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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사와 아키라와 원폭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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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사와 아키라와 원폭의 기억

[권혁태의 일본 읽기] <15> 원폭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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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에는 '원폭 영화'라 불리는 장르가 존재한다. 문학에 '원폭문학'이라는 장르가 있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영화적, 혹은 문학적 기법에 별다른 특징이 있는 것은 아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피폭 경험을 다룬 영화와 문학작품을 각각 '원폭영화', '원폭 문학'이라 명명한 것인데, 이 때문에 이 장르를 인정하는 것에 인색한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그다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원폭문학연구>라는 학술지가 정기적으로 발행되고 있고, 또한 <일본의 원폭문학>이라는 전집이 있을 정도이니, 이 같은 경향을 문학의 한 장르로 인정하지 않는 비평가들의 의견과는 관계없이 사회적으로는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하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원폭영화'는 지금까지 약 30편 정도가 만들어졌다. 특히 애니메이션이 많은 점이 눈에 띈다. 아마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피폭 경험을 어린 학생들에게 전해주는데 애니메이션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극영화 분야에서도 '원폭 영화'는 적지 않게 제작되었다. 특히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들도 다수 '원폭 영화'를 제작하였다.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칸느 국제영화제에서 두 번의 그랑프리를 받은 대표적 사회파 감독인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 1926-2006)의 <검은 비>(黒い雨, 1989년)는 피폭 후 하늘에서 쏟아진 검은 비를 맞아 방사능에 오염된 젊은 여성의 고난에 찬 삶과 이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그려낸다. 신도 가네토(新藤兼人, 1912- )도 1951년에 <원폭의 아이들>(原爆の子)를 시작으로, 비키니섬 피폭 사건을 다룬 <다이고후쿠류마루>(第五福竜丸, 1959년), 그리고 극단의 피폭 경험을 다룬 <사쿠라타이, 지다>(さくら隊散る, 1988년) 등, 다수의 원폭 영화를 제작하였고,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단행본까지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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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아키라(黒澤明)도 예외는 아니다. 구로사와는 한국에도 <7인의 사무라이>(7人の侍), <라쇼몬>(羅生門), 그리고 <난>(乱)등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이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대표적인 일본의 영화감독이 누구냐고 질문을 받게 되면, 일본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누구나 미조구치 겐지(溝口健二, 1989-1956),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郎, 1903-1963), 그리고 구로사와의 이름을 댈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에선 구로사와의 이름 앞에 일본말로 하자면 마꾸라고토바(枕詞)라 불리는 형용구가 붙인다. 예를 들면, '세계의 구로사와', '거장 거로사와'라는 식으로.

그런데 구로사와가 원폭에 관한 영화를 3편이나 만들었다는 점은 그 다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워낙 제작 편수가 많은 탓도 있을 터이지만, 그 보다는 구로사와의 원폭 영화가 사회적으로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만든 첫 번째 만든 원폭 영화는 <살아 있는 것의 기록>(生きものの記録, 1955년), 두 번째가 <꿈>(夢, 1990년), 그리고 세 번째가 <8월의 광시곡>(八月の狂詩曲, 1991년)이다. 이중 <꿈>은 여러 가지 단편을 하나의 영화로 만든 옴니버스 영화인데다, 영화 전체가 핵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일단 이 분석에서는 제외하기로 한다.

먼저 <8월의 광시곡>을 보기로 하자. 나가사키(長崎)시 근교 시골에 혼자 사는 할머니(그의 남편은 나가사키 원폭으로 시체도 찾지 못하고 죽었다) 집에 네 명의 손주들이 여름 방학을 지내기 위해 온다. 하와이에 있는 할머니의 남동생 집에 아이들의 부모(할머니의 두 자식과 그 배우자들)들은 놀러 가 있다. 하와이에서 살고 있는 할머니의 남동생은 노환으로 이미 입원 중인인데, 1920년대에 일본을 떠나 하와이로 이민을 가서 살게 된 사람이다.

이 남동생이 죽기 전에 누나(할머니)를 보고 싶다고 할머니를 초대했지만, 할머니는 자신의 남매 형제가 10명 이상이나 되는데다, 모두 죽거나 해서 하와이에 살고 있는 남동생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식들이 할머니를 대신해서 확인 차 하와이에 간 것이다. 부연 설명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와이에 거주하는 남동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할머니'라는 설정은 아마 미국에 가기 싫어하는, 다시 말하면 원폭을 떨어뜨린 미국을 용서하지 못하는 피폭자와 피폭자 유족의 '현재'를 할머니의 '망각'을 통해 은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남동생은 하와이에서 파인애플 농원을 경영하는 대부호인데, 이 아들(일본계 2세)로 리처드 기어(Richard Tiffany Gere, 1949- )가 등장한다. 할머니의 가족들은 미국의 풍요로운 '친척'을 동경하면서 할머니의 미국에 대한 복잡한 감정과는 관계없이 '철없이' 미국 이민을 꿈꾸기까지 한다. 결국 리처드 기어가 나가사키를 찾아와 할머니의 '상처'를 만남으로써 미국이 저지른 '만행'이 현재도 계속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고, 이 확인을 지켜보던 '철없는' 할머니의 가족들이 원폭의 처참함을 깨닫게 된다는 줄거리이다.
▲ <8월의 광시곡> ⓒ권혁태

이 영화의 출연진은 다음 네 그룹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째(A)는 나가사키에 홀로 사는 할머니. 이 할머니의 남편은 나가사키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에 원폭으로 사망했다. 시체도 찾지 못했다. 이 할머니는 피폭 세대를 대표한다. 후 세대의 '망각' 속에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 받을 기회조차 갖지 못한 피폭 세대의 '아픔'을 상징한다.

두 번째 그룹(B)은 할머니의 아들, 딸과 그 배우자 들. 이들은 오직 경제적 풍요만을 쫓는 '한심한 어른'으로 묘사된다. 급속한 경제발전 속에서 철저하게 원자화/개인화된 탈역사적 소시민을 대표하면서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세대로 등장한다. 이들에게 미국은 일본에게 원자폭탄을 떨어뜨려 수없이 많은 생명을 빼앗은 '주범'이 아니라, 풍요, 자유로 장식된 동경의 대상이면서 선진화된 일본의 '은인'으로 각인되어 있다.

세 번째 그룹(C)은 할머니의 손주 4명이다. 이들은 새로운 세대, 철없는 세대이다. 철이 없는 묘사 방식이 오히려 이들의 순진무구함을 드러내준다. 이들은 리처드 기어와 할머니의 '만남'을 통해 원폭의 '처첨함'을 깨닫고, 화해를 실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새로운 주역, 주체로 등장한다.

네 번째 그룹(D)은 리차드 기어를 비롯한 미국인(엄밀하게 말하자면 하와이에 사는 일본계 이민자들과 그 후손들)이다. 실제 영화에는 리처드 기어 밖에는 출연하지 않지만. 리처드 기어의 등장은 이 영화의 방향을 어느 정도 예측하게 해준다. 결국 리처드 기어가 나가사키에 와서 할머니와 만나, 원폭에 대해 '사죄'를 하고 이를 할머니가 받아들이며, 그리고 이를 통해 모두가 할머니의 뒤를 쫓는다는 줄거리로 매듭을 짓는다. 결국 A의 D의 화해가 C와 D를 깨닫게 한다는 것이다. 피폭세대에 대한 미국의 '사죄'가 후 세대의 자각으로 이어지는 것이며, 이 이어짐을 통해 '화해' 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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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는 미국의 '사죄'를 부각사키기 위한 장치로서 오리엔탈리즘적인 기법이 다수 동원된다. 예를 들면 할아버지의 '피폭사'를 기리기 위해 마을 노인들이 모여 불경을 암송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은 나가사키의 농촌 지역의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전통적 정서와 의식 속에서 살아가는 노인들의 '단정한' 표정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이런 '전통' 일본을 쳐다보는 리처드 기어의 진지한 표정과 '동양식' 제스처 그리고 미국식 발음이 섞인 일본어 등은 서양 문명에 절망하고 동양에서 깨닫는 '회개한 서양인'을 대표한다.

이는 원폭으로 인한 대립구도가 1945년 8월 6일과 9일에 각각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떨어진 '피폭'이라는 사실 그 자체서 연유되는 것이 아니라, 19세기 이래 세계적으로 벌어진 근대화=문명화 과정에서 자행된 서양화에 있음을 은유한다. 따라서 원폭은 서양문명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며 그리고 동양문화의 재발견을 통해 인류는 구원될 수 있다는 뜻이다. 리처드 기어의 일본 전통에 대한 '발견'은 서양문화에 대한 '동양'문화의 '단정함', 서양적 현대문명에 대한 성찰적 반성 등을 뜻하는 것이리라. 이 과정에서 동양문화를 '일본의 것'으로 독점하고 횡령한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일본의 대표적인 기독교 도시인 나가사키를 배경으로 한 것을 강조하기 위해 서양의 기독교 성가를 배경음악으로 등장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주로 등장하는 배경음악은 슈베르트의 '들장미', 그리고 예수를 잃은 성모 마리아의 슬픔을 그린 비발디의 슬픔의 성모(STABT MATER)이다. 오리엔탈리즘적인 기법과 배경음악으로 등장하는 서양음악은 일본의 피폭 경험이 서양에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피폭 일본에게 설파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리라.

그러나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문화 영화>, <국책영화>, <계몽 영화>가 그러하듯이 '피폭자=선=동양=일본'이라는 다소 진부한 등식을 통해 사람들을 '설교'하려 하고 있다. 이는 일본 사회에서 피폭자가 분노를 잃어버리고 점점 '고결한 인격을 가진 평화애호의 주체'로 기억이 다듬어지어 나가는 과정과 관련이 있다. 피폭자는 미국인을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핵병기를 증오하는 것이며, 특정 인종이나 국가를 벗어나 오로지 인류의 보편적 염원인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원폭을 전하고 기억하는 것이라는. 그래서 이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할머니)을 비롯한 피폭자 및 그 가족들은 일상생활의 끈적끈적함, 희노애락이 묻어나지 않는 무기물인 완전무결한 인격자이다. 아트 슈피겔만(Art Spiegelman)의 <쥐>에 나오는 아우슈비치의 생존자들은 심술 많고 고집 세고 상처로 가득 찬, 결코 치유되지 않는 상처를 안고 사는 신경질적이고 자기 마음대로인 할아버지 할머니인데, 일본의 피폭자는 항상 고결하다. 이 고결함이라는 표상방식이 실제로는 피폭자들을 소외시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 <살아 있는 것들의 기록> ⓒ권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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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보면 구로사와가 처음으로 만든 <살아 있는 것들의 기록>(1955년)이 훨씬 귀중하다.

어느 날 주물공장 경영자인 주인공은 가족들에게 브라질 이민을 통고한다. 사업이 부진한 것도 아니고 가정생활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돌연 주인공의 입에서 터져 나온 브라질 이민 통고는 가족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가 브라질 이민을 결심한 이유는 핵병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세계는, 특히 일본은 핵병기 때문에 '멸망'할 가능성이 높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핵병기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니, 핵전쟁으로부터 안전한 브라질로 이민 가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가족들은 이런 주인공을 이해할 수 없다.

가족들이 보기에 핵전쟁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그건 '먼 나라 이웃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서 가족들은 이민을 막고 재산을 지키기 위해 그를 '금치산자'로 인정해주도록 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한다. 이 소식을 들은 그는 충격을 받고 그는 쓰러진다. 의식을 회복한 그는 평생 고생해 일군 자신의 공장을 불태운다. 졸지에 방화범이 된 것이다. 그리고 정신병원에 수감된 그는 자신이 지구를 떠나 별도의 혹성에 와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소리친다. "지구가 불타고 있어요!"

이 영화가 개봉된 1955년을 보면 그가 느낀 위기의식이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피폭에 이어, 한국전쟁, 비키니 섬 핵실험, 그리고 미소 핵병기 대립으로 인해 핵전쟁의 위험성이 어느 때보다 컸던 시점이다. 따라서 그는 이 영화를 통해 핵전쟁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기의 그는 핵 문제를 어느 특정한 한 나라의 문제로 가두어 두고 있지 않다. 이 영화의 중국어 제목이 '活人的記錄'이고 영어 제목이 'I Live In Fear'로 되어 있는 것은 핵무기의 문제를 특정 국가나 인종의 문제가 아니라 철저하게 인간의 생존의 문제로 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인간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생존의 문제였을 것으로 보이며, 이는 '이키모노(生きもの)=살아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 원제목을 통해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8월의 광시곡>은 철저하게 핵병기를 과거의 기억으로 몰아내고 있는 듯하다. 마치 피해자인 할머니가 가해자인 미국인과 화해를 하기만 하면 해결되는 것처럼. 게다가 그 미국인조차도 일본계이다. 히로시마 나가사키는 1945년에 끝난 것이 아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1955년부터 1990년 사이에 구로사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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