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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귀를 가진 왕의 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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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귀를 가진 왕의 처신

[김민웅 칼럼] 대나무 숲을 잘라내는 까닭

삼국유사, 경문왕의 당나귀 귀 이야기
  
  삼국유사(三國遺事) 경문왕(景文王) 편에 나오는 이야기는 왕의 귀에 대한 소문이었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게 되어 있다.
  
  "왕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자기의 귀가 당나귀 귀가 되어 있었다. 왕은 세상 사람들이 이것을 알지 못하게 특별한 모자를 만들어 썼다. 그리고 모자를 만든 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발설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모자를 만든 사람은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하니 병이 났다. 그는 경주 근처의 절에 들어가 요양을 하였다. 주변에 사람이 없을 때, 그는 대나무 숲속에 들어가서 크게 소리쳤다. `우리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이다.' 그러자 바람이 불면 대나무도 `우리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이다'라고 울었다."
  
  <삼국사기>가 제도권의 공식사(公式史)라고 한다면, <삼국유사>는 일종의 야사(野史) 내지는 뒷이야기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보다 중요한 지점은, 삼국유사가 역사서술에서 권력의 논리에 사로잡히지 않고 매우 자유분방한 자세를 취했다는 사실이다. 일연 스님이 써 내려간 삼국유사 경문왕 편의 기록은 바로 그러한 각도에서 보자면, 공식 역사서술에서는 감히 내놓고 쓰기 어려운 대목이다.
  
  권력의 진실에 대한 소문
  
  그렇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담고 있는 풍자의 정치적 성격은 대담하기 짝이 없다. 그건 단지 옛날 삼국 시대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그가 겨냥하고 있었던 바는 현실의 권력이었고, 권력의 무지와 진실의 은폐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감행했던 셈이다. 일연 스님은 민심과 멀어진 13세기 당대의 고려 왕권과 무신정권의 무단정치, 그리고 몽고침략으로 인해 피폐해진 현실을 설화와 전설의 구도 속에서 날카롭게 읽었던 인물이었다. 경문왕의 당나귀 귀 이야기는 그런 비판의 산물이다. 더군다나 올곧은 마음을 상징하는 대나무가 왕의 귀가 어떻게 생겼나를 밝히고 있으니, 어찌 손 쓸 도리가 없어 보인다.
  
  이 설화는 그런 까닭에, 불교에서 말하는 "우이독경(牛耳讀經)", 말하자면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도 쇠귀에 들려주는 말처럼 쓸모없어지고 말았다는 탄식과 이어지는 이야기다. 당나귀 귀는 쇠귀보다 더 어리석은 존재의 고집과 무지, 그리고 편견을 상징해준다. 마이동풍(馬耳東風)이 된 셈이다.
  
  소통불능의 군주, 그리고 백성들의 고단함
  
  그러니 왕의 귀가 당나귀 귀가 되어버린 것은 민심과의 소통불능 상태에 처한 군주의 비극을 드러낸다. 그런 군주 치하에 사는 백성들은 고단하기 짝이 없고, 진실에 목마르게 된다. 따라서 군주가 아무리 진실을 감추고 백성들이 모르게 하려 해도, 결국 세상이 다 알고 만다. 임금의 귀를 은폐하기 위해 모자를 만든 자만이 아니라, 그가 토해놓은 소리를 되풀이하는 대나무도 더는 침묵하지 않는 것이다. 내부고발자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걸 세상에 널리 전달하는 존재도 이 이야기에서는 등장한 셈이다.
  
  왕은 이러한 사실을 끌까지 모르고 말았을까? 그래서 모두 다 아는 공개된 비밀을 혼자 대단한 비밀처럼 껴안고 있으면서 바보처럼 되고 말았던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비밀이 누설된 것을 알고 노발대발하면서 발설한 자를 색출하는 데 몰두했을까?
  
  사람의 귀가 당나귀 귀처럼 되고 말았다면 그건 예삿일이 아니다. 게다가 그것도 일국의 왕이 그리 되었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되면 조롱감이 될 것은 뻔해 보인다.
  
  뒤집어 읽는 설화
  
  그런데, 이 삼국유사의 설화를 뒤집어 읽어볼 수는 없을까? 이 이야기의 출발점에서 우리는 다음의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즉, 임금의 귀가 당나귀 귀처럼 길고 크다는 것은 과연 부끄럽고 숨겨야 할 일인가 하는 점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런 귀를 가지고 있는 것이 권력자의 장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임금은 그 귀의 겉 생김새가 다만 창피하다고만 여겼지, 그것이 정작 가지고 있어야 할 의미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만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자신의 수치보다는, 그 길고 큰 귀로 들어야 할 바를 들으려하는 군주였다면 그래서 그가 백성들의 이런저런 사연에 귀를 기울이고 선정을 베풀었다면 그 당나귀 귀는 거꾸로, 칭송의 대상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임금께서 그리도 백성들의 형편을 잘 아시고, 아무도 듣지 않은 곳에서 쏟아냈던 한탄조차도 다 들으시고 그걸 어떻게든 해결해주시려고 애를 쓴다면, 그 당나귀 귀처럼 생긴 귀를 가진 군주는 백성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듬뿍 받을 것은 분명하다.
  
  뿐이겠는가? 너도 나도, 그런 귀를 가지고 싶어서 밤낮으로 귓밥을 문지르며 귀야, 귀야 길어져라, 커져라 주문을 외웠을지도 모를 일이고 아이를 낳자마자 다른 무엇보다도 그런 귀인가 아닌 가 확인하는 전 세계에서 우리만 있는 고유한 미풍양속이 생겼을지 누가 알겠는가? 또는 이제 앞으로 최고 지도자 또는 대선에 나올 사람들은 누구든 그런 귀를 가진 사람으로 자격 요건을 제한한다, 뭐 이런 선거법이 나왔을지 모를 일이기도 하다. 물론 이는 모두 가상의 논리다.
  
  크고 긴 귀를 가진 군주의 덕
  
  똑같은 상황에서 군주의 마음과 자세만 다르다면, 이 귀를 보고 놀란 모자 만드는 이에게 임금님은 사람 좋게 허허 웃으시면서 혹 이렇게 대할 수 있지는 않았을까?
  
  "놀라기도 하겠지. 나도 사실 처음에는 좀 당황하기는 했네. 그런데 이게 날이 갈수록 길어지는 걸세. 적당히 멈출 때가 있겠지 하면서 잘 때 조금 불편한 것 빼고는 그런대로 괜찮다고 여겼는데, 더는 머리카락으로 숨기기 어려운 형편이 되고 말았네. 괜히 신하들과 백성들 놀래게 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어안이 벙벙해지면서 민망하고 황송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이 모자 만드는 이에게 왕은 더 계속해서 말하기를, "아. 참 그런데 내가 이 귀를 가지고 민심을 듣고 있지 않은가? 귀가 길어지고 크니까 백성들이 힘겨워하는 소리가 더 잘 들리더군. 자네,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거든 언제든 말하게. 내 귀가 요렇게 쫑긋거리며 자네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을 테니 말이지, 허허허." 그렇게 말하는 왕의 귀여운 표정과, 장난치듯 쫑끗거리며 움직이는 귀가 예사롭지 않게 여겨지지 않았을까?
  
  그와 같이 인자하고 마음이 넉넉한 임금님을 보고 왕의 머리에 씌울 모자를 만드는 자가 밤중에 냅다 대나무 숲에 달려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다," 하고 남몰래 소리를 지르고 다시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집으로 횡 하니 돌아왔겠는가? 그가 이 비밀을 너무나도 세상에 알리고 싶어 대나무 숲에 와서 그런 소리를 지르고 돌아갔다 해도, 그건 이미 왕에 대한 조롱이나 수치스러운 비밀의 누설이 아니다.
  
  똑 같은 이야기라도 그것은 이 임금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선정을 베푸는 왕에 대한 기이한 전설이 되어 세간에 널리 전해지게 되는 것이다. 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지혜자 요기는 작은 몸집의 외계인 형태지만 그의 귀가 유난히 길다는 점은 그런 각도에서 흥미롭다. 우주의 기운과 그 변화를 듣는 그 귀의 움직임은 대단히 철학적이며, 깊이를 갖는다. 요기는 기계와 물리적 힘으로만 맞서려는 자들과 대비되는 동양적 기철학자(氣哲學者)의 면모마저 보인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다시 본래의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민심에 마음을 활짝 열고 듣는 크고 긴 당나귀 귀를 가진 왕의 선정에 대한 칭송이 대나무 숲 속에서 울려 퍼지는 것은 기쁜 일이다. 사람들은 그 귀가 당나귀 귀, 그러니까 동물의 귀를 닮았다는 것을 비아냥하는 것이 아니라 그처럼 길고 큰 귀를 가진, 그리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잘 듣고 헤아릴 줄 아는 군주가 있음을 온 세상에 알리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게 된다.
  
  그런 군주에게는 팬클럽이 여기저기 생겨서 그 귀에 어울리는 각종 모자를 만들어 보내는 흥미진진하고 유쾌한 장면이 펼쳐지지는 않을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이다," 라는 외침이 그 임금이 어떤 존재인가에 따라 사뭇 그 뜻은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그래서 언제나 그 주체가 누구인가에 있다.
  
  하나도 내용을 바꾸지 않은 같은 이야기인데 이제 어떻게 읽히는가?
  
  "왕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자기의 귀가 당나귀 귀가 되어 있었다. 왕은 세상 사람들이 이것을 알지 못하게 특별한 모자를 만들어 썼다. 그리고 모자를 만든 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발설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모자를 만든 사람은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하니 병이 났다. 그는 경주 근처의 절에 들어가 요양을 하였다. 주변에 사람이 없을 때, 그는 대나무 숲속에 들어가서 크게 소리쳤다. `우리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이다.' 그러자 바람이 불면 대나무도 `우리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이다'라고 울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일연 스님이 말했던 그 당나귀 귀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게다가 아예 그런 소문이 퍼지는 진원지로 지목된 "대나무 숲"을 잘라내는 까닭도 덧붙여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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