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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촛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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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촛불이다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 <31>


그는 저녁이 되자 조그마한 초를 상자에서 꺼내 불을 붙인 다음 긴 나선형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우린 지금 어딜 가는 건가요?" 양초가 물었습니다.

"우린 집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배들이 항구로 돌아올 수 있도록 뱃길을 밝히러 가는 길이라네."

"그렇지만 내 불빛은 너무나도 약해 항구에 있는 배들조차도 볼 수가 없는걸요." 양초가 말했습니다.

" 네 불빛이 희미하게 빛나더라도 타오르기만 하게."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들은 계단 꼭대기에 이르러 커다란 등이 있는 등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작은 촛불로 등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뒤쪽에 있던 커다란 반사경에 빛줄기가 쏟아져 나와 먼 바다까지 환하게 비추었습니다.

퍼넬 베일리의 글입니다. 퍼넬 베일리는 여기까지 쓰고 우리도 작고 가느다란 촛불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꾸준히 빛을 뿜어내는 일이며, 그 빛이 어떤 효과를 내게 될지는 하느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작은 촛불에 지나지 않습니다. 혼자서는 길을 밝힐 수도 없고, 등대불도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작아도 커다란 등에 불을 붙일 수 있는 불입니다. 우리가 불을 끄지 말고 끝없이 타오르고 있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결과를 미리 걱정하지 말고 꾸준히 빛을 내뿜고 있으면 됩니다. 나머지는 하늘에 맡겨도 됩니다. 이 빛은 결국 먼 바다까지 환하게 비추게 될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하던 많은 배들이 이 빛에 도움을 받아 기쁘게 돌아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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