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시간에서의 고비성: 신호 1/f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시간에서의 고비성: 신호 1/f

[최무영의 과학이야기] <75> 복잡성의 의미 ③

공간에서의 복잡성으로서 스스로 닮은 쪽거리를 살펴보았는데 시간에 대한 복잡성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시간에 따라 변하는 신호는 여러 진동수 또는 파길이가 섞여 있지요. 예를 들어 햇빛을 프리즘(prism)에 지나가게 하면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 빛깔로 나누어집니다. 이같이 각 진동수 성분으로 나누는 것을 빛띠 분석이라고 부릅니다. 각 빛깔은 주어진 파길이 또는 진동수 를 지닌 성분에 해당하지요. 파길이는 빨강이 가장 길고 보라가 가장 짧으며, 진동수로는 빨강이 가장 낮고 보라가 가장 높습니다. 다른 신호도 마찬가지로 여러 진동수 또는 파길이 성분이 섞여 있지요. 여러분이 듣고 있는 내 말도 여러 진동수의 성분이 섞여져서 신호를 만듭니다.
▲ 그림 11:홑진동수 신호

진동수 성분이 하나인 신호, 곧 홑진동수 신호는 시간 에 대해 삼각함수 꼴로 변해갑니다. 그림 11에 보였듯이 나 같이 매끈한 삼각함수가 되지요. 노란빛이나 파란빛 따위 홑빛깔빛(단색광)의 경우에 해당합니다. 소리도 마찬가지로서 진동수가 하나로 주어진 소리인데 홑소리깔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러한 소리 들어봤습니까? 어떻게 들릴까요? 혹시 소리굽쇠를 가지고 장난해 본 적이 있나요? 소리굽쇠를 칠 때 내는 소리가 비교적 홑진동수 소리에 가까워요. 그런데 소리굽쇠 소리를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들어요? 사실 그리 기분 좋게 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단조롭기 때문입니다. 이 소리만 계속 들으려면 지겹지요.
▲ 그림 12: 하얀 신호

반대로 모든 진동수 성분이 고르게 섞여 있다면, 다시 말해서 빛의 경우에 모든 빛깔이 고르게 섞여 있다면 어떻게 보이겠어요? 흰빛(백색광)이 됩니다. 하양이란 사실 빛깔이 아니라 빛깔이 없는 거지요. 햇빛은 노란빛이 강한 편이지만 여러 빛깔이 섞여 있어서 그런대로 흰빛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빛 대신에 소리의 경우는 어떨까요? 흰빛처럼 여러 진동수 성분이 고르게 섞여 있으면 흰소리(white sound)라 부를 수 있겠죠. 이러한 하얀 신호가 시간에 대해서 어떻게 변해 가는지 그림 12에 보였습니다. 완전히 무질서한 마구잡이로 보이지요. 이 신호가 빛이라면 희게 보입니다. 소리라면 어떻게 들릴까요? 완전히 시끄러운 소음으로 듣기가 괴롭겠네요.

그런데 많은 경우에 주어진 신호를 빛띠 분석을 해보면 모든 진동수 성분이 고르게 섞여 있지는 않습니다. 대체로 진동수가 낮은 성분이 많고, 높은 진동수 성분이 적은데, 특히 성분의 세기가 진동수 에 대략 반비례하는 신호를 신호라고 하지요. 이러한 신호는 홑진동수 신호처럼 질서정연하지 않고 하얀 신호처럼 완전히 무질서한 마구잡이도 아닙니다.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그림 13에 보였습니다. 이러한 신호는 확대해보면 원래 모습이 비슷하게 다시 나타납니다. 이른바 시간에 대해 눈금 불변성(scale-invariance)을 지녔지요. 이런 소리는 어떻게 들릴까요?
▲ 그림 13: 1/f 신호

그림 11의 홑진동수 소리는 질서정연한데 단조롭고, 그림 12의 흰소리는 완전히 무질서한 마구잡이로서 시끄러운 소음입니다. 그림 13의 소리는 그 중간으로 그럴 듯하게 들립니다. 단조롭지 않고 너무 무질서하지도 않으며 적당하게 복잡합니다. 듣기 좋은 소리가 될 수 있지요. 실제로 듣기에 편안한 고전음악은 이렇게 구성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특히 서양음악에서 바흐와 베토벤의 음악이 이러한 신호의 전형을 따른다고 알려져 있지요. 반면에 헤비메탈 같은 음악은 하얀 신호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음악이라기보다 소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여러분들 중에는 그런 음악을 더 좋아하는 학생들이 있겠지요. 이는 취향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지각을 고려하면 대체로 적당한 복잡성을 지닌 신호 꼴의 음악이 더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어요. 왜 그런가는 다음에 언급하기로 하지요.

고전음악으로 대표되는 소리 외에도 우리 주위에는 꼴을 보이는 신호가 많이 있습니다. 전기저항에 흐르는 전류라든가 유리, 초전도체, 강물의 흐름, 해의 홍염(solar prominence), 별의 밝기, 중성자별에서 엑스선 방출, 염통의 박동, 두뇌의 뇌전도, 생명의 진화(evolution), 고속도로에서 교통의 흐름 따위와 주식시세, 때로는 박수갈채에서도 볼 수 있지요.

대체로 우리 염통은 일정하게 규칙적으로 뜁니다.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피돌기를 위해 펌프질을 합니다. 우리가 80년을 산다면 80년 동안 뛰는 거죠. 자동차는 아무리 곱게 타도 10년이나 20년을 타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염통은 80년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잠을 자나 밥을 먹으나 또는 이렇게 말을 할 때나 변함없이 계속 뛰지요.

그런데 앞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건강한 사람의 경우에 대체로 염통의 박동이 정확히 일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림 14에 염통의 박동 주기가 시간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완전히 일정하지는 않고 조금 빨랐다가 늦었다가 변하므로 여러 진동수 성분을 가지고 있지요. 각 성분의 세기를 살펴보면 대체로 진동수에 반비례해서 역시 꼴을 얻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염통의 박동이 질서정연하지 않고, 적절한 복잡성을 지닌다고 알려져 있는데 왜 그런가는 흥미로운 문제이지요.
▲ 그림 14: 시간에 따른 염통 박동 주기의 변화

이러한 염통의 박동은 본질적으로 전기신호에 의해 조절됩니다. 이를 조사하기 위해 보통 가슴과 팔다리를 포함한 몸에 전극을 붙여서 얻은 전기신호, 이른바 심전도(electrocardiogram; ECG)를 분석하지요. 나이가 들면 심전도 검사를 받게 됩니다. 염통이 언제 잘못되어 멎을지 모르니까요. 그런데 염통이 잘못되는 이유가 선천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잘못된 삶의 양식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성인병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사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생기지 않는데 잘못된 삶의 양식 때문에 병이 되는 거지요. 고혈압이나 비만과 관련된 질환들, 심근경색이나 동맥경화 등 여러 가지 순환기 질환, 당뇨병, 암 등이 대부분 잘못된 생활양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림 6에서 보았듯이 두뇌란 신경세포들의 집합, 이른바 신경그물얼개(neural network)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경세포가 천억 개 가량 모여서 우리의 두뇌가 이루어지는데, 신경세포도 염통의 박동세포처럼 기본적으로 전기신호에 의해서 작동합니다. 우리가 감각을 통해서 지각하고 기억하고 생각하고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이 모두 전기신호에 의해서 이루어지지요. 이러한 전기신호는 머리에 전극을 붙여서 재는데 이를 뇌전도(EEG)라고 합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흔히 뇌파라고 부르지요.
▲ 그림 15: 깊이 잠든 상태의 뇌전도

뇌전도에는 알파파α-wave, 베타파β-wave, 델타파δ-wave, 세타파θ-wave 따위로 부르는 여러 진동수 성분이 섞여 있습니다. 그림 15에 보였듯이 깊이 잠든 사람의 뇌전도는 다소 무질서하게 보이는데 이를 성분 별로 빛띠분석해보면 여러 성분이 고르게 섞여 있어서 하얀 신호에 가깝습니다.
▲ 그림 16: 빠른 눈움직임 상태의 뇌전도

그런데 잠든 사람을 보면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빠른 눈움직임(rapid eye movement: REM)이라 하는데 이 경우에 뇌전도는 그림 16에서처럼 완전히 무질서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빛띠분석해보면 각 성분의 세기가 진동수에 대략 반비례해서 역시 신호라 할 수 있지요. 이러한 빠른 눈움직임은 대체로 꿈을 꾸는 경우에 나타난다고 하는데 두뇌에서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 해당한다고 여겨집니다. 정보가 역시 복잡성을 지닌 신호와 관련됨은 흥미롭네요.

정보와 관련해서 시각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지요. 우리는 감각기관을 통해서 외부로부터 정보를 얻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감각기관은 아무래도 눈이겠지요. 소리의 지각, 곧 청각은 귀가 맡고, 기계적인 압력이나 온도 등 촉각은 살갗에서 이루어집니다. 냄새를 맡는 후각, 곧 기체 상태의 물질을 지각하는 것은 코이지요. 한편 맛을 보는 미각, 곧 액체 상태의 지각은 혀가 맡습니다. 마찬가지로 눈은 빛을 지각합니다. 어떤 물체를 본다는 것은 그 물체가 낸 빛이라는 신호를 받아서 처리하는 과정을 뜻합니다. 시각이란 맥스웰의 이론에 따르면 전기마당과 자기마당이 서로 결합해서 변하면서 퍼져나가는 현상, 곧 전자기파를 지각하는 것이고, 현대물리의 관점에서 보면 빛알을 지각하는 거지요. 우리는 일반적으로 시각을 통해서 가장 많은 정보를 얻게 됩니다. 그래서 음악을 들으며 공부할 수는 있어도 텔레비전을 보면서 동시에 공부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는 시각을 통해 받아들이는 정보가 워낙 많아서 한꺼번에 정보를 처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지요.

눈의 구조는 사진기(camera)와 비슷합니다. 렌즈, 곧 수정체가 앞에 있고 뒤에 필름 대신에 망막이 있어서 상이 맺히고 빛알을 지각하지요. 빛알의 지각은 여러 과정을 거치지만, 흥미로운 점은 어둡고 밝은 명암을 구분할 때 밝기의 절대값을 지각하는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지각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주어진 점의 주위 밝기의 평균을 구하고 이 평균값과 주어진 점의 밝기 사이의 차이를 감지합니다. 꼭 이런 식으로 지각해야 할 이유는 없는데 하필 왜 그런지 희한하죠.

그 실마리는 자연경관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예를 들어 숲에서 주위경관을 보면 밝은 데도 있고 어두운 데도 있겠지요. 그런데 시야에 들어오는 각 지점마다 밝기를 구해서 그 분포를 만들어보면 우리 눈과 같은 방식으로 밝기를 감지해야 가장 많은 정보를 얻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연경관에서 최대의 정보를 얻으려면 우리 눈처럼 주위 밝기의 평균값과의 차이를 감지해야 한다는 거지요. 결국 우리의 눈이라는 감각기관은 자연경관에서 최대의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진화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진화란 참 놀랍게 이뤄진 거죠.

한편 서울의 강남 번화가에 가보면 뭔가 정신이 없습니다. 여러분도 그래요? 내가 나이가 많고 옛 세대라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나가보면 정신이 없어요. 그런데 이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자연경관이 아닌 도시경관 시야의 각 지점 밝기를 분석해 보면, 자연경관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따라서 도시의 경관에서 많은 정보를 얻어내는 데는 우리 눈의 인지 방식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요. 이 때문에 번화한 도시경관에서 정보를 얻으려면 시각을 자연스럽지 않게 조절해야 하는데, 이것이 피로감을 빨리 가져올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인간이 계속 도시에서 산다면 아마도 결국 거기에 맞춰지겠지요. 여러분은 도시에 맞도록 이미 진화해서 도시가 편하고, 자연에 들어가면 오히려 불편한가요? 그러나 생명체의 진화는 눈금이 매우 성깁니다. 진화가 하루아침에 이루어 질 수는 없고, 눈금이 수 만, 수십 만 년은 되지요. 따라서 불과 몇 십 년 동안에 바뀔 수는 없으니, 진화의 측면에서는 여러분과 나는 당연히 같은 세대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나와 마찬가지로 도시에선 뭔가 편하지 않습니다. 단지 아직 젊으니까 견디는 능력이 나보다 낫겠지요. 인간의 진화가 도시에서 정보를 얻기에는 불편하게 되어있으므로 번화한 도시에서는 정신이 없고 피곤합니다. 자연이 훨씬 더 편안하지요.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아까 말했지만 우리의 소리 지각, 곧 청각 능력에 비춰보면 헤비메탈은 부자연스럽습니다. 이런 음악은 실제로 진동수 성분 구성이 소음에 가깝습니다. 소음을 들으면 기분 좋게 느껴지지 않는데, 이는 소음이 자연스런 지각의 패턴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편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 등의 잘 짜인 고전음악을 들으면 대체로 편안해지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지각 능력과 잘 맞아서 그렇지 않나 생각합니다. 따라서 고전음악은 수명이 길지요. 바흐나 모차르트의 작품은 몇 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아있지만 헤비메탈 같은 음악은 한 때 매우 큰 인기를 누렸다 해도, 글쎄요, 수 십 년 지나면 대부분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 이 연재기사는 지난 2008년 12월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라는 제목의 책으로(책갈피 출판사) 출판되었습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