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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계의 보기(1)

[최무영의 과학이야기] <77> 복잡계의 물리 ②

복잡성은 자연에 무척 다양한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이에 따라 다양한 복잡계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물리학에서 다루어 온 몇 가지 보기를 들어보지요. 먼저 가장 친숙한 것으로 유리(glass)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보통 물질의 상태를 기체, 액체, 고체로 나눕니다. 그런데 유리는 어떤 상태일까요? 고체일까요, 액체 또는 기체일까요? 기체라고 생각하는 학생은 없겠죠, 설마?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고체라고 말하겠지요. 하지만 내가 왜 이런 질문을 하겠어요? 고체가 아니니까 이런 질문을 하겠지요. 유리는 놀랍게도 고체라기보다 액체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흘러내리지 않느냐고요? 사실 지금 흘러내리고 있고, 따라서 한참 지나면 이 강의실 창에 구멍이 뚫릴 겁니다. 다만 극히 천천히 흘러내리는 거지요. 얼마쯤 지나면 이 창에 구멍이 뚫릴까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백억 년이 넘을 겁니다. 다시 말해서 우주의 나이보다도 크다는 말이니 창에 구멍 날 일을 걱정할 필요는 없지요.

유리 세공하는 곳에 가본 학생도 있겠지요? 뜨겁게 달구어진 도가니에 유리를 넣어 녹여서 틀에 붓기도 하고 어느 정도 물렁물렁해지면 늘려서 세공합니다. 대부분 물질과 마찬가지로 유리도 뜨겁게 하면 녹아서 확실히 액체가 됩니다. 식으면 굳죠. 그런데 액체와 고체의 중간쯤 되는 것도 있지요? 예컨대 두부나 묵 만드는 것 봤어요? 묵을 만들 때 도토리나 메밀 반죽물이 온도가 높을 때는 액체였다가 식으면서 굳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액체와 고체를 명확히 나눌 수 있겠어요? 사실 액체이던 것이 굳어가면서 이 순간부터는 고체가 되는 것은 아니고 다만 끈적끈적한 정도가 계속 커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리도 마찬가지로 고체가 된 게 아니라 계속 액체 상태로 남아있는데 끈적끈적한 정도가 어마어마하게 커진 경우에 해당합니다.

주어진 온도에서 유리는 아직 평형상태에 이르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평형상태에 다다르면 고체가 될 터인데 그림 2의 왼쪽에 보인 어느 한곳 상태에 빠져 있는 경우에 해당하지요. 이 때문에 유리를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일상에서 또한 흔하게 볼 수 있는 복잡계로서 이른바 복잡흐름체(complex fluid)가 있습니다. 콜로이드(colloid), 고분자(polymer), 액정(liquid crystal), 가루(powder), 교통 흐름(traffic flow )등을 들 수 있지요. 물 따위 단순한 액체와 달리 복잡흐름체로서 콜로이드에는 우유나 피 등이 있고, 고분자 물질도 합성수지나 DNA, 흰자질 등 우리 일상이나 생체에 널리 존재합니다. 액정은 요새 텔레비전부터 휴대전화에 이르기까지 화면표시에 널리 쓰이지요. 한편 가루는 낱알, 밀가루 따위 음식물부터 모래나 화장품까지 우리 주위에 매우 흔합니다. 그런데 가루는 액체인가요, 고체인가요? 액체와 비슷하게 흐르잖아요? 따라서 물시계가 있듯이 모래시계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액체와는 다른 성질도 있어요. 물은 그릇에 담으면 표면이 언제나 수평면을 이룹니다. 그러나 가루는 수평면이 아니라 어느 정도 경사지게 쌓을 수 있어요. 따라서 가루는 액체 같은 면도 있지만 고체 같은 성질도 있고, 단순한 액체나 고체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대상입니다. 역시 변이가능성이 높은 복잡계라 할 수 있지요.

다른 예로서 무질서계(disordered system)가 있습니다. 물질의 자라남(growth)이나 경계(interface), 복합체(composite), 부숴짐(fracture), 그리고 섬유다발(fiber bundle), 결합떨개 및 돌개(coupled oscillators and rotors) 따위를 들 수 있지요. 이 중에 결합떨개를 살펴보지요. 자연에는 많은 수의 떨개(oscillator)들이 서로 결합해서 집단거동을 보이는 현상이 흔히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염통의 박동을 만들어주는 세포들을 들 수 있겠네요. 염통은 우리의 일생, 예컨대 80년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잠을 자나 밥을 먹으나 또는 이렇게 말을 해도 관계없이 계속 뜁니다. 어떻게 박동이 일정할 수 있을까요? 염통에는 박동을 만들어 주는 세포가 있습니다. 결절을 중심으로 박동세포(pacemaker cell)가 모여 있는데 그들이 박동의 리듬을 조절해 주지요. 그런데 박동세포 하나하나는 조금씩은 다를 터이고, 따라서 스스로의 배내진동수(intrinsic frequency)가 조금씩 다릅니다. 서로 조금씩 다른 것들이 모여서 전체적으로 결맞음(coherence)을 이루고 하나의 진동수를 만들어내지요. 이러한 현상을 때맞음(synchronization)이라 부르는데 자연에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염통이나 두뇌, 호르몬을 분비하는 내분비세포들에서 보이고, 수많은 반딧불이의 반짝임이나 귀뚜라미 떼의 울음, 박수갈채, 달거리(생리) 주기 등에서도 알려져 있지요.

이와 관련해서 하루주기 리듬(circadian rhythm)이 재밌는 문제입니다. 인간에게는 하루, 곧 24시간 주기가 있습니다. 어떻게 생겨날까요?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지구에 사니까 날마다 해가 떴다 졌다 하는데 이러한 지구의 자전 주기에 맞춰져 응답한다가 한 가지 가능성이지요. 우리의 리듬은 우리 몸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의 리듬을 수동적으로 따른다는 견해지요. 다른 가능성은 그것과 관계없이 우리 몸 스스로 (능동적으로) 24시간 주기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중에 어느 쪽이 옳을까요? 과학적 사고에 의해 실증적인 검증, 곧 실험을 해보면 알 수 있겠지요. 간단하게 여러 사람을 잡아다가 지하실에 감금하면 됩니다. 햇빛을 완전히 차단하고 며칠 살도록 합니다. 졸리면 자고, 깨면 일어나고, 배고프면 밥을 먹고 하겠지요. 그렇게 하면 사람의 주기가 어떻게 되는지 관찰하는 거지요. 몇 주 동안 실험을 해봤습니다. 대부분은 오래 견디지 못하고 도망쳐 나왔고, 일부만 남아서 실험을 마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설에 의하면 그 남은 사람은 바로 실험을 수행하는 책임자 자신이었다고 하지요. 다른 설에 의하면 실험 책임자는 교수인데 그가 남은 것이 아니라 그의 지도학생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우스개이지만 "조교를 시키면 냉장고에 코끼리도 넣을 수 있다"고 하지요.

아무튼 결론적으로 두 번째 가능성이 맞습니다. 우리 몸에는 24시간 주기를 만들어내는 생체시계가 있는 셈이지요. 이 시계는 두뇌의 시상하부(hypothalamus)에 신경세포들이 모인 교차상핵(suprachiasmatic nucleus; SCN)에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생체시계의 주기가 정확히 24시간은 아닙니다. 24시간보다 조금, 아마도 10분가량 긴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른 동물, 심지어 식물도 이러한 주기를 지니고 있는데, 그 주기는 종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그런데 정확히 24시간인 녀석은 없고, 조금 길거나 짧거나 합니다. 사실 라틴어의 어원에서 'circa'는 '근처'라는 뜻이고 'dian'의 명사형 'diem'은 '하루'라는 뜻이니 'circadian'이라는 말 자체가 하루 근처라는 뜻을 지니고 있지요. 이러한 생체주기도 여러 떨개들에 의한 때맞음이라 볼 수 있으며, 요새 많은 관삼을 끌고 있는 주제입니다.

내분비세포에서도 떄맞음이 나타납니다. 우리 몸에 있는 이자는 중요한 기능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소화액을 내보내는 것이고 (외분비) 다른 하나는 호르몬인 인슐린(insulin)을 내보내는 거지요 (내분비). 이자에는 랑게르한스 잔섬(Langerhans islets)에 인슐린을 분비하는 베타세포(β-cell)가 많이 모여 있습니다. 베타세포 내부와 외부 사이의 전압을 막전위(membrane potential)라 하는데 여러 베타세포의 막전위들이 때맞추어 터지기(bursting)라 부르는 특이한 거동을 할 때 인슐린을 잘 분비합니다. 인슐린 분비와 이에 의한 혈당조절이 제대로 작동 하지 못하면 당뇨병이 됩니다. 현대사회에서 매우 심각한 질병이지요.

개똥벌레라고도 부르는 반딧불이가 많이 모여서 반짝거릴 때 처음에는 제각각 반짝거리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똑같이 맞춰서 반짝거립니다. 이는 사진이나 동영상 자료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까요? 각 반딧불이를 떨개로 간주하면 그 사이에 빛에 의한 결합이 있겠고, 이에 따라 때맞음이 생겨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슷하게 귀뚜라미 하나가 울면 다른 녀석들도 같이 리듬을 맞춰서 울게 됩니다. 이는 소리에 의한 결합이겠지요. 희한한 경우로 달거리 주기의 때맞음도 알려져 있습니다. 여학생 기숙사에서 같이 거주하는 여학생들을 살펴보니 놀랍게도 달거리를 똑같이 맞춰서 한다는 거지요. 처음 입사했을 때는 각 여학생마다 주기가 달랐는데 같이 살면서 시간이 지나니까 주기가 똑같이 맞춰진 겁니다. 이 경우에 여학생 사이의 결합은 무엇일까요? 정확히는 모르지만 달거리와 관련된 어떤 페로몬(pheromone)이리라 추측합니다. 장난처럼 들리지만 이 결과는 ≪네이처(Nature)≫라고 하는 학술지에 실렸지요.

일반적으로 학술지는 그 분야 전문가를 위한 것입니다. 특히 물리학 분야의 학술지는 일반인은 읽어서 전혀 이해할 수 없고 물리학자들만 구독합니다. 그런데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까지 읽을 수 있도록 잡지의 성격을 띤 것들이 간혹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네이처≫와 우리나라의 줄기세포 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사이언스(Science)≫지요.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도록 생물학이나 지구과학 따위 현상론 분야를 주로 다루지만, 요새는 물리학 분야에서도 이론적 성격이 적은 내용은 종종 다루어집니다.

박수갈채에서도 때맞음 현상이 보입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강의해도 여러분은 손뼉을 치지 않지만, 어느 연주회에서 연주가 끝나면 다들 손뼉을 치지요. 그런데 처음에는 제가끔 손뼉 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전체적으로 리듬이 생겨나게 됩니다. 집단 때맞음이 떠오르는 거지요.

* 이 연재기사는 지난 2008년 12월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라는 제목의 책으로(책갈피 출판사) 출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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