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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과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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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과 바다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 <38>


개울은 제가 그저 개울인 줄 안다
산골짝에서 이름 없는 돌멩이나 매만지며
밤에는 별을 안아 흐르고 낮에는 구름을 풀어
색깔을 내며 이렇게 소리없이
낮은 곳을 지키다 가는 물줄기인 줄 안다
물론 그렇게 겸손해서 개울은 미덥다
개울은 제가 바다의 핏줄임을 모른다
바다의 시작이요 맥박임을 모른다
아무도 눈여겨 보아주지 않는
소읍의 변두리를 흐린 낯빛으로 지나가거나
어떤 때는 살아 있음의 의미조차 잊은 채
떠밀려 서쪽으로 서쪽으로 가고 있는 줄로 안다
쏘가리나 피라미를 키우는 산골짝 물인지 안다
그러나 가슴속 그 물빛으로 마침내
수천 수만 바닷고기를 자라게 하고
어선만한 고래도 살게 하는 것이다
언젠가 개울은 알게 될 것이다
제가 곧 바다의 출발이며 완성이었음을
멈추지 않고 흐른다면
그토록 꿈꾸던 바다에 이미 닿아 있다는 걸
살아 움직이며 쉼없이 흐른다면


「개울」이란 제 시입니다. 골짜기에서 흐르는 작은 물줄기가 개울입니다. 개울은 아무도 눈여겨 보아주지 않는 물입니다. 그저 쏘가리나 피라미가 사는 산골짝 물입니다. 그러나 거대한 바다도 개울에서 출발하였습니다. 개울은 비록 낮은 곳에 있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물이지만 그 개울 하나 하나가 바다의 핏줄이었던 것입니다. 바다의 시작이요 맥박인 것입니다.

그러나 바다까지 가려면 멈추지 말고 나아가야 합니다. 살아 움직이면서 쉼 없이 흘러야 합니다. 주저앉거나 포기하면 그 순간부터 개울은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늘 깨어 있어야 하고 맑은 모습으로 흘러야 합니다.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걸음을 멈추지 않으므로 개울물이 맑은 것입니다. 그래야 바다의 출발이고 완성일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아무도 눈여겨 보아주지 않는 개울물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혼자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실핏줄처럼 다른 물들과 연결되어 있고 함께 있습니다. 우리는 멈추지 않고 흘러가 바다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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