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했던 문화방송(MBC) <PD수첩> 제작진에 대해 검찰이 전담 수사팀을 편성해서 수사에 나선다고 한다. 농림수산식품부의 수사 의뢰에 따른 조치라고는 하지만 여러 가지 점에서 염려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언론 매체에 대한 수사는 극도로 조심스러워야 한다. 그 구체적인 이유를 들기에 앞서 먼저 검사들이 좋아하고 자주 인용하는 판례 하나를 살펴보려고 한다. 1976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판결한 임블러 사건(Imbler vs Pachtman, 424 U.S 409)이 바로 그것인데 기소된 피고인의 무고함이 밝혀졌을 때 검사가 책임을 져야하는지 여부가 다투어진 사건이다.
언론 통제가 가져올 부작용과 폐해
1961년 1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의 한 상점에 강도가 침입하여 주인인 모리스 해슨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로부터 10일 후, 이번에는 같은 주의 포모나 시에서 3인조 강도미수 사건이 일어나는데 범인 중 한 명인 레오나르드 링고는 현장에서 사살 당하고 나머지 두 명은 도망치게 된다. 도망친 범인 중 한 명이 바로 폴 임블러였는데 그는 다음날 자수한다.
로스앤젤레스 검찰은 임블러가 강도미수 사건 뿐만 아니라 모리스 해슨 살해사건도 저질렀다고 판단하고 그를 일급살인죄로 기소한다. 재판 과정에서 임블러는 해슨이 살해되던 시간에 술집에 있었다는 알리바이를 주장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목격자의 증언을 근거로 사형을 선고받는다. 그러나 재판이 끝난 후 그의 알리바이 주장은 상당한 근거가 있음이 밝혀지고, 반면 목격자의 증언은 신빙성에 큰 문제가 있었음이 확인된다.
결국 사형 선고가 있은 지 8년 후인 1969년, 연방법원은 검찰 측의 증거가 잘못되었다는 이유로 임블러의 석방을 명하게 된다. 석방된 임블러는 자신을 기소한 패치먼 검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다.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고의로 숨기거나 잘못된 증거를 배심원에게 제시하여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임블러의 주장에 대해서 재판부는 검사가 피고인의 기소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설사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손해배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판결을 한다. 검사는 범죄자를 소추하는 데 있어서 독립적이고 용기 있는 결정을 해야 하는데 손해배상 소송을 염두에 두게 되면 직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신뢰성이 없는 증거를 사용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검사가 법정에 제출한 증거의 신뢰성은 재판 과정에서 치열하게 다투어지는 쟁점의 하나인데 만일 신뢰성이 없다고 결정되었을 때 검사가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면 검사는 정말 확실한 증거가 아닌 이상 제출을 망설이게 되고 결국 배심원은 불충분한 증거에 의해 재판을 하게 된다고 하면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물론 정말 잘못된 기소로 인하여 피해를 입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그 사람에게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보아서는 부당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형사 사법에 있어서 소신 있고 용기 있는 검사의 결정은 필수불가결한 것이기 때문에 일부 불합리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인 사건에서 검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피의자를 기소하는 검사의 책임과 사실을 보도하는 언론 기관의 책임이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나는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매체의 책임을 따질 때도 유사한 논리를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론에 대한 통제는 그 효과에 비해 훨씬 더 심한 부작용이나 폐해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극히 신중해야 하고 가능한 한 가벼운 수단에 기대어야 한다. 국가 형벌권을 주도하는 검찰이 나서고 더구나 이례적인 규모의 전담 수사팀을 구성하여 수사를 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볼 때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우를 범하게 되는 길일지도 모른다.
토론이나 논쟁보다 검찰 수사가 합리적인가
구체적으로 보면 우선 <PD수첩>에서 보도한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 여부를 수사력을 동원해서 규명하는 것이 과연 실효성이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은 <PD수첩>의 보도 내용에 대해 오역 논란이 커지고 사안이 중대하다는 판단에 따라 수사팀을 확대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보도 내용의 정확성 특히 오역 논란과 관련해서는 해당 프로그램의 번역을 맡았던 사람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의 의견이 자유롭게 개진되고 있고 <PD수첩> 측에서는 나름대로 반박이나 해명을 하고 있다. 토론이나 논쟁을 통해서 검증을 하는 것에 비해서 검찰의 수사를 통해 진위를 가리는 것이 얼마나 합리적인 수단인지도 의문이지만 특히 검찰 수사라는 강력한 수단에는 언론 보도의 위축이라는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이는 특히 이번 광우병 파동과 같이 폭발성이 있는 사안에서 더하다. 애초에 검찰이 수사에 나서겠다는 이유는 단순히 한 프로그램의 제작진을 상대로 보도 내용의 정확성을 따지겠다기보다는 잘못된 정보(만일 잘못되었다면)로 초래될지도 모르는 혼란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라고 짐작된다. 그런데 자칫 검찰의 수사로 언론기관의 보도 기능이 위축되게 되면 정보의 유통은 지하로 숨어들게 된다. 혹시라도 오보를 하면 수사 대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언론이 몸을 사리게 되면 결국 국민들의 귀를 장악하는 것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카더라 통신'의 몫이다. 이것이야말로 피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문제는 검찰의 말 그대로 "전 국민이 궁금해 하는 사항"이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로 모든 논란이 종식되고 국민들이 안심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정말 순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뜨거운 주제는 다양한 주장과 의견이 개진되는 속에서 스스로 검증이 이루어져야 그 부작용이 최소화된다. 수사기관이 나서서 일거에 진위를 가린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자칫 지금보다 더한 혼란을 초래할 위험성도 다분하다.
<PD수첩> 보도의 정확성 문제가 형사사건인가?
문제를 더 어렵게 하는 것은 지금 논란의 대상은 비단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추가협상의 의미에 관해서도 "미국 정부가 보장하는", "무기한"의 조치라는 정부 측 설명이 있는 반면, 상당한 근거를 가지고 "미국의 민간 업체의 자율적인 판단과 결정에 광우병 위험 쇠고기 관리의 전권을 넘긴다는 것"이며, 이마저도 한시적인 조치라는 반론이 있다(☞관련 기사 : "김종훈은 누구와 무엇을 '논의'한 것인가").
검찰은 이러한 쟁점 하나하나가 문제될 때마다 나서서 어느 쪽 주장이 옳은 것인가를 밝혀낸다는 것이 과연 가능하고 바람직하고 생각하는 것인가. 추가 협상팀이 위와 같은 기사를 수사 의뢰하면 또다시 전담 수사팀을 만들 것인가.
법리적인 측면을 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농림수산식품부가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내용은 대략 네 가지라고 한다. 첫째, 아레사 빈슨의 사인을 인간광우병(vCJD)인 것처럼 의도적으로 왜곡했다. 둘째, 주저앉은 소(downer)를 광우병에 걸린 소로 의도적으로 왜곡했다. 셋째, 라면, 의약품, 화장품 등을 통해서도 광우병에 감염될 수 있는 것처럼 의도적으로 왜곡했다. 넷째, 농수산식품부가 미국의 실정을 잘 모르거나 알면서도 숨기고 수입위생조건 개정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범죄를 구성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크다.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라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검찰에서는 "전 국민이 궁금해 하는 사항이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전담 수사팀을 만들게 되었다고 하지만 "전 국민이 궁금해 하는" 문제라고 해서 검찰이 마음대로 수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으로 범죄 혐의가 있어야만 수사에 착수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PD수첩>의 제작진 중 한 명에게 라면을 통해서 광우병에 감염될 수 있는지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출석을 요구했는데 거부한다면 수사기관의 정당한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출석을 강제하기 위하여 체포영장을 청구할 수 있을까. 라면을 통해서 광우병에 감염될 수 없는데도 감염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고 해서 어떠한 범죄가 될 수 있을까.
검찰이 밝히겠다고 하는 문제가 상당 부분 과학의 영역에 속해있다는 것도 수사를 곤란하게 하는 이유가 된다. 과학적 이론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것은 검찰의 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황우석 사건 때 검찰이 나섰던 것은 단순한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연구비나 지원금 등과 관련한 법률적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때에도 검찰은 최대한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접근을 했다. 광우병의 위험성이나 발병 메커니즘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되는 문제이다. 비전문가인 검사가 판단하기에 적절한 사안은 결코 아니다. 더욱이 <PD수첩> 보도 내용의 정확성 문제는 형사 사건이 되는지조차 불분명하다. 당연히 수사기관의 개입은 최소화해야 한다.
시사 프로그램의 생명은 보도 내용의 정확성에 있고 당연히 그 진위는 검증되어야 한다. "달을 가리키는데 보라는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본다"고 하는 태도는 그런 관점에서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국민들의 건강에 직결되는 이번 보도와 같은 내용은 철저히 검증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공개된 장에서 주장과 반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검찰의 '전담 수사팀'이 나서서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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