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기원과 진화
지난 시간에는 우주의 모습과 주로 별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이번에는 우주 전체가 어떻게 시작했고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를 살펴보기로 하지요. 예전에는 형이상학이나 신학의 과제였던 우주론이 현대에 와서는 과학의 문제로 정립되었는데, 앞에서 지적했지만 이는 이론과 관측에서 각각 중요한 전기가 마련되어서 이루어졌습니다. 먼저 이론의 측면에서는 일반상대성이론이 우주를 해석하는 방법을 열었고, 뒤이어 빨강치우침과 우주 마이크로파 바탕내비침(cosmic microwave background radiation)이 관측되면서 과학적인 현대의 우주론이 탄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현대인은 '과학적 우주론'에 의해 우주를 이해합니다.
현대의 우주론의 출발
빨강치우침은 지난 강의에서 논의했지요. 바탕내비침이란 우주 전체를 채우고 있는 전자기파의 내비침을 뜻하는데, 주로 파길이가 밀리미터 정도인 마이크로파(microwave)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빛과 같은 전자기파지만 파길이가 길어서 우리 눈으로는 볼 수는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물질이 뜨거워지면 전자기파를 내비칩니다. 뜨거울수록 파길이가 짧은 빛을 내비치게 되어서 해처럼 온도가 수천 도에 이르면 보이는 빛을 내비치지요. 보통 물체도 보이는 빛을 내려면 온도가 이렇게 높아져야 하는데 이는 급격히 산화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서 '불이 붙어서' 타버리는 거지요. 우리 몸도 전자기파를 내비치는데 체온이 37°C, 곧 절대온도 310 K 쯤으로 낮아서 파길이가 빨간빛보다 길고 우리가 볼 수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 몸은 이른바 넘빨강(infrared)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한자어로 적외선이라고 부르죠. 그러니까 우리 몸의 온도가 대략 넘빨강을 내비칠 정도입니다. 넘빨강을 우리 눈으로는 보지 못하고 적외선 망원경으로 탐지할 수 있습니다. 군대에서 밤에 관측할 때 많이 쓰이지요. 맨눈으로 보지 못한다고 안심하면 곤란하겠지요. 동물 중에서는 넘빨강을 감지하는 녀석이 있는데, 야행성에 매우 유리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주는 우리 몸보다도 온도가 훨씬 더 낮습니다. 절대온도 2.725 K이니 대략 영하 270도 (- 270°C)이므로 우주에서 내비치는 빛은 파길이가 매우 깁니다. 이것이 바로 마이크로파이지요.
우주 바탕내비침은 1965년 펜지아스(Arno A. Penzias)와 윌슨(Robert W. Wilson)이 처음으로 관측했습니다. 원래 전파망원경 및 위성통신 실험을 위해 안테나를 조작하다가 우연히 관측했는데 처음에는 잡음으로 생각했으나 디키(Robert H. Dicke)를 비롯한 물리학자들에 의해 우주 바탕내비침으로 해석되었지요. 사실 이러한 바탕내비침은 이미 1940년대에 가모프(George Gamow) 등에 의해 예측되었으며,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대폭발(big bang)의 흔적으로서 받아들여집니다. 펜지아스와 윌슨은 사실 그 의미와 중요성을 몰랐지만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관련된 다른 사람들은 받지 못했지요.)
당연하지만 우주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간단한 전제, 이른바 우주론적 원리(cosmological principle)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주론적 원리란 균질성(homogeneity) 및 등방성(isotropy), 곧 여기나 저기나, 그리고 이쪽이나 저쪽이나 모두 같다는 가설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 미리내은하가 있는 이곳이나 안드로메다은하 방향으로 1억 광년 떨어져 있는 지점이나 또는 다른 방향으로 10억 광년 쯤 떨어져 있는 지점이나 모두 마찬가지라는 거지요.
물론 이것은 전체 우주의 규모에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지구가 있는 우리 은하의 안과 은하의 바깥은 분명히 다릅니다. 우리 은하 안에는 별이 상당히 많이 모여 있으나 조금 바깥에는 별이 거의 없으니까요. 더욱이 은하 자체의 분포와 은하 집단의 분포도 고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난 시간에 지적했지만 은하의 집단들이 모인 초집단은 고르게 분포돼 있음이 관측에 의해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균질하다는 것은 잘게 은하 정도의 규모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은하가 엄청 많이 모여 있는 은하의 초집단 정도의 규모에서 말하는 겁니다. 등방적이다, 방향에 관계없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구나 은하 정도의 규모에서는 방향이 중요하지요. 예컨대 지구 중심 방향과 그 반대 방향은 매우 다릅니다. 그러나 우주 전체의 규모에서 보면 위, 아래의 구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런 방향 차이가 없지요. 특히 우주의 바탕내비침은 모든 방향으로 거의 완벽하게 같습니다. 방향에 따른 차이는 10만 분의 1에 불과하니, 놀라울 만큼 등방성을 보여줍니다.
불어나는 우주
일반상대성이론이 이론적 우주론의 바탕이라고 지적했지요. 이러한 우주론적 원리를 전제하고 일반상대성이론의 마당방정식을 풀면 우주의 모형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주 자체는 움직이지 않고 멈춰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러한 정지우주(static universe)는 사실은 불안정합니다. 우주에는 은하를 비롯한 물질이 분포되어 있는데 그런 은하 등 물질은 중력이 작용하므로 서로 끌어당깁니다. 그러면 우주가 가만히 멈춰있을 수 없습니다. 서로 끌어당기니까 결국 한 곳으로 모여들게 되겠네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우주는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일반상대성이론에서도 멈춰있는 우주는 불안정한데 이 때문에 아인슈타인은 우주상수를 집어넣어서 우주가 멈춰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우주상수는 서로 당기는 중력에 대응해서 마치 서로 미는 힘을 주는 셈이지요.
그러나 현재 우주는 멈춰있지 않고 불어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팽창우주(extending universe)의 근거가 지난 시간에 이야기했던 빨강치우침의 관측입니다. 멀리 떨어진 천체에서 오는 빛의 빛띠를 분석해보면 파길이가 원래보다 길어져 있음을, 곧 빨강 빛 쪽으로 치우쳐져 있음을 관측하였지요. 도플러효과로 해석하면 천체가 우리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이므로, 결국 우주가 불어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른바 팽창우주가 성립이 되었지요.
사실은 허블이 빨강치우침을 관측하기 전에 이미 프리드만(Alexander A. Friedman) 및 (가톨릭 사제였던) 르메트르(Georges H.J.E. Lemaitre)는 일반상대성이론의 마당방정식으로부터 우주가 불어날 수 있음을 보였고,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가능성을 논의하였습니다. 그러니 이론적으로 일반상대성이론이 사실 팽창우주를 뒷받침하고 있고, 관측에서도 빨강치우침이 팽창우주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주가 불어난다는 의미를 혼동하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 우주가 공 모양이고 그 반지름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요. 그런데 공의 안쪽이 우주라면 그 바깥은 무엇인가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고 비어있어요? 물질이 없는 빈 공간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깥에는 물질만 없는 것이 아니라 공간 자체도 없습니다.
우주가 불어난다는 것은 공간이 늘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바깥에 빈 공간이 있어서 우주가 그쪽으로 점점 확장해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공간 자체가 새롭게 생겨나고 있는 것입니다. 풍선을 불어서 늘어나는 것을 우주 팽창에 비유할 때, 풍선의 부피가 불어나는 것이 우주가 불어나는 것에 해당한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이 비유에서 우주는 풍선의 안쪽이 아니라 풍선의 겉면입니다. 곧 우주를 2차원으로 나타낸 것이지요. 풍선을 불면 겉면이 어떤 식으로 늘어나지요? 바깥에 비어있던 공간을 겉면이 차지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없던 면이 생겨나게 됩니다. 곧 공간 자체가 늘어난 것이지요. 우주가 불어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주 바깥에 바탕이 되는 빈 공간이 있어서 이를 우주가 점점 채워가는 것이 아니고, 공간은 우주가 전부인데 공간 자체가 새로이 만들어지고 있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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