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하나. 지난 대선의 핵심 주제어는 '경제살리기'였다. 과거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표현은 80년대 외채위기 이후의 남미나 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장기불황에 빠졌던 일본과 같이 경제성장이 거의 정체한 나라들에 대하여 붙이던 수식어였다. 연 4-5%의 성장률을 기록한 나라에서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표현이 아무런 거부감 없이 수용되었던 것은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질문 둘. FTA의 예에서 보듯, 경제개방의 문제는 항상 이득을 보는 집단과 손해를 보는 집단 사이에 첨예한 대립을 만들어낸다. 지난해까지 우리 국민이 보여주었던 한미 FTA에 대한 지지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질문 셋.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표현을 사용하여 구설수에 오른 적 있다. 대통령 취임 이후, 이 대통령은 일본을 '용서'했다. 또 이 대통령은 미국과의 통상교섭에서 쇠고기 시장의 완전 개방을 약속하였다. 이러한 행동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뜬금없고 무질서한 질문들을 던져본 이유가 있다. 과거 참여정부에 대한 실망은 대선과 총선에서 현 여당의 압승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총선이 불과 1달 여 지난 지금, 상황은 너무나 다르다. 조선일보 6월 2일자 보도에 따르면 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21.2%로 급락하였다. 그 많던 지지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비밀은 숫자놀음에 있다. 2002년 노무현 당시 후보가 득표한 수는 12,014,277표였다. 2007년 이명박 후보가 득표한 수는 11,492,389표로 노무현 전대통령의 득표수보다 이명박 현대통령의 득표수가 더 적다. 이 결과가 보여주는 것은? 2007년 대선 결과는 현 여당의 승리가 아니라, 과거 여당의 패배이다.
마지막 질문부터 답해보자. 현 정부,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이 다수 국민의 지지에 의해 선출된 이상, 지지자들은 자신의 신념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우리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개인의 신념을 버리는 정치인을 경멸한다. 하지만, 이것이 곧 지도자 개인의 신념을 전체의 신념으로 치환하여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기업의 지도자는 자신을 따르지 않는 이들을 버리고 갈 수 있다. 그러나 국가의 지도자는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 것은 약간 기분 나빴지만, 참고 넘어갔다. 더 큰 장점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일본을 '용서'한 것도 어느 정도 참았다. 적어도 일본 정부가 교과서 문제로 뒤통수치기 전까지는. 쇠고기 시장 전면개방에서는 참을 수 없었다. 왜? 광우병의 위험이 그리 크지 않다는 정부의 논리가 설득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 논리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와 신념을 무시했기 때문이고, 그 과정에서 정부가 자국 국민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믿음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오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미 FTA 체결이라는 결단을 내리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의 상당수가 등을 돌리는 비용을 감수하였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원래의 지지기반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에 반대파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끌고 갈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FTA를 지지하는 사람이 다수라는 총계적인 수치가 주는 허상에 매달려 반대하는 이들의 논리를 무시하는 행동을 보여 왔다. 조선일보 6월 2일자에 따르면, 한미 FTA에 찬성하는 국민의 비율이 45.4%로 체결 직후 58.5%에 비하여 약 13.5%포인트 하락하였다. 국민들이 한미 FTA 체결을 지고선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과 방식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논의는 자연스럽게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으로 귀결된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표현이 광범위한 공감을 얻은 것은 단순한 성장률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중소기업, 자영업자, 비숙련근로자 등 성장의 과실의 분배에서 소외되었던 사람들의 불만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제성장 그 자체가 아니었다. 어떤 성장이냐, 그것이 더 문제였던 것이다. 이들이 정권교체 이후에도 이명박 정부의 충성스런 지지자로 남아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은 명약관화다.
이명박 정부는 착시에서 출발하였다. 국민들이 소위 'CEO 대통령'에 투표하였을 때 원하였던 것은 참여정부 시기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였던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국민들이 기대하였던 것은 경제를 아는 국가지도자였지, 기업경영전문가가 아니었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까지는 이명박 정부는 시장에 대한 분명한 이해에 기초하여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국가지도자로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경영전문가와 같이 행동하고 있다. 외환시장 개입이나 물가관리 등에서 보여주었던 현 정부의 접근은 '시장친화적' 정책보다는 오히려 개입주의 색채를 더 짙게 보여준다. 이 역시 CEO의 확신에 충실한 현 정부의 착시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민 대다수가 자신을 지지하였다는 잘못된 자신감은 이러한 착시를 더 한층 심각하게 만들었다.
'경제를 아는 국가지도자'에게는 강력한 카리스마 이전에 먼저 현 상황을 기본에서부터 진단할 수 있도록 하는 '소통'이 필요하다. 최근 이명박 정부는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여기에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 좋은 소식은 최소한 현 정부가 국민과의 '소통'이 잘 안되고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쁜 소식은 현 정부가 이 '소통'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쇠고기 정국에서 나타난 방송 탓, 촛불집회 배후설의 제기, 시위의 강경진압 등의 대응이 이를 보여준다.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 자신들은 올바른 생각을 갖고 있는데 국민들이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설득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와 같이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민의에 귀 기울이면서 우선적으로 조정이 이루어져야 할 부분을 찾아내는 것, 이것이 진정한 '소통'이다. 이러한 '소통'이 이루어질 때에만 이명박 정부는 착시에서 벗어나 진정한 국가지도자의 길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미워도 '정치'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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