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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반개헌운동

[권혁태의 일본 읽기] <14> '시민주도ㆍ국제연대'의 성과와 한계

무력을 포기한 헌법 9조

제 2장 전쟁의 포기
제 9조 ①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 평화를 성실하게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 내지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 ②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 해, 공군 기타의 전력은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되지 않는다.


일본 헌법의 핵심은 9조이다. 국가를 '폭력의 독점주체'라 했던 막스 베버(Max Weber)의 말을 기준으로 하자면, 유일한 폭력기구인 군대의 보유와 사용을 금지한 현행 일본 헌법 9조는 일본이 국가이기를 포기한 유력한 증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헌법 개정을 주장하는 일본 우파들은 군대를 포기한 지금의 일본 국가를 '핸디캡 국가', 혹은 '비정상 국가'라 규정하고 하루 빨리 헌법을 개정해서 군대를 보유함으로써, '보통국가'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현행 헌법의 유지를 주장하는 이른바 호헌 세력 쪽은 현행 헌법이 과거의 '잘못된 전쟁'에 대한 반성 위에 서 있는 것이며, 또한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는 국가 간의 무력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평화적 규범이라고 주장한다.

일본 헌법이 시행된 것이 1947년이니, 올해로 꼭 61년을 맞이하지만, 헌법을 둘러싼 논쟁은 끊이질 않는다. 특히 헌법 개정을 추진하였던 아베 정권 하에서 헌법 개정을 위한 절차법인 국민투표법이 제정된 이래, 헌법 개정과 이에 대한 반대론 사이의 논쟁은 추상적인 이론 논쟁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정치적 쟁점으로 변하고 있다. 헌법을 국가의 정체성이라고 한다면, 호헌 세력은 1947년 제정 이래 현행 헌법 하에서 만들어진 평화주의와 민주주의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지키자고 하고 있고, 헌법을 개정하자는 쪽은 평화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전후 일본 사회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일본의 헌법 개정 반대의 움직임을 보고 있자면, 과거에는 없었던 몇 가지 특징이 엿보인다.

'호헌'을 대신한 '반(反) 개헌'

하나는 과거에 빈번하게 사용했던 '호헌(護憲)'이라는 용어를 대신해서 헌법개정 반대나 개헌 반대, 혹은 반(反) 개헌이라는 용어를 빈번하게 사용한다는 것이다. 호헌이란 용어는 사전적 의미로는 현행 헌법을 지킨다는 뜻이다. 따라서 헌법 9조에 규정되어 있는 무력 보유 금지 조항에 따라 자위대를 해체해야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상황이 그리 간단치는 않다. 즉 경우에 따라서는 현행 헌법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한계, 예를 들면 상징 천황제를 비롯한 천황제 면책이나, '아시아적 시점의 부재(不在)'와 같은 점들도 그 대로 용인한다는 뜻이 되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위대를 용인하는 이른바 '해석개헌'을 '지키자'는 뜻으로 전용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호헌이라는 용어를 피하고 반 개헌 등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반 개헌이라 할 때의 개헌은 해석개헌이라기보다는 명문개헌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현행 헌법의 조문을 변경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명문개헌에 반대하는 광범위한 세력을 모으기 위한 일종의 '고육지책'이다. 만일 호헌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면 경우에 따라서는 '해석개헌'에 반대하는 뜻으로 이해되어 자위대와 미일안보조약을 폐기하자는 구 사회당의 주장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 9조 세계회의(2008.5.4-5.6) 포스터

반 개헌을 주도하는 시민 단체

두 번째 특징은 과거에는 사회당, 공산당 등의 전통적인 좌파정당이나 노동조합이 주도했던 호헌 운동이 최근에는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한 일종의 통일전선적인 반 개헌 운동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국회에 개헌저지선인 1/3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었던 사회당 등의 호헌 정당의 정치적 몰락과 깊은 관련이 있다. 제1 야당인 민주당이 개헌에 동조하고 있는데다, 자민당과 연립을 구성하고 있는 공명당도 '창헌'(創憲)을 주장하고 개헌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어, 국회에 개헌을 저지할 수 있는 호헌정당은 사민당과 공산당 밖에 없다.

그런데 두 정당 사이에 개헌에 대한 입장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민당과 공산당이 개헌 반대라는 점에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사민당과 공산당이 가지고 있는 의석 수는 각각 중의원 7석과 참의원 5석, 중의원 9석과 참의원 7석에 불과하다. 개헌 저지 의석에 턱없이 모자란 것이다. 따라서 개헌을 저지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국회 내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위기감이 국회 밖의 시민운동 주도의 반 개헌운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현재 헌법 9조를 중심으로 반 개헌운동을 전개하는 대표적인 시민 조직으로는 '9조의 회'[九条の会], 그리고 '행각의 회[行脚の会]', 그리고 '허용하지 말아라! 헌법개악 시민연락회의'(이하, 연락회의) 등이 있다.

먼저 사민당 계열로 알려진 '행각의 회'는 뒤에서 말하는 '9조의 회'와는 달리, 네트워크 결성을 꾀하지 않는다. 발기인을 보면, 우치하시 가쯔토(内橋克人, 경제평론가), 오치아이 케이코(落合恵子, 작가), 카야마 리카(香山リカ, 정신과의사, 작가), 강상중(姜尚中, 도쿄대학 교수), 사이토 타카오(斉藤貴男, 져널리스트), 사다카 마코토(佐高信, 평론가), 신숙옥(辛淑玉, 인재 육성 컨설턴트, 평론가), 다카하시 테츠야(高橋哲哉, 도쿄대학 교수), 다카라 데츠미(高良鉄美, 류큐대학 교수), 도이 타카코(土井たか子, 전 중의원 의장), 미키 무쯔코(三木睦子, 국제연합 부인회), 모리나가 타쿠로(森永卓郎, 경제어널리스트)의 12명이다.

이 모임의 특징은 "조직화를 지향하지 않기 때문에 각지에서 행각의 회를 만들지는 않지만,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같이 활동해나가고 싶기 때문에 강연 의뢰"에 협력해나가겠다는 취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철저히 비조직적 홍보 활동에만 전력하는데 있다고 볼 수 있다. 발기인 면면을 보면, '9조의 회'에 비해, 비공산당계라고 표현하는 편이 적절하다. 이런 비정당적 색채 때문에 비교적 다양한 성격의 발기인을 포함시킬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특히 도이 씨와 미키 씨를 제외하면, 비교적 젊은 명망가가 중심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하나 이 단체의 특징은 강상중과 신숙옥의 2명의 재일조선인을 참여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현행 헌법이 그 평화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문제나 재일조선인 문제 등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대한 고려일 것이다.

이와는 달리, 시민 운동적 성격을 지니면서도, 기존의 정당/정파를 뛰어넘는 호헌 운동의 결집을 꾀하는 단체로 1999년에 결성된 '허용하지 말아라! 헌법개악 시민연락회의'(許すな!憲法改悪、市民連絡会議)가 있다. 이 단체의 특징은 기존의 공산당/사민당/시민단체 뿐만 아니라, 신좌익 정파의 일부까지도 망라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9조의 회'나 '행각의 회' 등이 기존의 정당적/정파적 구분을 일부 희석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틀에서 자유롭다고 볼 수 없는 상황에서 거의 유일하게 반 개헌 국민전선적인 성격을 지닌다. 현재 약 200개의 시민단체 및 노동조합, 그리고 약 500명의 개인이 참가하고 있다. 하지만 다양한 성격이 단체가 결집해 전후 평화주의를 둘러싼 제 정파/제 정당 간의 헌법에 대한 최소의 공통점에 입각해서 반 개헌 운동을 전개하여야 하는 만큼, 일단 자민당 일각에서 추진하고 있는 헌법의 '명문 개헌'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일치하고 있을 뿐, 기존에 반복되어 온 해석개헌(자위대 문제, 미일 안보조약 문제) 등에 대해선 의견을 유보하고 있다. 즉 명문개헌에 반대하는 것이다.

트워크 형 반(反) 개헌운동- '9조의 회'

'9조의 회'는 명망가 중심의 조직 구성을 원칙으로 하되, 명망가들의 취지 설명문에 찬성하는 조직이나 개인을 자발적으로 조직화하는 형태로 반 개헌 운동을 전개해왔다. 발기인으로 참여한 이노우에 히사시(井上ひさし, 작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 작가), 쯔루미 슌스케(鶴見俊輔, 철학자), 사화치 히사에(沢地久枝, 작가), 오쿠다이라 야스히로(奥平康弘, 헌법학자), 오다 마코토(小田実, 작가, 고인), 가토 슈이치(加藤周一, 평론가), 우메하라 다케시(梅原猛, 철학자), 미키 무쯔코(三木睦子, 국제연합 부인회)의 9명은 일본을 대표하는 지성이라는 점에서 결성 당시 그 파급력은 어느 정도 예상되었었다. 9조의 회의 운동 방식은 독특하다. 일단 9명의 명망가가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취지문을 발표하고, 이에 찬동하는 단체/조직 등으로부터 강연 요청을 받게 되면, 강연자를 섭외하고 이를 홍보하는 역할에 그친다. 실제로 도쿄 스이도바시(水道橋)에 있는 사무실에는 자원봉사자가 한 명 교대로 상주하고 있을 뿐이다. 광범위한 조직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 아닌 셈이다.

'9조의 회'는 운동 방식에서 기존의 정당/노조 중심의 운동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 이 조직의 파급력은 취지문에 찬동하는 개인, 단체 등의 취지 찬성과 자발적인 조직 결성을 통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오랜 기간 동안 일본 사회의 전통적인 운동 방식이었던 기존의 정당 및 노조와 같은 거대 조직의 힘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보면, 기본적으로 개인에 기반을 둔 자율적인 형태로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며, 이 같은 운동 방식은 일본 시민운동의 효시라 할 수 있는 1950년대의 '소리 없는 소리의 모임'이나 1960년대의 '베트남에 평화를! 시민연합'과 매우 흡사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공산당에 가까운 조직이라는 평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는 지역, 직업 등의 단위들도 이에 호응해 자율적으로 전국적으로 9조의 회가 만들어지고 있다.

예를 들면, '인터넷 9조의 회', '스포츠 9조의 회', '음악 9조의 회', '변호사 9조의 회'처럼 직업별 반 개헌 단체가 만들어지는가 하면, '오사카 9조의 회', '오카야마 9조의 회'처럼 지역별로 크고 작은 조직들이 밑으로부터 결성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직능별, 지역별 조직이 반드시 위에서 말한 '9조의 회'와 조직적인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취지문에 공감하면, 도쿄에 자리 잡고 있는 '9조의 회'에 연락을 취하고, 이를 '9조의 회'가 집계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전형적인 네트워크 형 조직인 셈이다.

이 같은 조직 방식이 헌법 개정 반대 여론을 결집시키는 데 얼마나 효과적이었는가는 소위 '9조의 회'의 취지에 찬성해 전국적으로 결성된 '9조의 회' 조직 현황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9조의 회' 사무국이 집계를 개시한 2005년 4월 20일 단계에서 1,280개에 달했던 모임이 불과 1년 반이 지난 2007년 1월 31일에 5배에 달해 6천여 개를 기록하기에 이르렀고 현재는 전국적으로 약 1만개 정도의 자발적인 조직이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사무국 조사에 따르면, '9조의 회'가 결성된 이래, 매달 평균 약 200개씩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바람'은 철저하게 지역 및 직장 밀착적인 자발적인 소 조직 원칙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예를 들면 교토에서는 440개에 달하는 초등학교 학군이 존재하는데, 초등학교 학군별로 조직화가 이루어진 결과, 142개의 초등학교 학군에 모두 조직이 만들어졌고, 그 중에서 오토쿠니(乙訓) 지역의 경우에는 총 18개 학군 모두에 9조의 회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또 가마쿠라(鎌倉)의 경우에는 우편번호 한 개 당 한 조직의 결성을 지향하고 있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파트 단지별로, 혹은 가족 단위로 '9조의 회'가 만들어진 경우도 있다. 또 직장별/직업별 조직화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오사카의 경우, 225개에 달하는 공립학교/양호학교 중, 총 80개 학교에 '모임'이 만들어졌으며, 기존의 노동조직을 넘어서서 산업별 '9조 모임'도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예를 들면, 해운, 화학, 금속, 종이펄프, 손해보험, 전기, 은행, 국세, 보육, NTT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밖에도 주로 중소기업 경영자가 참여하는 '경영자 9조의 회'나 '세리사 9조의 회', 그리고 '등산가의 9조의 회'와 같은 스포츠 종사자의 모임, 그리고 이미 100개를 넘어선 청년, 학생 중심의 9조의 회도 9조의 회가 얼마나 광범위하고 다양한 조직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자민당이 노골적으로 개헌을 추진했던 1950년대 중반을 제외하면, 호헌이 정당정치의 밖에서 사회적/운동적 쟁점이 되었던 경우는 거의 없었다. 따라서 최근 10여년 사이에 고양된 반 개헌 운동은 사회당/공산당의 호헌 정당의 몰락으로 인한 호헌 정당 정치의 위기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다시 말하면, 사회당/공산당의 몰락은 한편에서는 자민당의 명문개헌 추진을, 다른 한편에서는 반 개헌 운동의 탈정당화를 가져다 준 셈이다. 이는 정당정치와 정당 정치의 외연에 위치한 시민운동이 일종의 트레이드오프 관계에 놓여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사회당/공산당의 몰락 이후 헌법 문제가 비교적 분산적인 풀뿌리적인 조직 형태를 가지고 있는 비정당적 시민기구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것은 시민 사회 그 자체의 진화라기보다는 정당정치의 변화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기존의 시민운동이 정당 운동의 보조축, 혹은 '틈새시장'에 대한 신규진입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면,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9조의 회' 같은 시민운동 조직은 정당의 지원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정당의 힘이 약화된 시점에 나타났다는 점에서 일부 정당적 기능을 보완하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국제연대를 말하는 반 개헌 운동

과거와 달리 최근의 반 개헌 운동의 또 하나의 특징은 세계, 특히 아시아와의 연대의 필요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현행 헌법이 가지고 있는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현행 헌법 체제를 용인하고 이를 유지하자는 의미로 호헌을 사용하게 되면 이에 대한 다양한 비판이 특히 아시아와의 관련 속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윤건차는 현행 헌법이 번역과정에서 일본 측의 강력한 의향을 받아들여, 원문의 people을 '국민'으로 번역함으로써 다수의 재일조선인을 포함한 식민지주의의 유산인 재일 아시아인을 배제하는 시스템으로 작용하였다는 점을 들어 '호헌주의'가 가지고 있는 한계에 대해 명확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또한 현행 헌법이 전쟁과 식민지 지배의 최고 책임자인 천황에게 일종의 면죄부를 주었다는 점에서 구 식민지주의의 연장선에 서 있다는 비판도 있다. 그리고 현행 헌법은 전쟁과 식민지지배라는 두 가지 차원의 과거사 문제를 전쟁 책임으로 왜소화시킴으로써(도쿄 재판) 식민지 지배에 일종의 면죄부를 부여했다. 게다가 현행 헌법이 기본적으로 주변 지역(오키나와 및 한국)의 군사적 '희생' 위에서 가능했던 평화체제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호헌주의가 냉전시대에 대한 무책임한 '향수'에 기반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같은 '아시아 부재'의 호헌주의에 대한 성찰적 고민과 모색이 중요한 쟁점으로 등장한다. 예를 들면, 위에서 들은 시민 운동적 반 개헌 운동과 아울러, 특징적인 반 개헌운동으로서는 일본의 헌법문제를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자리매김하려는 이른바 지팩 운동을 들 수 있다. 지팩이란 '무력과 분쟁해결을 위한 글로벌 파트너 십'(The Global Partnership for the Prevention of Armed Conflict)의 약자인데, 지팩은 2005년 7월, 118개국 대표가 모인 자리에서 일본의 헌법 9조를 '아시아 태평양 지역 전체의 집단 안전보장'의 문제라 평가한 적이 있다.

이는 일본국 헌법이 일본의 주권 하에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주변 지역의 안전보장에 아주 중요한 연결고리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헌법은 주권문제임과 동시에 국경을 넘는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일본국 헌법 문제는 그것이 안전보장 문제인 이상, 주변국의 '동의'가 중요하다는 것이고, 따라서 글로벌 시민네트워크의 개입이 중요하다는 것을 동시에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혹은 지난 5월에 개최된 '헌법9조 세계회의'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방식이 일본 국내의 반 개헌 세력이 정당적 기반을 잃고, 정치적 역동성을 상실한 2000년대 이후에 등장하였다는 사실로 볼 때, 이미 일본의 반 개헌 운동의 약화를 역설적으로 보여주었다고도 볼 수 있다. '안에서 안으로'가 불가능한 현재, '밖에서 안으로'라는 일종의 국제 시민의 '외압'을 통한 반 개헌 운동이 글로벌 시민 네트워크, 혹은 세계시민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때, 그것이 결과적으로 일본 반 개헌 운동의 시민적 기반을 거꾸로 훼손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00년대 반 개헌 운동은 기존의 정당주도 운동 방식에서 벗어나, '밑으로부터' 그리고 '밖으로부터'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진화하였다. 하지만 이 같은 진화가 개헌이 정당 중심으로 진행되는 '주권' 사항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정당정치의 '외부'에서 진행되는 '밑'과 '밖'으로부터의 운동이 일정 한계를 내포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또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참고문헌>
권혁태, 「일본의 헌법개정과 한일관계의 비대칭성」『창작과 비평』2005년 가을호.
尹健次「共同幻想としての日本・日本人・日本国憲法」いいだももほか編『憲法読本』1993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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