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適性(적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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適性(적성)에 대하여

김태규 명리학 <344>

찾아와 묻는 이들이 거의 빠뜨리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다.
  
  무엇을 조심해야 할까요? 고쳐야 할 저의 부족한 점은 무엇일까요?
  
  이런 답을 해준다. 조심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니 아예 마음 편하게 사십시오, 단점이 바로 장점이니 고치려고 하지 마십시오. 무성의한 얘기로 들릴 수 있겠지만 실로 그러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미 그렇게 생겨먹은 것을 어떻게 고치겠는가? 그것은 나를 내가 아닌 사람으로 바꾸겠다는 것과 같다.
  
  물론 사람이 전혀 바뀌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살아가면서 경험과 학습을 통해 조금씩 변화해가며, 또 나이 들어감에 따라 서서히 혈기가 식어가면서 변화해간다.
  
  하지만 타고난 성품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의 동창을 수 십 년이 지나도 알아볼 수 있듯이 사람은 영원히 그대로인 것이다. 그저 다소간에 세련되어질 뿐.
  
  "스스로를 알라"는 것이 선현 소크라테스의 말이다. 그만큼 스스로에 대해 알기가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다. 필자의 생각과 경험으로 사람은 일생을 통해 스스로를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기가 딱 두 번 있다고 여긴다.
  
  한 번은 만 15 세 무렵이고 또 한 번은 만 51 세 무렵이다.
  
  일생을 72 년에 비길 때, 18 년은 한 계절이 된다. 72 년 이후의 삶은 여분이라고 여겨도 좋다. 다 살았다고 봐도 좋다.
  
  이런 일생을 한 해의 순환으로 환산하면 인생의 6년은 한 달이 된다. 그래서 농부가 씨를 뿌리는 시기는 양력 4월 20 일경의 穀雨(곡우)인데 이는 15 세가 되고, 수확을 최종적으로 거두어들이는 시기는 10월 20 일경의 霜降(상강)은 51세가 된다.
  
  즉 우리 인생에서 15 년이 지날 무렵은 곡우와 같고, 추수를 마무리하는 시기는 상강과 같으니 51 년 무렵이다.
  
  농부가 어떤 씨를 어떤 땅에 심을 것인지 결정하듯이 이 나이 무렵에 우리는 내가 어떤 품종이고 어떤 성질인지를 알게 된다.
  
  하지만 세상을 모르는 나이이기에 어떠한 확신도 가지지 못한다. 그저 막연하게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닐까 하는 추측만이 어렴풋이 스칠 뿐이다. 그러나 그 추측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나름의 최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론 이 당시의 생각과 방향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특히 부모님들이 자신의 인생 경험과 가치관을 자녀에게 투영하기에 15 세, 그러니까 고등학교 제 1 학년 아이로서 자신의 막연한 생각, 실은 정확하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바라본 결과 무엇을 하면 되겠다는 생각, 즉 자신의 적성을 강력하게 밀고 나가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물론 부모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다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인 문제나 금전적 성공에 대한 것도 있을 것이고, 자식이 고생의 길로 가기를 원하는 부모는 세상에 없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그것은 자신들의 삶이었고, 자식의 삶은 또 다른 길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대부분 적성을 처음부터 찾아가기 어려운 것이다.
  
  그 이후 진로를 택하게 되고 현실의 여건을 감안해가면서 우리는 인생을 살아간다. 좌지우지, 좌충우돌, 갈팡질팡이 그것이다.
  
  운이 좋은 자는 그런 대로 자신의 적성을 찾아갈 것이고 적성이 아닌 길을 가다가 한참 나이가 들어서야 자신의 길을 찾는 이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시대가 부여하는 유행이나 패션도 한몫 거든다.
  
  15 세 이후 36년이 지나 인생의 상강을 맞이할 것이니 51 세 무렵이 된다.
  
  이때 우리는 지나온 삶의 여정을 돌이켜보고 자신의 적성과 성격에 대해 그 실상을 정확하게 느끼게 된다.
  
  상강 무렵 무서리가 내리고 천지가 차가워지듯이 우리 속에서도 열기가 빠져나간다. 갱년기란 인생의 상강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지나온 길이 훤하게 내다보이면서 그것이 미혹의 길이었음을 느낀다. 특히 15 세에서 51 세의 중간 지점인 33 세 무렵에 나 자신이 얼마나 들떠있었고 또 昏迷(혼미)해 있었는가를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다.
  
  이 무렵 정확한 자기 판단이 섰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여기고 가정과 자녀를 잘 부양하면서 살다 가면 그만이라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세상에 처자식을 부양하는 일만큼 위대한 일은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무렵, 냉철하게 자신을 판단한 결과 아직도 가슴 속에 뜨거운 정열이 남아있고 해볼 만한 일이 남아있다면 그 또한 가능하다. 냉정하게 자신을 판단한 결과 얻은 생각이기에 勝算(승산)이 어느 때보다도 높은 까닭이다.
  
  연륜도 있고 지혜도 뒷받침하니 애써 외면할 일은 아닌 것이다.
  
  이 때 새로운 인생을 열어보자는 판단이 섰다면 이제 남은 일은 다시 한 번 가능성을 확인해보고 결단의 시기를 저울질하는 것이다. 그만큼 노련할 때도 되었으니.
  
  오늘날의 삶은 과거와는 달리 인생 2모작이 가능하다. 천하를 호령했던 나폴레옹도 이 나이에 죽었고 인생 오십을 노래하던 일본 전국시대의 명장 오다 노부나가도 이 나이에 세상을 떴다. 그런가 하면 조선 초기의 무섭던 호랑이 임금 태종 이방원도 이 무렵에 숨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사람의 평균 수명이 늘어났기에 노익장을 과시할 수 있는 좋은 세상이 오늘의 세상이다. 송백은 겨울이 되어야 그 푸름을 더 잘 알 수 있다는 동양의 명언이 진실일 수 있는 때가 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구속받지 않고 자유로이 살고파 한다. 특히 젊은이는 그렇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구속받지 않는 삶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돈이 많으면 구속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 관념이다. 그러나 실상은 돈이 많으면 편할 수는 있지만 구속은 여전히 따른다.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고 타인을 부릴 수 있는 것이 권력이라 생각되지만, 그 또한 아주 유치한 생각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권력이 큰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자유롭게 지낸다고 여길 수 있는가?
  
  돈과 권력은 좋은 것이지만 만만치 않은 대가가 따른다.
  
  살아있는 한 세상 어디를 가도 구속이 따른다. 가장 좋은 것은 가끔씩 일탈할 수 있으면 충분한 것이다.
  
  일탈, 벗어남, 이것이 좋은 것이고 삶을 누리는 것이다. 하지만 아주 일탈해버리고 아주 벗어나버리면 좋을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 또한 진실이다.
  
  한 때의 여가, 그것은 몸을 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일에 뜨거워진 우리의 머리를 식히고 마음을 자양하는 시간이다.
  
  문제는 내가 쉬고 싶은데 쉬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그럴 때는 마음 쓰는 법을 잘 익히면 된다. 흐름에 맡기고 흐름을 따라간다고 말이다. 흐름을 따르다 보면 절로 어느 때와 장소에 가면 쉼을 만날 것이다.
  
  궁극적으로 말하면 죽음은 커다란 휴식이라고 동양의 고전 淮南子(회남자)는 알려주고 있다.
  
  필자에게 큰 가르침을 준 후배가 한 사람 있다.
  
  길을 가기로 마음을 정하고 나섰다고 하자. 그런데 목표한 지점은 너무 멀기만 하고 다리는 쑤시고 몸이 너무 고단해서 쉬었다 가고프면 어떻게 하는가? 그 후배의 질문이었다.
  
  답을 잘 하지 못하는 필자에게 그 후배는 씩 웃으며 이렇게 가르쳐주었다.
  
  "목표가 멀게만 느껴지는 마음, 다리가 아파서 쉬었다 가고픈 그 마음을 길에 내려놓고 가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서 가다가 죽을 것 같으면 죽을 것 같다는 그 마음마저도 내려놓을 줄 알면 깨친 것입니다."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으면 발길은 가벼워진다는 그 말은 필자가 살아오면서 배운 최고의 가르침이었다.
  
  구속받는 것 같아서 적성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면 틀린 생각이다. 어차피 인생은 구속의 연속이니 말이다. 그저 중요한 것은 구속받는다는 그 마음을 내려놓을 일인 것이다.
  
  이 글은 적성으로 고민하는 당신, 구속받는 삶으로 힘겨워하는 그대에게 언젠가부터 꼭 들려주고픈 얘기였다.
  
  (전화:02-534-7250, E-mail :1tgkim@hanmail.net)
  김태규의 명리학 카페 : cafe.daum.net/8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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