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연내 비준을 위해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을 무리하게 추진한 이명박 정부의 시도가 끝내 물거품이 되어 가고 있다.
미 의회 다수당의 대선후보이자 당선 가능성이 높은 버락 오바마 민주당 상원의원이 부시 행정부 시절 체결한 모든 FTA를 면밀히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오바마 '쌍무협정 반대 다자협정 찬성'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오바마 상원의원의 경제고문인 제이슨 퍼먼은 9일 "오바마 의원은 부시 행정부가 중점을 뒀던 무역 문제에서 벗어나 노동자와 일자리, 농민들에게 더욱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같은 입장을 밝혔다고 퍼먼의 보좌관이 전했다.
퍼먼은 무엇을 재검토할 것인지를 언급하는 것은 구체적인 세부사항이 나오기 전까지는 시기상조라면서, 대신 "오바마는 도하라운드 협상(DDA)의 성공적인 타결을 추구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오바마 의원이 양자협상인 FTA는 반대하지만 다자간 무역협상은 찬성한다는 의미로 대통령에 당선됐을 경우 무역정책의 기본 방침을 시사한 것이다.
오바마는 그간 한미 FTA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도 재협상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대선에서 노동자층의 표심을 잡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제 FTA 재검토까지 언급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오바마 대통령'이 탄생한다면 콜롬비아, 파나마, 한국 등과 맺은 FTA의 운명이 바람 앞의 촛불 신세가 되는 것이다.
이로써 이명박 대통령은 쇠고기 합의로 검역주권과 건강권을 미국에 내주고, 국민의 신뢰를 송두리째 잃었지만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신세가 됐다. 그는 지난달 19일 사과 기자회견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계속 거부하면 한미FTA가 연내에 처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았다"라고 말했다.
美 민주당 '레임덕 의회 없다'
민주당 지도부가 9월 말 이후에는 의회를 사실상 폐회해 버리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한미FTA의 연내 비준 가능성을 거의 완벽히 차단한 것이다.
민주당의 스테니 호이어 하원 원내대표는 지난 7일 기자들과 만나 "나와 낸시 펠로시 의장은 레임덕 회기에 반대한다"면서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새 의회가 구성되고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우리는 의회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대표실이 8일 밝혔다.
호이어 원내대표는 2009회계연도 세출법안도 내년 1월초 구성되는 제111회 의회에서 다루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이른바 '레임덕 회기'는 피하고 남아 있는 문제는 새 행정부에서 다루도록 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했다고 대표실은 전했다.
'레임덕 회기'란 11월 4일 차기 대통령과 의원들이 당선된 후부터 내년 1월 새 의회가 개원할 때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미 의회는 선거 전인 9월 27일부터 휴회에 들어가는데, 호이어 대표의 말대로라면 현 110회 의회는 2개월 보름 남은 것이다.
지난 4월 부시 행정부가 콜롬비아와의 FTA 이행법안을 의회에 전격 제출한 후 FTA를 둘러 싼 행정부와 의회의 갈등이 고조되어 있고, 콜롬비아-파나마-한국의 순으로 FTA를 승인하겠다는 시간표로 볼 때 9월 말까지 한미FTA가 의회를 통과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다만 호이어 원내대표는 긴급한 사항이 있다면 레임덕 회기가 있을 수도 있다며 그 가능성을 완전 배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의회 관행으로 볼 때 '긴급한 상황'이란 예산법안을 의미하는 것이고, 민주당은 그마저도 새 의회에서 처리하자는 입장이어서 한미FTA 처리는 사실상 새 행정부로 넘어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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