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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동의서' 없이 참석하면 잡아간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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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동의서' 없이 참석하면 잡아간대요"

[현장] 학생 줄었다 했더니…'부모님 동의서' 괴담

'스승의 날'인 15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어김 없이 촛불 집회가 열렸다. 600여 명이 모인 이날 촛불 집회에서 학생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한때 '소녀 시대'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촛불 집회 참석자의 대다수를 이룬 채 시위를 주도하던 중·고등학생이 급속히 줄어든 것.

학생은 왜 갑자기 줄어들었을까. 일단 교육 당국의 단속과 감시가 한몫했다. 이날도 곳곳에서 교육청 관계자로 보이는 이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게다가 중·고등학생 사이에는 "미성년자가 부모님 동의서 없이 촛불 집회에 참석하면 경찰에 연행된다"는 괴담이 폭넓게 퍼져 있었다.

"'부모님 동의서' 없으면 경찰이 잡아간대요"

이날 집회 앞줄에 있던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은 '부모님 동의서'를 직접 보여주며 자신들이 믿는 괴담을 자세히 설명했다. 한 여학생은 "오늘 집회에도 동의서를 가지고 나왔다"며 "우리 부모님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기 때문에 동의서를 써줬지만 다른 아이들은 그걸 받지 못해서 못나왔다"고 설명했다.
▲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부모님 동의서' 양식.

실제로 포털사이트 등에 '동의서'를 치면 '부모님 동의서'가 포함된 문서가 여러 개 검색된다. 대부분 "촛불 집회에 가려면 부모님 동의서가 있어야 하나요", "부모님 동의서 양식 좀 보내 주세요" 등의 내용이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미성년자는 부모님 동의서를 꼭 지참하십시오"라는 공지가 올라와 있다. 게시판에는 "부모님 동의 받아서 꼭 참석합시다" 등의 독려도 눈에 띈다.

그러나 이는 모두 '괴담'이다. 헌법에 '집회·결사의 자유'가 보장돼 있는 상황에서 '부모님 동의서'는 있을 수 없는 일.

서울 종로경찰서 정보과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며 "그야말로 '괴담'"이라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촛불 집회가 합법인 이상 경찰이 참가자를 연행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장학사 코미디'?…"대답할 처지가 못됩니다"

이런 괴담은 학생의 촛불 집회 참여를 과잉 단속하는 교육당국의 방침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날 자유 발언에서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이 줄어 가슴이 아프다"며 울먹였던 고등학교 2학년 이유진 학생은 "학교에서 나가지 마라고 했다"며 "교복을 입고 참여했다가 사진이라도 찍히면 벌점을 줘 내신에 반영하거나 징계주는 학교가 있다"고 고발했다. 그는 자신의 옷차림을 가리키며 "교복입고 나오면 사진찍는 사람이 많아서 사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날 집회 현장 주위에는 정장 차림의 40~50대 남성이 다수 어슬렁거렸다. 촛불도 들지 않고 무대에서 이어지는 발언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던 이들은 삼삼오오 서있다가 서로 얼굴이 마주치면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반갑게 인사를 하곤 했다.

이날 시위에 참석한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저들이 바로 교육청에서 나온 장학사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신원을 밝히길 꺼려했다. 이들은 기자의 질문에 대부분 "나는 할 말이 없다"고 인터뷰를 회피하거나 "그냥 지나가다가 구경하는 것"이라며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피했다.

한 사람은 "서울시청 주변의 기업에 다닌다"며 "구경하러 나왔을 뿐"이라고 답하다, 정작 어느 기업인지는 밝히지 못한 채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그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대답할 수 없는 처지다"라고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또 다른 사람은 멀리 서 있는 다른 사람을 가리키며 "부하 직원과 함께 구경왔다"고 했지만, 정작 '직장 후배'로 지목된 사람은 "나는 일하러 나왔다"며 우물쭈물하곤 했다. 이들은 모두 '교육청에서 나왔느냐'는 질문에 펄쩍 뛰며 "절대 아니다"라고 손사래를 쳤다.

이들 사이를 누비며 살갑게 인사하던 한 사람만이 기자의 계속되는 질문에 마지못해 "교육청에서 왔다"고 실토했다. 그러나 그 역시 "더 이상 답해 줄 수 없다"고 자리를 피했다. 무대에 올라가 당당히 자신의 소속, 이름을 밝히고 발언하는 학생과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선생님과 쇠고기 이야기 해 본 적이 없어요"
▲ 15일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에는 극소수의 학생이 참석했다. ⓒ프레시안

'전교조가 학생을 선동한다'는 일부 보수단체나 조·중·동 등의 왜곡과 달리 학교에서는 미국산 쇠고기에 관한 이야기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중학교 교사 최현숙 씨는 "교사도 대부분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며 "그러나 '선동한다'고 그럴까봐 아이들과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학교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아무래도 교사로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중학교 3학년인 류수정 학생도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전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서 "애들끼리는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선생님과는 그런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교사들이 학생을 선동한다'는 일부 언론의 주장을 놓고도 "전혀 그렇지 않다"며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강남의 한 고등학교에 다닌다는 최아영(18, 가명) 학생은 "다른 학교는 선생님이 가정통신문도 돌리고 집회도 못나가게 한다는데 우리 학교 선생님은 전혀 그런 말을 안 한다"며 "어짜피 우리 학교에선 집회 나올 학생도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선동하고 있다'는 일부 보수 진영의 '왜곡' 덕택에 교육 현장에서 목소리가 자유로운 것은 오히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찬성하는 교사들인 듯하다. 최현숙 씨는 "내 딸이 다니는 학교의 선생님은 '너희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안 하면 어떻게 살래', '경제 안 살리고 어떻게 살래'라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찬성하는 의견을 폈다고 한다"고 전했다.

중학교 교사인 최 씨도 학생들 사이에서 괴담처럼 퍼진 '부모님 동의서'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는 시위에 참석하는 학생이 줄어든 이유를 놓고 "집회 장소, 시간 등이 애들이 쉽게 참석하기 어려운 탓이지,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 관심이 떨어지거나 학교 차원에서 막거나 하기 때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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