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파이프를 휘두르며 돌진하는 경찰
2008년 6월 29일 새벽 12시 30분 프레스센터 앞은 두 번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악몽이 아닌가 싶었다. 곤봉만이 아니라 쇠파이프를 거칠게 휘두르며 시민들에게 조폭처럼 돌진하는 경찰을 상상할 수 있는가? <프레시안> 생중계 팀은 이 장면을 현장에서 그대로 시민들에게 전달했다.
조-중-동은 "경찰의 곤봉, 방패 vs 시위대의 쇠파이프"라고 했지만, 직접 목격한 현장은 경찰의 곤봉, 방패, 쇠파이프 vs 시위대의 유혈부상"이었다. 경찰의 입에서는 욕설이 난무했고, 기자. 노인, 여성 그 상대가 누구이든 아랑곳없었다.
평소보다 이른 진압작전
전경들은 아무리 봐도 얼굴은 20대 초반의 앳띠게 만 보이는 청년들인데, 누가 이들을 움직이는 잔혹한 폭력 기계처럼 만들어 버린 것일까?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기이한 함성과 위협적인 구호에 맞추어 이들은 시민들을 닥치는 대로 마구잡이로 짓밟고 있었다. 평소보다 일찍 진압작전을 시작한 경찰은 기세가 등등했다.
<프레시안>의 손문상 화백이 현장 기자로 투입되어 민주당 최문순 의원 옆에서 밀착 취재했다가 경찰의 폭력으로 손을 다친 것은 진압작전이 개시되기도 전이었다. 최문순 의원은 의원 신분을 밝혔어도 가차 없는 소화기 분사 대상이 되고 말았다. 이는 이미 무차별적인 폭력진압을 예고한 사례 가운데 하나였다.
취재기자들에 대한 폭력
한겨레신문 허재현 기자가 프레스 완장과 함께, 신분을 밝혔지만 경찰이 방패로 팔을 계속 가격한 사건에 항의하자 경찰의 지휘관 한명은 시종 실실 웃으면서 "당신이 맞은 것을 내가 어떻게 알아?"하고 비웃는다. 고소하다는 표정이다. "그럼 당신 이 기자의 주장을 확인할 용의가 있는가?"라고 묻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하면서 자리를 떠난다.
나이가 좀 든 지휘관으로 보이는 인물에게 다가가서 이러한 상황에 대해 할 말이 없느냐고 하자, 자신은 "소규모 대원을 지휘하는 하급 지휘관"이라면서 얼굴을 돌린다.
<프레시안> 생중계 팀에서 활약한 신입 이대희 기자는 경찰의 방패로 목을 가격 당했다. 그러고도 생중계를 위해 끝까지 버틴다. 이런 폭력 진압의 한 가운데 들어선 나는 폐허처럼 변해버린 프레스 센터 앞거리에서, 아비규환이 된 촛불집회가 조만간 분노로 가득 찬 시민들의 대규모 저항으로 이어질 것을 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시민 민주주의의 힘
두 달이 되어가는 촛불집회와 시위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수그러들 줄 알았으나 현실은 그 반대였다. 물리적으로는 정권의 무력진압을 어찌 이기겠는가? 그러나 박정희, 전두환 폭압정권도 무너뜨린 역사의 내공을 이명박 정권은 너무 가볍게 본 것이 아닐까?
일본의 시민사회도 자신들의 무력하고 소극적인 현실과 비교해서 충격을 받고 있고, 중국도 예의주시한다고 한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다. 대한민국 시민 민주주의의 힘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는 아시아 전체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이미 중대한 상징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휘한 자, 책임지는 자
한편, 지휘한 자는 분명 있는데 책임 지는 자는 없다. 경찰이 던진 돌멩이에 맞아 얼굴과 손에 부상을 당한 여성들이 방송중인 기자나 차량에 다가와 증거물을 내밀고 고통을 호소한다. 시민들을 향해 쏘아댄 소화기도 경찰이 시민들에게 던진 물품으로 발견되고 있었다.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은 "병력 충분해, 밀어붙여"라는 방송차량에 탄 지휘관의 명령 한 마디로 이미 시민들은 경찰의 적이었다. 상대는 아무런 무장 없는 시민, 경찰은 뵈는 것이 없는 권력의 철권주먹이 되고 있었다.
일부 고립된 경찰들이 시민들에 의해 공격을 받은 것은 이제까지 비폭력을 고수했던 시민들이 무고한 사람들이 밟히고 깨지고 다치는 것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보면서 그대로 가만있을 수 없다는 분노에 찬 정당 방위적 대응이었다.
구타 유발자
경찰의 진압이 있기 전, 시위대 가운데 일부 소수가 경찰차를 훼손하고 경찰에 폭력대응을 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건 시위대 전체의 의사도 아니고 목표도 아니었다. 폭력사태 유발을 끊임없이 도모한 것은 당국이라는 점은 현장에 있어보면 그대로 알 수 있다.
"구타 유발자"라는 영화의 제목이 떠오른다. 시민에 대한 경찰의 구타를 정당화시키는 의도적 도발이다. 그렇게 해서 촛불집회를 폭력시위로 낙인찍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누가 폭도일까?
이미 노컷 뉴스 동영상에 잡힌 한 여성에 대한 경찰의 무차별 곤봉타격은 특별한 예외가 아니었다. 50대 말로 보이는 한 여성이 응급차량의 지원을 받고 들것에 실려 갔다. 의료진은 현장진단을 통해 오른쪽 쇄골 골절이라고 판명했다. 그 와중에도 이 여성은, 경찰이 곤봉과 방패로 자신을 가격한 상황을 차분히 증언한다.
과연, 이명박 정권이 말하는 폭도가 바로 이들인가? 광우병 차단을 통한 질병퇴치를 요구하면서 재협상의 구호를 외친 이들을 폭도로 부르면서 진압대상으로 삼는 권력은 누구의 정부일까?
비는 내리고 있는데...
비는 한없이 내리고 있는데 거리의 시민들은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덕수궁 대한문 앞까지 밀렸던 시위대는 을지로를 돌아 종로거리에 운집했다. 경찰은 쇠줄로 바리케이트를 치고 시민들과 대치상태에 들어갔다. 누군가 대책위 방송차량의 마이크를 잡고 판소리 한판 걸지게 부르자 시위대가 환호한다. 시위대는 조금도 기가 죽지 않았다. 도리어 분기탱천하여 의지를 모으고 있었다. 과연 이러한 시민을 이길 권력이 있을 수 있을까?
민변 여성 변호사가 경찰에게 머리채를 끌려 잡힌 채 폭력 진압당한 일을 들려준다. 그녀의 몸에는 <인권침해감시단>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노란 조끼가 입혀져 있었다. 이것이 이명박 정권이 말하는 폭력집회에 대한 엄정대응이다.
이명박의 반성은
대통령 이명박은 청와대 뒷산에서 "아침이슬"을 들으며 반성했다고 한다. 그의 반성은 아마도 초장에 폭력진압하지 못하고 이렇게 일을 키운 것을 반성했던 모양이다.
20년 전 전두환 정권이 시민들의 기세에 눌려 직선제에 타협했던 그 날, 이명박 정권은 경찰의 곤봉과 방패, 그리고 쇠파이프로 시민들의 요구에 답했다. 그것이 이 정권의 소통 방식이다.
경찰의 무력진압은 이명박 정권의 한계 폭로
그러나 그 소통은 이대로 가는 한 이명박 정권 붕괴를 앞당기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정상적인 정치는 결코 운영되지 못한다. 저항은 확산되어가고 있다. 누구도 물러설 수 없는, 그리고 아무도 견뎌낼 수 없는 지점으로 상황은 치닫고 있다.
문제는 시민과 경찰의 충돌이 아니다. 그건 이명박 정권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면모에 다름 아니다. 뿐만 아니다. 오늘의 사태는 이명박 정권이 물리적 진압 말고는 시민들의 정당한 의사를 막아낼 방법이 없다는, 가장 분명한 한계를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그 한계가 더는 지탱할 수 없게 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이미 역사가 수없이 증언해온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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