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일본 내에서 비교적 진보적 매체로 분류되는 <아사히신문>은 월요일자 조간에서 후지모리 전 페루대통령의 혀종양수술 소식과 함께 서울에서 열린 집회의 소식을 아홉 줄의 단신으로 다음과 같이 전했다.
"한국 정부가 발표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제한 철폐에 대한 대규모 항의집회가 1일에도 서울에서 열려, 수만 명이 경찰대와 충돌했다. 5월 31일에는 경찰이 처음으로 방수(물대포)에 의한 진압에 나서, 1일 아침까지 시민 60여명 이상이 부상했다고 한다. (서울)"(<아사히신문> 2008년 6월 2일자)
주말 내내 일본 지인들에게 <프레시안>과 <오마이뉴스>, <한겨레> 등을 통해 모은 현장의 사진과 소식을 전하니 속속 답장이 돌아왔다. 회사원에서부터 방송국 PD, 신문기자, 시민운동가, 대학강사에 학생까지 저마다 다양한 분야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충격과 놀라움, 그리고 분노였다.
"<BBC>와 <CNN>, <Yahoo Japan> 등의 기사를 훑어보니 확실히 일본은 '침묵'하고 있네요. 스스로를 시민들을 잇는 미디어라고 자각하는 곳이 한 군데라도 있기나 한 건지, 미디어에 대한 정부의 규제 때문인지, 미디어 스스로의 자기 검열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때인 것 같아요." - 대학원생.
"보내주신 사진을 보고 울음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도 제가 그토록 사랑하는 한국에서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니요. 시민들은 너무도 당연한 요구를 하고 있을 뿐인데 말이에요. 제가 서울에 있었다면 아마 제일 앞 줄에 서 있었을 거에요. 어쩐지 제가 보는 <조선일보> 일본판도 잘 전해주지 않더라니…일본 미디어도 진짜 이상해요. 오늘 밤엔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네요." – 회사원
"이렇게 엄청난 일이 되어 있는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왜 일본에 전해지지 않고 있는지, 저도 보도국 동료에게 알아보겠습니다. 정말 이게 웬 일입니까." – 방송국 PD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무 것도 알지 못했던 것, 전혀 보도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말입니다. 일본의 미디어는 과거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네요. 놀랐습니다.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대학생
"깜짝 놀랐어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네요. 그런데 사진을 보니 일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과격한 진압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정말 일본에서는 왜 이런 게 보도되지 않는 걸까요? 저도 좀 더 알아볼게요." – 시민운동가
"한국의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제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보입니다만, 우선 지인들에게 알려야겠습니다." – 대학강사
무엇보다 그들이 가장 놀라워한 것은 폭력적인 진압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일어난 곳이 다름아닌 바로 '서울'이라는 사실이었다. 일본의 언론이 한국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소식 자체는 단편적으로 보도하고 있어도, 그것을 둘러싼 구체적인 맥락과 그 과정에서 자행되고 있는 폭력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비교적 진보적인 미디어로 평가되는 <아사히신문>과 <마이니치신문>이 각각 <동아일보>, <조선일보>과 제휴를 맺고 있는 것과 같은, 양국 언론의 구조적 문제 때문인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일본내의 호의적 시선 때문이지, 혹은 미국이나 일본 정부에 의한 압력 때문인지, 아니면 중국과 미얀마 문제에 모든 인력과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때문인지, 단지 유추만 해볼 뿐, 아직은 알 길이 없다.
다만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주류 미디어의 이러한 무관심 속에 한국사회가 한류스타들의 화려한 모습, 한국 기업들의 세련된 로고, 맛있는 요리와 감미로운 발라드로 만들어진 '이미지'만으로 고착되어 그 속의 실제 현실이 은폐되어 버리는 것이다.
실제 시민들이 숨쉬고 있는 현실이 국가 이미지라는 '가상현실'로 점철되어 버릴 때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심각한 문제에 봉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공동체'라는 말은 이제 그다지 낯설지도 새롭지도 않은 말이 되었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방법을 찾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은 듯 하다. 공용어를 정해 함께 '오륀지'를 외치면 되는 것인지, 자유무역으로 서로의 문을 활짝 열고 신자유주의의 은혜를 함께 만끽하면 되는 것인지, 너무도 다른 국민국가가 공존하는 이 동아시아라는 공간을 상상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그러나 일본의 친구들과 한국의 현실을 이야기한 이메일 속에서, 뭔가 해야겠다는 그들의 목소리 속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국가와 주류미디어가 만들어 내는 낯익고 화려한 이미지 속에서 현실을 구해 내고, 그 권력에 대항하는 현실의 연계를 구축하는 것, 그 연계 속에서 '국익'이라는 테두리를 넘어선 새로운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만이 그 방법임을. 그 답을 지금 촛불들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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