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조폭이라는 순화된 말을 더 쓰지만 원래 이름은 깡패다. 깡패는 주먹은 센 데, 도덕적 각성이 모자라서 주먹을 함부로 휘두르고 그로 인해서 선량한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패거리를 말한다. 타인에게 피해를 끼침으로써 이들은 대게 몇 번의 전과기록도 갖게 되지만 그걸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그런데 요즘 이 명박 정부를 보면서 이 깡패라는 말이 줄곧 입에서 맴돈다. 국가 권력도 잘 못 쓰면 '주먹'이 되고 마는데 정말 주먹처럼 권력을 휘두르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부도덕한 권력"
인터넷에서 '전과 14범'이라고 치면 이명박 대통령의 이름이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이 전과 14범이라고 하는 말은 지난 해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전 대표와 후보경선을 하던 6월경, 한나라당 내부에서 처음 나왔다. 14범이 모두 형을 선고받은 숫자를 말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몇 건에 대해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전과자라는 사실을 국민들도 다 알고 있다.
선거 과정에서 후보의 전과 경력을 거론하는 것은 흠집내기용 네거티브 전략으로만 봐야 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개과천선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는 드문 경우고 일반적으로 한두 번도 아니고 상습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자는 그렇지 않은 자에 비해서 도덕적 각성이 모자란다고 보는 게 상식이다. 더욱이 국가 권력이라는, 국민들의 생사여탈권에 해당하는 큰 권력을 장악하게 될 대통령이라면 그의 도덕성을 따지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국민들은 도덕적이라고 자임했던 전 정권의 무능에 실망한데다가 발등에 불인 경제살리기에 대한 열망이 너무나 컸던 탓에, 전과의 별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택했고, 그 대통령은 도덕적으로 지탄받는 '강부자'들을 내각으로 발탁했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귀신이 땅을 팔아먹었다"는 말을 낳게 해 국민들을 바보로 만들었던 최 시중은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내각은 지금 국민들을 향해 권력을 주먹처럼 마구 휘두르고 있다.
길지 않은 우리의 현대사를 통해서 국민들은 몇 번의 부도덕한 권력을 경험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권력이다. 과거의 권력이 권력 장악 그 자체가 목적이었던 데 반해 이명박 정권은 권력을 바탕으로 세상을 근본적으로 개조하려는 (아주 강한)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개조된 그 세상은 공동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무한 자유를 누리는 10%와 자유를 빼앗긴 90%가 서로에게 멸시와 증오심을 키우는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종착역이 될 것이다.
"법에서 상식을 거세하려 하나"
인류가 무지에서 벗어나 계몽(Enlightenment)의 세례를 받은 역사가 이미 수 백 년이다. 더 이상 인문학적 과제가 없을 만큼 인간의 지적 각성과 그에 따른 제도의 실험이 이루어져왔다.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는 그것의 가장 소중한 결과물이다. 처음부터 몰랐다면 모를까 각성된 국민들의 자유와 평등에의 욕구를 억압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명박 정부도 이런 걸 모르고 있진 않다. 오히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언론 장악에 목을 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 의지는 "공영방송이 정부의 국정 철학을 구현해야 한다" 는 말 속에 다 녹아 있다. 넋 나간 자의 헛소리다. 하지만 정부는 그 말의 전제 하에 YTN에 낙하산을 투입해 노조와 한바탕 전투가 벌어지고 있고, KBS 정 연주 사장의 강제 해임을 위한 구체적인 수순도 밟고 있다. '임명'과 '임면'의 법률적 의미가 엄연하게 다른데도 "임명권 속에는 포괄적으로 해임권이 포함된다"고 상식과 다른 해석을 늘어놓는다. 억울하면 "소송하면 된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치졸하고 무모한 정치 테러다. 그런 논리라면 대통령이 KBS 직원들에 대한 인사권도 가질 수 있다. 대통령이 사장의 인사권을 갖고, 사장이 직원들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으니 포괄적으로 대통령이 KBS 직원들의 인사권을 가진다고 우길 수도 있을 것이다.
법은 상식의 영역에서 공유되는 것이고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 미국이 법정에서 배심제를 채택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배심제는 법이 국민들의 상식적인 눈높이에 있어야 한다는 의미의 제도다. 만약 법이 상식을 넘어서 이를 움켜쥔 자들이 입맛대로 해석하고 집행하는 것이라면 배심제의 존재 근거도 사라진다. 권력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법의 영역에서 상식을 거세하려는 의도, 이 명박 정부의 이런 의도야말로 어느 보수 논객의 주장처럼 "법적 불가능성에 대한 도전"일 뿐이다.
"용기있는 자는 가볍게 죽지 않는다"
KBS의 속살을 깊숙하게 더듬던 감사원의 특별감사가 끝이 났다.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정 사장을 사퇴시킬 만한 결정적인 개인 비리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KBS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정 사장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대통령이 전과자인 나라, 내각 전체가 부동산 투기 혐의를 받는 나라, 하루도 쉬지 않고 고위층들의 비리가 터지는, 말 그대로 부정부패가 역병처럼 만연된 이 나라에서 털어서도 먼지가 안 날 만큼 깨끗한 사장을 두었다는 것은 아무리 낮게 평가해도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 투키디데스는 "강자는 마음대로 하고 약자는 당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남겼다. 아득히 2천 4백 여 년 전의 이 말이 다시금 현실로 느껴지는 이유는 강자들의 인식 수준이 여전히 그 시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돌이켜 보면 역사의 잔잔한 흐름에 돌을 던져 파문을 일으킨 자들은 언제나 힘을 가진 소수들이었다.
도덕적 각성이 모자라는 강자가 약자를 공격하기는 너무 쉬운 일이다. 그리고 투키디데스의 말처럼 약자는 일단은 당할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다. 신 태섭 KBS이사의 경우가 그랬고, 곧 정 연주 사장도 그렇게 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또한 사마천의 말처럼 "용기 있는 자는 결코 가볍게 죽지 않는" 법이다. 용기는 반드시 의로운 저항의 씨앗을 남기기 때문이다. 그 씨앗이 촛불이 되고 횃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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