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을 점령하라"던 고인의 유훈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나 추모객들은 2013년, 2014년, 2017년, 2022년을 점령하기 위해 다시 일어날 것을 다짐했다.
고(故) 김근태(GT)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1주기 추모문화제가 지난 28일 오후 서울시청에서 열렸다. 김 전 고문 계열인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계를 비롯한 정계 인사와 유족, 일반 시민 등 600여 명이 참석해 지난해 12월30일 타계한 김 전 고문의 뜻을 기렸다.
이날 추모 행사는 다소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식전 인사를 나눌 때에도, 추모 공연이 이어질 때에도 모두들 침통한 표정이었다. 고인의 생전 모습이 담긴 영상메시지가 공개되자 참석자들은 고개를 떨궜다. 스크린에서 "우리는 믿음을 모아 새 희망으로 걸어갈 것이다. 함께 일어서자. 그리고 여러분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달라"는 김 고문의 육성이 흐르자, 민주통합당 유은혜 의원은 연신 눈물을 훔쳤다. "2012년을 점령하라"던 고인의 유훈을 이루지 못한 데 대한 송구스러움 반, 고인에 대한 그리움 반의 얼굴이었다.
▲ 28일 오후 서울시청 신청사에서 열린 민주주의자 故 김근태 1주기 추모 문화제에서 영화배우 박원상이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를 낭송 하고 있다. ⓒ뉴시스 |
'민주주의자 김근태 추모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인 함세웅 신부는 "우리의 힘이 아직은 3%가 부족하다. 그 3%를 채우기 위해, '2012를 점령하라'는 유언은 과거의 말이 아닌 오늘의 새로운 말로 재현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13년, 2014년, 2019년, 3000년, 한반도의 미래와 더 아름다운 미래를 실현하라는 의미로 해석하면서 김근태 님의 말씀을 이루지 못한 우리들 소명을 되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지금 1주기를 맞으면서 무거운 분위기인 것 같다. 그것은 아마 저희에게 남겨준 숙제를 미처 다 못하고 앉아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그 숙제를 마치기 전까지는 저희들이 결코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 독촉도 하고 격려도 해주는 그런 모습으로 남아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민평련 대표인 최규성 의원은 "지금은 떠나간 민주주의자가 우리에게 필요한 때"라며 "세월이 지날수록 넓고 깊은 마음으로 희망의 근거를 만들었던 당신이 그리울 것이다. 희망을 가슴에 품겠다. 더 넓은 김근태의 하늘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리틀 김근태'로 불렸던 이인영 의원은 "이기지 못한 것보다 후배들이 다함께 모여 온전히 하나되어 싸우지 못한 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면목이 없을 때 당신의 편지가 눈에 들어왔다. 당신의 편지에 위로받고 일어나고 싶었다"며 김 고문의 옥중 서신 중 '이제 나는 다시 일어나'라는 구절을 읊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당신을 보내지 못하고 다시 우리 마음속에 묶으려 한다. 다시 우리 곁으로 와 당신과 함께 우리는 새 길을 떠나려 한다. 무너지지 않을 새 역사의 시간을 점령하려 나선다"고 새롭게 각오를 밝혔다.
국내 정치인뿐 아니라, 버마 민주화투쟁의 산증인인 아웅산 수치 버마 민족민주동맹 사무총장도 영상메시지를 보내 김 고문의 1주기를 추모했다.
그는 영상을 통해 "민주화를 위한 버마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반세기 동안 우리는 김근태와 같은 분들의 지지를 받았다. 대한민국 모든 분들께 암흑기의 저희를 지지해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천부인권과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우리를 이어주는 끈은 어떤 독재 정권, 권위주의 정권보다 강하다. 우리가 지리적으로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해도 마음은 언제나 함께일 것"이라고 전해왔다.
추모 문화제가 끝날 무렵, 김 전 고문의 부인인 인재근 의원은 "선거가 끝난 다음 그가 묻힌 마석모란공원에 가서 너무 미안하다고 제가 용서를 빌었다. 그랬더니 '괜찮아, 괜찮아. 오늘부터 매일매일 점령하면서 살아'라며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면서 "옆에 있는 동지의 따뜻한 손을 잡고 김근태가 돼서 위로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참석한 남경부 씨(남, 42)는 행사 내내 눈시울을 붉혔다. 김 고문의 지지모임인 'GT클럽' 회원이었다던 남 씨는 "민주당 분당과정 당시 단식하던 때부터 지켜봤다"며 "정권교체에 실패했는데, 만일 지금 김 고문이 살아계셨더라면 어땠을까 생각이 나서 보고 싶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 마음이 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어 "이제 김 고문을 '민주주의자'라고만 하는 건 의미 없다. 평소 그분이 주장하셨던 양극화 해소 등의 현실 아젠다를 살려야 한다"며 민주통합당의 '새출발'에 필요한 구체적인 제언도 내놓았다.
이날 행사에는 설훈, 유인태, 최규성, 우원식, 이춘석, 유은혜, 진성준, 홍의락 등 민평련계 의원들과 더불어 박영선, 진선미, 한정애 의원, 정동영 상임고문, 임종석 전 의원, 문성근 전 최고위원, 문용식 전 시민캠프 대변인, 영화감독 정지영 씨 등이 참석했다. 안철수 전 대선후보 측 유민영 전 대변인과 허영 전 비서팀장도 자리를 지켰다.
추모위원회는 28일 추모 문화제에 이어 29일 오전에는 서울 도봉구 창동성당에서 추모미사 및 추도식을 열었다. 이어 오후에는 김 고문이 묻힌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묘역에서 참배행사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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