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에 관한 한, 한우는 미국 소보다 나을 게 없거나 더 위험한 듯한데, 그렇다면 미국 쇠고기 수입이 무슨 큰 문제인가? 그 동안 먹어온 쇠고기보다 더 위험한 것도 아닌데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는 것은 잘못된 것 아니냐"는 반문이다. 그 동안의 언론보도 등을 감안하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의문이다.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먼저 분명히 해야 할 사실관계가 하나 있다. 만일 이후 미국산 쇠고기가 전면 들어오게 된다면 그게 대체하는 것은 한우가 아니라, 호주산 쇠고기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안전성을 비교하더라도 호주산 쇠고기와 비교해야 한다는 얘기다. 가격 등 여러 면에서 미국 쇠고기는 한우 아닌, 호주산 쇠고기와 경쟁-대체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우와의 큰 가격차 때문에 일반 서민들이나 다중용 시장에서는 수입육 의존도가 높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미국 쇠고기는 한우 아닌 호주산을 대체하게 돼
이 점은 그 동안의 쇠고기 수입시장 동향을 분석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해 한국이 수입금지조치를 취한 것이 2003년 말이다. 그 해 한국의 쇠고기 수입량은 총 29.4만톤이었다. 미국산은 그 중 68%, 호주산은 21%, 뉴질랜드산이 9%였다. 그후 미국산이 완전히 밀려나면서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 호주산 쇠고기다. 지난 2007년 쇠고기 수입통계를 보면 호주산이 73%, 뉴질랜드산이 19%, 그리고 미국산이 7%를 점하고 있다. 2003년에 비해 완전히 역전된 수치다. 한국이란 거대한 황금시장을 호주에 빼앗긴 미국 축산업계와 연방 정부는 권토중래를 노리다가 이번에 이명박 정부 덕분에 재탈환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미국산이 가격 면에서 호주산보다 싸고 LA갈비 등으로 입맛에도 맞기 때문에 한국의 쇠고기 시장을 다시 장악하는 것은 거의 시간 문제라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농촌경제연구원, 미국산 쇠고기 수입확대의 파급영향과 시사점).
그렇다면, 관심의 초점이 되는 것은 현재 국내 쇠고기 시장의 주종을 이루는 호주산 쇠고기의 안전성이다. 앞으로 우리 식탁을 점령할지 모를 미국산 쇠고기와 비교해 과연 안전한가? 만일 별 차이 없다면, 수많은 시민 학생들이 열심히 외쳐온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는 사실상 공허한 주장이 돼버릴 수도 있을 터이다.
혹시 오해가 있을지 몰라 먼저 분명히 밝혀두고자 한다. 필자는 호주와 미국 어느쪽 정부나 축산업계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다. 다만, 개인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제기되는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객관적으로 확인 가능한 판단자료를 찾아봤을 뿐이다. 그 결과를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아무래도 안전성 판단의 최우선 지표는 광우병 발생 기록이다. 알다시피, 미국은 이미 세 차례나 광우병이 발생한 나라다. 반면 호주와 뉴질랜드는 한번도 광우병 발생사례가 보고된 적 없다.
둘째, 이명박 정부가 그리도 중시하는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광우병 등급을 보자. 미국은 지난해 처음으로 "통제된 광우병 위험 국가"(Controlled BSE Risk Country: 흔히 이를 '광우병 위험통제국가'로 번역해서 쓰는데, 원어의 어감과 사뭇 다르다)로 분류됐다. OIE 분류상 2등급이다. 반면, 호주는 1등급인 "경미한/무시할 만한 위험 국가"(Negligible BSE Risk Country)로 인정받았다. 먹는 물로 치면 1급수와 2급수의 차이다.
셋째, 광우병의 잠재적 위험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소에게 뭘 먹이느냐 하는 점이다. 미국 축산업계에서는 지금도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이고 있다. 성장을 촉진시켜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인간의 탐욕은 초식동물인 소에게 그런 가혹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전 국내에서도 논란이 된 사료금지 강화조치(Enhanced Feed Ban Rule)가 내년 4월말부터 시행되는데, 일부 금지 부위가 추가됐을 뿐, 동물성 사료를 공식 허용하는 점은 이전과 다름없다. 반면, 호주는 1996년 처음으로 동물성 사료를 금지하는 법률을 만들었고 2001년 3월부터는 호주 전역에서 일체의 동물유래 사료를 금지하는 제도를 시행해오고 있다.
이 세상 모든 게 그렇듯 호주산 쇠고기도 절대 안전하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최소한 미국산 쇠고기에 비한다면 위 세가지 기준 모두에서 확실히 차이가 있음이 분명해졌다. 따라서, 정부 방침대로 미국 쇠고기를 전면 수입할 경우, 그래서 미국 쇠고기가 한국 시장에서 기존의 호주산 쇠고기를 대체하게 될 경우, 우리 식탁의 안전성이 얼마나 크게 달라질 것인가도 분명해진다. 그동안 마시던 1급수를 밀어내고, 정수처리가 채 안된 2급수를 마시라는 격이다. 시민들이 불안과 분노를 느끼며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는 데는 충분한 근거가 있음이 새삼 확인되는 셈이다.
한우 역시 동물성 사료는 금지돼 있다
이제 남은 문제는 한우다. 이 문제를 짚을 때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미국 쇠고기 수입문제와 한우의 안전성은 기본적으로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앞서 밝힌 대로,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올 경우 그 대부분은 한우가 아닌 호주산을 대체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한우는 우리 쇠고기 수요의 40% 안팎을 차지하기 때문에 안전성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미국 쇠고기는 그렇게 집요하게 문제 삼고 거부하면서, 우리의 소라고, 힘들게 버티고 있는 대다수 영세 축산 농가들의 생계가 걸린 문제라고, 눈감아주거나 대충 넘어가는 것은 자칫 이율배반으로 공격받을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선 똑같이 먹거리의 안전이 걸린 중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광우병 관련, 한우의 안전성 문제는 그 동안 여러 각도에서 조명된 바 있다. 박상표씨(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정책국장)를 비롯, 미국 쇠고기 수입반대를 적극 주장해온 관련 전문가들이 앞장 서서 국내 축산현장의 문제를 지적해왔다. 따라서, 여기서는 반복을 피하고, 앞서 미국산과 호주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비교한 그 기준을 그대로 적용해 한우의 안전성 문제를 짚어보도록 하자.
우선, 광우병 발생 여부다. 알다시피, 전혀 보고된 바 없다. 그러나, 이는 실제로도 광우병에 걸린 소가 전혀 없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처럼 전수조사를 하는 게 아니라 약 1% 정도만 조사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위험도 높은 소에 대한 것이 아니라 모든 소를 대상으로 한 표본조사라고 한다. 한편, 미국의 경우 0.1% 수준의 표본조사에서 세 건의 광우병 소가 발견되었다. 주로 기립 불능소 등 광우병 가능성이 높은 소를 조사한다고 한다. 따라서 이 점에서는 한우 고기가 안전하다고 장담하기 힘들다. 미국 쇠고기와의 안전성 비교도 힘들다.
둘째 기준은 국제수역사무국의 광우병 위험 등급 판정이다. 한국은 아직 신청하지 않아 판정받은 바 없다. 따라서 이 점 역시 판단/비교 불가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당국에서는 1등급(경미한/무시할만한 위험 국가) 판정을 기대하며 신청 준비했으나 일부 미비점으로 2등급 판정을 받게 될지 몰라 보류했다고 한다. 그렇다 해도, '미확정'(Undetermined) 상태는 2등급보다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 또한 가능하다.
셋째, 동물성 사료의 사용 여부다. 대다수 국민들은 한우도 미국 소처럼 동물성 사료를 먹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듯하다. 사료도 대부분 미국에서 수입하는 것으로 안다. "농림부 관계자는 동물성 사료 금지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는 식의 보도(5/28 YTN, 5/29 경향 등)도 계속 나온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는 이미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이는 것을 법령으로 금지해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농림부는 2001년 개정된 사료관리법에 따라 2003년 9월 '사료공정서'를 개정, 소를 비롯한 반추동물용 사료 제조과정에 동물성 사료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제조 공정 및 포장 운송과정에서도 일반 사료와 명확히 구분되도록 규제하고 있다(별첨 자료 <사료공정서> 참조). 사료의 수입허용기준도 이와 같은 농림부 고시에 준하도록 하고 있다(산업자원부고시 제05- 41호 제165조). 일각에서는 축산 현장에서 실제로 얼마나 엄격히 지켜지는지 의문을 표하기도 하나, 사료-축산업계에서는 "육골분 사료가 더 비싸기 때문에 일부러 섞어서 사용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아무튼 근 5년 전부터 동물성 사료 금지를 법제화했다는 점에서만큼은 한우가 미국 소에 비해 광우병 위험성이 낮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 해도 한우가 안전하다는 장담은 누구도 하기 힘들다. 국민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소의 이력추적제나 전수조사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농림부에서는 예산 부족으로 힘들다고 한다. 그렇다면, "미국 축산업계를 위해 미국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홍보해줄 예산은 있고, 한우와 국민들을 위한 예산은 없느냐"는 반문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자료> 사료공정서(농림부 고시 2003-42호. 2003.9.23 일부개정) 제19조(동물성사료의 교차오염방지) 제조업자는 유해사료의 범위와 기준 제5조 제2항 제1호 내지 제4호의 규정에 의한 사료(이 조에서는 "동물성사료"라 한다)를 반추동물사료에의 교차오염 방지를 위하여 다음 각호의 규정을 준수하여야 한다. 1. 반추동물배합사료를 제조하는 제조업자는 반추동물사료를 제조하는 동일공정 (원료투입 단계부터 최종 완제품 포장단계까지의 공정을 말함)에서 동물성사료 사용 금지 2. 제조업자 수입업자 및 판매업자는 반추동물용사료를 벌크형태로 운반하는 경우에는 별지 그림 1에서 규정한 전용차량만을 이용하여 운송하여야 하며, 당해 벌크차량의 번호를 기록ㆍ관리(다만, 동물성사료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에는 제외한다) 3. 제조업자 수입업자 및 판매업자는 반추동물용사료 또는 동물성사료를 톤백 또는 지대형태로 포장하는 경우에는 별지 그림 2에서 규정한 것을 사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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