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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채를 잡힌 채 끌려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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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채를 잡힌 채 끌려가도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 <27>




뿌리째 뽑아내어 열흘 밤 열흘 낮 말려봐라.
수액 한 방울 안 남도록 두었다
뿌리흙 탁탁 털어 가축떼에게 먹여봐라.
씹히고 씹히어 어둡고 긴 창자에 갇히었다
검게 썩은 똥으로만 나와봐라.
서녘 하늘 비구름 육칠월 밤 달무리로
장마비 낮은 하늘에 불러올 때
팥밭의 거름 속에 숨어 빗줄기 붙들고
핏발 같은 줄기들 다시 흙 위에 꺼내리니
연보라 팥꽃 새에 이 놈의 쇠비름
이 질긴 놈의 쇠비름 소리 또 듣게 되리라.
머리채를 잡힌 채 아아, 이렇게 끌리어가도.
---도종환 「쇠비름」전문


농사를 짓고 밭을 매 본 사람은 압니다. 흙은 싸워야 할 상대가 아니라 고마워해야 할 삶의 터전이라는 것을. 밭을 매고 풀을 뽑는 일이 농사 중에 가장 힘든 일인 걸 알지만 풀이 곧 원수는 아닙니다. 풀을 원수로 여기고 제초제를 마구 뿌리면 당장 품은 덜 들지만 땅이 죽고 땅속의 유기물이 다 죽습니다. 땅이 살아 있지 못하면 농사도 망치고 좋은 먹을거리를 얻지 못하고 맙니다.

밭농사를 지으며 풀을 이기려고 하는 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풀에는 독초만 있는 게 아니라 약초도 있고 해로운 것들만 있는 게 아니라 입맛을 돋우는 좋은 찬거리도 많습니다. 농사를 짓다가 나는 결국 풀에게 집니다. 쇠비름은 뽑아내어 밭둑에 던져놓아도 죽지 않습니다. 소에게 먹여도 소똥 속에 섞여 나왔다가 다시 싹을 틔웁니다. 그러니 어떻게 풀들을 이기겠습니까? 풀에게 져야 내년 봄에도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국민을 이기려 하는 정부는 바보입니다. 원인을 바로 읽어내지 못한 채 아무리 물대포를 쏘고 방패로 찍어도 촛불을 꺼지지 않습니다. 여학생의 머리채를 잡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군홧발로 차고 밟는 걸 보며 온몸이 부르르 떨립니다. 여학생의 얼굴이 군홧발에 짓밟히는 걸 보며 국민들은 두려워하기보다 분노할 겁니다. 천 배 만 배 분노의 불길이 되어 번져 나갈 겁니다. "......머리채를 잡힌 채 아아, 이렇게 끌리어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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