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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거리에서 태어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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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거리에서 태어나는가?

[기고] 민주주의의 적이 되고 있는 권력의 운명

민주주의는 과연 거리에서 태어나는가? 권력은 밀실에서 공권력의 폭력행위를 지시하고 있고, 시민은 광장에서 그 폭력과 대치한다. 광장의 역사는 그래서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밀실은 다시 음모의 산실이 되고 있고 광장은 그 음모를 만천하에 공개하고 있다.
  
  광장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시민과 경찰의 대치는 권력의 얼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민주주의의 적이 되고 있는 권력의 현실을 폭로하고 있다. "우리가 민주주의다"라고 외치는 시민들 앞에서 선 경찰은 스스로 불법이다. 그 어떤 법과 질서도 민주주의와 대적하는 순간 민주주의의 파괴자인 동시에 역사의 낙오자가 된다. 그 구체적인 개인의 실존적 고뇌와는 별도로, 조직의 명령으로 움직여야 하는 경찰은 그 조직의 배후에 있는 권력의 요구로, 공권력으로 포장한 무기를 든 폭력으로 전락하고 있다.
  
  왜 이렇게 되고 있는 것인가? 그 까닭은 명백하다.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했다고 토로한 권력이 그 소통을 요구하는 국민을 진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권력은 소통을 원했던 것이 아니라 명령을 내리고 싶어 했던 것이다. 명령을 즐기는 권력을 민주주의는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다. 이걸 모르고 있는 것이 이명박 정권의 비극이다.
  
  돌파구는 없는가? 있다. 국민의 요구 앞에 무릎 꿇는 것이다. 그것 말고 다른 방도는 없다. 그걸 하지 못하면 권력의 생명은 그것으로 끝이다.
  
  소수의 폭력, 다수의 비폭력
  
  모든 싸움은 힘이 센 쪽이 이긴다. 민주주의를 내건 거리시위의 승패는 무엇에 달려 있을까? 수에 있다. 권력은 무기를 들고 있으나 소수다. 시민은 비폭력이나 다수다. 그런데 그 다수는 점점 불어날 것이다. 하나의 촛불에서 시작했던 일이 모두의 함성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권력은 공권력으로 포장한 폭력을 휘둘러 다수를 소수로 만들고자 하겠지만, 그 전술이 도리어 시민을 더 많이 거리로 이끌어 내고 있다. 역설이다. 그러나 그건 권력만이 모르고 있던 진실이다.
  
  이제 곧 6월이 오면
  
  10대를 거리에서 쫓아내면 그것으로 무마될 줄 알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더 힘센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깔아놓은 멍석 위에 어른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춤은 역사의 장단에 맞추어 거리를 <저항과 항쟁의 카니발>로 만들고 있다. 카니발의 행진은 종잡지 못한다. 그래서 진압은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밤을 새워도 축제의 열기가 식지 않는다. 권력은 그 열기의 에너지를 자기도 모르게 끊임없이 공급해주는 자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5월은 그렇게 줄달음치고 있고, 곧 6월이 온다. 6월 항쟁의 기억은 빛바래지 않았다.
  
  역사의 교훈을 망각한 자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언제나 실패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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