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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별성(別姓)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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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별성(別姓)을 허하라!

[권혁태의 일본 읽기] <12> 부부동성제의 앞날

여성 개인의 이력이 드러나는 부부동성제

일본의 인도네시아 연구의 1인자로 알려진 학자 중에 게이오(慶応)대학의 구라사와 아이코(倉沢愛子, 1946- )라는 유명한 연구자가 있다. 그녀는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근대적 변용에 관해 인류학적 방법론을 사용한 많은 연구를 내놓았는데, 내가 아주 인상 깊게 읽은 그녀의 책 중에 『여성이 학자가 될 때』라는 연구 자서전적인 책이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필드 워크를 할 때의 경험담 등이 아주 진솔하게 담겨 있어 특히 현장을 중시하는 인류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일종의 지침서가 될 수 있을 듯하다. 물론 이 책의 가장 큰 주제는 책 제목에 이미 드러나 있는 것처럼 일본 여성이 학자가 되기까지, 혹은 되고 나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체험, 다시 말하면 일본사회의 젠더 규범에 대한 체험적 고발이다.

이 젠더 규범 중에 특히 법률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이 민법상에 규정되어 있는 부부 동성(同姓) 제도이다. 일본의 경우, 여성이 결혼하면 일반적으로 남편 성을 따르는 부부동성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민법 750조에는 '부부는 혼인 시에 정해진 바에 따라 夫(남편) 혹은 처(妻)의 씨(氏)를 칭(称)한다'로 규정되어 있다. 또 호적법 74조에는 '혼인을 하는 자는 부부가 칭하는 씨를 신고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제도적으로는 처의 성을 따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전체 혼인 건수의 97%가 남편의 성을 따르고 있다. 아마 데릴사위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이 남자 성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다나까 마키코'가 '고이즈미 준이치로'와 결혼하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다나까 마키코'는 '고이즈미 마키코'가 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는, '김영희'라는 여성이 '권철수'라는 남자와 결혼해도, '김영희'는 그대로 '김영희'이다. 결혼, 이혼, 재혼을 실제로 겪은 그녀가 법률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부부동성제도에 의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게 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 부부 간에 서로 다른 성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장례용품을 소개하는 기사

구라사와 아이코 교수가 만일 나카무라라는 남성과 결혼하게 되면, '구라사와 아이코'는 '나카무라 아이코'가 된다. 그리고 이혼을 하게 되면, 다시 '구라사와 아이코'로 돌아간다. 그리고 스즈키라는 남성과 재혼하게 되면, 그녀는 또 '스즈키 아이코'가 된다. 씨명권이 곧 인격권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녀의 '의지'와 관계없이, 성을 세 번이나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호적이나 주민표만 바뀌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연구 업적도 구라사와, 나카무라, 스즈키라는 세 가지 이름으로 등록되게 된다. 이 세 가지 이름으로 발표된 연구가 모두 본인의 연구업적이라는 것을 이름이 바뀔 때마다 하나하나 증명하거나 해명해야 한다. 연구실 표찰도, 강의 시간표도, 명함도, 운전면허증도, 그리고 학교 서류도 바꾸어야 한다. 더구나 이름이 바뀔 때마다, 그녀의 '의지'와 관계없이 그녀의 결혼, 이혼, 재혼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이 외부로 만천하에 노출된다. 성이 바뀌는 것을 보고 "아, 결혼했구나", "어, 이혼했네!", "아니 또 결혼한 거야!"라는 식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실제로 그녀가 경험한 것이다.

국립대학인 도서관정보대학의 세기구치 레이코(関口礼子) 교수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이런 현실을 고치고자 소송을 일으켰다. 1988년의 일이다. 일반적으로 '구성(舊姓) 사용 소송'으로 불린다. 1심에선 소송 자체가 기각되었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도쿄 고등재판소에서 '화해'가 성립되어, 그녀는 결혼 전의 성(구성)을 결혼 후에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물론 법률이 바뀐 것은 아니다.

일본의 여성문제의 쟁점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족제도는 중요하다. 특히 현행 제도(법적, 사회적, 문화적 시스템)의 대부분은 초기 산업화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성의 사회진출이 사회적으로 일반화되고, 또한 국제적 압력이 가중되는 가운데, 가족제도의 개혁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런 상황을 무엇보다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는 '부부동성제도'인 것이다. 이런 논의는 흔히들 '전통'과의 대립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마치 기존의 남성중심주의적인 '제도'들이 근대 이전의 유구한 문화적 전통 속에서 생성, 발전된 것으로 이해하기 쉽지만, 사실은 거의 대부분의 제도들이 근대 이후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부부동성제만이 가족 간의 유대를 보증한다?- 보수 쪽의 주장

부부동성제도의 온존을 꾀하는 쪽은 주로 보수 쪽 단체이다. 대표적인 곳이 약 10여 년 전에 결성된 '신사(神社) 온라인 네트워크 연맹'인데, 이 단체는 부부동성 문제뿐만 아니라 야스쿠니 신사 참배, 외국인 참정권 문제에 대해서도 지극히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 단체가 부부동성제의 유지를 주장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하나는 일본 국민 대다수가 부부동성제 때문에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느끼는 것은 아니며, 더구나 여론 조사 등을 보아도 부부동성제의 유지를 지지하는 여론이 높다는 것이다.

내각부(内閣府)가 5천명 이상의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2006년 11월에 실시한 '가족의 법제에 관한 세론 조사'(2007년 1월 27일 발표)에 따르면, (1)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 도입 찬성 36.6%, (2) 현행의 부부동성 제도 유지(선택적 부부별성제 도입 반대) 35.0%, (3) 부부동성제의 유지에 찬성하지만, 구성을 사용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구성을 통칭(通稱)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일종의 절충안에 25.1%가 찬성하고 있다.

따라서 반드시 신사 연맹의 주장처럼, 현행 제도 유지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는 받아들기는 힘들다. 하지만 (2)와 (3)을 부부동성제 원칙 유지라는 점에서 합쳐서 생각하면, 적어도 신사 연맹의 주장이 반드시 과장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두 번째 근거는 부부동성제가 가족 간의 유대를 유지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는 것이다. 신사 연맹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정은 부부가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장(場)이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교육하는 안락의 장이다. 따라서 가족은 부부 및 부모자식간의 유대를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해야 할 도덕적인 존재이고, 국가, 사회의 기초적 단위로서 법적으로도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이다. 현행의 부부동씨제도는 가족의 일체감을 높임과 동시에 사회적으로 부부/부모자식인 것을 공적으로 나타내는 아주 귀중한 역할을 하고 있다. (부부별성제를 주장하는 그룹은) 가족의 강화나 이에(家)의 존속 등이 아니라, 완전히 반대로....가족제도나 이에 의식을 철저하게 해체하는데 있다...... 이 사상은 개인을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것임과 동시에 사회의 기초단위라고 생각하는 지나친 개인주의에 입각한 위험한 생각이다.

사회의 기초단위로 개인을 상정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보고, 근대 국가의 기초 단위를 가족이라고 하는 발상으로부터 '신사연맹'은 단순히 보수라기보다는 복고주의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부부가 서로 성이 다를 경우, 가족 간의 유대감이 약해진다는 주장이다. 세계적으로 부부별성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은 적지 않다. 이탈리아(1975), 오스트리아(1975, 1986), 서독(1976, 독일 1993), 덴마크(1981), 스웨덴(1982) 등은 원래 남편 성을 강제하는 시스템이었다가 별성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인정하거나, 혹은 결합성(남편성과 부인성의 결합)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루어진 대표적인 나라들이다. 프랑스, 영국, 미합중국, 호주, 스페인에는 결혼과 성의 관계를 규정하는 법률이 없고 관습으로 처가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경우가 많지만, 물론 별성도 선택 가능하다. 스웨덴은 1983년 '이름에 관한 법률(씨명법)'에서 동성, 별성, 복합성 중에서 선택 가능하도록 규정했다. 물론 한국 등의 나라는 완전한 부부별성제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 지역이 반드시 일본보다 가족 간의 유대가 약하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부부동성제의 역사는 100년

사실 역사적으로 보아서 부부동성제가 일본의 전통이라는 근거는 없다. 에도(江戸)시대에는 무사계급에게만 신분적 특권으로 '묘지타이토(苗字帶刀, 씨를 가지고 칼을 찬다)'가 허용되어 있었다. 따라서 일반 평민은 세습적 씨(氏)를 가지지 못했다. 무사 계급이 전체 인구의 6%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일본의 '전통'은 부부동성제가 아니라 '씨'는 없고 단지 이름만 가지고 있는 '무씨제(無氏制)'사회였다고 볼 수 있다.

메이지 유신 후 신정부는 1870년에 '평민묘자허용령'(平民苗字許容令)을 발포해 처음으로 일반서민도 '씨'를 칭할 수 있게 되었지만, 평민들은 '씨'가 오히려 납세, 군역 등의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씨'에 소극적이었다. 세습적 '씨'를 통해 일본 사회를 국가에 포섭하려 했던 메이지 정부는 1875년에 '묘자필칭령'(苗字必稱令)을 발포하였고 이에 따라 일본 사회는 모두 '씨'를 가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때부터 부부동씨제를 채택한 것은 아니었다. 원래, 메이지 정부는 '가족'을 '호주의 호적에 소속하는 혈통을 같이하는 혈족'으로 규정하고 결혼을 통해 이에(家)에 들어온 처는 호주와 다른 혈통을 가진 혈족이라는 이유로 생가(친정)의 '씨'를 칭하도록 지도하는 등, 원래는 '부부별씨주의'를 채택했다. 1877년 태정관(太政官) 지령을 통해 여자는 결혼 후에도 '소생의 씨(氏)'를 사용하게 한 것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일본 근대화론의 시초이자, '탈아입구(脫亞入歐)'로 유명한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도 "하타야마(畠山)와 가지하라(梶原)가 결혼하면, 야마하라(山原)가 되면 좋다"고 말해 부부별씨를 넘어 부부 복합씨를 주장했다.

결국 1899년 메이지 민법으로 부부동씨제가 실시되기까지 일본 사회는 기본적으로 부부별씨제였던 것이다. 메이지 민법은 에도 시대의 무사계급의 가부장적인 가족 제도를 기반으로 호주를 정점으로 가족을 호주에 수직적으로 종속시키는 '이에(家)'제도를 통해 사회를 구성하려 했다. 입적, 전적, 제적 등의 권한을 호주에게 부여하고 이에 따른 경제적 사회적 통솔권을 호주에게 일임한 것이다. 호주는 재산상의 권한을 가졌다. 또 가족 구성원의 혼인에도 호주의 동의가 필요했다. 천황을 중심으로 전 사회를 수직적으로 통합했던 전전 일본 사회의 기본적 골격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 '부부동씨제'였던 것이다.

물론 전후 1947년 메이지 민법은 개정되었고, 호주의 동의 없이 당사자의 의지에 따라 결혼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 호적법도 개정되어 호적은 개인 등록으로 바뀌었다. '이에' 제도가 폐지된 것이다. 현행 가족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나카가와 젠노스케(中川 善之助, 1897-1975)라는 저명한 가족법학자는 당시 부부별성제를 강력히 주장했지만 실현되지는 않았다. 결국은 메이지 민법과 호적법상의 '이에' 제도는 폐지되었지만, 부부동씨제는 부부동성제로 잔존하게 된 것이다.

부부동성제의 앞날

선택적 부부별성제에 대해서 일본정부나 자민당이 반드시 반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반대라기보다는 '소극적'이라는 표현이 옳다. 이혼율이 30% 이상에 달하고, 가족 형태가 다양화되고, 또한 여성의 사회진출이 현저하게 높아진 21세기 일본 사회에서, 메이지 정부가 일본 국민을 수직적으로 통합하기 위해 고안된 '이에'제도의 결과물인 부부동성제 같은 낡은 유물을 고집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자민당이 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민당이 법 개정에 방관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1996년부터 초당파 야당 의원 들이 중심이 된 법 개정안은 몇 번에 걸쳐 국회에 제출되어 있지만, 자민당 의원들의 소극적인 태도 때문에 법 개정이 미루어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민당 의원들의 '소극성'은 신사 연맹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자민당과 일본 정부가 반대론과 유지론 사이에서 택한 길은 선택적 부부별성제와 부부동성제 간의 '타협 아닌 타협'이었고, 이는 '예외적 부부별성제'나, 혹은 '통칭 사용', '구성 속칭제도' 등의 형태로 귀결된다. 부부동성을 원칙으로 하되, 부부별성을 예외적으로 인정하거나, 혹은 통칭, 구성을 법률적 근거 하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조차도 정부 여당 내에서 합의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행의 정치지형으로 볼 때, 선택적 부부별성제도의 도입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몸통은 간 데 없고 누더기만 남는 셈이다.

법 개정에 적극적인 사민당 대표인 후쿠시마 미즈호(福島瑞穂) 의원은 모 대학에서 부부별성과 가족법에 대해 강의했을 때의 일을 소개하고 있다.

남자 학생이 이렇게 질문한다. "이름이라는 형식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애정이 있다면 남자 성을 따라도 좋은 것 아닙니까?" 나는 대답한다. "글쎄요. 그렇다면 반대로 학생의 애인이 학생에게 '성을 바꿔줄래?'라고 말하면 학생은 바꾸겠습니까? (학생 주장대로라면) 괜찮지 않을까요? 이름은 형식일 뿐이니! 애정이 있다면 괜찮지 않아요? 성을 바꿔보시지요?" 그 학생은 입을 다물고 나서 나중에 이렇게 대답했다. "성을 바꾸는 것은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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