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가 미국육류수출협회로부터 직접 고액의 광고료를 조건으로 미국산 쇠고기 광고를 제안받았으나 '독자들과의 신의'를 들어 최종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겨레 고광헌 대표이사는 25일 사내 메일에서 "미국육류수출협회가 지난 17일 홍보에이전시를 통해 '<한겨레>에 미국산 쇠고기 광고를 싣고 싶다. 얼마면 되겠느냐'는 제안을 했다"고 밝혔다. 그간 미국육류수출협회는 조·중·동에만 광고를 하고 <한겨레>에는 광고를 거의 하지 않았으나 이번엔 한국내 지사도 거치지 않고 본사가 직접 홍보 에이전시를 통해 한겨레에 접촉해 왔다는 것.
고광헌 대표는 "말 그대로 '백지수표'나 마찬가지인 파격제안을 받은 광고국 직원들은 순간 당황했다고 한다"며 "광고국은 촛불 시위 정국에서 독자들과 시민들이 보내준 성원과 지지를 생각할 때 미국산 쇠고기 광고를 실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광고 10차례에 광고료 10억원'을 홍보 에이전시에 제시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고 대표는 "광고주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직접 거부하지는 않고, 대신 상대방이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을 함으로써 사실상 거절하려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한겨레>의 예상과 달리 홍보 에이전시 쪽은 "미국육류수출협회와 협의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지난해 미국육류협회는 딱 한번 <한겨레>에 광고를 냈는데 당시 광고 단가는 1500만 원이었다.
한겨레 광고국 관계자는 "미국육류수출협회에서 홍보 에이전시에 한겨레 광고를 타진해 보라고 주문한 것은 6월 중순이었다고 한다"며 "그러나 당시는 촛불 시위가 한창이었고 홍보 에이전시는 촛불이 사그라들기를 기다려 공식 제안을 한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우리로서는 광고를 실었을 경우의 리스크까지 감안해 부를 수 있는 최대 액수를 불렀는데 미국육류협회 측에서 '비싸다'는 류의 반응도 없이 '<한겨레>에 광고를 실을 수 있는지 여부만 빨리 결정해달라'고 재촉해와 당황했다"고 말했다.
미국육류수출협회 쪽의 의지를 확인한 광고국은 이 사실을 경영진에게 공식 보고했고 한겨레는 24일 임시 임원회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광고를 싣지 않기로 결정했다. 고 대표는 미국육류수출협회의 광고 제안을 "적어도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서만큼은 미국조차 '조·중·동'이 아니라 <한겨레>가 여론을 좌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라고 해석하면서 광고를 거절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음을 강조했다.
그는 "10억 원, 미국돈으로 100만 달러다. 큰 금액이다. 특히 악화되고 있는 경영 여건을 생각할 때 정말 놓치기 아쉬운 돈"며 "국제 원자재난 탓에 올해 신문용지값이 20% 이상 급등했다. 촛불 시위 정국속에서 '조·중·동 광고 기업 불매 운동'의 여파가 전체 광고 시장을 위축시키며 우리 회사도 광고가 대폭 줄었다"고 밝혔다. 또 "자발 구독 신청 부수가 급증했다고는 하지만, 당장은 구독료 수입 증가로 연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신문 발행 부수 증가로 비용 부담이 커졌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그는 "천금보다 소중한 게 바로 '신의'"라며 "<한겨레>의 보도를 믿고 40여차례의 광고와 신문 구독으로 우리를 성원해 준 시민들과 독자를 생각할 때 미국산 쇠고기 광고를 싣는 것은 그분들과 시민사회에 대한 배신이라는게 임원들의 한결같은 의견이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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