화해·협력정책을 일방적인 퍼주기라고 비판해 왔던 측의 공통된 인식이기도 했다. 북한 길들이기, 다른 말로는 북한으로 하여금 국제사회의 표준적 행동을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이기도 했다.
문제는 북한에 대한 인식이 냉전기 역사를 거치면서 이해보다는 증오가 더 앞서 있었다는 것이었고, 북한을 학습시키는 방법이 당근보다는 채찍이 더 유효하다는 신념, 강압성이 가지는 매력에 더 쏠려 있었다는 점이다. 이번 ARF 파동의 근저에는 북한에 대한 치열한 대결의식과 증오심이 내재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다섯째, 한미동맹의 복원을 외치면 국내 정치에서 반(反)노무현 정서가 결집해 자신의 정치적 지지기반이 확대 되고 강화될 것이라는 환상이다. 이명박 정권의 탄생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반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정치적 반사이익은 말 그대로 반사이익일 뿐이다. 지난 대선에서 전체 유권자들 중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분포가 노무현 대통령 당선시보다도 낮았다는 사실을 쉽게 잊은 듯하다. 노무현 때리기의 약효는 대선으로 거의 끝났다고 봐야 하는데 아직도 그 마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미국이 독도문제를 두고 일본의 손을 들어 주고 있다고 애석해 하면서, 이것도 노무현 시기 훼손된 한미관계 탓으로 돌릴지 궁금하다.
마지막, 힘의 논리만이 난무하는 국제정치에서 약소국 한국에게는 '틈새 외교'(niche diplomacy)나 '자율적 공간'이란 거의 있을 수 없고, 이에 대해서는 그다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인식이다. 이는 전형적인 '약소국 인식'(small power mentality)의 발로다.
국제정치에서 힘(power)이란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국제정치의 모든 현상이 힘의 우열만으로 그 결과가 결정되지는 않는다. 힘만이 유일한 요소라면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패할 리도 만무했다. 또한 모든 국제정치가 힘의 계산법만으로 존재한다면 국가간 정책을 조정하는 외교란 그저 형식적 절차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약소국에게는 약소국 나름의 외교적 공간이 있다. 강대국에 비해 비록 협소하지만 그 협소한 공간을 확보하고 최대한 확대하기 위한 국가전략을 세워야 한다. 동북아 중심국가론이나 지역 평화촉진 국가로서의 한국 이미지는 그런 의도에서 나왔던 발상이었다. 그 자율적 공간을 스스로 협소화시키는 인식 위에서는 외교 영역에서 아무런 창의성도 기대할 수 없다.
외교는 우방국이 해주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아직 버텨야 할 날이 많이 남은 정부 아닌가? 우선, 어떤 지역 질서, 어떤 한반도 정세가 우리에게 유리한 것인지부터 따져라. 국가전략 재구상의 출발은 거기부터다. 그런 다음 한국에게 주어진 외교적 역할과 그 자율적 공간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 외교에게 주어진 존재적 의미가 있다. 그래야만 한국 외교관들의 우수한 창의성이 마음껏 발휘될 수 있다. 한국 외교는 한국 정부가 하는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 기타 우방국들이 대신해 주는 것이 결코 아니다.
미국과의 관계 강화는 전략상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동맹 강화는 한반도 평화정착, 동북아 평화질서 구축과정에서 양국의 전략적 이익이 교집합을 확보하는 전제 위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동북아에 대한 미국적 해법을 무조건 추종하는 것만이 동맹을 강화하는 유일한 방도는 아니다.
미국의 해법 또한 처음부터 고정된 상수가 아니라 한국 및 주변국들과 정책조정을 통해 변화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대미관계에 있어 노무현 정책 갈아엎기는 이제 이익보다는 손실이 더 많아 보인다. ABR 외친다고 더 이상 감동할 미국도 아닌 듯하다. 더욱이 동맹복원, 혈맹, 가치공유 등의 외교적 수사에 내재되어 있는 한국인의 문화가 미국의 그것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자칫 MB정부의 '무늬만 실용' 외교가 미국 외교에 내재된 철저한 실리주의적 태도(pragmatic approach)에 의해 '뒤통수 맞는' 일이 또 생길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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