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김탁환 작가는 혜초의 이야기를 소설로 다시 쓰기 위해 '왕오천축국전'에 나온 혜초의 흔적을 찾아 인도, 중앙아시아, 이란 등 실크로드를 직접 답사하며 8년 동안 이 소설을 준비했다고 하는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김탁환 작가를 초대해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인 혜초에 주목한 이유는 뭔지 또, 그의 손에서 되살아난 혜초의 여행기 <왕오천축국전>에 대해 얘기 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소설가 김탁환 작가입니다. 김탁환 작가는 1968년 경남 진해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94년 ≪상상≫ 여름호에 「동아시아 소설의 힘」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고.. 95년부터 3년간 진해에 있는 해군사관학교에서 국어과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장편 소설로 『허균, 최후의 19일』,『독도 평전』, 『나, 황진이』, 『방각본 살인 사건』, 『리심, 파리의 조선 궁녀』 등을 펴냈고 이 밖에 소설집 『진해 벚꽃』, 문학 비평집 『소설 중독』, 『진정성 너머의 세계』, 등이 있습니다. 현재 한국과학기술원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로 디지털스토리텔링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우선 축하드립니다. 신작 혜초가 출간됐죠. 김탁환 작가 하면 이순신 장군, 황진이에 관한 소설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굉장히 왕성한 창작열을 보여주시는 것 같고요. 무엇보다 그동안 작품의 주인공이었던 인물들이 이순신, 황진이 주로 조선시대 인물들인데 이번에는 통일신라로 거슬러 올라가서 혜초란 인물을 주목하셨어요. 계기가 있었습니까?
김탁환 : 신라라는 나라 자체에 우선 관심이 있습니다. 신라는 천년왕국이고, 천 년 동안 한 국가를 이어간다는 것 자체가 세계사적으로도 굉장히 유례없는 왕조고,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를 썼듯이 충분히 천년 왕국 신라의 신라인 이야기를 쓸 수 있겠다 생각해서, 아주 오래 전부터 관계되는 책들을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비롯한 논문들을 찾아서 읽었는데, 읽는 과정 속에서 발견한 인물들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들이 신라를 떠나서 천축국으로 구도를 떠난 승려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승려들의 이름들을 죽 확인했고, 그 대부분의 승려들은 이름만 남아 있고 기록이 없으니까 안타까웠는데 혜초스님 같은 경우는 구체적으로 자기 여행경로들을 기록한 왕오천축국전이 있기 때문에 이 인물 같으면 아시아 전체를 누볐던 우리 선조의 모습을 형상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인규 : 이른바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인이다
김탁환 : 무겁게 말하면 세계인, 가볍게 말하면 배낭족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박인규 : 혜초라는 인물에 대해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신 지 사실 한 8년 됐다는데, 실제로 행동에 옮긴 건 시간이 걸렸다고 해요.
김탁환 : 저는 주로 인물이 정해지면 그 인물의 행적을 답사하고, 답사를 통해 소설을 튼튼하게 구성하는 창작 방법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혜초스님을 쓰기 위해서는 혜초스님의 코스를 죽 답사를 해야 되는데, 굉장히 경비, 답사비도 많이 들고 혜초스님이 갔던 코스는 당시로 치면 40개 정도 소국을 거쳐 갔고, 지금으로 쳐도 굵직굵직한 문명권들을 지나갔기 때문에 저 혼자 힘으로는 굉장히 어렵고 그 지역의 실크로드에 전문적으로 박식한 연구자들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 두 가지를 다 갖춰야만 이걸 쓸 수 있고, 그래서 처음 생각하고 4년 정도는 쓰고는 싶지만 내가 이걸 과연 쓸 수 있을까, 쓰지 못하는 작품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인규 : 소개한 걸 보니까 혜초라는 스님이 8세기 초 활동하신 분이고 실제로 왕오천축국전, 구도여행을 떠난 건 스무 살 때였다고요. 굉장히 일찍 떠난 것 같은데 혜초란 인물은 어떤 인물입니까?
김탁환 : 704년 정도에 태어나셨고 그 당시 승려가 되면 당나라로 일단 유학을 가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16살 때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셨고 당나라에서 금장지라는 인도 승려를 만납니다. 금강지 밑에서 공부하시다가 어떻게 보면 스승의 나라로, 석가모니의 나라이지 스승 금강지의 나라로 스무 살 때 인도로 떠나게 되고, 다른 승려들 같은 경우는 인도에 갔다가 석가모니의 행적만 살펴보고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혜초스님 같은 경우는 물론 석가모니의 행적도 따라갔지만 더 나아가 페르시아나 아랍 등 서쪽으로 불교 권역 밖으로 나아갔던. 그래서 구도자의 모습도 띠지만 여행가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 분이라고 할 수 있고요.
박인규 : 중앙아시아나 그 당시 아랍에 간 건 그냥 지적 호기심,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나요? 구도여행이라기보다는
김탁환 : 그렇죠. 그 당시 벌써 그쪽은 무슬림의 나라였고 혜초스님의 왕오천축국전에서도 여기는 불교가 없다, 외도들만 득실댄다고 표현하시니까. 지금도 그 지역이 분쟁지역이지 않습니까? 혜초스님이 계셨던 데도 거기는 당나라 입장에서 보면 적진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용기가 필요한 행동들이었고
박인규 :
혜초스님이 실제로 다 여행한 기간은 어느 정도 됩니까?
김탁환 : 4년 정도 됩니다. 그래서 한 723년 스무 살 때 떠나셔서 727년에 돈황으로 돌아오십니다. 4년 동안 죽 돌아다니셨는데, 지금 여행가들이 떠난다고 해도 4년 안에 그 코스를 전부 주파한다는 게 굉장히 힘겨운, 걸어서 가셨죠.
박인규 : 그래서 나온 책이 왕오천축국전. 다섯 개의 천축국을 갔다 온 기록이라면서요?
김탁환 : 네. 왕 오천축국 전.
박인규 : 어떤 내용입니까?
김탁환 : 전형적인 여행기의 글쓰기를 따르고 있는데요, 혜초스님이 가셨던 곳들이 죽 소개돼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 발견돼 있는 건 낙질이기 때문에, 앞뒤 부분이 좀 떨어져나가 있습니다. 앞뒤 부분은 혜초스님이 당나라 광저우에서 출발해서 동인도까지 도달하기까지 배를 통해서 주로 가셨는데 그 부분이 떨어져나가 있습니다.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건 동인도에서 혜초스님이 여행을 떠나셔서 인도를 다 도시고, 지금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쪽으로 북서진했다가 거기서 다시 서진해서 이란 쪽, 아라비아 쪽을 보시고 흔히 실크로드로 알려져 있는 타클라마칸 사막 코스로 해서 돈황으로 해서 장안으로 시안으로 돌아오는 코스입니다.
박인규 : 그 혜초의 이야기를 두 권의 소설로 쓰셨어요. 요즘 팩션이라고 하던데요, 팩트와 픽션이 합친 거다. 이번에 나온 혜초는 작가의 상상력이 들어간 거 아닙니까. 제가 보기에 가장 큰 특징은 고선지입니까? 고구려 출신 당나라 장군과 서로 만나는 것으로 설정하셨던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안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는 거죠?
김탁환 : 우선 제 소설의 큰 주제는 문명교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시아와 유럽, 아랍 문명이 어떻게 서로 만나는가. 굉장히 핵심적인 부분인데 문명 교류를 하는 방법은 두 가지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전쟁을 통해서 한쪽 문명이 한쪽 문명을 일방적으로 정복한 후 들어가는 경우, 그렇지 않으면 평화로운 상황 속에서 양쪽을 오가면서 서로 왔다갔다 하는 교역이랄까 여행이랄까 그런 게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선지는 아주 대표적인 전쟁을 통해서 문명을 전하려고 했고, 그래서 종이 같은 경우가 고선지 장군의 탈레스 전투를 통해서 유럽으로 전파됐다고 역사적으로 알려져 있고
박인규 : 고선지 장군은 아랍 세력의 침임에 대비해서 당나라 장군으로 싸운 것이죠?
김탁환 : 그렇죠. 안서도호부의 장군이었습니다. 그리고 혜초스님은 양쪽을 왔다갔다 했던 여행가였고, 제 작품 속에는 김난수라는 신라 상인이 나오는데 이 장사꾼이 신라를 떠나서 동로마 제국까지 장사를 하면서 문명이 왔다갔다 하는
박인규 :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 그런 설정이 나왔겠지요?
김탁환 : 그렇습니다. 지금 발견되고 있는 역사적인 자료들을 보면 신라와 당나라의 관계는 4세기 이후 아주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고요. 4세기 이전에는 신라가 오히려 인도나 페르시아, 로마 제국과 교역을 많이 했던 자료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인물들을 설정했고, 또 실제로 보면 혜초와 고선지 또 당나라 시인 중 유명한 이백 같은 분들이 동년배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고 혜초스님이 여행을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오실 때 지금의 쿠차, 중국의 구자국이라고 하는 구자성이 그 당시 안서도호부의 핵심 도시였는데, 거기에 고선지 장군이 약관에 유격장군으로 근무하고 있었고요, 고선지 장군이 근무하는 곳으로 혜초스님이 돌아오셨죠. 같은 공간 속에 두 사람이 존재했던 건 역사적 사실이고, 탈레스 전투에서 고선지 장군이 패하고 나서 황제가 더 이상 안서도호부에서 근무하지 말고 다시 장안으로 돌아오라고 해서 고선지 장군이 다시 장안으로 돌아와서 살게 됩니다. 장안에 살게 될 그때 혜초스님은 몸담았던 밀교 쪽에서 지금으로 치면 3인자 정도의 대덕고승이 돼서 황제의 황궁에 가서 경을 읽어주는 뛰어난 승려였습니다. 그래서 그 공간 속에서 다시 두 사람이 같이 존재했던, 두 가지 정도의 같은 공간에 머물렀던 개연성이 있고요. 그 속에서 제가 아까 말씀드렸듯이 문명 교류의 한 두 가지 모습, 자세히 나누면 세 가지 모습을 소설 속에서 보여주기 위해서 인물들을 서로 모으게 하고 갈등하게 했습니다.
박인규 : 일반적으로 고선지 장군도 한반도 출신이라고는 합니다만 혜초와 같은 공간에서 활동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상당히 흥미롭고요. 요즘 세계화 시대라고 말하지만 이미 그 당시 신라 출신의 승려가 당나라에서 고승이 돼 있고 상당히 높은 장군으로 올라가 있고, 상당히 흥미롭네요. 소설을 보면 총 두 권이고 30개 장으로 돼 있는데요 직조라고 합니까? 홀수장과 짝수장을 상당히 다른 내용으로 엮었다고 하던데요?
김탁환 : 그렇습니다. 우선 이 소설을 쓰면서 구조를 짤 때 핵심을 뒀던 부분은, 첫째는 이 책이 여행가에 관한 책이니까 책 자체가 여행가를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 인생을 살펴볼 때 보통은 시간 순으로 다섯 살 때 뭐하고 스무 살 때 뭐하고 이렇게 살피는데 여행가니까 이 사람을 공간순으로 인도에 있을 땐 뭐했고 페르시아에 있을 때는 뭐했고, 소설의 소제목들을 공간으로 설정해서 여행가와 닮아있는 소설을 쓰기 원했고. 짝수장 홀수장으로 설정했던 건 구도자의 길을 가는 혜초스님이 결국 두 가지의 모습을 승려들을 띠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만행이라고 해서 돌아다니면서 발바닥으로 깨달음을 얻는 길이고요, 하나는 아잔타, 돈황, 키질 우리의 석굴암에 이르기까지 굴을 하나 택해서 굴 속에 들어가서 20년이고 30년이고 정진하는 두 가지 길이 있는데 혜초스님은 두 가지 모습들을 다 보이면서 돌아다니셨고. 제 소설도 홀수장은 굉장히 활력이 넘치는 만행을 하면서 돌아다니면서 사람들 만나고 이런 모습을 담고 싶었고요. 짝수장은 그 경험들이 혼자 골방에 석굴에 있을 때 자기 자신에게 어떻게 울려오는가, 그런 것을 예술가소설 비슷하게 독백 형태로 일인칭으로 써나가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쫓고 싶었습니다.
박인규 : 이번 소설의 주제를 문명 교류라고 하셨는데 그 당시 문명 교류의 모습을 보면 지금보다 상당히 스케일이 컸다는 생각이 드는데, 요즘 세계화시대다 해서 외국으로 나가거나 여행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요. 비교해보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김탁환 : 새로운 것에 대한 지적인 호기심도 배움에 대한 갈망, 이런 부분들이 많이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과거가 훨씬 더 힘들었겠지요. 자료들을 찾아보면 천축국으로 100명의 승려가 떠나면 돌아오는 사람은 1명밖에 없다. 99명은 가다가 굶어 죽고 병들어 죽고 강도를 만나 죽고, 다 목숨을 걸고 여행을 떠나는 겁니다. 답사하면서 제가 발견한 것인데, 조우관을 쓴 신라인으로 추정되는 화랑 같은 경우 돈황 석굴에서도 발견되고, 죽 더 나아가서 타클라마칸 사막 지나서 파미르 고원 넘어서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라는 곳에 가도 조우관을 쓴 신라인들 혹은 고구려인들이 발견되거든요. 그러니까 신라인, 고구려 백제인들이 단순히 한반도나 더 나아가서 만주나 당나라 정도에 머물렀던 게 아니고 그걸 지나서 실크로드를 통해서 동로마제국까지 계속 나아갔던 모습들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그게 우리가 갖고 있었던 기존의 상식을 깨는 모습인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어떤 이들은 지금 우리나라의 실정을 놓고 사실은 섬이다. 위에 북한이니까 양쪽이 바다고 해서 굉장히 세계적인 감각이 부족하다. 그런 얘기를 하는데 앞으로 많이 트였으면 좋겠고. 혜초스님의 여행은 일종의 구도여행인데 그 분의 삶을 소설로 쓰는 것도 거의 구도와 다름없는데, 소설 쓰시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까?
김탁환 : 굉장히 많이 어려웠습니다. 외냐면 가령 이순신 장군이나 황진이를 쓰든지 할 때는 지역을 답사하고 자료들을 모으고 이렇게 하나의 문명권 안의 하나의 사건을 다루는 건데 이건 문명권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습속도 다 다르기 때문에, 소설을 쓰면서 정글도 써야 되고 사막도 바다도 써야 되고. 그걸 다 써야 되니까. 기원도 다 다르고 등장하는 인종도 다르고 제가 소설을 쓰면서 종교를 한 번 짚어봤어요. 불교, 동방 기독교, 유교, 배화교라고 알려져 있는 조로아스터교, 힌두교, 이슬람교, 마니교 그 당시 존재했던 모든 종교들이 다 나오고요. 흑인, 백인, 황인뿐만 아니고 여러 종족들이 다 등장하고, 그런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각자 입장들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공부는 끝이 없는 것 같고요, 힘들었습니다.
박인규 : 그 말씀 듣고 보니 오히려 조선시대나 고려시대보다 신라시대가 훨씬 세계화됐던 거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드네요.
김탁환 : 그렇습니다. 굉장히 글로벌화 돼 있었고 당나라 수도였던 장안 같은 경우는 시장이 동시 서시 둘 있었는데 서시 같은 경우는 온갖 인종과 종교가 다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뉴욕 같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박인규 : 혜초스님에 관한 소설을 쓰시면서 답사를 하시고 많은 자료도 모으셨기 때문에, 이게 그냥 단순히 소설로 끝나지 않는다고 해서 인터넷 사이트도 문을 열었다고 들었습니다. 소개해 주시죠.
김탁환 : 소설 혜초를 답사하고 집필하면서 저는 약간 슬픔 같은 것들을, 계속 느낌을 받았는데요. 돈화에 가서 혜초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곳을 비롯해서 죽 석굴들을 봤는데 그게 20세기 초 제국주의자들이 들어와서 러시아나 일본, 프랑스, 독일 제국주의자들이 들어와서 책 같은 걸 전부 가져가고 벽화도 벽을 뜯어서 아주 통째로 뜯어갔습니다. 그래서 보고 있으니까, 이게 완전히 폐허구나 이런 느낌이 많이 들고요. 그런데 우리 외국으로 밀반출된 문화제 중에서 보면 직지심경이 있고 외규장각 도서가 있지 않습니까. 왕오천축국전도 펠리오라는 사람이 가져갔는데 파리 국립도서관에 이 세 개가 같이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당연히 이건 돌려주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고, 그래서 그런 태도에 대해서 우선은 이 자료들이 혜초스님이 쓰신 자료가 파리에 있다는 걸 우선 기본적으로 알리고 싶고요. 그리고 문화재에도 주권이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런 귀중한 문화재들에 대해서 우리 나름대로 입장표명을 해야 될 것 같고 갖고. 그래서 제가 답사하고 자료조사한 것들을 그냥 갖고 있을 게 아니고 독자들이나 시청자들과 공유하고 싶고, 공유를 통해서 뭔가 소설도 물론 중요하지만 소설에 기반해서 더 많은 일들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인규 :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나 직지심경이나 외규장각 도서들, 반환운동에 혹시 동참하시고 싶은 분들이 있으면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일종의 서명운동 같은 것도 하시나요?
김탁환 : 예. 지금 사이버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박인규 : 동참상황은 어느 정돕니까?
김탁환 : 이제 시작해서요, 그런데 매일 많은 분들이 오고 계십니다.
박인규 : 현재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로 계신 거죠? 요즘 퓨전시대라고 하는데 저는 헷갈리는 것이 소설 쓰시는 분이 과학기술원 교수 한다는 것도 좀 이상하고, 지금 가르치시는 분야가 디지털 스토리텔링인데, 말하기, 이야기하기 이런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떤 겁니까?
김탁환 : 한 15년 정도 된, 아주 어린 학문이라고 볼 수 있겠고요. 이야기의 역사를 크게 보자면 종이책을 중심으로 아날로그 스토리텔링 시대가 있고, 종이라는 매체를 넘어서서 디지털매체와 만나서 새로 시작되는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시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엄격히 구분하자면 사실 전공은 스토리텔링 전반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 아날로그 스토리텔링은 문창과나 국문과에서 많이 하니까 그쪽에 맡겨 놓고. 아주 최근, 가령 예를 들자면 웹사이트에서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서로 유통되고 어떻게 소비됐다가 사라지는가, 이런 건 과연 국문과에서 연구해야 되는지, 언론홍보학과에서 연구해야 되는지, 되게 애매하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웹사이트를 통해서 이야기를 향유하고 있는데, 이걸 연구하고 그 속에 들어가서 새롭게 창작영역을 모색하고 이런 걸 누군가 해야 되는 거죠
박인규 : <불멸의 이순신>이라든가 <나, 황진이>, <허균, 최후의 19일> 해서 말하자면 스토리텔링의 소재를 역사에서 가져오고 있어요. 인기도 많고. 우리나라 역사에 주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김탁환 : 역사소설이라고 다른 분들은 저한테 말씀하시지만 저는 인물소설을 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감동시켰던 인물들, 제 머리로는 잘 이해가 안 될 만큼 시대의 극한까지 나아갔던 인물들의 삶을 소설을 쓰면서 직접 체험해보고 싶은, 그런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고, 그래서 이순신이나 황진이, 허균, 혜초나 다 그런 인물들인 것 같습니다. 그게 꼭 우리 역사 속에서만 찾는 건 아니고 알렉산더 대왕이나 예수, 공자 이런 분들도 소설로 쓰고 싶은데 그건 쓰고 싶다고 쓸 수 있는 건 아니고, 답사를 하고 자료를 모으고 이런 조건들이 갖춰져야 되니까요. 그 다음 스텝으로 쓴다면 외국인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저를 감동시켰던 외국인들도. 지금도 두세 명의 자료들을 모아 놓고 있는데 어떤 걸 먼저 쓸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박인규 : 그 두세 명이 누군지 말하기도 지금은 어렵고
김탁환 : 그렇습니다.
박인규 : 이른바 저희 보기에는 역사소설인데 그걸 한 10년 써오셨고 나름대로 자료도 구축하셨는데 마지막으로 좋아하시는 독자들을 위해서 정리의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김탁환 : 보통 혜초 하면 나이가 많이 들어서 여행을 갔다 왔다고 생각하실 텐데 굉장히 꽃미남일 때 스무 살에 갔다 왔고, 그래서 이 소설도 굉장히 젊게 쓰려고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우스갯소리로 내가 쓴 인디아나 존스다. 이 속에는 여행자로서 호기심도 있고 고통도 음모도 있고. 그리고 페르시아 여인이 실제로 그 당시 실크로드를 거쳐서 장안까지 왔었거든요. 페르시아 여인을 두고 벌어지는 사랑도 있고 보물을 찾아나가는 과정도 있고 그래서 이게 어드벤처 성향이 굉장히 강한 소설이기 때문에 나이 드신 분들도 읽으시면 좋겠지만 외국 여행을 가려고 하는, 특히 실크로드 쪽으로 여행을 가고자 하는 젊은이들 이런 분들이 한 번 이 책을 읽고 혜초 루트를 여행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박인규 : 듣고 보니 김탁환 작가의 작품세계가 국내에서 세계로 커지고 있는 것 같은데, 앞으로도 우리가 세계를 실감할 수 있는 좋은 작품 많이 써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김탁환 :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최근 소설 '혜초'를 출간한 김탁환 작가를 초대해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인 혜초에 주목을 한 이유는 뭔지 또, 그의 손에서 되살아난 혜초의 여행기 <왕오천축국전>에 대해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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